[신년 기획 -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이탈리아 볼로냐에선 집짓기·연극 관람·육아까지 조합 통해 해결

2013. 7. 29. 11:39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신년 기획 -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이탈리아 볼로냐에선 집짓기·연극 관람·육아까지 조합 통해 해결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ㆍ해외 협동조합 엿보기

한국에서 협동조합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유럽, 북미의 국가에서는 협동조합이 생활화돼 있다. 이미 15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통해 지역공동체와 연계하고 있고, 소비자협동조합·주택협동조합·노동자협동조합 등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협동조합의 국제기구인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자료를 보면, 국제협동조합연맹에 등록된 협동조합단체는 전 세계 94개국 249개 조직으로 140만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있고 조합원은 10억명에 이른다.

▲ 유럽·북미 150여년 역사 자랑
지역공동체 연계 이미 생활화
조합이 뭉쳐 새 조합 만들기도


▲ 캐나다는 1800만명이 조합원
미 선키스트·AP통신도 조합


협동조합이 잘 발달된 이탈리아 볼로냐 시민들이 복합 문화공간인 ‘암바시아토리’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다. 암바시아토리는 도서협동조합인 ‘리브레리에 코프’가 설립한 곳으로, 리브레리에뿐만 아니라 이 조합이 소속된 조합네트워크의 조합원들도 할인가에 도서를 구입할 수 있다. | 한살림 협동조합 제공


■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

이탈리아 볼로냐에 사는 주부 키아라는 협동조합만 있어도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 씻을 때 사용하는 칫솔, 치약, 비누, 샴푸 등은 소비자협동조합 ‘코프아드리아티카’가 운영하는 대형마트급 매장 이페르코프에서 구매한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집도 주택협동조합 ‘무리’에서 지은 것이다. 키아라는 아이를 협동조합이 모여 만든 어린이집 ‘라치코냐’에 보내고 출근한다. 출근할 때 타는 택시도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택시다. 그가 일하는 곳도 신용협동조합이고, 점심을 먹는 식당도 요리사와 웨이터 노동자가 모여 만든 협동조합 ‘캄스트’에서 운영하고 있다. 일찍 퇴근한 키아라는 아이를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간다. 그가 찾은 어린이 전용극장 테스토니 라가치는 연극협동조합 ‘바라카’가 공연하는 곳이다. 아이와 함께 연극을 본 키아라는 이페르코프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한다.

키아라는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활이 협동조합에서 이뤄지는 그처럼 생활하는 이들을 ‘협동조합의 도시’로 불리는 볼로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부회장은 “이탈리아 볼로냐, 스페인 몬드라곤 등이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이유는 한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한 이종 협동조합들이 네트워크나 컨소시엄을 형성해 생산·소비·금융·교육 등 지역주민의 전반적인 생활을 책임지기 때문”이라며 “협동조합은 특정 영역에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협동을 통해 모든 영역에 대해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임장관실에서 발행한 협동조합자료집을 보면, 볼로냐가 주도인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인구는 약 400만명으로 1인당 소득이 4만유로(약 5700만원)에 이른다. 이 지역은 유럽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지역 중 하나로 실업률도 낮다. 이탈리아 전체의 실업률은 9%인 반면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실업률은 5%에 불과하다. 이 지역 경제활동의 30%를 차지하는 협동조합은 그 수만 8000여개에 이른다.

협동조합끼리 뭉쳐 또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한다. ‘협동조합들의 협동조합’으로 불리는 레가코프는 회원인 협동조합들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조직으로 1만5200개 이상의 소매·건설·제조·서비스·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이 가입해 있다. 레가코프는 협동조합 간의 네트워킹, 신규 설립 협동조합 기업에 대한 인큐베이팅, 지자체와 정부를 상대로 협동조합 대변 등 정부 지원 이외의 부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레가코프 볼로냐 소속의 협동조합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볼로냐 인근 디사베나의 어린이집 ‘라치코냐’는 건축노동자·급식노동자·보육서비스협동조합 등 3개의 협동조합이 모여 만든 보육시설이다. 건축노동자협동조합인 ‘치페아’ 소속 노동자들이 어린이집 공사를 맡았다. 급식노동자협동조합인 ‘캄스트’ 소속 급식 노동자는 어린이집의 급식을 담당하고, 돌봄·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카디아이’ 소속 교사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과 볼로냐시가 민·관 연대방식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카라박 프로젝트’에 따른 것으로, 어린이집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협동조합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부지와 운영비는 볼로냐시가 지원한다. 볼로냐에서는 라치코냐 등 11개의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일반 기업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반면, 협동조합은 서로를 경쟁이 아닌 파트너 또는 협력의 대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주택협동조합 ‘무리’가 볼로냐시 외곽에 건설한 한 소형 아파트 전경. 1963년에 설립된 무리는 50유로(약 7만원)를 출자금으로 내면 누구나 조합원 자격을 얻어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 | 한살림 협동조합 제공


■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그리고 협동조합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영국 맨체스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축구라고 답할 것이다. 두 지역은 축구팀으로도 유명하지만 협동조합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팀 중 하나인 스페인 FC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자료집을 보면, 바르셀로나는 1899년 팀 창단 초기부터 조합원을 모집해 조합원의 수가 17만명을 넘었다. 회비 150유로(약 21만원)만 내면 전 세계 누구나 2년 동안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조합원은 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열리는 경기의 입장권을 구입할 때 약 22%를 할인받을 수 있고, 우선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조합원은 팬으로서 혜택만 받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 가운데 가입한 지 1년이 넘고 18세 이상이면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다. 조합원은 또 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총회에 참석해 연간 보고서, 장기 계획, 예산 등을 결정할 수 있다. 팀을 6년 동안 책임질 회장(구단주)을 선출하기도 한다.

영국 맨체스터는 협동조합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 맨체스터는 세계 최초로 성공적인 협동조합이 탄생한 곳이다. 19세기 중반 맨체스터 인근 로치데일 지역에서는 설탕과 버터를 판매하던 사업자가 설탕에 모래를 섞고 저울 눈금을 정확히 재지 않는 등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 잦았다. 이에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28명은 1파운드씩 출자해 가게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844년 탄생한 최초의 성공적인 근대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이다. 소비자협동조합의 형태로 시작된 로치데일 조합의 목적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재정과 사회적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지배구조에서도 일반 회사와 달리 매년 조합원 총회를 열어 조합을 운영할 이사장, 회계, 총무, 감사 등을 선출하는 민주적인 운영방식을 택했다. 1인1표 의결권, 조합원의 출자에 의한 자금 조달, 출자금에 대한 이자율 제한 등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의 원칙과 가치는 향후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채택한 협동조합 7대 원칙으로 발전했다. 맨체스터를 포함한 영국의 2011년 협동조합 수는 5900여개, 조합원 수는 13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훈 희망제작소 사회적경제센터장은 “영국은 사회적 경제에 필요한 기부 문화 등 폭넓은 인프라가 퍼져 있고, 지역공동체가 꾸준히 커나가고 있어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조직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 “퀘벡주 인구 70%는 조합원”

캐나다는 협동조합의 활동이 활발한 국가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해외정책 연구연수 결과보고서를 보면, 캐나다 국민 중 협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수는 1800만명에 달한다. 특히 퀘벡주에는 3300여개의 협동조합이 있고, 인구의 70%가 1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해 있다.

퀘벡주의 신용협동조합 데자르댕은 캐나다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20세기 초 퀘벡주에 살던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거주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원금의 수십배에 달하는 고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알퐁스와 도리멘 데자르댕 부부는 1900년 그들을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데자르댕 부부는 가난한 이들도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출자금 5달러를 매주 10센트씩 1년 동안 나눠 낼 수 있게 했다. 보고서를 보면, 이렇게 시작한 데자르댕은 지난해 기준 자산 1900억달러(203조원), 1년 순이익 17억달러(1조8000억원)에 달하는 북미 최대의 신용협동조합이 됐다.

김 부회장은 “데자르댕은 이익금을 지역사회에 쓰거나 다른 협동조합으로 넘긴다”며 “잉여금으로 새로운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지역 풀뿌리 단체를 직접 지원하기도 하고, 재단을 설립해 체계적으로 지역의 사회적 경제조직을 만드는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데자르댕은 1971년부터 연대저축기금을 만들어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구하기 힘든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퀘벡주 앰뷸런스노동자협동조합인 세탐 역시 데자르댕으로부터 자금을 얻어 시작한 협동조합이다. 장 샤를 보일리와 루이 푸아리가 일하던 앰뷸런스 회사는 1988년 경영난으로 부도가 났다. 당시 노동조합의 주축이던 두 사람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응급구조사로 회사에서 일하던 노조원 40명이 1000달러씩 출자한 돈과 데자르댕에서 대출을 받은 자금으로 시작한 세탐은 지난해 기준 326명의 응급구조사와 46대의 앰뷸런스를 보유한 퀘벡 최고의 앰뷸런스 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도 협동조합이 있다. 식품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선키스트, 웰치스, 블루다이아몬드 등은 물론 세계 최대 규모의 통신사인 AP 역시 협동조합이다.

선키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6000여개 오렌지 생산농가가 모여 만든 대표적인 생산자협동조합이다. 미국은 1869년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 횡단철도가 개통되자 화물 수송과 유통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서부지역에만 한정됐던 오렌지 소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돼 오렌지 시장이 커지고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재배농가의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고 중간도매상의 주머니만 불렸다. 결국 1893년 오렌지 재배농가들은 ‘남부 캘리포니아 과일거래소’를 만들어 오렌지의 판매와 유통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키스트의 모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