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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3) 건설인력시장

경제/경제와 경영, 관리

by 소나무맨 2013. 7. 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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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3) 건설인력시장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장

 

ㆍ건설수주액 늘었는데 일당은 반토막… 이곳이 남의 몫 ‘가로채기 현장’

4월29일 새벽 세 시. 알람 소리에 벌떡 깨어났다. 취재를 위해 이렇게 새벽에 일찍 깨어난 건 현직 기자 시절에도 드물었던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약간은 떨리는 기분으로 경기 성남시 복정동에 있는 건설인력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잠시 상념에 잠겼다. 지금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당시 안철수 후보 측의 국민정책참여단 단장이라는 걸 맡았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안 후보 정책에 반영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캠프에선 설명했다. 많이 망설였지만 고민 끝에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는 난무했지만, 정작 유권자인 국민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감도 못 잡는 상황. 나는 허공에 붕 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를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게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도탄의 민생현장에서 나오는 신음과 비명소리를 멋진 정책으로 가다듬고 싶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란 이렇게 당신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구구하게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첫 주제의 현장으로 건설인력시장을 택한 이유만은 말하고 싶다. 당시 국민정책참여단에서는 청년알바 노동자와의 간담회에 이어 안 후보가 건설인력시장을 방문해 건설노동자들과 정책간담회를 갖는 행사를 기획했다. 그 기회를 통해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안 후보는 현장을 방문했지만 대다수 언론에서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안 후보의 배경이 될 뿐이었다. 이후 그들에 대한 부채감이 생겼다. 그래서 ‘맨발의 경제학’ 첫 주제는 그 부채감을 푸는 것에서 시작하려 한다.

지난 1일 새벽 4시30분, 경기 성남시 복정동 수진리의 인력시장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건설노동자는 “한 달에 150만~200만원 버는데 식비와 월세, 아이들 학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 김정근 기자


▲ “어떤 건설 현장 오야지는 노동자들 통장을 모두 회수해
위에서 돈이 내려오면 3만원씩 떼고 나눠준대요”
- 건설노조 성남지회장 직무대행


■ 새벽 4시30분 성남 복정동 수진리

새벽 네 시 반쯤 인력시장이 열리는 복정동 수진리 언덕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비가 내려 작업을 쉬는 현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섯 시가 넘어가면서 150명가량이 모여들었다. 공사하기 좋은 봄철이 성수기인 셈인데 많을 땐 600~700명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곳은 철근노동자들이 모이는 곳이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등에서는 다른 분야의 건설인력시장이 선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틈에서 올해 나이 50인 고모씨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공사판에서만 28년째 일하는 베테랑으로 ‘오야지’로 일하기도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 1만5000원이던 노임단가가 외환위기 전에 12만~13만원까지 갔는데, 외환위기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 수입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비가 오는 등 날씨가 궂으면 일거리가 없기 때문에 한 달에 평균 20일 남짓 일하게 된다. 더구나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는 일을 줄곧 쉬어야 한다. 그래서 1년에 쥐는 돈은 약 1800만~2200만원 남짓이라고 한다. 고씨는 그래도 1년에 3500만원 정도는 번다고 한다. 그쪽 업계에서는 고소득자다. 고씨는 “나는 예외적인 존재야. 내가 기본적으로 워낙 성실하고 이 판에서 ‘짠밥’도 있으니까 먹고는 살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못 먹고 산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건설노동자는 “한 달에 150만~200만원 버는데 식비와 월세, 아이들 학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그나마도 이들은 철근기술자이니 대접이 나은 편이다. 흔히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인부들은 6만~7만원 수준이다. 이 또한 외환위기 이후 그대로거나 오히려 뒷걸음친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사이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이들의 실질 일당은 반토막이 난 셈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돌아갈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몇 년 전부터 부동산시장 침체가 왔지만 그 전까지는 부동산 호황기였다. 침체기 이후에도 정부가 대규모 공공토건사업으로 떠받쳤다. 대한건설협회 집계로는 2000년 41조원 수준이던 건설수주액이 부동산경기가 급락한 2009년 118조원을 넘었고, 2011년에도 110조원을 넘었다. 분명히 건설수주액이 세 배가량 늘었는데도, 건설노동자 노임 단가는 오르지 않았다. 물론 건설현장에 불법적으로 취업해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십만명 들어와 있는 게 노임 하락 요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건설수주액이 몇 배나 늘었고, 부동산경기 침체 전까지 건설업체들은 엄청난 호황을 누렸는데 노임 단가만 반토막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중간에서 누군가 이들의 정당한 몫을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덤프트럭 운전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발주하고 대우건설이 수주한 한 4대강 공사현장의 설계내역서를 보면 덤프트럭으로 24.1㎞를 2시간37분에 운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평균 시속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설계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세 번만 왕복하면 24t 트럭의 경우 85만원 정도를 지급하도록 예산은 책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공사현장에서 덤프트럭 운전자들은 평균 15회를 넘게 왕복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루 일당으로 45만원만 업체로부터 받는다. 정부가 책정한 기준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일을 하고도 실제로는 절반 정도에 불과한 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즉 정부가 책정한 예산의 약 10분의 1만 노동자들에게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45만원을 받으니 괜찮지 않은가. 아니다. 덤프트럭 운전자는 45만원을 받더라도 80% 이상이 유류비와 각종 차량 유지관리 등으로 빠져나간다. 실제로 남는 수입은 하루 10만원이 채 안된다. 물론 공사현장마다 다르고 제각각 정도도 다르지만 굴착기, 불도저 등 다른 건설기계 운전자들이나 철근공, 미장공, 벽돌공 등 모든 건설노동자들이 기본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역대 정부는 무분별하게 토건사업을 벌이며 막대한 세금을 써왔지만, 그 돈들은 불법 다단계하도급을 따라 중간에서 모두 녹아나고 건설노동자들은 쫄쫄 굶는 상황.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약탈적 자본주의의 축소판

건설노동자들의 애환은 이게 다가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안 후보 간담회 때 나왔던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옮겨보자.

“정부가 공사를 발주할 때 공사금액의 50∼60%를 선수금으로 지급한다. 정부는 현금으로 주는데 대부분 원청회사는 하도급업체에 어음으로 준다. 이마저도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며 어음이 부도나는 경우가 숱하다. 이렇게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예를 들어 덤프트럭 한 달간 차량 할부금을 못 내면 차량을 캐피털 업체가 압류해 간다. 덤프, 굴착기 운전하는 분들이 26만명쯤 되는데 67%가 신용불량자다. 한 해 수천억원 임금이 체불돼도 체불한 사업자가 구속됐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없다. 사업자는 임금을 체불해도 법원이 건설경기 어렵다고 봐주니 임금 체불이 더욱 만연해진다.”(건설노조 오희택 기획실장)

“건설노동자는 안전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돼도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없다. 사고가 나면 사업장에서 노동자 본인 과실로 미룬다. 며칠 전에 저희 동료가 죽었다. 그동안 과로와 스트레스로 시달렸는데, 아침에 일 나갔다가 돌연사로 죽었다. 속으로 골병 드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뼈가 부러져서 장애인 되는 것, 사람 죽는 것만이라도 산재 처리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굴착기 운전자 이모씨)

“유독 건설기계만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수해복구 현장에서 덤프가 한 바퀴 굴러서 운전자가 죽었다. 운전자가 정신을 잃어서 15㎝ 물에 얼굴이 잠겨 죽었다는 이유로 익사로 처리됐다. 사람이 죽었는데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부가 수해복구 응급공사라고 해서 지자체에서 발주한 공사였는데도 이렇다.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는 것은 100% 정부 산재로 처리돼야 한다.”(오 실장의 부연)

“16∼17시간 일을 하지 않으면 캐피털사 빚을 정리하지 못한다. 덤프차량이 과잉이다 보니 어떻게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탕이라도 더 실어 내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사고로 죽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구조적 저임금, 장시간 노동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미국에는 노동자에겐 적정임금 제도, 건설기계에는 적정임대료 제도라는 게 있는데 국내에는 그런 장치가 전혀 없다.”(건설노조 권혁병 건설기계분과위원장)

“우리 철근 기능공들은 스스로를 일회용 젓가락에 비유한다. 쓸 때 쓰고 병들면 버려지고 아무런 사회적 혜택도 없다. 외환위기 직후 금지됐는데도 지금도 불법 하도급이 만연해 있다. 또 어떤 현장 오야지는 밑에 노동자들 통장 모두 회수해서 내려온 돈에서 3만원씩 떼고 준다. 이 사람은 중기 사장보다 세금 안 내고 잘산다. 노동자는 10년 전보다 임금이 떨어지니 일할 낙이 없다. 불법 하도급 신고해도 관과 결탁돼 있어서 처벌도 안 한다. 현재 건설노동자 평균연령은 56~57세다. 중동에서 경제건설에 큰 역할을 했는데 남은 건 병든 몸뿐이다. 일을 해야 아픈 걸 잊으니 오래 쉬지도 못한다. 이런 건설노동자들을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없다.”(건설노조 성남지회장 직무대행)

■ 경제민주화, 건설노동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이들의 발언에는 어떤 과장도 섞여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큰돈 드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도 매우 상식적인 수준이다.

실제 투입되는 장비와 인력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건설기능인 카드제 도입,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적정임금 및 장비임대료 제도 도입, 임금 및 장비임대료 체불을 막기 위한 처벌 강화, 유럽에서 실시하는 겨울철 수당 지급 및 일반 직장과 같은 주월차 근무 인정, 4대 보험 적용 등이다. 이들의 요구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무리한 게 있나.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이들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이들의 처우만 개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온다.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과 연계해 각종 건설입찰 비리와 부정을 없애면 막대한 예산을 아끼고 세수도 확보할 수 있다. 반값등록금 정도는 우습게 할 수 있는 돈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국내에는 경제 기득권에 막대한 특혜를 몰아주고 이들이 중소 하도급업체나 협력업체 및 그 종사자들의 소득을 사실상 가로채는 ‘가로채기 경제’ 행태가 만연해 있다. 각종 사내하청이나 파견근로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건설, 정보기술(IT) 서비스, 화물수송, 택배, 택시 등 많은 산업들이 이런 식이다. 원도급자나 중간 하도급업자, 알선업자 등이 모두 떼먹고 실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쥐꼬리만 한 돈만 내려간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격이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동안 진행돼온 게 이런 식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충분한 소득과 부가 생산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벌 대기업과 소수 상류층에 몰아주는 식이었다. 이들 경제적 강자들은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강요한다. 하도급 업체와 같은 ‘을’과 일반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그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경기 사이클과 상관없이 서민경제는 늘 불황이었던 이유다.

그런데도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는 어떤 정치세력도 없었다. 건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줄잡아 200만명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새누리당은 원래 기득권 본당이라고 치고 민주당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오히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수십년 동안 좀 더 편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국민들에게 고분양가 형태로 바가지를 씌우려는 건설자본의 요구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경제민주화란 ‘묵음(默音)’ 처리됐던 많은 약자들의 정당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재기하고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가 실체를 갖출 가능성도 거기에서 나온다. 그래야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숨이라도 쉬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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