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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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학교는 불가능한가?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소장)
슬픈 주말이었다. 어느 학생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또 들었다. 선생님인데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에 여선생님은 흐느꼈다. 그 흐느낌은 깊은 곳으로부터 차올라 그녀의 슬픔에 함께하는 이들을 깊디깊은 학교 교육의 바닥으로 데려갔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나올 때마다 절망은 되풀이되지만 이런 절망은 슬픔조차 슬픔일 수 없게 해, 인간을 인간 이하의 어떤 존재로 몰아간다. 온 몸이 떨리는 절망도 그 교사를 구할 수 없고 학교 교육 안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그의 존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성적이 자신의 전 인격이라고 여겨 세상에서 존재를 지운 학생 앞에서 우는 것 외에는 할 역할이 없는 교사는 숨은 쉬지만 살아 있지 않다. 학교는 이런 참극을 겪으며 인간의 길을 버리고 괴물의 길을 간다. 그 안에서는 따뜻한 가슴으로는 견딜 수 없어 심장을 도려낸 좀비들이 판친다.
그 슬픈 죽음에 덧대, 선망의 대상이 된 어느 특목고에서 벌어지는 살풍경을 들었다. 구닥다리 방식의 체벌을 쫒아내고 들어선 벌점 관리제는 법치의 가면을 쓰고 학생들을 다그친다. 누적 벌점이 한도를 넘기면 기숙사에서 잘 수 없다. 허허벌판에 학교를 지어놓고 기숙사에서 재워주지 않으면 노숙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멀고 먼 집에서 통학해야 한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시시콜콜 잘못을 자수하고 가족을 동원해 통학 문제를 해결해야 징벌 기간을 마칠 수 있다. 어떤 학생들은 집에서 듣는 지청구가 싫어 찜질방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학생을 선도한다면서 학생을 벌판으로 내모는 일이 세칭 ‘일류’ 고등학교의 학생지도법이란다. 학생이 머물 최소한의 주거권을 처벌수단으로 삼으면서 체벌이 아니라고 잡아뗀다. 학생 스스로 명예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가족 연좌 체벌에 대한 그 학교의 무감각이야말로 ‘일류’로 치장해도 감출 수 없는 ‘하류’의 징표다.
하루아침에 지어 낼 수 있다면 그건 기껏해야 ‘아류’일 뿐이다. 진정한 일류에는 유장한 역사가 있고 축적된 문화가 있다. 너무 쉽게 자신을 버린다면서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학생자살사건은 아류에 급급한 교육에서 나온다. 일등에서 밀려나는 두려움보다 일등으로 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먼저 맛보게 했다면 그는 죽음을 우회하는 다른 길을 보았을 것이다. 우주에 단 하나의 존재로서 자신과 씨름하도록 키운다면, 죽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온 세상이 나를 둘러싼 살가움으로 다가온다면, 단 한 번이라도 그의 깊은 상흔을 입 밖으로 내어놓을 기회가 있었다면, 죽음을 걸고 다퉜던 그의 고뇌까지가 큰 배움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대체할 교통수단이 마땅히 없으면 기숙사 생활이 학교 교육의 주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을 24시간 말썽 없이 생활하도록 만드는 결과에만 급급하면 기숙사는 수용시설일 뿐이다. 위로부터 획일적으로 통제할수록 겉은 번드르르 하되 속으로는 곯는다. ‘기숙사괴담’이 나돌면서 학교는 교육 공간에서 공포 영화의 배경지가 되어 간다. 고분고분한 십대를 원하는 학교일수록 생명체에게서 활력을 거세해 박제 수준을 만들어 놓고 다스린다. 하지만 보이는 곳에서 다소곳할지라도 생명은 어디론가 터져나갈 활로를 찾아다닌다.
그 길이 보이지 않거나 비좁을수록 폭발의 강도는 세다. 한 때 대안교육의 이상처럼 여겨졌던 영국의 썸머힐학교는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학교가 아이들에게 맞추는 교육’을 꿈꿨다. 듣기 싫은 수업은 빠져도 되고 여학생들이 나체로 수영하는 파격이 가능했다. 발도르프, 프레네 등등 자유로운 학교를 보고 온 교사들이 아래로부터 학교를 새롭게 하자고 움직인 지 10여년이 지났다. ‘혁신학교’, ‘무지개학교’ 등 이름은 달라도 학교를 바꾸자는 운동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인천의 교사와 학부모, 몇몇 구청장들이 그런 학교를 만들자고 나섰다. 500여개 학교 중, 조금 다른 학교 몇 개쯤 생겨 그 쪽으로 숨구멍을 내는 학생들이 있다면 인천 교육이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겠는가? 인천에서는 조금 다른 학교는 불가능한가?
[출처] [인천일보] 조금 다른 학교는 불가능한가?|작성자 인천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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