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바리시의 교훈

2013. 6. 5. 18:56시민, 그리고 마을/지방 시대, 지방 자치, 주민자치

유바리시의 교훈
2013년 06월 04일 (화)   정헌율 새전북신문 starmj88@hanmail.net
 
 일본 홋가이도 중앙부에 위치한 유바리시는 불과 10여년전 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닌다’ 고 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자치단체였다. 그러나 주력산업이던 탄광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재정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시설투자로 353억엔(약4,000억원)의 빚을 지고, 지난 2006년 6월에 파산신청을 하였다.

그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비참하였다. 유바리시의 공무원수는 절반이하로 감소되었고 시장, 시의원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봉급도 거의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그 최종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초등학교 6개가 폐교되었고 시립도서관, 수영장, 공중화장실 등 많은 공공시설이 폐쇄되어 행정서비스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을 뿐 아니라, 양노원이 폐쇄되고 시립병원의 진료시간이 축소되는 등 복지서비스도 대폭 감축되었다. 반면 세금은 다른 도시의 몇 배 이상으로 올라 많은 시민들이 살기좋은 곳을 찾아 외지로 떠나갔다. 인구 12만의 도시가 불과 5년여 만에 1만2천명으로 줄었고, 텅빈 거리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폐허가 되어 죽음의 그림자만 드리우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유바리시의 재정상태가 그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여섯 번을 연임한 전임시장이 병으로 죽게 되면서 부터이다. 언변이 좋은 전임시장은 시민들이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중앙과의 인맥 등을 과시하면서 어물쩍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통하여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시민은 물론 시의회와 공무원들조차 이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이러한 유바리시가 전문관료 출신인 현 시장의 아이디어 하나로 최근 회생의 온기가 돌고 있다. 현 시장은 유바리시의 이혼율이 전국 최저라는 점과 ‘부부’ 와 ‘부채’ 의 일본어 발음이 같은 ‘후사이’ 라는 점에 착안하여 ‘유바리 후사이’ 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돈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No money, But love)” 라는 슬로건과 함께 이를 홍보한 결과 시민들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국내외에서 관광객이 쇄도하여 유바리시가 꿈꾸던 관광도시로의 탈바꿈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유바리시의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방채무가 공식적으로는 27조원이지만 민자사업(BTL)등 숨겨진 부채를 포함하면 126조에 달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민선이후 재정형편을 감안하지 않은 각종 축제 등 전시성, 선심성 행사가 급증하고, 경쟁적으로 치적쌓기용 대형 개발사업을 벌림으로서 대부분 자치단체들이 빚더미에 않게 되었다. 급기야는 판교개발로 인한 빚으로 신규사업이 불가능하게 된 신임 성남시장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송도개발로 파탄지경에 이른 인천시에서 공무원들 수당을 삭감한 것이 전부다. 모두 자기 임기중에만 무사히 지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폭탄돌리기가 되고 있으며, 그 책임은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해이가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자치가 되면 모든 것을 자기책임하에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시대 재정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현행 20% 수준인 지방세 비율을 OECD 평균수준인 40% 이상이 되도록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고, 시민들이 자치단체 살림을 통제할 수 있는 재정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지방재정 정보를 시민이 알수 있도록 소상히 공개하고 시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임기중에라도 자치단체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치단체장들이 손쉬운 개발사업으로 평가받으려 하지 말고, 이바리시 사례와 같은 아이디어 사업으로 승부를 걸려는 의식전환이 절실하다.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