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6) 파주 운정 아파트 단지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장
ㆍ“조금만 더 버티면 오르겠지” 헤어나지 못한 욕망의 늪
지난 22일 오후, 경기 파주시 교하신도시 운정지구의 ㄱ아파트 단지 정문. 파주 교하신도시는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 이어 들어선 2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다. 특히 운정지구 쪽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파주시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일산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어 거의 일산 생활권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 없는 곳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어 수도권 아파트를 물색하다가 이곳을 골랐다. 많은 아파트 단지들 가운데 굳이 이 아파트를 찾은 이유는 나름대로 있다. 이 아파트 단지가 수도권 2기 신도시 아파트 가운데 수도권 부동산 활황기의 정점인 2006년 9월쯤에 분양됐다는 점이 작용했다. ‘부동산 불패’의 환상과 그 이후의 환멸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아파트 단지 거주 가구들의 부채 실태 자료를 갖고 있다는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올해 초 문화방송 이 제작한 ‘2013 부동산 보고서’ 편에 인용된 ㄱ아파트 단지 가구들의 부채 실태 분석작업을 도와준 적이 있다. 분석작업을 도와주면서 살펴본 부채 실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분석상으로는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가구의 70%가량이 ‘깡통아파트’로 분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겁도 없이 빚을 내 위험한 상황에까지 치닫게 됐을까. 그걸 현장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활황기에 분양된 수도권의 상당수 아파트는 이제 가계부채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가 됐다. 부동산 불패의 환상 너머에는 ‘하우스푸어’와 ‘깡통아파트’가 도사리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 신화’를 잘 보여주는 경기 파주의 한 신도시 아파트 정문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파주 | 김기남 기자
■ 2006년 부동산 활황기에 분양 ‘하우스푸어 전형’
아파트 단지의 정문은 웅장했다. 족히 길이는 30여m, 높이도 4~5m는 돼 보이며, 대리석 타일이 붙은 직사각형 정문이다. 아파트 단지 이름에 ‘센트럴파크’까지 들어 있어 이른바 ‘명품 아파트’로 치장하고 싶은 욕구가 이름과 정문에서 역력히 묻어난다. 200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웅장하고 화려한 정문을 만들고 아파트 단지에 고급스러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들 아파트에 살게 되면 곧바로 상류층으로 진입하고, 잘살게 될 것 같은 환상을 주는 것이다. 이 환상에 혹해 많은 이들이 욕망의 덫에 걸려들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하우스푸어가 된 게 아닌가. 물론 건설업체들이 엄청나게 부풀린 고분양가와 그 이후 높게 형성되는 거래가격을 합리화하기 위한 소소한 장치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ㄱ아파트 단지 주변도 높은 나무 울타리가 있고, 주요 시설들처럼 입주민임을 확인해야 차량 진출입이 가능했다. 아파트 단지를 외부 공간과 명확히 구분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어렵게 하는 ‘빗장도시(gated city)’의 특성을 조금씩이라도 강화하는 게 200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특징이다. 외부에는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고 외치고, 거주자들에게는 ‘여기에 사는 당신은 특별합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단지 안의 공간은 널찍했다. 20~30층씩 되는 아파트 11개 동으로 구성돼 있어도 신도시 단지답게 동간 거리가 꽤 많이 확보됐다.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자리한 어린이 놀이터도 수백평은 돼 보였다.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들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역시 쉽지 않았다. 처음에 인사를 나눌 때까지는 좋은데 부채 상황에 대해 물어보면 모두들 입을 다물거나 시선을 돌렸다. 단지 이곳저곳을 둘러봤으나 눈에 띄는 주민이 많지 않았고, 설사 만났다 해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 시간가량 지나서야 겨우 한 40대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인근의 파주시 금촌면에서 살다가 2006년 이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2009년 바로 입주한 경우였다. 40평형 아파트에 사는데 당시 분양가는 5억3000만원. 하지만 취득·등록세와 이사비용 등으로 실제 입주하는 데는 5억7000만원가량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집값이 많이 떨어졌을 텐데 어떠시냐”고 다소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어휴! 말도 못하죠. 집값이 떨어지니 속상해서 집값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그 아주머니 사정은 좋은 편이었다. 입주 초기에는 빚이 많아서 고생한 모양인데, 기존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 지금은 빚이 3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 달에 10여만원 이자를 내니까 별 부담은 없고요. 지금은 그냥 아이들 좋은 환경에서 키운다는 기분으로 만족하며 살려고 하고 있어요.”
사실 그 아주머니가 전형적인 사례는 아니다. 마침 내가 아는 지인 가운데 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파주시와 인접한 일산신도시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50대 후반인 그는 얼마 전까지 중견 회사에 다녔고, 부인은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서 장식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2000년대 부동산 투기바람이 불 때 화정동 지하철 역세권 인근의 오피스텔 한 채를 2억원 정도의 빚을 내서 샀다. ‘사두면 노후에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건설업체의 사탕발림에 혹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일산 아파트와 화정동 오피스텔을 담보로 다시 수억원의 빚을 내 2006년 ㄱ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하지만 이후 수도권 집값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세 건의 부동산은 모두 가격이 20~40%씩 빠졌다. 수도권에서도 고양시, 파주시는 집값이 많이 떨어진 지역이니 오죽했겠나. 설상가상으로 그는 그 사이 퇴직해 이제는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일하고 있다. 부인이 운영하는 가게도 경기침체로 장사가 시들하다. 전형적인 하우스푸어 가계다.
■ 10가구 중 8가구 평균 3억원 담보대출
4년 전쯤 잠시 만났을 때 그는 그때부터 빚 부담으로 힘들어했다. 그때 나는 “적어도 한 채는 조금 헐값에라도 처분해 빚을 줄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러지 못했고, 아마 매월 400만원이 넘는 빚을 감당하고 있다. 그것도 원리금 상환을 미뤄서 그렇지 원리금을 함께 상환하게 되는 순간 그는 대책이 없다. 불안한 노후를 해결하려고 부동산을 샀지만,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의 노후는 그 때문에 위태로워졌다. 사실 그가 바로 ㄱ아파트 소유자들의 전형적인 케이스에 가까웠다.
이쯤에서 팀을 도우면서 분석했던 이 아파트 가구들의 가계부채 실태를 짧게 소개해보자.
ㄱ아파트 단지는 모두 937가구(분석대상 가구는 933가구)로 40평 500가구, 47평 215가구, 48평 110가구, 59평 108가구로 구성돼 있다. 2006년 분양 당시 분양가격은 평형에 따라 5억원에서 8억9000만원까지다. 분석대상 가구 전체의 84.5%인 788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등기부등본상에 나타난 근저당설정액이 실제 대출액의 120% 정도라고 보고 주택대출을 받은 가구 전체의 평균 주택담보대출액을 추정한 결과, 3억267만원이었다. 또 등기부등본상 주택 소유주가 직접 거주하는 비율은 26.9%였다. 거꾸로 말하면 73.1%가 전월세를 끼고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주택담보대출액에 전세 대출금까지 포함한 타인 자본 금액은 3억8900여만원으로 더 높아졌다.
특히 평형이 넓을수록 대출금과 전세금의 규모도 큰 편이었다. 소유자의 거의 대부분은 전월세를 끼고 평균 3억원 이상에 이르는 거액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입한 것이다. 사실 실거주 목적보다는 투자 또는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샀다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집값이 하락하면 하우스푸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ㄱ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수도권 외곽의 중대형 평형 위주로 구성된 아파트라는 점에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경우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3년 전 역시 팀의 의뢰로 판교신도시 판교원마을의 두 개 아파트 단지 부채 실태를 분석했을 때도 빚을 진 가구의 비중이 75%를 넘었고, 평균 대출액도 3억원을 넘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기에 분양된 상당수 아파트 단지가 다 이런 양상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줄지어 들어선 부동산중개업소 한 군데에 들어가 이런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입주 시점부터 4년째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장모씨. 그는 “ㄱ아파트는 그나마 입주율이 100%일 정도로 사정이 좋은 편”이라며 “주변에 들어선 다른 아파트 단지들 가운데는 입주자를 못 채운 아파트들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ㄱ아파트 소유자들은 파주시나 인근 고양시 지역 거주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아파트 소유자들이 무리하게 빚을 낸 이유를 물어보았다. “2006년 당시에는 분양받기만 하면 로또라고 불리지 않았나. 이 아파트도 경쟁률이 4~5 대 1씩 됐는데, 당시 분양받으면 주위에서 축하도 많이 받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누가 빚 걱정이나 했겠나.” 예상했던 답변이지만, 달리 뭐라고 말하겠는가.
■ 집값 대신 사람값이 올라야 진정한 경제 살리기
그는 계속되는 부동산 거래 침체로 “밥값을 못 벌어서 집에서 쫓겨날 지경”이라고 농반진반으로 푸념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듯했다. 근거는 두 가지였다. 입주시점에 6500만원 하던 전세 시세가 1억7000만원까지 올라 매매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 빚이 많은 아파트 소유자들이 경매에 크게 넘어가지 않고 그래도 4년간이나 버텨왔기에 조금만 경기가 좋아지면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기존 언론의 엉터리 진단에서 많이 나왔던 이유들이지만, 그의 믿음은 꽤 굳건해 보였다. 그는 4·1 부동산대책에 대한 일정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그런 희망을 그는 아마도 찾아오는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전파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고, 정부가 계속 그 같은 미련을 키우는 부양책들을 내놓으면서 사태는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다.
다소 전문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LTV 실태였다. 아파트 가격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얼마나 과중한지 살펴보기 위해 주택가격 대비 주택담보대출액의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가 LTV(Loan to Value ratio)다. 예를 들어 LTV 70%라고 하면, 주택 가격이 5억원일 때 주택가격의 70%에 해당하는 3억5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주택가격을 적용하느냐가 문제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 LTV를 산정할 때는 호가 위주의 국민은행 시세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사태를 실제보다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보게 된다. 실거래가는 5억원인데 호가는 여전히 6억원 수준으로 설정돼 있는 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ㄱ아파트의 경우에도 호가 시세를 기준으로 금융권에서 고부채 가구로 분류하는 LTV 60% 이상 가구 비중이 50.2%로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하면 이미 60% 이상 가구 비중이 61.6%로 껑충 뛴다. 더 심각한 것은 대출금에 전세액까지 포함할 경우 LTV는 100% 이상이 절반에 육박하는 47.9%에 이르게 된다. 최근 수도권 경매낙찰가율이 70%가량 되는데 전세가를 포함한 LTV가 70%를 넘는 가구 비중만 71%다. 즉 이들 71% 가구는 소유주가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깡통아파트, 깡통전세가 된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도 이 같은 실태를 제대로 인식하는 언론도, 금융권도, 정부 관계자도 드물다. 실제로 ㄱ아파트 단지 인근 상가에 위치한 농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실거래가로 이미 4억원도 안되는 40평형 아파트의 시세를 4억5000만원 정도로 적용하고 있었다.
우려하던 상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모두는 파우스트 박사가 영혼을 파는 듯한 거래를 해왔다. 집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사는 주거공간이 아닌 돈벌이 수단이 됐다. 하지만 그 결과 멀쩡하던 중산층이 붕괴 직전으로 치달았고, 그 탐욕이 한국 사회와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많은 이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그렇다. 이들이 내놓은 대책들은 연착륙을 유도한다고 떠벌렸지만, 실은 길게 보면 오히려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경착륙 대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2004년 이후 470조원 수준이던 가계부채는 두 배로 늘어 이제 963조원이 됐다. 원리금 상환은 엄두도 못내고 이자만 내는 가계가 70%를 넘는 상황이다.
우리는 무너지는 부동산 시장을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부동산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고 정부도, 상당수 언론도 악을 쓴다. 그 과정에서 가계들은 부채 부담이 늘고 지출여력은 줄어 내수침체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집값 대신 사람값이 오르는 진정한 의미의 경제를 살려야 부동산 시장도 살 수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