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4) ‘초고층 빌딩숲’ 해운대
우석훈 |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경제학 박사
ㆍ대책 없는 ‘투기 놀이’‘부산 버블’은 터진다
대선 전날,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함께 KTX 부산역에 내렸다. 공식 선거유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투표 전날 밤 10시까지였다. 워낙 급하게 유세를 계획하다 보니 동선이 얽혀 부산역 앞은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문재인 후보 발언이 끝나고 짧게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있었다. 대선 캠페인의 마지막 유세였다. 개인적으로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 시대에, 꼭 이기고 싶었던 선거를 그렇게 졌다. 그날 부산역을 떠나면서 언제 다시 이곳에 올까 싶었다. 노무현에서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까지, 야당의 많은 정치인들이 부산이나 부산 인근 지역 출신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대체로 이들에게 냉담했다.
■ ‘버블 도시’ 히로시마와 닮은 부산
한국에서 울산 다음으로 많이 방문한 지역이 부산이다. 언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히로시마와 부산’이라는 주제로 몇 년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두 도시 모두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는 핵폭탄으로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고, 한국전쟁 때 부산은 유일하게 전쟁 피해를 받지 않았다는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이 많다. 부산은 한국전쟁 때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히로시마는 청일전쟁 때 일본 내각이 옮겨와 총지휘를 한 곳이다. 그때 군납용 술로 일본 군부가 결정한 것이 청주라서 사케가 일본을 대표하는 술이 된 걸로 알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부산에 롯데가 있다면, 히로시마엔 도요 카프가 있다. 일본 유일의 시민구단이다. 시민주주들은 성적이 좋지 않아도 열성적으로 야구단 운영에 참여한다. 두 도시 모두 죽어라고 자동차 산업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곳이다. 도요타나 닛산보다 규모가 작지만, 히로시마엔 마쓰다 자동차가 들어왔다. ‘히로시마 버블’이라고 불리는 버블이 있던 것도 같다. 그런데 히로시마 버블은 부산에 비하면 아기 수준이다. 2004년 완공된 ‘Urban View Grand Tower’는 히로시마 버블의 상징적 건물인데, 완공 이후 지역경제가 침체를 걸었다고 현지인들에게 들었다. 그들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얘기하는 그랜드 타워가 43층이다. 부산 해운대 얘기를 해주면 그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특별한 연구비 지원도 없지만 부산에 대한 연구를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 동기는 어느 부산 출신 금융사 간부의 부탁이다. 연봉 수억원을 받는 그 양반이 자신의 고향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길로 걷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길을 찾아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부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해운대, 광안리를 비롯한 일련의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립 붐을 서울에서 활동하는 부산의 많은 경제인들은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해운대를 기반으로 지역경제를 형성한 부산은 고층 아파트로 가득한 매력적인 해양 레저 도시인가, 터지기 직전의 거품으로 가득 찬 콘크리트 숲인가.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현대아이파크 앞 도로 횡단보도를 한 시민이 건너고 있다. | 우석훈
“형이 직접 그 얘기 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아요?”
그 말을 건네자 선배는 슬픈 눈초리를 보냈다. 부동산 회사로부터 광고지원을 받는 언론이나 증시 시세를 따라 분석하거나 투자해야 하는 투자사 간부들이 양심에 따라 공개적인 얘기를 하기는 아주 어렵다. 선배 부탁으로 마지못해 부산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내려간 부산에서 정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수 쪽에서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부산은 고층 아파트로 가득한 매력적인 해양레저 도시이며 관광산업의 메카와 같은 곳이다. 진보 쪽에서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부산은 대선 전략과 같은 정치공학 외에는 없다. 두 가지 다 너무 뻔한 얘기다. 나는 그 정도에 호기심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부산 버블은 터진다. 그리고 집권 새누리당은 마치 일본 지역경제가 1990년대 이후 테마파크와 아파트 붐, 지방 공항 건설, 광역 도시화 때문에 헤어나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들어간 그 길을 그냥 걸어갈 것이다.’ 이게 부산 경제에 대한 나의 기본 생각이다. 부산 경제의 큰 축 중 하나로 부산시가 주목하는 컨벤션 산업, 아시안게임 이후의 경기장 운영 실태를 보면 그 컨벤션이라는 게 뭔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안타깝지만 망해갈 도시, 그리고 다시는 살리기 어려운 도시라는 게 내 상식이다.
1974년 석유파동의 직격탄을 맞은 파리의 에펠탑 인근 센 강에서 고층 타워형 아파트 건립 붐이 일어난 적이 있다. 오일 머니가 진출하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건설 붐이 생겼던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지만, 당시 사회적 힘이 결국 고층 빌딩 붐을 만들었다. 파리가 버블과의 전쟁에서 늘 승리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파리 13구에 주상복합 붐이 불었는데, 한국에 들어온 주상복합 아파트의 원형 중 하나가 13구 모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지역은 슬럼화되었고, 외국인 집단거주지역으로 바뀌어나갔다. 원래 살던 부유층들은 그곳을 떠나갔다. 장기적으로 성공한 주상복합 모델이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아파트가 막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 그걸 어떻게든 세우려는 사회적 힘이 있는 곳의 경제가 그나마 지속가능하고, 그걸 제어하지 못하거나 그 투기붐에 자국의 중산층들이 편승하려고 했던 도시는 예외 없이 거품 붕괴의 직격탄을 한 번씩 맞게 된다. 서울이라고 좀 다르겠는가? 서울이 보여준 유일한 힘은 경제적으로 성공 불가능한 용산 개발사업을 정지시킨 정도 아니겠는가? 이건 사태를 보는 시각의 차이점이다. 투기 편에 서느냐, 투기 편에 서지 않느냐, 그 입장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게 된다.
■ 마린시티가 올라가는 동안 경제는 나아졌는가
내가 정말로 충격을 받은 것은 보수든 진보든, 부산 지역의 많은 경제인들이나 학자들도 해운대 버블의 붕괴를 이미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눈에 비친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은 속으로부터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별스러운 눈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석에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주고받다가 부산의 지도층 인사들도 이미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흔히 만나는 상황이다. 공식석상에서 하는 얘기와 사석에서 하는 얘기가 다르다는 것,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아니, 한국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맙소사, 부산에서 사람들이 ‘독립’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정말 장난 아니다. 충격적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보수와 진보 사이에 정서적 인식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독립?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 가면 독립 얘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프랑스도 코르시카섬 출신들에게 독립의 염원을 가끔 듣는다. 영국 스코틀랜드는 아예 별도의 중앙은행을 운영하고, 따로 파운드화를 발행한다. 이런 지역은 민족적 이질성과 같은 역사적 혹은 문화적 배경이 독립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부산에서 만난 독립의 염원은 서울 지역 경제로부터의 독립이며 동시에 일본 지역 경제로의 편입에 대한, 지극히 경제적인 이유와 관련되어 있다. 도시국가론, 광역화 같은 공개적으로는 잘 얘기하지 않는 크고 작은 논의들이 작게는 서울로부터의 경제적 독립, 크게는 국가로서의 부산의 독립, 그런 정서적 염원과 결합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부산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부산 사람들의 그런 정서를 그냥 간단히 무시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유명 해변을 한번 돌아보시라. 해운대같이 초고층 아파트가 대규모로 둘러싼 곳이 있는지? 일본 요코하마가 초고층 건물들을 좀 올렸다가 아파트와 사무실을 채우느라고 정말로 고생 많이 했다. 페리 총독이 일본을 연 개항지라는 역사를 갖고 있는 요코하마는 어쨌든 도쿄가 배후도시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부산, 어쩔 것인가?
매년 몇 번씩 올 때마다 논쟁을 한다. 그때마다 부산 사람들의 메뉴가 계속 바뀌었다. 누가 이 아파트를 살 것인가? 처음에는 부산 중산층들이 살 것이라고 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으로만 보면, 부산 지역은 대구, 전남과 함께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는 곳이다. 아무리 계산해도 부산 중산층이 관리비 월 100만원은 사뿐히 넘어갈 이 고층 아파트를 감당하기 어렵다.
다음에 부산 사람들은 서울 부자들이 별장지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별장지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이 차로 운전해서 식구들이 올 수 있고, 인근에서 관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쟁지로는 부산 해운대보다 강릉 경포대가 훨씬 조건이 좋다. 경포대의 현대아파트 가격과 부산 마린시티의 초고층 아파트 가격을 비교해보라. 말도 안되는 얘기이다. 별장지가 아니라 졸부들의 투기적 수요는 일부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일본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 했다. 그 말도 안되는 신화를 깬 것은, 내가 알기로는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외국인들이 부산에서 한 부동산 거래를 싹 뒤져서, 일본인들의 해운대 투자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 걸로 기억한다(2013년 5월7일, 조선비즈. “부산 아파트, 일본인 특수? 그런 거 없는데예”). 좀 심하다 싶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인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 일본 부자가 한국에 온다면 일본인 거주촌이 있는 동부이촌동이나 일본인 학교가 새로 이사 간 상암으로 올 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부산이 제시한 수요는 울산의 중산층과 부자들이다. 참, 눈물겨운 신화 만들기이다. 1인당 소득 전국 최고인 울산도 요즘 거품 붕괴에 직면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 청년들은 고향 등지는데 백화점은 호황
전 세계 경제의 심장부 미국도 투기와 함께 경제가 몰락하는 것을 버티지 못했다. 해운대에 마린시티가 올라가고 있는 동안 부산은 과연 좋아졌는가? 부산 고졸자의 수도권 유출률은 2009년 기준으로 16.2%이다. 문제는 이들 중 대학 졸업 후 부산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9.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한국고용정보원, 대졸자 직업이론 경로조사 참고). 부산에 갈 때마다, 특히 최근에 더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부산에 청년이 없다”이다. 학력 상위층이 서울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의 말로 바꾸면, 부산의 부자들이 해운대에서 투기놀이하는 동안, 그들의 공부 잘하는 자녀들은 부산에서 떠나가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지는 도시, 그런 모델이 잘될 이유가 있나?
매번 부산에 올 때마다 해운대에 들른다. 영화 <해운대>에서 보여준 쓰나미의 비극을 보면서, 해운대가 관광으로 뜨겠다고 좋아했던 것이 우리 모습이기는 하다. 해운대를 기반으로 지역경제를 형성한 이 도시는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갈 길을 잘못 찾고 있다. 그 빈 공간을 토건이 사정 없이 파고들었다. 이 콘크리트 더미 위에서 앞으로 어떤 희망을 찾을 것인가? 그것은 부산만의 고민이 아니라 전후좌우 없이 토건으로 내달렸던 많은 도시들이 당면한 문제다. 대선이 몇 번 지나갔지만 부산에 새로운 희망이 온 적은 없다. 다른 방식의 논의를 해보자는 목소리도 미약했다.
<김석준 부산을 걷다>라는 책은 사진작가 화덕현이 맛깔스럽게 찍어낸 부산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의 눈을 통해 본 부산 아파트의 개발 모습은 정서적으로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그의 사진은 장엄하면서도 애잔하고, 어딘가 회고적이다. 부산 사람들이 말하는 해운대 아파트에 사는 부산 중산층, 그게 바로 해운대에 사는 자연인 화덕현의 삶이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기 직전 부산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후 사진작가 화덕현은 해운대구의 기초의원이 되었다. 간만에 부산에 간 김에 화덕현을 만날까 했다가, 결국 그냥 발길을 돌렸다. 내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라서, “이렇게 하자”는 얘기를 꺼낼 자신이 없었다.
해운대의 저 콘크리트 더미 앞에서 한국의 보수는 길을 잃었다. 부산에 잔류한 정상적인 20대에게 저곳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보도 길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인 듯싶다. “고향 사람이니까 밀어주세요”, 그 얘기 외에 무슨 말을 했었는가?
지난번 방문한 포항의 경우 백화점은 어렵지만 죽도시장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부산은 백화점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잘된다고 한다. 그 대신 아웃렛 매장 등 전통 상권이 급속도로 추락 중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경제 현상이 아니라 문화 현상에 가깝다. “부산은 서민적이다”라는 일반인들이 흔히 말하는 그 부산의 모습은 현장에서나 데이터에서나 관찰되지 않는다. 부산에서 올라갈 때, 희망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질 상황이 언젠가 올까? 광안대교 밑으로 마침 요트 대회가 진행되는 진귀한 모습을 보았지만,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