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4년차를 맞아 전북 교육가족께 드리는 글
공교육 정상화를 향한 교육혁신의 길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존경하는 전북 교육가족 여러분, 김승환 교육감입니다.
3년 전, 저는 전라북도교육감이라는 참으로 무거운 책무를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돌이켜보면 전라북도교육감에 당선된 후 저는 당선의 기쁨에 앞서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들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최소한의 자정기능마저 상실한 채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전북교육의 현실이 제 어깨를 짓눌러 왔습니다.
전국을 뒤흔든 일제고사 성적조작 사건의 여파로 우리 아이들의 실력이 통째로 의심받고 있었고, 각종 비리로 청렴도가 곤두박질치면서 교직원들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전임 교육감 퇴임 직전 기습 처리된 자사고는 대다수 서민들에게 무력감만 안겨줬고, 소신없이 널뛰는 행정에 학교 현장은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 교육가족들에게 아픈 기억을 굳이 다시 끄집어 낸 것은 더 이상은 이런 퇴행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자신있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교육은 경쟁과 특권, 획일이 아닌 공존과 평등, 다양성의 장이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 3년 전의 취임사를 꺼내 읽어봤습니다.
당시 저는 취임식에서 전북교육가족 여러분께 ‘교육개혁’과 ‘비리척결’을 약속했고, 이를 통해 ‘가고싶은 학교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약속과 다짐은 지금도 제 가슴 깊은 곳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분명 어렵고 힘든 길이겠지만, 교육가족 여러분과 함께라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꿋꿋이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가장 먼저 학교가 살아났습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일방통행식 경쟁 체제에서 탈피해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학교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전북형 혁신학교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지금 전북에는 84개의 혁신학교와 16개의 씨앗학교가 행복한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그 성과와 가치를 울타리 너머 일반 학교로까지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떠났던 농어촌 작은 학교들도 더불어 활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교직원과 학부모, 지역사회의 관심과 열정이 어우러지면서 이제 전라북도의 농어촌 학교는 도시는 물론 타 시도에서도 찾아오는 학교로 바뀌고 있습니다. 학교가 살아나니 지역사회도 웃음을 되찾고 있습니다.
교육현장이 깨끗해졌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돈과 인맥에 좌우되던 인사는 인사권자의 권한을 축소하고 검증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비리가 개입할 수 있는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서열부 및 내신제 운영을 통해 깜깜이 인사를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로 바꿔놓았습니다.
아울러 부정과 비리에는 철저하게 무관용의 원칙을 견지함으로써 교육계에 만연했던 뇌물과 촌지의 관행이 전북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00원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한 말은, 다소 격한 표현이긴 했지만 결코 허투루 던진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만년 바닥을 치던 전북교육청의 청렴도는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3위로 뛰어올랐고, 반부패 경쟁력에서도 ‘우수’ 평가를 받았습니다.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성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무상급식 실시, 학교운영지원비 지원, 학습준비물 제공, 유아 보육료 지원 등 전북의 보편적 교육복지 수준은 전국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소득층 학생, 특수교육 대상 학생, 다문화가정 자녀, 학교 부적응 학생 등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복지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했습니다.
학생은 피부색, 지역, 가난,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우리 학생들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어른들이 유보시켰던 학생의 인권을 되찾아 줌으로써 우리 아이들은 이제 서로 신뢰하는 교육공동체 속에서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자신의 인권을 소중히 생각하는 아이가 타인의 인권도 존중하게 됩니다.
학생 인권이 존중받는 풍토가 조성되면 전북 교육 현장은 행복이 가득한 배움의 전당이 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아이들의 ‘참 학력’은 크게 신장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뤄지던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 등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하고, 또 학생과 학부모의 심적·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던 학습지와 사설 모의고사를 제한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 “교육감이 학생들의 인권, 복지에만 신경쓸 뿐 학력 향상은 뒷전”이라는 근거없는 비방을 쏟아냈지만,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믿음에 우리 학생들은 그 이상의 선물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지난 6월 2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3학년도 수능 성적 분석’ 결과는 우리 학생들의 학력 수준과 학업 성취도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적은 사교육비를 쓰고도 언어, 수리나, 외국어 등 3개 영역에서 8개 도권역 중 1위, 전국 16개 시도 중 상위권인 4∼6위를 기록한 것입니다. 참으로 고맙고 대견스럽습니다.
인권과 학력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권·인성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학력을 쌓을 때에야 진정한 실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지난 3년 간 많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때로는 정부와, 때로는 지방정치권, 단체들과 치열한 논쟁과 다툼도 있었습니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거부, 농어촌학교 통폐합 반대, 자사고 지정 취소, 학생인권조례 추진, 교원평가 문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가해지는 무수한 압박에도 당당히 우리의 길을 걸어온 것은 교육의 본질을 회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학교 현장을 찾아다니며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입으로, 눈빛으로, 저에게 아프도록 묻고 또 물었습니다.
“어른들은 학교폭력이 큰 문제라는데, 또 아이들이, 교육이 문제라는데, 정말 우리들한테 그렇게 문제가 많은가요…”라는 물음과,
“어른들은 친구를 이겨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친구는 내가 성공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인가요…”라는 물음,
또 “그러한 성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성공인가요…”라는 물음들입니다.
학벌과 경쟁이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를 개인의 자아실현과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교육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만 아이들이 꿈꾸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숨막히게 하는 경쟁의 울타리…. 제가 깨트리고자 했던 것도 아이들의 마음을 앗아버린 바로 그 틀이었습니다. 그리고 견고해 보였던 그 틀은 이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습니다.
다시 또 신발끈을 고쳐 매겠습니다.
오늘로 제16대 전라북도교육감으로서 저의 임기는 꼭 1년 남았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저는 감히 ‘모든 분야에서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진하고 부족한 점이 있고, 미처 살피지 못하고 놓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공교육 정상화와 청정 전북교육 실현을 위해 어느 시·도교육청보다 많은 일을 했지만 전북 교육가족 여러분의 눈높이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도의회를 통과한 학생인권조례는 이제 첫 걸음마를 뗀 것에 불과합니다. 인권이 살아 숨쉬는 학교 현장을 만들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멉니다.
전북교육청의 보편적 교육복지는 대한민국의 평균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평가받지만, 더 다듬고 강화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도 도권역에서는 월등히 뛰어나지만 학부모님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됩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을 시간을 주기 위해 모든 학교에 교무실무사를 배치하고, 복식학급 완전 해소, 공문 감축 등 교원 업무를 상당 부분 줄였음에도 선생님들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재능과 적성을 찾아주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지적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간제교사 처우개선, 비정규직 고용안정 등을 위해 다각도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법적,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교육행정직의 행정업무 과중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 지원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차근 차근 마무리해야 할 일들입니다.
지금 저와 전라북도교육청은 전북교육 혁신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의 정책과 사업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정한 목표와 현실 사이에 괴리감은 없는지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세심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전북교육을 둘러싼 주변 여건들이 상당히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와 달리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전북교육이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 교원 확충,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 등은 오래 전부터 저와 전라북도교육청이 요구했거나 추진한 정책들입니다.
지방정부와 의회에서도 전북교육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응원과 자존감이 저와 전북교육에는 가장 든든한 힘입니다.
교육가족들에게 박수 받지 못하는 혁신은 진보가 아니라 혼란이고 퇴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전북교육의 힘찬 비상을 위해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조이겠습니다.
펼쳐 놓은 혁신 사업을 마무리 짓고 미처 살피지 못했거나 미진한 부분들을 보완해 아이들 누구나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들고, 학생·학부모·교직원 모두가 행복한 교육공동체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겠습니다.
백년의 세월을 일관성 있게 나아갈 수 있는 전북교육의 토대를 탄탄하게 구축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전북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숨어있던 재능과 개성이 보란 듯이 솟구쳐 싹을 틔우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전북도민들께서 저에게 부여한 책무이고,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7월 1일
전라북도교육감 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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