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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 주거의 사회학"

정치, 정책/복지정책, 문화 기획

by 소나무맨 2013. 6. 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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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대안을 찾아서''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5/27 [주거의 사회학](4부) 대안을 찾아서…④ 새로운 주거문화를 위하여
  2. 2010/05/25 [주거의 사회학](4부) 대안을 찾아서…③ 우리는 이런 정책 원한다
  3. 2010/05/23 [주거의 사회학] ‘과오’로부터 배운다 - 일본의 부동산 버블
  4. 2010/05/23 [주거의 사회학] 일본 공무원들 “주민이 원하지 않는 개발 있을 수 없다”
  5. 2010/05/23 [주거의 사회학]일본 교토 - 60, 70년대 부터 ‘경관 보존’ 노력
  6. 2010/05/20 [주거의 사회학](4부) 대안을 찾아서…① 도시를 함께 만든다 - 독일
  7. 2010/05/20 [주거의 사회학](4부)-독일, 안정적 임대 어떻게 가능한가
  8. 2010/05/20 [주거의 사회학](4부)-독일의 주택임대문화, “임대료 부당 인상 막아 세입자 보호”


‘부동산 불패신화’가 공고했던 한국의 주택시장이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중대형 아파트의 대량 보급과 자가보유가 중심이 돼왔던 주거문화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인해 향후 10년 안으로 큰 폭의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앞으로 ‘집’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 그런 ‘집’을 만들기 위해서 경제·정치·사회부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주거의 사회학’ 마지막회로 전문가들과 함께 그 방향을 가늠해봤다.

임대주택 공급확대와 임대제도 개선 
지 금까지 한국의 주택정책은 ‘자가보유’를 늘리는 공급만능주의였다. 하지만 집값과 서민주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의 공급 확대가 필수적이다. 보급률 100%를 목표로 주택시장에 계속 새 집을 공급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투전판’이 된 한국의 주택시장에서 심각한 오류를 드러냈다. 공급이 늘어나도 집값은 오히려 치솟는 ‘기현상’을 목도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을 늘려 집값과 임대료의 지나친 상승을 막고 서민주거를 안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2%(약 46만개)인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10%까지 늘리고 민간임대를 제도화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부동산학) 등은 “수도권의 택지부족, 재정문제 등을 감안하면 자가 60%, 민간임대 30%, 공공임대 10%의 비율에 맞춰 정책 방향을 맞추는 게 현실적 접근법”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위주의 공공임대주택 패러다임도 변화가 요구된다. 서울과 수도권 외곽에 보금자리, 국민임대 등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식을 벗어나 앞으로는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는 “임대주택을 아파트로 지으면 비용이 많이 들어 많은 가구를 공급하기 어렵다”며 “서울시는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1600채가량 매입해왔는데, 이것을 도시형생활주택으로 바꾸면 다가구주택 1채당 20~30가구씩 최대 4만8000가구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할 경우 기존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민간임대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다주택자’의 경우 보유세를 내거나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단장은 “전체 주택의 98%를 민간이 보유한 상황에서 민간임대가 이뤄지고 있는데 다주택자도 주택임대업으로 등록한 법인이 없다. 이들의 등록을 유도해 정부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률상으론 전세계약 2년 뒤 보증금을 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공공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탓에 집주인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리거나 세입자를 내쫓는 사례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민변의 김남근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 ‘갱신청구권’을 만들어서 2년 동안 집값이 폭등하면 임차인들이 갱신청구권을 갖고 4년까지 연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임대차등록제도를 실시해서 ‘공시’ 기능을 갖춤으로써 모든 임차인들이 임대료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주먹구구식인 임대료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세입자와 임대인 양측이 합의할 만한 기준표를 작성해 주택임대시장을 안정시킬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고가 부동산에 대한 세금과 재개발에서 발생하는 이익환수, 주택임대사업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셋방살이’에 가슴앓이만 했던 세입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한 단체를 결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임대주택의 공급을 통해 서민의 주거가 안정되려면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 소득수준이 보장돼야 한다. 참여정부 당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했지만 비싼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떠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주거는 소득수준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저소득층의 낮은 소득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큰 틀에서의 주거복지”라고 말했다. 만약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라면 ‘바우처’ 발급 등을 통해 주거보조비를 지원하고, 집주인에게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세입자의 안정된 주거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임대 시장에서 임대료가 오르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공공임대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늘려 임대료를 안정시키는 작업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결혼과 출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청년층의 주택난에 대해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집값이 폭등할 경우 ‘저출산’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진보신당은 현재 만 35세 이상에게만 내주는 전세자금 대출을 35세 이하로 대상을 확대할 것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현재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SHIFT)가 앞으로 임대주택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한 전문가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임대주택이지만 공급이 적어 당첨만을 노리게 한다는 점에서 ‘로또’나 다름 없다”며 “지금 가격도 너무 비싸고,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계속 시프트에 산다는 점에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은 “장기전세일 경우 보증금이 20년간 묶여 있어서 SH공사의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인식전환

민간기업 중심의 불투명한 재개발 행정에 대한 개선이 절실하다. 현 재개발은 착수 이전에 기반시설비용을 포함한 추가비용이나 용적률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됐다. 영세가옥주들은 개발이 착수된 뒤에야 추가분담금이 예상치의 2~3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분담금을 낼 수 없어 집값이 싼 외곽으로 밀려나는 게 다반사다. 길음뉴타운의 경우 집주인의 재정착률은 22%에 불과했고 세입자를 포함할 경우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이보다 더 낮다. (1부 3회 ‘길음뉴타운’편 참조) 이처럼 원주민의 정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이익’ 중심의 개발은 어느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남근 변호사는 “개발이익이 많은 중대형아파트 위주의 재개발 건축이 대부분이라 원주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중소형 저가주택이 턱없이 부족했다”면서 “반면 수익성이 낮은 지역은 재개발조차 이뤄지지 않아 주거환경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파트 재개발의 경우 큰 평형의 비율을 20%까지 줄이고, 각 지자체는 현행법에 규정된 대로 재건축 초과이익을 환수해 낙후지역의 도로 건설 등 기반환경을 개선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며 “서울은 연간 1조원, 경기·인천은 연간 5000억원을 몇년간 축적하면 낙후된 지역에 기반시설을 깔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집을 고치는 비용을 부담하는 수준에서 균형개발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재개발을 민간조합과 건설회사 간의 계약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공공이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종 재개발비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조합임원과 시공업체들의 야합으로 일반 가옥주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공공이 제3자적 위치에서 이를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의 25%만 찬성해도 개인의 재산권에 변동을 주는 관리처분계획이 가능한 현행법도 앞으로는 임차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에 그쳤던 ‘재개발’에 대한 개념이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은 “영국은 뉴타운을 만드는 데 보통 20~30년씩 걸린다.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활성화와 일자리 만들기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처럼 물리적인 환경개선에만 집중하는 것은 기존의 일자리와 커뮤니티를 해체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과정에서 집과 일터를 한꺼번에 잃는 상가세입자나 기존 상권이 붕괴하는 현상(1부 2회 ‘가재울’편 참조)은 이 같은 한국형 재개발에 있어 ‘병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재개발의 폐해는 우리나라의 주택공급 체계가 ‘양적 팽창’에만 치중해온 데서 비롯된다.

1960~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권의 인구가 급증하는 바람에 산술적으로는 매일 200채씩 주택을 지어야 공급이 충족될 정도였다.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싼값에 민간의 토지를 수용한 뒤 민간 건설회사에 공급, 고층아파트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최소비용, 최대공급’의 주택정책을 견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주택 수요자라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등 소수 철거민들의 희생이 수반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민간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강제취득권’을 인정하고 있는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다. 김용창 서울대 교수(지리학)는 “국가가 개발에 개입할 때는 공공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구조를 보면 민간 이익 창출을 돕느라 공공이 수용권을 발휘하는 게 문제”라며 “보상 역시 현금보상이 중심인데, 현 보상기준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보상할 재산적 가치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체와 정부의 자세변화

집값 거품은 건설회사들이 고가로 신규분양을 하면서 부풀린 측면이 있다.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주도해온 김헌동 경실련 단장은 건축비에 그 혐의를 둔다. 그는 “원래 정부가 ‘주공아파트’를 통해 아파트 표준형 건축비를 정해서 민간건설사들이 비싸게 팔지 못하도록 규제했던 게 지난 정부 들어 공기업의 ‘수익경영’을 용인하면서 깨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현재 국토해양부에서 제시하는 ‘기본형 건축비’는 평당 500만원 이상으로 10년만에 2배 이상이 올랐는데도 왜 그런지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투명한 비용구조가 건설사들의 수익보장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단장은 “아파트 자재는 콘크리트 등을 제외하면 중국 OEM이 60~70%이고, 건설 인력에는 저임금 외국인노동자가 많아 건축비가 많이 오를 이유가 없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건축비 구성 내역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건과 금융의 유착관계도 ‘수술’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선진국의 경우 건설회사는 토목·시공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금융보증이나 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연결돼 있다. 이렇다보니 건설회사들의 영향력은 필요 이상으로 커지고 도시개발은 수익을 최대화하는 ‘자본의 논리’로 쉽게 왜곡된다. 이렇게 건설산업의 몸집이 커지면서 정부 정책마저 그 인질이 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집값이 하락할 때마다 양도소득세 감면 등 부동산 부양책을 남발하고, 건설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후분양제를 유지한 채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논의하는 게 현실이다.

도시사회학자 테오도르 폴 김은 이 같은 비윤리적 현상이 “평생 ‘노동’한 무주택자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건설회사들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토건개발의 종합건설제도를 없애는 대신 공정별로 전문기업이 단독계약에 따라 책임시공을 하면 중소기업이 발전하고 대기업의 부정부패가 방지되며 건설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 역시 경기부양 카드로 부동산정책을 남발하던 관행을 버릴 시점이다. 김수현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정책을 토지·주택의 본래 기능이 아니라 정치적 지지를 위한 수단이나 경제정책의 하위수단으로 사용해 부동산정책의 일관성이나 신뢰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경제회복 때 부동산가격 폭등이나 과잉투자 등이 벌어질 경우 국가경쟁력이 저하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성의 회복, 도시의 재생

그동안은 우리 사회에서 ‘내 집’ 소유가 중요한 과제였다면, 앞으로는 ‘어떤 도시에서 사는지’도 중요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아파트 일색의 주거문화는 이제 수요자들의 기호를 맞출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를 대신할 새로운 주거문화는 어떤 것일까. 건축평론가 전진삼씨는 “2020~2025년에는 인구 감소로 세대수가 줄어들고 1인 가구와 노령화가 심화되기 때문에 기존의 중대형 아파트보다는 소형·원룸주택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며 “기존의 주상복합은 복합체 커뮤니티로의 리노베이션이 불가피해지고, 이때는 아파트나 주상복합이라는 형태보다 ‘공공공간’이 넓은 집이 좋은 주거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 확대라는 ‘불도저’에 밀려 잊혀졌던 도시공동체, 역사, 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공공의 도시계획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그간 도시개발이 위에서 아래로 일방향으로 이뤄져 왔다면 앞으로는 주민의 목소리를 함께 모아서 어떤 방향으로 도시를 만들어 갈지를 정하는 방식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10년, 20년 뒤 도시와 주거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공공부문의 지속적인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법제 및 세제의 정비

보통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집값, 즉 건물값이 오른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이 위치한 ‘땅값’, 즉 토지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낡은 아파트가 지방의 새 아파트보다 비싼 이유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토지공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지는 다른 자본과 달리 공급이 제한돼 있어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고,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불로’ 이익에 대한 권리가 보장된다면 너도나도 토지나 구체적 형태인 ‘주택’을 보유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곧 ‘투기’의 원인이다.

‘토지와 자유 연구소’의 남기업 연구위원은 “개인이 점유한 토지의 현행 임대료만큼의 돈을 정부에 매년 납부하도록 해서 ‘수익권은 공공에, 이용권과 처분권은 개인에게’ 두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의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 세금을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유세와 임대소득세가 선진국보다 낮다 보니 건설업자와 다주택자에게만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근로소득보다는 불로소득인 임대소득과 양도소득에 대해 더 많이 과세하는 것이 선진국 방식이다. 부동산값이 올라 불로소득이 늘어날수록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근로소득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남기업 위원은 “부동산값이 오를수록 부동산을 임차하거나 구입할 때 더 많은 돈이 드는데, 사실상 노력으로 얻은 소득 중 더 많은 부분이 부동산을 가진 이의 불로소득으로 건네지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유재산’을 보장받으려면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소유 및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얻는 이익 중 일정 부분을 공공부문에서 환수하는 독일 뮌헨의 재개발 사례(4부 1회 ‘독일’ 편 참조)와 같은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도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과 관련한 각종 법은 건설업계가 쉽게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반면 개발이익의 공공환수 개념은 크게 미흡하다. 도시주택과 관련된 법이 한결같이 ‘촉진법’이나 ‘특별법’이라는 사실은 빨리 부수고, 빨리 짓는 우리의 주택건설 문화를 대변한다.

구체적으로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2009년)은 택지개발촉진법보다 규제가 덜해 지구 지정만으로도 그린벨트 해제를 할 수 있다.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2005년)은 재정비 촉진지구 내에서 다른 법률에 우선 적용할 수 있어 개발 속도를 올렸다.

전두환 군사정부 때 지정된 ‘택지개발촉진법’(1980년)은 정부가 택지를 지정해 싼값에 매입함으로써 사실상 민간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다. 참여정부 때는 부동산개발 관련 특별법이 무더기로 만들어지면서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하려던 당초의 계획이 뒤틀렸다.

김용창 교수는 “왜곡된 공공복리,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국책사업을 추진하려고 특별법을 남발하다 보니 법제도 시행이라는 점에서도 큰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며 “헌법재판소가 토지재산권의 사회적 제약에 대한 기준을 일관성 있게,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택금융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리금을 만기에 일시상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집값이 오른다는 ‘가정’ 하에 주택 구입을 위한 개인의 무리한 대출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장영희 박사는 “현 주택금융 방식은 집값이 오를 때나 가능한 얘기”라며 “외국식 모기지는 20년 동안 원리금을 조금씩 갚아나간다. 이 경우 DTI(총부채상환비율)보다 더 강력한 규제가 되고 무리한 부동산 구입을 막을 수 있어 주거안정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시리즈 끝>

특별취재팀

최민영(사회부) 이주영(정치부)

김기범(사회부) 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Posted by 주거기획팀

ㆍ20대 - 비싼 월세 부모님 신세… 세입자 배려 정책을
ㆍ30대 - 민간아파트 너무 비싸, 공공주택 대폭 늘려야
ㆍ40대 - 임대주택 오래 거주할수록 인수 조건 유리하게
ㆍ50대 - 안정적인 노후 보내도록 소형임대 많이 지어야

소위 재테크 전문가들은 ‘20대에 20평, 30대에 30평, 40대에 40평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들 한다. 나이와 비례해서 집을 키워야 성공한 삶이라는 얘기다. 현실에선 꿈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20대에 취업전쟁을 치르고 30·40대에는 내 집 마련에 허덕이다 50대에 일자리를 잃는 게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이다. 집 때문에 고민하는 그들은 어떤 주택 정책을 원하는가. 6·2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애로점과 바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20~50대 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대별로 희망하는 주택·부동산정책의 지향점을 들어봤다.



“옥탑방 월세가 한 달에 37만원이고 용돈으로 30만원을 씁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30만원을 벌고, 대구에 계신 부모님이 모자란 생활비를 부쳐주고 계세요. 작년부터 옥탑방에서 지내는데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더워요. 하지만 다른 곳보다 싸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사는 거죠.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지만 친구들을 보니 보통 월세 45만원은 돼야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다는데 걱정이에요.”

고려대에 다니는 신은정씨(22)는 대학에 들어온 뒤 비싼 방값이 늘 부담스럽다. 대구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매달 월세 비용을 보내주는 것도 미안할 뿐이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덜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학생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그것마저 쉽지 않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신씨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기숙사가 8.9%밖에 수용을 못한대요. 학교에서 재정적으로 기숙사를 더 지을 수 없다면 성북구나 서울시가 나서서 지방 학생들을 위해 살 곳을 제공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제도가 없는 게 늘 아쉬워요.”

신씨는 부모님이 자신 명의의 청약통장에 매달 돈을 넣어주신다고 했다. 내집 마련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는 30대 중반쯤이면 집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학교에서 주택은 사적 소유의 개념과 더불어 공적 소유의 개념이 공존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산에 사는 대학생 신승헌씨(20)도 혼자 사는 대학생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 대학생들을 위해 자취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해요. 학교 총학생회가 대학생 임대주택 공약을 추진하고 있는데 꼭 실현됐으면 좋겠어요.” 신씨는 최근 정부가 건설업체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또 한차례 미분양 주택을 매입키로 한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주택가격이 떨어지는 건 경제 흐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저소득층을 위해서도 가격이 떨어지는 게 맞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고 세금을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했다.

대학시절부터 서울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황모씨(28)는 매달 50만원 정도를 월세와 관리비로 낸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데 매달 적지 않은 돈이 집세로 나가는 게 너무 아깝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서울에 살면서 집을 다섯 번이나 옮겼어요. 돈 규모에 맞추면 지하방이고, 월세가 맞으면 보증금이나 관리비가 비싸고 해서죠. 대학때부터 월세로 살았는데 고스란히 부모님 부담으로 돌아갔어요. 20대부터 이런 불안정한 삶은 결혼 시기를 늦추고 저출산 문제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봐요.” 황씨는 월세 제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치, 형태 등에 따라 평당 몇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관리비는 얼마를 초과할 수 없다는 세부적인 기준이 있었으면 합니다. 월세라는 게 전세조차 얻을 수 없는 서민들이 사는 건데, 그 임대수익이 누군가에게는 투자수단이 되고 노후대책이 된다는 게 씁쓸합니다. 없는 사람 이용해 돈 있는 사람들만 배불리는 식이 돼버리는 것 아닌가요. 또 저 같은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 집 문제 때문에 결혼을 미루지 않도록 최초 주택구입시 자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학 졸업을 앞둔 임재홍씨(27)는 매달 5만원씩 청약통장에 넣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위안이 된다고 한다. 취업을 하면 월급의 절반 정도는 주택마련을 위해 저축할 계획이다. “아파트 광고를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죠. 실제 그런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몇 %나 되겠어요. 재개발을 하면서 용적률을 높여 아파트를 높게 올리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해요.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원주민들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문제에 대한 정부 해결책이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집 가진 사람만 주민이고 세입자는 주민이 아니라는 얘기잖아요.”



30대 직장인 손모씨(35)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둔 가장이다. 전세를 살고 있는 손씨는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기대가 많았다. 결혼 전 가입해둔 청약통장이 있어 지난해 아내와 함께 보금자리주택 전시관을 둘러봤다. 손씨는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환상이 곧 깨졌다고 했다.

“청약에 당첨된다고 해도 1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원금·이자 갚느라 고생할 것 생각하니 이렇게 해서 집을 꼭 가져야 하나 싶더라고요. 서민을 위한 아파트라 해놓고 분양가는 2억~3억원을 웃돌고…. 이게 무슨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대출받아 집 갖는 거 자체가 폭탄을 껴안은 꼴이 될 것 같아서요. 친구들과도 대출이자 갚느라 허덕이는 것보다 전세금 불려가며 사는 게 낫지 않으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식한테 물려줄 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손씨는 청약통장 불법 거래가 횡행하거나 돈 있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닌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집주인들은 집값이 올랐다 싶으면 전화해 몇 천만원씩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 좀 더 마련됐으면 해요.”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뒤 서울에서 취업해 6년째 혼자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30)도 세입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희구했다. “한달 월급이 세금 떼고 120만원 정도 됩니다. 구로동에서 월세를 사는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관리비 8만원입니다. 월급으로 생활비, 부모님 용돈, 교통비, 휴대폰비, 월세 내면 정말 남는 것도 없어요. 월세로 전전하고 있는 서러움이 커요. 작년에 월세 소득공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집주인한테 전화했더니, 신고할 거면 방 빼라고 하더군요. 세입자들 권리 보장하겠다고 정부가 소득공제 도입한 거 좋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월세를 전세로 돌려버리거나, 아예 세금까지 더해 월세를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결국 세입자들만 힘들게 되는 거죠.”

30대들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주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송모씨(37·서울 염창동 전세 거주)는 “민간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너무 비싸다”며 “도시 서민들이 싼 값에 입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반값 아파트의 공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부세 폐지는 크게 실망스럽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의 몇 %나 되며 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과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부 윤유경씨(36·경기 평택 전세 거주)도 보금자리주택 등 공공주택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명의만 바꿔 보금자리주택을 사두는 경우가 있다는데, 정말 화가 납니다. 정부는 종부세법도 바꿔 과세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렸는데, 이는 돈 있는 사람을 위한 정책 아닌가요. 보금자리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실수요자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공공주택을 더 많이 지었으면 좋겠어요.”

반지하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송모씨(32). 그는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주거환경은 갖추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떨어진다, 종부세가 어떻다 하지만 저에겐 하나도 와닿지 않고 알 필요도 없어요.



장마철에는 물이 새서 물 퍼내는 게 일이고, 하수구가 막히면 역류해 화장실 바닥이 흥건하고….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 출산도 미루고 있어요. 최소한의 주거환경도 갖춰져 있지 않지만 돈 때문에 이사 가기도 힘든 사람들을 위한 정부 정책이 과연 뭐가 있나요. 저 같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본적인 정책을 원합니다.”

“부모님과 전세를 살다 2008년에 빌라라도 사볼까 해서 3개월 동안 관악구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를 500개쯤 돌았죠.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관악구에 교육특구를 지정하고 봉천사거리 쪽에 영어마을을 세운다는 소문에 6개월 동안 집값이 두배가 돼있더라고요. ‘6개월 전에만 왔어도…’라며 한탄을 했죠. 산꼭대기 빌라라도 어떻게 해보려다 포기하고 다시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영어마을이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때문에 집값이 요동치는 걸 보면 비애를 느낍니다.”

관악구 중앙동에 사는 김인영씨(41)는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이나 개발 소문 때문에 무주택자들은 더 힘들어진다고 느낀다. ‘2년 전 집값이 두배 뛰었어도 사뒀어야 하나, 요즘 가격이 내린다는데 안 사길 잘한 건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 경기의 하남 미사지구 보금자리주택의 노부모부양 특별공급에 청약을 넣었다 떨어졌다. 이후에도 보금자리주택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2차 지구를 보니 노부모부양 특별분양 물량이 1차 때보다 줄었더라고요. 분양가도 더 올랐고요. 부천 옥길지구와 광명시흥지구에 관심이 있는데 뉴스를 보니 분양가가 시세의 90%로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3차 청약 때에는 더 많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스럽죠. 평당 10만~20만원 차이라도 없는 사람한테는 큰돈이잖아요.” 김씨는 서민들을 위한 보금자리주택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분양가가 시세의 70%선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싼 강남 지역보다는 서민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비(非)강남 지역에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김일용씨(42)는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이후에도 굳이 무리해 집을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아내와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아이(6)가 크면서 김씨 부부는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애가 크니까 이사를 하면 아이의 놀이터와 친구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예전 살던 곳에서 불과 1㎞ 거리이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데도 아이는 자기가 놀던 곳이 아니니까 이사가기 싫다고 해요. 아이 불만이 커지니까 집을 사야 하나 싶죠. 그런데 주택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엄두가 안나요.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좋겠어요. 지금 나오는 보금자리주택도 서민들에게는 너무 높아요. 임대주택에 오래 산 사람이 나중에 인수하길 원하면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게 진정한 보금자리 아닐까요.”

김씨는 무엇보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에 대한 관점을 소유와 재산에서 거주 개념으로 바꾸고 싼 집을 많이 지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다주택자에 대해선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동구 금호동의 연립주택에 사는 김순경씨(45). 전세를 살다 결혼 8년 만인 2004년 내 집을 마련해 들어왔다. 당시 집값의 절반 정도를 대출받았고, 지금은 거의 갚은 상태다. “월 수입이 400만원 정도 되는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생인 두 아들 사교육비로 꽤 많이 나가서 주택에 다시 돈을 투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집이 5층짜리 연립주택의 최고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하긴 하지만 반지하 살 때를 생각하며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도 별로 없어요.”

김씨는 주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 중 아직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아이들 교육비나 생활비로 주택 자금 모으기가 더 힘들어지는 만큼 정부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얼마전 신문을 보니 술, 담배 세금 인상한다던데 서민들이 많이 쓰는 데에서 세금 많이 걷지 말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형평성이 있는 것 아니냐”며 “무주택자들을 위해 정부에서 장기임대주택이나 시프트 같은 걸 많이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김명일씨(41)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아무리 토건대통령이라지만 건설사들의 폭리를 왜 눈감아 주는지 답답합니다. 보금자리주택도 무늬만 보금자리지 최고 4억8000만원까지 간다던데 민영아파트랑 다른 게 뭡니까. 이름만 그럴듯하게 지어서 보여주기식 정책만 펴는 것 같아요. 건설사 폭리를 철저히 막고, 실수요자들이 누릴 수 있는 알찬 정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의정부에 사는 이창민씨(52)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선 일을 열심히 해선 돈을 벌 수 없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부동산 투기랑 사기치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할 정도죠. 현 정부의 주택정책을 보면 부동산 투기를 야기하는 정책이 넘쳐나요. 가진 자들은 계속 자기 재산을 불려나가고 서민층은 점점 더 갈 곳을 잃어가는 것 아니겠어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영진씨(54)도 비슷한 생각이다. 김씨는 108㎡(32평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르는 것도, 많이 떨어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집을 팔고 새로 이사할 일도 없고, 또 결혼을 해야 하는 딸들이 집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도 보고싶지 않아요.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되 투기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고,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대구 수성구에서 25년째 전세를 사는 김호연씨(57)는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 시골로 내려갈 생각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얼마전 건강 문제로 퇴직을 하고 지금은 아내가 버는 150여만원이 가계의 총수입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이에게 매달 100만원 정도 지출되다보니 내 집 마련은 거의 포기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청약통장에 계속 저축을 했지만 집안일과 애들 교육 투자 때문에 중간에 해약했어요. 지금은 내 집 마련을 위해 하고 있는 게 없죠. 대구는 서울보다 집값이 싼 편이긴 하지만 저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정부에서 장기임대주택을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도 집값이 비싼 편인데 주변에 보면 임대주택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김씨는 한나라당 지지자이지만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선 비판적이라고 했다. “부자들 세금은 내리고 서민들 세금을 올리는 건 부당하다고 느껴요. 버는 만큼 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요즘 채소값도 엄청 오르고 지난 겨울엔 기름값도 상당했어요. 저 같은 저소득층은 정말 돈이 없어 못내는 거예요.”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영호씨(59)는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강서구 화곡동에 빌라 하나를 갖고 있지만 노후 자금을 위해 처분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심각하게 노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돼요.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지금이야 경비나 주차관리 일이라도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동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 같은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올해 안에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택시 한대 사서 돈을 벌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편하게 노후 보내려고 실버타운 같은 데에 들어가지만 거긴 한달에 250만~300만원씩 든답니다. 서민으로선 꿈도 못꾸죠.” 이씨는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임대주택의 소형 평형이라도 조건을 까다롭지 않게 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4시간씩 청소일을 하며 월 60만원을 받는다는 여모씨(64)도 비슷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근근이 살면서도 세금은 밀린 적 없이 꼬박꼬박 냈는데 제가 누릴 수 있는 정책은 없네요. 지금 사는 다세대주택을 팔아 둘째 아들 결혼비용 보태주고 나면 지방으로 내려가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병원 인근으로 10평이라도 노인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임대주택이 많이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죠.”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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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집=재산증식’ 불패신화 깨져 ‘보유에서 임대로’ 개념 변화


‘부동산 불패신화’로 의기양양하던 일본사회에 1991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충격이었다. 은행과 기업의 도산, 이에 따른 실업률 증가 등 소위 ‘잃어버린 10년’은 버블 붕괴의 대표적인 후유증이었다. 2010년 현재, 일본의 부동산 시가는 20년전 대비 70%가량 하락한 상태다. 부동산투자로 재산을 증식하는 것은 옛말이 됐다. 일본의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일까.

도쿄 아다치구(足立區)에 사는 기노시타 히로미(53)는 2000년 현재 살고 있는 76㎡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집값이 더 이상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시점에 내린 결정이다. 가격은 3900만엔(약 4억3000만원).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당시의 절반도 되지 않은 액수였다. 그는 “집을 장만하기 전 월세 15만엔(185만원)에 주택을 임대했는데, 주택을 구입하더라도 월 대출상환액이 15만5000엔으로 큰 차이가 없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전인 80년대에는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같은 얘기는 더이상 일본엔 없다. 나처럼 대출상환 부담과 월세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거나 상환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 주택을 산다”고 덧붙였다.






버블 붕괴 이전까지 일본의 상황은 한국 주택시장의 풍경과 ‘판박이’였다. 일본 메이카이(明海)대학 부동산 학부의 표명영 교수는 이미 “한국 부동산 시장이 거품 붕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부동산 시장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장의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고 개인과 기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부동산 수익을 기대한 상황이 특히 그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얽혀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 가치가 1달러 240엔에서 120엔대로 급상승하자 일본정부는 엔고에 따른 불황을 막고 국내 수요를 활성화하기 위해 연 2.5% 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했다. 또 당시 보수성향의 나카소네 내각은 법인세를 42%에서 30%로, 소득세 최고세율도 70%에서 40%로 낮추는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펼쳤다. 그 바람에 늘어난 부유층의 가용자금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은행들은 우량제조업에 대한 대출 대신 부동산 투자나 민간의 주택융자를 통해 수익을 냈다. 풀린 돈은 다시 투기자금화하면서 부동산으로 쏠려 집값과 땅값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도쿄 23개구의 땅값이 미국 전 국토의 땅값과 맞먹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거품에 취한 기업과 은행의 경영은 방만했다. 기업은 담보로 잡힌 토지의 가격상승을 예상하고 경영을 다각화하거나 위험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익률을 높이기보다는 부동산 가격상승에 따른 자산 부풀리기에 더 신경을 쏟았다. 은행은 통상 토지담보 평가액의 70%까지 융자하던 것을 120%까지 확대했다.

민간에서는 소위 ‘주택 주사위 놀이’가 벌어졌다. 주택 주사위 놀이란 젊었을 때 소형주택을 구입한 뒤 이를 굴려 큰 집으로 늘려나가는 방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적금을 붓거나 은행에서 대출받아서는 집을 사는 건 불가능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기쿠치 켄(40)은 “요즘만 해도 젊은이들이 집을 사려는 엄두를 못내지만, 당시에는 대출을 끼고 집을 산 뒤 이를 되팔아 차익을 남기면서 더 큰 집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집값은 얼마나 올랐나. 1981년 수도권의 신축아파트 평균가격은 2616만엔. 1990년 버블의 정점에는 6123만엔으로 10년 만에 무려 2~3배가 뛰었다. 미룰수록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너도나도 앞다퉈 집을 사려고 했고, 수요자가 늘수록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이같은 주택가격 폭등은 공급부족으로 빚어진 게 아니었다. 1973년에 이미 도쿄 등 모든 광역자치단체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문제는 주택이 ‘주거’가 아닌 ‘투자재’ 개념으로 변질돼있었다는 점이다. 주택투기로 성공한 사례가 늘어날수록 주택의 추가공급은 투기확대의 호재일 뿐이었다. 도쿄 도심 23구에 더 이상 개발할 곳이 없을 정도가 되고, 땅값도 계속해서 치솟자 건설회사들은 수도권으로 눈을 돌렸다. 이때 요코하마(橫濱), 사이타마(埼玉) 등 주변의 신도시들에 대한 개발이 진행됐다.

부동산경기의 과열 징후는 뚜렷했다. 80년대 후반의 1인당 GNI 대비 부동산가격 지가지수의 비율은 장기적인 평균치보다 최대 25% 높았고, 6대 도시의 경우 최대 102% 정도를 상회했다. 그 정도에 상응하는 ‘거품’이 끼어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택가격 상승은 개인들의 재산수준에 대한 착시, 즉 ‘재산효과’를 일으켜 씀씀이가 커졌다.

붕괴는 완만하게 시작됐다. 전국적인 땅값이 1991년 3·4분기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유추할 때 정확한 시점은 1990년 11월쯤으로 보인다. 정작 일본 정부는 1992년 경제백서를 통해 일본 경제가 일시적 조정국면이며, 거품 붕괴로 일본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와 분석자료를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때의 경기침체를 단순한 경기순환에 따른 것으로 오판했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재정확대로 경기부양을 꾀했다. 실제 부동산에 과도하게 투자한 기업과 가계의 파산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일본 정부는 금융기관 부실을 우려해 각종 금융완화 정책을 내놨다. 이로 인해 100조엔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금융기관 등에 투입했지만 성과없이 정부의 재정건전성만 악화됐다.

부동산 버블이 심각해진 뒤에서야 금융긴축 정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정책의 연착륙에 실패했다. 특히 15개월 만에 공정금리가 3.5% 인상되자 시장은 얼어붙었다. 게다가 지가세, 상속세 강화 등 세금을 통한 규제는 1992년에서야 도입되면서 오히려 버블 붕괴를 심화시켰다. 경기침체는 뚜렷해졌고 1997년 이후에는 정리해고와 채용억제 등 민간부문에서 고통이 심화됐다. 가격 추락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부동산 투매가 계속됐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사태의 본질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 정부가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한 것은 98년 2월 관련법을 제정하면서였다.

불패신화는 깨졌다. 도쿄의 평균지가는 1992년부터 13년간 연속 하락해 2004년의 평균 공시지가는 1991년의 45% 수준에 불과했다. 1991년 1억1520만엔에 달했던 도쿄 23구내 신규분양 75㎡짜리 맨션의 가격은 현재 반값도 안되는 5400만엔 수준이다. 수도권의 같은 크기의 맨션 가격도 고점을 찍은 1990년 1억298만엔에서 현재 반값 미만인 4965만엔으로 떨어졌다.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도쿄의 아카사카·아오야마·아자부 등 ‘트리플A’ 지역의 분양가는 현재 평당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내진설계 등 특수공법으로 건축비가 한국보다 더 들지만 서울 강남보다 1000만원가량 싸다. 버블 당시 도쿄 외곽에 지어졌던 신도시에는 빈 집들이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집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버블 붕괴를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재일교포 3세인 직장인 박종명씨(51)는 13년 전 도쿄 시내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의 외곽지역에 단독주택을 구입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출·퇴근이나 아이들 등·하교도 모두 1시간쯤 걸리는 데다, 주택구입 당시에 비해 집값이 계속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요. 도심의 편리한 위치의 주택은 아직도 사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의 주택은 가격이 싸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팔려고 내놔도 나가질 않습니다. 어찌됐든 버블이 끝난 다음에는 서민들도 어떻게든 집을 살 수는 있게 됐어요.”

도쿄도에 따르면 1991년의 신규분양하는 맨션 가격인 1억1520만엔은 도쿄도민 평균 연수입의 15.8배에 달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이 비율은 8.0배까지 낮아졌다.

일본 국민의 ‘집’에 대한 생각은 이제 보유에서 임대로 변화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토지동향에 관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토지는 소유와 임차 어느 쪽이 유리한가?’라 는 질문에 1993년 일본인 66.7%가 ‘소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임대하는 것이 유리’라는 답은 29.4%에 불과했다. 버블 붕괴가 휩쓸고 간 2003년 같은 질문을 던지자 38.1%만이 ‘소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반면 ‘임대하는 것이 유리’라는 답은 40.6%로 증가했다.

“굳이 집을 사거나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요. 그냥 아내와 함께 월세를 내면서 지금처럼 평범한 빌라에서 살 생각입니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잖아요.” 도쿄의 연립주택에 거주하는 다즈케 가즈히사(44)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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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 스미다구(墨田區)의 한 마을에서는 지난해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쭉 뻗은 이면도로를 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새 길이 닦일 위치에 사는 한 가옥주가 “사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며 보상금을 거부했다. 행정기관의 설득에도 가옥주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이 도로는 이 집을 우회했다. 마을의 개발에 있어서 주민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일본 교토를 가로지르는 가모가와(鴨川) 천변에 재개발된 현대식 건물들과 함께 근대에 지어진 전통 목조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교토 | 김기범 기자

오늘날 한국의 도시개발이 거주민의 권리보다 ‘이익창출’을 우선시하는 반면, 일본은 주민들의 복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된 커뮤니티 형성운동, 즉 ‘마치즈쿠리’가 그 중심에 있다. 마치즈쿠리는 지역사회의 재생을 위해 주민이 중심이 돼서 행정기관, 전문가들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1970년대부터 활성화됐다. 공공기관은 주민들의 재정착과 주택 증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마을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현재 일본에는 마치즈쿠리를 위한 비영리단체(NPO)가 1500여개에 달하며,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갖추고 있다.

마치즈쿠리가 활성화된 도쿄 세타가야구(世田谷區)는 인구 86만명의 제법 큰 자치구다. 70년대 구청이 개발사업을 일방 추진하자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를 들어 반대한 것이 이 풀뿌리 운동의 시작이 됐다. 수년간 갈등을 겪던 양측은 주민들이 구청 측 제안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사업안을 구청에 전달함으로써 해결의 물꼬를 텄다. 주민과 행정기관이 협력하는 정비사업 방식이 그 요체였다. 75년 다이시도지역의 낡은 목조주택을 재정비하는 사업은 주민발의를 수용한 구청에 의해 실현됐고, 이후 작은 숲 조성, 공장굴뚝에 색칠하기 등 주민들의 제안이 하나 둘씩 당국에 의해 채택됐다. 82년 마치즈쿠리조례 제정과 마치즈쿠리협의회 구성이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도쿄 스미다구(墨田區)의 한 마을이 곧게 뻗은 이면도로를 계획했으나 한 주민이 이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이 집을 우회하는 새 길을 조성했다. | 세종대 변창흠 교수 제공

마 치즈쿠리를 초기부터 이끌어온 일본희망제작소 하야시 야스요시 이사장은 “시작 당시에는 집이나 도로 등 시설부문에 제한됐지만 이후 마을환경을 가꾸는 것으로 바뀌고, 지역의 복지와 지역경제의 활성화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행정기관의 활동을 ‘공공’이라고 칭했으나 이제는 마치즈쿠리를 통해 주민이 자치적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공공’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타가야구에서는 개인주택의 정원이나 서고를 지역사회에 공개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노부부 또는 독거노인의 개인주택에 청년 세입자가 함께 살면서 노인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젊은이들은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즈쿠리의 전통이 깊은 고베시(神戶市) 마노(眞野)지구의 경우 공해 반대운동이 그 출발점이었다. 70년대부터 주민자치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치즈쿠리협의회가 고베시에 계획안을 제출하고, 고베시가 이 내용을 반영한 지구계획을 만드는 과정이 확립됐다.

이 지역은 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진화활동에 나서 피해를 줄이고, 복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마치즈쿠리의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이 같은 문화로 일본에서는 주택재개발 사업 때도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공무원들 역시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개발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주도의 개발에서조차 일부 주민이 찬성하면 나머지 주민의 토지나 주택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일본 재개발의 대표적 사례인 도쿄 미나토구(港區)의 롯폰기(六本木) 힐스나 오모테산도(表參道) 힐스 등 대규모 개발사업 역시 주민 동의하에 진행됐다.

또 지역의 도시계획을 마련하는 도시계획위원회에는 행정당국과 전문가와 함께 일반 시민도 참여한다. 일본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손꼽는 도쿄도 무사시노시(武藏野市)는 70년부터 시민들이 주도하는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녹색마을만들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시민들이 도시녹화에 관한 정책을 계획하면 행정기관이 이를 실행하는 구조다.

도시계획에 대한 회의나 공청회 시간도 주말이나 평일 저녁으로 정해 직장에 다니는 일반 시민들이 회의에 참여하는 데 어렵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공청회 등에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을 위해서는 추가설명회나 공보를 통해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세입자들의 주거권도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 즉 부동산임대법에 따라 임차인의 권리가 보호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제대로 된 재산상의 보상 없이 집에서 내쫓기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세입자들도 지역의 주민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어 세입자를 포함한 주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재개발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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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역사도시인 교토는 인구 147만명의 대도시다. 시청 주변과 교토역 주변 등 일부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층 건물들로 이뤄져 있다. 주택가는 대부분 단층이나 4~5층 이하의 저층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기온신바시(祇園新橋), 산네이자카(産寧坂) 등의 지역은 근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통 목조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일본 교토 기온신바시(祇園新橋)의 한 거리를 관광객들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교토 |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교토시 토박이인 시게모토 나오토(60)는 “중심지는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서서 걱정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며 “교토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차분한 분위기와 역사경관이 잘 보존돼 있어서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교토처럼 비교적 경관이 잘 보존된 도시가 많은 편이다.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경관보존을 위해 일찍부터 관련 법규를 제정한 노력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개발에 맞서 마을경관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노력이 함께 존재했던 덕분이다.

1966년 일본 정부는 교토, 가마쿠라, 나라 등 문화재가 많고, 경관보존의 필요성이 높은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고도보존법을 제정했다. 역사적 풍토보존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개발행위를 제한하기 위해서다. 2004년에는 경관법을 제정해 문화재 보존이나 건물 높이 제한뿐 아니라 마을 분위기와 자연풍경 등도 보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에 따라 가마쿠라(鎌倉) 등 모두 28곳의 지자체가 관련조례를 만들어 마을 분위기와 풍경 등 경관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인 일본 교토 산네이자카(産寧坂) 지역에 200년 전후의 역사를 가진 목조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국토연구원 세계도시정보 제공

지방자치단체들도 경관보호조례를 제정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도시경관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교토시는 70년대부터 도시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72년에는 ‘시가지경관조례’를 제정해 미관지구 지정, 역사지구 보존, 옥외광고물 규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 오카야마현(岡山縣) 구라시키시(倉敷市)는 68년부터 전통미관보존조례를 만들어 건축물 규제뿐 아니라 거리 형태를 보호하고 있다. 이시카와현(石川縣) 가나자와시(金澤市)도 같은 해 역사적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전통환경보존조례를 제정하는 등 현재 500여개의 지자체가 경관보존을 위한 조례를 두고 있다.

주민들의 노력도 현재의 경관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교토에서는 1980년대 거품경제 시기 곳곳에서 개발이 진행되면서 전통가옥이 사라지고, 60m 높이의 교토역 등 고층 건물이 들어서자 이른바 경관논쟁이 시작되었다. 높이 규제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민들과 경관규제가 지역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기업들의 논쟁이 진행된 후 교토시는 95년 풍치지구조례와 시가지경관정비조례 등을 개정했다. 이 개정조례들에 따라 교토시는 건축물이 마을 정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미관지구 제도를 정해 건물을 지을 때 적합성을 허가받도록 하고 있다. 건물을 지을 때 산림 등 풍경과 조화로운 디자인을 만들도록 공공기관과 협의하는 내용도 도입했다.

교토 내 기온신바시 지구는 70년대 주민들이 보존운동을 펼친 사례다. 고층건물로 새로 짓고, 땅값이 오르는 것보다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살고 싶다는 인식을 갖게 된 주민들이 시에 지역 경관을 보존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이 지구는 76년에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로 지정돼 현재까지 예전의 경관이 보존돼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단순히 건물의 높이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풍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효고현(兵庫縣) 아시야시(芦屋市)의 경우 시에서 만든 경관조례를 통해 개발업자들의 고층 건물 건설을 막고 있다. 지방자치총합연구소 스가와라 도시오 연구원은 “아지야시의 경관조례는 건물 높이 제한뿐 아니라 건물의 색채에 대한 규정도 들어 있어 일본에서도 독특한 사례 중 하나”라며 “지자체의 노력을 통해 경관을 보존하게 된 좋은 사례여서 일본 전역으로 전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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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심야공청회 600여명 열기… 주민이 ‘도시 디자인’

지난달 22일 오후 7시. 독일 뮌헨시 19구 퓌어스텐리트(Furstenried)의 주민센터에서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는 바람에 500개의 좌석이 모자라 좌우 통로와 뒷자리까지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19구 주민 8만2000여명 중 600여명이 공청회에 참석, 구의원 한스 바우어의 안건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지역에 높이 100m의 쇼핑센터 건물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우리 구에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큰 크기가 필요한지 의견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도시계획국 에서 이 문제에 대한 워크숍을 제의해 왔는데, 반대하신다면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22일 뮌헨시 19구 퓌어스텐리트 주민센터에서 열린 주민공청회에서 한 주민이 발언하고 있다. 뮌헨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브리핑 이후 주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이 동네에서 45년을 살았다는 마랄드 크라우트가 강단 위에 올랐다. “우리 동네는 교통량이 많아 대기오염과 소음공해가 심한 편입니다. 교통량을 완화시키도록 외곽도로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초고층 건물의 유치는 모든 법적 조치를 동원해서 막을 겁니다. 그래도 들어온다면 우회로를 조성하고 신호를 조정해서 도로를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조정해 주십시오.”

뒤이어 다른 주민이 나섰다. “뮌헨시의 라머스도프에서는 도로를 확장해 역사경관이 무너졌는데 지금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그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우리 동네를 돕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습니다.”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지지의 박수가 쏟아졌다. 강단 위의 시 공무원 3명과 자치경찰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찬반투표가 시작됐다. 이날 부쳐진 안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노란 종이를 들어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의견은 공식 기록으로 남고, 시청 담당부서도 이를 공식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인다.

회의가 끝난 것은 3시간여가 지난 밤 10시30분. 늦은 시간임에도 주민 일부는 강당에 남아 구의원, 공무원들과 대화를 계속했다.

뮌헨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시청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내면 공무원들은 하나하나 답변할 의무가 있고, 그 답변 내용을 토대로 주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서는 대형 개발계획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통계획, 어린이집과 학교 문제, 휴양시설, 주민 스포츠, 노인 복지, 주민모임 지원 등 다양한 안건이 이 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거쳐 정책화된다.

문득 지난 3월 경기도 안산에서 열렸던 주민공청회가 떠올랐다. 안산시는 ‘2020년 기본경관계획’을 발표하면서 일반 주민은 참석이 어려운 오후 3시를 공청회 시간으로 잡았다. 담당 공무원이 통장 등 주민 30명을 대상으로 계획을 설명했고, 주민들은 듣는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 2명이 공무원에게 질의를 했지만 19일 현재까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독일 주민들이 공청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뮌헨시청 도시계획국 동부총괄자 보임러는 “독일의 도시계획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주민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과 주민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계획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간부문 개발에서도 공공부문은 물론 주민들과도 섬세한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예로 뮌헨에 45만㎡ 부지의 공단을 소유한 지멘스사가 이곳을 주거용도로 변경하고자 했을 때 뮌헨시청 도시계획국 소속의 건축·도시계획 전문 공무원들은 개발할 경우에 어떻게 달라지는지 공간 개념도를 만들어 주민공청회에 공개했다. 그 다음 건축가·정치인·공무원·지멘스·건축사무소 등 다양한 주체가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이 워크숍 토의 내용이 다시 주민들에게 공개되고 논의를 거친 뒤 지구상세계획안이 마련됐다. 이 계획안은 신문공고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알려지고 4주 동안 시청에 전시된다. 개발의 세세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리자는 취지다.

때마침 들른 뮌헨시청 1층 로비에서는 한스 자이델 광장(Hanns-Seidel-Platz)의 공모전이 열리고 있었다. 해당 지역 주민 10여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마그너스는 “공모전 작품 전시에 대한 지역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 2~3등 작품들은 공공 공간이 적은데 1등 작품은 주민센터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전시기간 동안 주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시청에 제출하고, 도시계획국은 서신으로 답한다.

그 후에도 다시 주민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된다. ‘주민과의 산책’ 시간이다. 전문가들이 현장을 안내하고 도시계획국 공무원들이 개발 과정·목표 등을 알기 쉽게 주민들에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절로 도시계획에 대한 주민 교육이 이뤄진다. 또 30일간 주민의견서를 접수받아 시의회 자료로 보관하는데 이후 기간에도 주민의 반대의견이 나오면 계획안은 다시 수정된다. 주민들의 수정 의견이 없으면 그때서야 시의원들이 표결을 한다.


문기덕 연구원(브란덴부르크기술대학 도시환경연구소·BTU)은 “독일과 달리 한국은 미리 마련된 정책이 주민들의 의견과 큰 상관 없이 추진되는 구조여서 공청회 참여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청회 이외에도 뮌헨시는 여러 형태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주민과 전문가들이 모래를 이용해 용적률·건폐율 등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을 계산해보는 ‘계획 놀이’나 건축전공 학생들이 인파가 많은 쇼핑센터에서 갖는 공개 워크숍, 어린이를 대상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보도록 하는 공모전 등이 일상적으로 열린다.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시민 의식을 가꾸는 것이다.

BTU의 도시계획과 프랑크 슈바체 교수는 “독일에서 도시계획이란 행정기관과 주민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관청은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주민들을 대표하는 시의원들이 도시계획의 실질적 결정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과정이 너무 복잡한 건 아닐까. 도시계획국 케르허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견을 수렴할수록 민원이 적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에 따른 이익을 일부 환수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분배하는 것 역시 독일 도시개발의 원칙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토지 사용, 즉 ‘소본(SoBoN·Sozialgerechte Bodennutzung)’이 바로 그것이다.

뮌헨시는 1990년대 초 ‘개발로 이익을 얻는 측이 공공 공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개발이익 환수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아파트를 개발할 때 용적률이 두 배로 늘어나면 그만큼 인구가 늘어나고, 이를 뒷받침할 상하수도·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 비용 전액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바람에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후 뮌헨시는 개발 당사자가 공공 공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조례를 도입, 9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소본’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까. 개발 과정에서 용적률이 높아지면 토지 소유자는 상승한 토지가격만큼 이익을 추가로 얻게 된다. 이 상승가격 중 3분의 1은 소유주와 투자자의 이익으로 보장하되 나머지 3분의 2는 공공시설 확충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소본 계산법’의 얼개다. 공공시설 확충분은 구체적 사용처를 규정하고 있는데 공공면적 12%, 도로 5%, 유치원 8%, 공공주택 24% 등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공시설 확충 부담금이 3분의 2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규모를 넘으면 개발할 가치가 없어지거나 개발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까지 뮌헨시는 소본을 통해 2억유로(약 3000억원)의 도로건설비용, 8250만유로의 녹지조성비용, 1억2000만유로의 사회복지시설, 3730만유로의 계획비용을 충당했고 387만4000㎡의 토지를 공공용지로 기부받았다.

이 제도는 시행 초기 ‘빨갱이들의 망상’이나 ‘약탈세’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급기야는 투자자를 잃어 도시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함부르크 등 개발 압력이 큰 다른 대도시들이 이 제도를 앞다퉈 배우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공공 대 개인 파트너십(PPP·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일환이자 현 시대에 적절한 도시개발 방법이라는 평가를 얻어가고 있다.

뮌헨시 도시계획국 지구계획작성 담당 베르너 로만은 “한국도 일반 시민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빌딩과 토지를 소유한 이들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빌딩 또는 토지 소유자들이 그 이익을 독식하는 게 맞는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라며 “개발이익 환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어야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 공식 블로그 = http://whereliv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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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적정 임대료 법으로 규정… “13년동안 월세 두번 올라”

쾰링(44)네 가족은 1998년부터 베를린시 프리드리히스 하인(Friedrichs-hain)구의 5층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월세는 660유로(130㎡·99만원)로 3.3㎡당 2만5000원쯤이다. 가구소득 중 주거비 부담은 8분의 1 수준이라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살면서 2000년 창문과 난방 기기를 교체할 때 20유로를 더 내고, 2009년 월세가 10유로 오른 게 전부다. 2010년까지 월 30유로(4만5000원)가 오른 셈이다. 연 5% 이상 폭등하는 서울의 전셋값을 생각하면 변동폭이 미미하다. 그뿐 아니다. 월세인데도 한 집에서 12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독일 GEWOS 연구소 2009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세입자의 평균 거주기간은 12.8년이고 20년 이상 한곳에서 산 세입자도 전체의 22.7%에 이른다. 이처럼 ‘안정적인 임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뮌헨시 19구 주택 사이에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독일은 공원 조성으로 녹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주택 사이에도 ‘공공 공간’ 개념을 도입, 녹지를 조성한다. 뮌헨 | 임아영 기자


독일에서 임대는 보통 월세다. 월세의 적정가격은 집의 위치·상태에 따라 민법인 임대차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임대료 인상 범위는 물론이고, 인상 이전 15개월간 임대료가 오르지 않았어야 한다거나 임차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 등이 이 법에 모두 들어 있다.

집주인은 집세를 올리려면 임대료 기준표(Mietspiegel)나 차임정보은행(Mietdatenbank)의 자료, 전문가의 감정서 또는 최소 3개의 비슷한 주택의 차임현황 등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집주인 맘대로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다. 임차인이 계약상 의무를 어겼거나, 임대인의 가족 등이 해당 주택을 필요로 하거나, 오래된 건물을 고치는 경우 등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사유에 든다. 단지 임대료를 올리려고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임대료 기준표’가 있어 가능하다. 기준표는 공공과 민간이 함께 임대료 상·하한선을 책정한 것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단체에 주택 임대가 격 정보를 제공한다. 임차인들은 이 표를 보고 월세의 적정가격을 가늠한다. 베를린의 경우 1987년부터 4년마다 전면 갱신을 하고 2년마다 수정을 한다. 총 120만개의 월세집 중 무작위로 1%를 뽑아 건축연도·주택위치·평수 등 3가지 척도를 기준으로 표를 만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세입자 단체와 임대인 단체가 상호합의를 하는 과정이다. 지자체는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월세가격의 적정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한다. 상호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기준표는 신뢰도가 높아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임대료와 관련한 법정분쟁은 거의 없는 편이다.

베를린시청 도시개발국의 임대료기준표 담당과장 뮌케뮐러는 “87년 이후 2년마다 수정한 것까지 합치면 16번의 조사 과정이 있었고, 매년 400여건의 민원을 해결하면서 표가 점차 더 정교해지고 정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물가상승률은 4.7%이나 임대료(2007~2009년)는 1.7% 상승에 그쳤다.


독일의 민간임대 시장은 비율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민간임대 비율은 49%로 다른 유럽 국가인 네덜란드(11%), 스웨덴(21%), 영국(11%) 등에 비해 매우 높다. 자가소유·민간임대·사회주택 비율도 45 대 49 대 6으로 우리나라(55 대 43 대 2, 2005년 기준)와 유사하다.

하지만 민간임대라도 시장주의에 휘둘리진 않는다. 독일에는 조합 임대주택이란 독특한 형태가 있다. 민간의 자발적 조직인 주택조합이 집을 지어서 조합원(회원)들에게 임대하는 형식이다. 베를린 외곽 코트부스시의 조합(GWG Stadt Cottbus) 주택에 사는 스콜레(69·여)는 조합 주식(1200 유로) 8주를 갖고 있다. 그는 “조합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사용권을 맺는 월세 계약과 주식 지분을 사는 회원권 등 2가지 계약을 맺어야 한다. ‘방이 하나일 때는 주식 6주(900유로), 방이 하나 반이면 주식 7주(1050유로)’라는 식으로 주식 지분을 사고 따로 월세 계약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코트부스의 총인구 중 25% 이상이 이 같은 조합주택에 거주한다. 이곳의 주택조합 운영회장 하트리히는 “집을 투기하려는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발전시켜온 단체”라며 “조합주택은 투기 현상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집값은 물론 세입자들의 주거권 안정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합주택은 독일 전역에 걸쳐 240만가구에 달한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코트부스에 들어선 조합임대주택의 전경. 독일 전역에는 민간이 조성한 이 같은 조합주택이 240만가구나 있다. 코트부스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뮌헨시의 경우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문의 주거안정대책도 다양하다. 자녀가 12살 이하, 소득이 연간 7만3000유로 이하인 경우 집을 살 때는 30%의 금액을 보전해준다. 대신 10년 동안 매매금지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투기를 방지한다. ‘뮌헨 모델’이라 불리는 세입자 지원책은 세입자가 조합에서 집을 빌릴 때 조합은 빌려줄 수 있는 임대주택의 50%를 먼저 저소득층에게 우선권을 주도록 했다. 장애인 주거는 시가 직접 건설회사에 시유지를 싸게 공급하고, 건설회사가 법에 따라 지어야 하는 지원 주택(30%)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중에서도 주거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독일 전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거보조금, ‘본겔트(wongeld)’이다. 본겔트는 가족구성원 수·소득·주거비용·주거지의 월세 수준·주택의 노후화와 설비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월세의 10% 정도를 보조받는다. 주민들은 12개월 단위로 해당 지자체에 보조금을 신청한다. 베를린의 경우 3만3300여가구가 이 본겔트 혜택을 받고 있다.

독일의 세입자들에게 ‘이사 공화국’ 한국의 세입자들은 어떻게 비쳐질까. 1~2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수천만원씩 임대보증금이 오르는 한국의 상황을 전해들은 쾰링은 “가혹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이사를 많이 다녀야 하는 한국의 아이들은 뿌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임대료가 해마다 올라 외곽으로 계속 내몰리는 상황이라면 나라도 무리해서 집을 사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사는 곳에서 계속 살겠느냐고 묻자 가볍게 웃으며 “Ya(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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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거기획팀

ㆍ발트 베를린 임차인협회장
ㆍ독일 전역 360개 단체… 회원 20%가 저소득층

독일에는 임차인(세입자)의 이해를 직접 대변하는 임차인협회(Mieterverein e.V.)가 있다. 지난달 26일 베를린에서 라이너 발트 베를린 임차인협회장을 만났다.

- 협회의 기능은 무엇인가.

“집주인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게 하는 것, 임대료가 올라도 세입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협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존재 이유다. 협회는 정치적인 역할을 한다. 베를린시는 서울시처럼 하나의 도시인 동시에 ‘특별시’이기 때문에 세입자 이익을 대변하는 의견을 직접 연방의회에 제출한다. 독일에는 새로운 법이 제정될 때 관련 이익단체를 초대해 의견을 듣는 절차가 법으로 지정돼 있는데 이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지역 의원들을 직접 설득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다. 임대료 기준표(Mietspiegel)를 만들 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베를린 주정부가 작성하는 이 기준표는 세입자들이 임대료를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 협회는 임대료가 부당하게 오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또 자체 신문을 발행해 세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이 신문은 구청이나 지역 임차인협회 사무실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협회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1900년 10월 라이프치히(Leipzig)시에서 25개 임차인협회가 연맹을 결성한 것이 계기다. 2차대전 때 도시 유입 인구가 많아지자 임대인들은 월세를 올리기 위해 임차인들을 내쫓았다. 그때 임차인협회 결성은 대중운동이 되었고, 1923년에는 ‘임차인 보호법’이 발효됐다. 60년대에는 당시 집권당인 기민당(CDU)이 더 이상 시장을 국가가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고,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의 이름을 딴 ‘파울 뤼케’ 법이 임차인협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통과됐다. 그 후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계약해지 파동이 일어나자 임차인협회도 정치적인 이익 대변 집단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협회 회원은 몇 명이고 어떻게 조직되어 있나.

“협회는 독일에서 가장 큰 조직체다. 베를린 회원만 11만5000명이다. 전체 세입자가 160만명 정도 되는데 그중 6%가 회원인 셈이다. 독일 전체로 보면 협회 회원은 100만명에 이른다. 또 독일임차인협회 연합은 도시마다 있는 단체 360개 이상을 아우른다. 국제임차인협회(IUT·International Union of Tenants·http://www.iut.nu)에는 3개 임차인협회가 속해 있다. IUT는 1927년 취리히에서 임차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비정부기구로 2009년 10월 현재 46개국 58개 협회가 소속되어 있다.”

-협회 재정은 어디서 충당하는가.

“회비로만 운영되는데 저소득층·학생·정년 퇴임한 은퇴자 등은 한 달에 3.5유로(5200원)를 내고 일반 회원은 7.5유로(11000원)를 낸다. 전체 회원 중에 20% 정도가 저소득층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임대료 기준표는 기존 계약관계에만 적용되는데 새로운 계약 때에도 임대료가 통제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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