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위기와 대안경제시스템

2013. 6. 3. 22:19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세계경제위기와 대안경제시스템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1. 위기의 시대

o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침체로”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 단계에 서 있는가. 미국의 경제학자 스위지는 이 도저한 역사의식을 “역사로서의 현재”라는 말에 담았다.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이다. 1990년대 말 미국정부는 IT 버블이 붕괴하자 재빨리 부동산 버블로 바꿔치기 했다. 그 수단은 금융규제완화와 금리인하였고 그 결과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초래된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이다.

2009년 전 세계적 금융완화정책과 재정확대정책으로 각국의 성장률이 회복기미를 보이자 G20의 세계적 차원의 개혁도, 또 오바마의 내부 금융개혁도 흐지부지로 끝났다. 2010년 아일랜드,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로 제2차 위기가 촉발되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대규모 적자로 인해 재정확대정책도 쓸 수 없고 이미 0%에 이른 금리 때문에 금융완화정책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바야흐로 선진국 전체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의 위기도 동시에 맞고 있다. 현재는 10년 단위 순환주기의 최저점인 동시에, 60년 주기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최저점이다. 이 위기는 새로운 국제통화와 국제청산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데, 달러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의 힘은 아직 강하고, G20는 IMF 기금을 조금 늘리는 정도의 밖에 합의하지 못했다. 위기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야 할지에 관한 어떤 새로운 정책체계도 나오지 않았다. 1945년 이후의 복지국가를 뒷받침한 케인즈이론이 1930년대에 출간됐고, 1980년대를 풍미한 통화주의이론이 1960년대에 정립된 것에 비하면 위기 이후의 사회의 이론은 오리무중이다. 학문의 제국주의를 일삼으며 오만을 떨던 경제학은 이미 붕괴했다. 중장기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제3차 양적 완화(달러의 증발)로 또 한편의 환율전쟁을 예고하고 있으며 환율법은 그 신호탄이고 앞으로 수퍼301의 동원과 같은 더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도 서슴치 않을 것이다.

100년이 넘는 주기를 갖는 패권 주기도 최저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구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점에 올랐던 미국의 단일 패권은 쇠퇴 기미가 역력한데 이를 대체할 패권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헤게모니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세계는 중미간의 위태로운 힘겨루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한 복판에 있다. 이렇게 10년 주기, 60년 주기, 그리고 패권 주기가 모두 최저점에 이른 상태를 나는 “3중의 위기”라고 불렀다(경향신문, 2009. 1.12).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석유의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오일피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으며(전문가들은 2015년경으로 예측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역시 다음 세대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에너지/석유 위기가 겹칠 가능성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이 이런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리라고 믿기에 너무나 큰 위기들이 첩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o 버블붕괴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국내 경제, 그리고 민심의 변화

세계경제 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도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2003년 부터 본격적으로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저축은행 사태는 전면 붕괴의 예고편일 따름이다. 2009년 세계적 경기자극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의 수출대기업이었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버블 붕괴의 초침을 잠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는 100%를 넘나드는 대외의존도의 한국경제를 바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자동차 수출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 1100원대에서 방어해 온 환율마저 무너진다면(현재는 유럽위기의 여파로 달러가 강해지고 있지만) 실물침체가 금융경색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마저 있다. 이명박 정부는 호기로웠던 ‘747’(7% 경제성장, 1인당 GDP 4만달러, 세계 7대 대국)을 포기한지 오래고, 이제는 이 일련의 위기를 차기 정권으로 넘겨서 “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으로 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가가 문제면 'MB 물가리스트‘를 만들어 통제하고 저축은행은 찔끔 찔끔 영업정지 시키는 등 위기의 미봉책 외에 그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4대강 유역의 대규모 리조트 사업 뿐이다. 본격적인 생태파괴로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진행되어 온 양극화는 사회 전체에 절망, 즉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국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는,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문민정부의 “세계화”와 외환위기, 뒤이어 IMF의 강요와 내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진행된 노동유연화, 민영화, 규제완화, 개방, 그리고 한미 FTA 체결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금융자유화와 가계신용의 확대, 그리고 부동산/증권 투기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지표들을 가파른 비율로 상승시켰다. 주거, 교육/보육, 일자리, 노후, 건강 걱정이라는 이른바 ‘5대 불안’은 그 직접적 결과이다.

정책만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와 내 가족만은 승리하여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주문에 빠져들었다. 2002년 카드회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와 삼성의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카피는 이런 세태 변화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묻지 마” 투기 심리는 2007년 이명박씨에 대한 “묻지 마” 투표로 이어졌고 곧 이어 2008년 총선에서 수도권의 양대 정당이 똑같이 “뉴타운 유치”와 “특목고 유치”를 내거는 희비극으로 치달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상황은 급전했다. 무상급식을 매개로 보편복지가 화두로 떠올랐고 진보 쪽으로 선회한 야당이 대승했다. 이제 국민은 “나와 내 아이도 ‘루저’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상상하게 되었다. 대박의 탐욕에서 최소의 안전에 대한 요구로 돌아선 것이다. 롤즈의 “무지의 장막”이 현실에서 펼쳐졌고 국민들은 이제 샌델의 “정의론”과, 장하준의 “23가지 이야기”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한다. 정치가 말해야 할 가치와 비전, 그리고 리더십을, 결코 쉽지 않은 책들 속에서 스스로 캐내려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철저히 침묵함으로써 ‘신뢰의 지도자’가 된 박근혜씨가 “맞춤형 복지”를 들고 나오고 조선일보가 “자본주의 4.0”을 펼쳐든 것도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1.0은 고전자본주의, 2.0은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3.0은 신자유주의이다. 조선일보는 민주정부나 이명박 정부 모두 3.0 시대에 똑같은 오류를 저질렀다고 진단한다. 칼레츠키의 4.0은 자못 날카롭지만 피상적인 현실진단과 잡동사니(그에 따르면 실용) 처방이다. 예컨대 의료는 미국형이 잘못이고 교육은 유럽형이 잘못이므로 대상에 따라 2.0의 정책과 3.0의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실용주의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자본주의 3.0을 극복하기 위해서 2.0의 실패, 즉 재정적자로 귀결된 복지국가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시장은 자유방임으로 놔둔 채 재벌의 자발적 참여(기부)에 의한 복지가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만일 재벌들이 이에 호응해서 내년에 대대적인 사회기여에 나선다면 이 프로젝트는 상당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박근혜씨가 당선된다면 “줄푸세”가 상징하는 시장만능의 정책기조는 4.0은커녕 한국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릴 것이고, 이명박대통령이 방미 중에 비준을 확약할 한미 FTA는 되돌아올 길마저 끊어 버릴 것이다.

2. 대안 시스템

o “동아시아 시대”

단기적으로 현재의 세계경제를 침체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브릭스, 그 중에서도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 홀로 세계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절대규모의 경제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중국 역시 내륙과 해안, 그리고 빈부 간의 엄청난 불균형과 부동산 버블과 금융불안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세계금융위기로 단숨에 G2로 떠오른 중국도 (동)아시아의 협력이 세계의 리더가 되기는 역부족이다.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가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 적어도 미국과 EU에 이어 제3의 기둥으로 떠오르리라는 것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참여정부의 동북아 구상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EU와 같은 공동체로 순조롭게 발전하기란 매우 어려운데, 그 무엇보다도 (EU의 경우 미국이 주적인 소련의 위협에 맞서 유럽의 부흥과 통합을 적극적으로 돕거나 방조했지만) 미국의 잠재적 주적인 중국이 동아시아공동체의 핵심에 있기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견제에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생산시스템은 이미 90년대부터 자연경제권을 형성했고 2000년대에 이르면서 세계 제조업을 제패했다. 그 힘이 동아시아의 대규모 무역흑자, 4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낳았다. 97년 외환위기의 경험 때문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기보험 성격의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았지만 한 나라, 한 나라로서는 그래도 불안하다. 치앙마이 협정, 그리고 2009년 금융위기 때 보여준 동아시아 협력은 역내 외환보유고의 공동관리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럴 경우 4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는 필요하지 않다. 이 중 최소 1조에서 2조 달러 정도는 중국의 내륙, 북한, 몽골, 나아가서 동시베리아 개발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의 유럽의 부흥을 통해 세계 경기를 진작했던 마샬플랜처럼 동아시아 스스로를 개발하면서 세계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낡아빠진 인프라 시설을 현대화할 수 있고 한국은 재정적,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핫머니의 유출입에 따른 과도한 경기변동을 막기 위해서 동아시아 공동으로 토빈세(외환거래세) 등 “과속방지턱”(자본 유출입 속도를 조절하는 제도)을 도입할 수도 있다. 한국 홀로 시행하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정책이지만 한중일이 동시에 시행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정보기술협력으로 IT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표준을 장악할 수 있고 시급한 에너지/환경정책도 공동으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호혜적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대외교류협력표준을 만들고 이에 비춰서 한미 FTA 등 과거의 무역협정, 투자협정을 개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여건이 내수를 확대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다. 중국의 위앤화 절상에 맞춰서 원화를 절상하고 중국의 임금인상의 절반 정도만 임금을 상승시킨다면,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동아시아 역내 인프라 수요를 합한다면 동아시아는 역내 내수 위주의 성장을 할 수 있다. 한국 홀로 행할 수 없는 정책이지만 역내 국가가 공동 보조를 맞춘다면 충분히 가능하며, 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경제의 위축된 총수요를 끌어 올릴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움직임을 미국이나 유럽은 지지고무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가 열린 것이다.

물론 중국의 패권 역시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아시아는 중국의 패권도, 또한 미국의 패권도 원하지 않는 나라들로 가득차 있다. 예컨대 러시아, 남북한, 일본, 아세안, 나아가서 인도까지 종으로 묶을 수 있다면 두 나라 모두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가 양대 패권 한가운데서 최대의 실리를 거두면서 이 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구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남북의 대립이 협력, 나아가서 통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남북 대립은 중미 양 패권이 동아시아에서 (심지어 군사적으로) 맞부딪힐 소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남북이 양 패권의 첨병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의 상호주의는 대단히 위험할 뿐 아니라 반역사적이다. 실제로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아니라 “치킨게임”을 초래했고 “미친 놈”이 이기는 이 게임에서 한국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동아시아 공동체와 남북관계를 연계시켜서 양자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도록 하자는 참여정부의 동북아 구상은 이제 현실에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환경을 맞았다. 중국과 미국이 대립 속에서도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협력할 수 밖에 없는(일본도 어느 정도 미국으로부터 분리되는) 상황 속에서 남북이 지혜를 모은다면 통일은 획기적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o 기업집단법에 의한 재벌 규율

지난 15년간의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시장에서 양극화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보편복지는 존재할 수 없다. 양극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필요한 복지의 양은 늘어나고 재정부담은 그 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재벌-보수언론-경제관료의 삼각동맹이 지배해왔다. 오죽하면 대통령 입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왔을까. 재벌은 행정부와 입법부, 나아가서 사법부까지 사실상 우리 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모든 정책은 수출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집중되어 있고 시민들도 재벌의 성쇠와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15년의 세월이 증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위로부터의 성장”이 아랫목을 데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벌은 중소기업 50%에 이르는 하청기업의 단가를 수시로 인하하여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 여력과 유인을 제거함으로써 제조업 강국의 지반을 밑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또한 재벌은 고환율 정책까지 동원해서 얻은 막대한 이익을 자산투기(부동산과 금융)에 투입함으로써 자산버블의 형성에 톡톡히 일조했다. 재벌이 바야흐로 종합편성채널에 의해 방송까지 장악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빈사상태에 빠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관련법으로 재벌 산하의 개별 기업을 규율했지만 이제는 관련 조항을 하나의 법으로 묶어서 기업집단 전체를 규율해야 한다. 가칭“기업집단법”이 그것이다.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고, 책임도 기업총수가 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지주회사의 요건을 강화한다면 재벌들은 기업집단법의 규율을 받든지 아니면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재벌을 포함해서 우리 산업이 살 길이기도 하다.

o 자산재분배

부동산/금융자산과 교육은 일반 시민들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 그러나 이들 자산을 불리기 위해 우리 모두 목숨을 건 경쟁을 한 결과 자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 결과 자산의 양극화는 소득의 양극화보다 훨씬 더 심해졌다. 더 큰 문제는 그 자산이 극소수 상류계층에 집중되면서 세습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습귀족이 생기면 그 사회는 틀림없이 망했다.

시민들은 자산을 향한 경쟁으로 약 1000조원에 이르는 빚을 졌다. 장차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경우 가계파산이 속출할 것이다. 다른 한편 과거 사회적 이동의 통로였던 교육은 이제 사회적 이동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자산의 불평등은 다시 소득(부동산 임대료, 이자, 근로소득)의 불평등을 낳는다.

자산의 양극화와 세습을 막지 않는 한, 복지로 살만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2005년 기획했던대로 종부세를 1%까지 높이고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여 부동산 가격이 서서히 내려 가도록 해야 한다. 만일 거품이 꺼지는 상황이라면 공적 자금으로 금융기관을 구제할 것이 아니라 일정 가격하락마다(예컨대 구매가격 기준 10% 하락 때마다) 이들의 주택을 구입하는 비상대책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이 정책은 부동산값이 급락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평균소득의 절반을 10년 정도 착실히 모아 모두 집을 살 수 있다면(PIR=10) 우리 사회는 훨씬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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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선 사교육 가격 및 양을 규제해서(나아가서 사교육을 전면 중지해서) 아이들 간의 경쟁부터 공정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입시를 개혁해서 교육에 의한 불평등의 세습도 원천 차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의 경쟁교육을 협력교육으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아이의 교육비 걱정으로 가구마다 단 한명의 아이를 낳은 결과가 현재의 합계출산율 1.19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복지가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국민경제 역시 존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산버블은 자본주의 역사 이래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버블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국가의 정책기조가 만들어 낸 것이다. 즉 부동산대출과 신용카드 대출 등 금융에 의한 소비확대에 의한 성장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외없는 전 세계적 가계부채로 나타났다. 이제는 노동의 대가에 의한 성장이 가능해져야 한다. 최근 ILO가 제창하고 있는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이 그것이다. 즉 임금의 상승이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수를 일으키고 그에 기초한 투자를 통해 오히려 성장을 촉진하는 경제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전 세계적 상황은 이런 거시정책기조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o “아래로부터의 성장”

- 에밀리아로마냐 형 중소기업 클러스터

우리는 현대 전체에 걸쳐 “위로부터의 성장”(trickle down economics)을 추구해 왔지만 이제는 “아래로부터의 성장”(bottom up economics)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침체기에는 소득재분배 자체가 국내 수요를 확대해서 성장률을 높인다. 거시정책 뿐 아니라 미시 산업정책에서도 “아래로부터의 성장” 원리는 적용되어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다. 같은 해 젊은이의 70%가 대학을 가는데 대졸자들이 원하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직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60%는 중소기업에 가거나 스스로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그 곳은 “빈곤의 늪”이다.

중속기업의 생산성이 정체하고 따라서 저임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첫째로 50%의 중소기업이 하청단가 인하에 시달리고 둘째로 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재벌규제와 자산재분배 정책이 성공할 때 비로소 중소기업에 의해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존의 혁신클러스터 정책은 실리콘 밸리형 기술/지식집약형 첨단기술, 즉 대기업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중소기업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이었다. 성공한 클러스터에 실리콘밸리와 같은 첨단기술 클러스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주(경기도의 두배 넓이에 400만명이 산다)에는 중위 기술과 기계부품산업으로 이뤄진 다양한 산업지구가 13개나 존재한다. 이 지역에서는 기업 당 평균 고용규모가 10명이 채 안되는 40만개의 중소기업이 수평적 네트워크와 신뢰에 기초해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기껏 크다고 해봐야 500명 고용이 고작인 중소기업들이 생산량의 절반을 수출하여 1인당 GDP 4만 달러를 달성했다. 중소기업의 수평적 네트워크에 지방대학 및 연구소, 그리고 사업서비스를 결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다. 이제는 대기업 위주의 모든 제도와 정책을 중소기업 지원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 지역공동체에 뿌리박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또 하나의 특징은 협동조합이다. 주도인 볼로냐시의 주민 70%가 하나 이상의 협동조합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세 자영업이 SSM이나 대형 음식점에 질식하고 있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쿱 이탈리아라는 협동조합 소매 체인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란 상호성(reciprocity)를 기초로 연대(solidarity)를 목표로 하는 경제며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대표적 형태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수익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목표, 즉 고용이나 소속 조합원의 복지를 동시에 노린다. 지역공동체에 뿌리박은 사회적 경제는 그 자체로 생태계를 이뤄서 안정적이고 따뜻한 삶을 이뤄낸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아직 소규모지만 생협이 비약적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사회적 경제라는 독자적 생태계 내에서 생존해야 한다. 특히 돌봄노동, 친밀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서비스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는 과거 국가가 하던 복지를 사회적 경제가 맡아서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동시에 만족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현재의 건강보험체제 내에서 1차 진료를 의료생협이 맡는다면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주지하다시피 주치의 제도는 예방의료를 통해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을 줄여주는 동시에 신뢰와 협동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협동조합 기본법부터 제정해서 각종 분야에서 협동조합의 설립을 자유롭게 하고 법인세를 깎아 준다거나 사회적 경제(또는 공동체) 내에 기금을 조성할 때 면세와 같은 지원을 통해서 자체의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o 녹색경제

생태/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와 같은 거대한 “공유지의 딜레마”는 시장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이기적 해위는 이런 종류의 사회적 딜레마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정부나 구속력 있는 환경조약만 기다리며 손 놓고 있다가는 지구가 실제로 멸망의 위기를 맞을 것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오스트롬(공유지의 비극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의 주장대로 다중심접근법(오스트롬)에 입각해서 개인, 공동체, 국가가 당장 필요한 실천을 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세계의 공동 정책도 동시에 추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집약형 산업과 에너지 과소비는 특히 위험하다. 당장 에너지 분권화와 에너지전환, 그리고 에너지 소비 절약을 시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탄소세를 부과하고 에너지다소비 기업을 중심으로 배출권허가제도 시행해야 한다.

특히 농업은 녹색경제의 핵심이다. 지난 지방선거로 이제 확고히 자리를 잡게된 무상급식은 단순히 아이들의 밥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는 정책이 아니다. 유기농 무상급식이 기업과 군대까지 확대된다면 현재의 유기농 공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안정적으로 수요와 가격이 확보된다면 유기농업/농민은 자연스럽게 중가하게 될 것이다. 농업 및 농촌의 발전은 지역순환경제 형성의 전제이다. 한편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지해서 건설수요가 감소하면 침체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비효율적인 현재의 낡은 주택을 에너지 절약형 주택으로 개조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건설수요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뉴타운”을 “생태마을”로 바꾸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핵발전소를 더 짓고 4대강을 파헤치는 현 정부의 정책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생태계서비스 지도를 작성하고, 스마트 그리드를 도입하는 등 녹색의 관점에서 경제사회정책 전반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성인지 예산처럼 함께, 생태 인지예산, 세대간 정의 인지 예산도 짜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o 공공성의 강화

어떤 재화나 서비스가 공공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것이 가진 공공의 가치에 사회적으로 합의한 후(公), 해당 재화 및 서비스의 성격, 산업의 구조(시장실패의 성격)의 기술적 측면을 고려하여 그 가치를 공동(共)으로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재화 및 서비스에는 시장실패의 대표격인 공공재 뿐 아니라 필수재, 공공재, 가치재, 시스템재, 안보재, 네트워크재 등이 속한다. 전기, 철도, 수도, 개스, 우편, 통신 등 네트워크 산업(public utility, 필수재), 의료(필수재, 가치재), 식량과 국방(필수재, 안보재) 언론과 금융(시스템재) 등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사회적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정의론에서 등장하는 롤즈의 필수재(basic goods)나 이를 발전시킨 센의 능력(capabilities)이 공공성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시대에는 이들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규제를 완화했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공공성의 내용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 모두 결정해야 한다. 행정학에서 민영화, 규제완화를 목표로 한 “신공공관리론”이 21세기 들어 “공공가치관리론”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공공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전히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허브를 만들자거나 민영화를 통해 선진의료산업을 발전시키자 주장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이다.

특히 언론은 민주주의라는 ‘공공재’의 성패를 결정하는 시스템재이다. 금융이 경제의 시스템재라면 언론은 정치의 시스템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중동 등이 참여하는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고 나아가서 광고의 직접영업을 허용하는 조치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o 숙의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

우리의 대안시스템은 외국에서 들여오거나 어떤 엘리트 집단이 창안해서 만들어낼 수 없다. 이제 우리가 베낄만한 선진 제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민들의 숙의(deliberation)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롤즈나 하버마스의 주장대로 공공이성(public reason)에 의한 숙의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숙의민주주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대안시스템이다.

숙의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 모든 구상은 실행될 수 있다. 우리가 위에 제시한 몇가지 정책사례 들도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 사회적 합의야말로 정치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잘츠요바덴 협약에서 사민당 정부가 실현한 불편부당성”은 그 모범이라 할 만하다. 정부의 불편부당성은 모든 주체의 신뢰의 전제인 것이다.

물론 불신으로 가득찬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전국적 사회적 합의를 단번에 시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지역별/산업별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그 성과를 통해 노사정 간의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3. 새로운 시대의 가치

- 신뢰와 협동

우리 사회는 그동안 오로지 효율성을 추구해 왔다. 물론 시장을 통한 효율성은, 맑스가 자본론에서 누누이 강조했듯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시장의 원리로 전 사회를 조직하려는 시장만능론(시장근본주의)은 폴라니가 갈파했듯이 사회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금융위기가 바로 거대한 시장실패의 증거이며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는 인류가 겪어 보지 못했던 크나큰 사회적 딜레마이다.

인류사는 곧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다. 이기적 행동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를 인간은 어떻게 해결해 온 것일까.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행동/실험 경제학의 최근 연구는 사회적 딜레마(위기)의 해결책이 협동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바드의 수학/생물학과 교수인 노박(Nowak)은 “인간협동진화의 5가지 규칙”이라는 논문에서 혈연선택, 직접상호성, 간접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에 의해 인간은 협동해 왔다고 요약했다. 그리고 그 모두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신뢰이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가치는 신뢰와 협동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 답을 찾기 위해서 최신의 이론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신뢰와 협동이야말로 인류의 오랜 ‘지혜’였다. 예컨대 노박의 ‘직접 상호성’이란 어느 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온 ‘황금율’, 그리고 공자의 “己所不欲 勿施於人”에 다름 아니다. 시장과 경쟁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다 보니 이 자명한 ‘정답’을 잠깐 잊어버렸을 뿐이다.

- 정의와 연대

효율과 함께 인류는 정의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서 효율은 경제학에, 그리고 정의는 철학에 맡겨서 분리하고 사실상 경제가 다른 모든 분야를 지배했다.. 정의는 평등, 공정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롤즈는 현재의 복지국가를 비판하면서 바람직한 사회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liberal socialism)와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 owning democracy)를 들었다. 물론 정치철학자의 추상적 사유를 직접 한국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지금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받아들여도 전혀 무리가 없다. 즉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진보가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다. 현실의 한국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일반은 구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특히 ‘생태정의’와 ‘세대간 정의’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환경이란 다음 세대에게 빚내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생각은 생태정의를 적절히 표현하는 직관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물질자본,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 개개인은 자식을 위해서 부동산 경쟁, 교육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는데 그 결과는 불행하게도 다음 세대의 착취였다. 88만원 세대 문제, 청년 문제란 결국 현재 세대(주로 386등 베이비붐 세대)의 차세대에 대한 정의의 문제인 것이다.

정의의 실현은 연대 없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노동자 간의 임금연대나 고용연대를 이야기해왔고 현실에서 그마저 지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미래 세대와의 상상의 연대 속에서만 장기적인 정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창조와 혁신

창조와 혁신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짧은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침체일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혁신, 특히 돌파혁신(break-through innovation)은 동적 경쟁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신뢰의 네트워크인 사회적 자본이 부수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의 원천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사회적 자본은 거래비용을 감축하고 정보와 위험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북돋는다.

창조와 혁신은 다양성에서 나오고 다양성은 평등을 전제로 발현된다. 예컨대 직종별 임금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것이다. 평등(즉 직종별, 인종별, 성별, 지역출신별 차별이 없는 상태)이 다양성을 낳고 다양성이 효율성을 자아낸다. 북유럽 국가들이 우리의 반만 일하고도 1인당 GDP가 두배를 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생태(생명)와 평화

생태와 평화는 인류의 운명이 걸린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한 나라 단위를 넘어서 동아시아, 나아가서 전 세계가 동시에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생명이, 그리고 그 생명을 보전하는 데 평화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방법은 없다.

우리 사회 전체가 생명을 한없이 존중한다면 지금과 같은 교육제도를 그대로 놔두지는 못할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면서까지 경쟁을 찬양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마찬가지로 평화 역시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에 속할 것이다. 특히 남북이 아직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는 무엇보다 먼저 추구해야 할 가치임에 틀림없다.

동아시아에서 시민정신이 가장 드높고 참여가 활발한 곳은 한국이다. 앞으로 이런 참여가 제대로 정치(제도)에 반영이 된다면 이 시민정신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은 미래의 사회경제상, 그리고 장기의 지속가능성을 제시하는 도덕적, 경제적 모범이 되어야 한다. 747과 같이 숫자로 표시된 몸집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선진화’가 목표로 삼았던 영미형 시장국가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현재 상황에서 선진화란 죽음의 낭떠러지로 가는 길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세계의 모범,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야 한다. 백범이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우리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백범일지”)

루신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루신, “고향”)라고 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미답의 길을 나서야 한다. 2013년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은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첫 발자국이다.

<참고>

1. 복지 국가를 위한 거시경제학

- 대침체(Great Recession)에서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 유럽의 위기로 이 상황은 더 악화

* 금년 한국경제는 2% 중반대일 것이고 추가경정예산으로 건설투자를 대폭 확대할 경우 3%대에 들어갈 수도 있음.

- 장기침체의 교훈과 동아시아 경제의 거시경제학

1) 버블경제의 붕괴 -> 자산재분배의 경제학

* 거시경제의 안정성에서 자산가격의 안정화가 핵심적인 목표로 - 한은의 “물가안정에서 자산가격안정으로”

* 중소규모 경제의 버블은 기본적으로 자본자유화에서 유래 - 자본유출입 통제, 특히 “자본유입 통제”의 중요성 - 거시건전성 규제의 강화

* 부동산 가격의 하향 안정화와 부동산 및 금융자산 재분배정책 - “소득세에서 자산세로”

cf. 복지국가를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하는 교육개혁(내용과 형식)은 대단히 주요 - 인적자산의 재분배

cf. 금년에 부동산 버블이 폭발할 것인가는 점쟁이의 소관사항이지만 현재 버블이 심각하게 존재하고 그것이 터지는 경우 금융위기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필연적. 공적자금을 금융기관에 투입하기보다 1가구1주택 과다 채무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법(즉 일정 가격에 주택 매입) 고려

2) 수출에서 내수로 -> 임금인상에 의한 내수확대

* 선진경제권의 장기 침체로 더 이상 수출지향성장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움.

* 환율과 임금이라는 두 거시변수

1) 대기업 수출을 위한 환율 방어는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움(미국의 환율법). 원화는 체계적으로 절상되어야 하는데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 통화바스켓에 페그시키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

2) 동아시아 국가 모두 상대적 저임금 유지 -> 기업내부이윤이 확대되어 소비 비중 축소 + 정부의 환율방어에 입각해서 설비투자 증가.

그러나 이런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으므로 이제는 생산성 향상분이 임금 향상으로 이어져서 역내 무역이 활발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 법인세 인상으로 저소득층 소비 확대도 병행

3) 원화절상과 임금인상에 따른 산업구조조정 - 새로운 거시경제환경에서의 산업정책

=> 이상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합의를 통해 자산가격 및 환율을 안정시키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각국의 거시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

- 글로벌시대의 산업정책 - 중국 옆에서 살아나가는 방법 (“천국은 너무 멀고 중국은 너무 가깝다?”)

1)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 금융허브론, 서비스선진화론 등(라이시의 부문별 국제분업)을 폐기하고 동아시아국제분업에서 제조업 지위 제고 (첨단 제품의 테스트베드, 중국을 향한 관문)

2) 중국과의 기술격차 유지 - 실리콘밸리형 클러스터1 (대기업 중심 R&D 클러스터)

3) 대기업의 생산성 유지를 위한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 하청단가문제, 부지문제 해결 후 에밀리아로마냐형 클러스터 형성 (이상 클러스터 정책에 대해서는 <참고3>)

4) 산업의 허리(기계, 화학)를 강화하기 위한 산업정책 - 전략적 투자유치(특히 독일과 일본)와 중견기업의 육성(창원 등 기존 국가산단의 첨단화)

5) “따라 잡기(catch up)”에서 “선도자 이익”으로 - 기초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인적 투자, 인문학 등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

cf.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전략

- 한중 FTA에 대한 입장

cf. 평등이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

1) 단기 : 소득 재분배는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를 늘려서 총수요 증대(케인즈)

2) 평등 -> 다양성(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전문화함으로써) -> 효율성 : 평등할수록 “선택의 자유”가 더 많이 보장된다. : cf. 기본소득이론 아이디어

cf. 관계있는 다양성(related diversity)이 기술혁신을 촉진. 즉 각각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토론과 협동이 가능하다면 기술혁신에서도 최선의 상태일 것.

3) 평등 -> 신뢰 -> 거래비용 감소 -> 효율성 (신제도이론)

4) 평등 -> 신뢰와 협동 -> 공공재 공급의 증가 -> 효율성 (시장실패론)

5) 평등 -> 신뢰 -> 제도의 성과 -> 효율성 (제도이론)

6) 평등 ->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 기회 -> 인적 자본의 향상 -> 효율성

2. 복지국가와 사회적 딜레마

1. 논쟁의 구도

- 보편복지 대 잔여복지(또는 선택복지)

* 경기도 무상급식 논쟁으로부터 촉발 - 지방선거에서 보편복지의 우위로 일단락

* 그러나 보편복지, 또는 보편주의 개념에 관해서도 별다른 합의없이 진행

* 대개 보편복지론자들은 에스핑앤더슨의 사회민주주의 유형, 또는 노르딕 모델을 상정

cf) 잔여주의란 가족과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 자산조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말함. 반면 보편주의는 사회복지를 국가의 1차적 역할로 상정

cf) 보편주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넓은 범위) 정률 수당(flat rate benefit, Titmss)지급(좁은 범위)을 특징으로 하며 마셜의 사회권, 시민의 정치 참여를 전제로 함.

- 재원조달 문제

*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으로 공격

* 민주당에서는 손학규 등이 “증세없는 보편복지”, 정동영 등이 “증세”를 주장

1) 손학규 등은 4대강 등 낭비적 건설 예산의 축소, 부자감세 철회, 비과세 감면 대상의 축소, 기타 예산 절약으로 복지 예산 충당 가능하다고 주장

2) 정동영 등은 OECD 평균에 비춰 약 100조원의 증세 필요

* 한편 진보진영에서는 증세를 “내라”로 할 것인지 “내자”로 할 것인지로 분화

1) 부유세 도입, 또는 고소득, 고자산자의 세율 구간을 만들어 부자들에게 증세

2) 누진적이지만 모든 국민이 부담하는 사회복지세, 또는 사회보험료 인상

-> 국민의 우선 필요를 먼저 고려하고 보편복지의 로드맵,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 복지 대상에 따라 보편주의의 강도는 달라질 수 밖에 없으므로 선택복지, 잔여주의를 악으로 몰아 붙이다가는 논쟁에서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음.

cf) 스웨덴 국민을 상대로 한 20여년의 조사에서 일관되게 1위는 의료, 2위는 초중등교육, 3위는 노인복지, 4위는 아동수당으로 나타났고, 5위는 고용정책인 반면 사회부조와 주택수당은 최하위로 나타남(Rothstein et.al., 1998, 한국의 경우?). 이런 서열은 보편성이 강한 서비스의 순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2. 생각할 일들

- 보편주의는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 보편복지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특히 노르딕)의 효율성과 평등이 모두 높은 것으로 입증됨. 단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복지 위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함.

-> ‘공짜 점심’(Lindert, 2004, 요약본은http://www.cirano.qc.ca/realisations/grandes_conferences/fiscalite_publique/pres_lindert.pdf)에 관한 논쟁은 사실상 결론이 난 상태. 흥미로운 것은 노르딕 국가들(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최고 소득 한계세율, 투자수익에 대한 세율은 낮고 근로소득세, 소비세, 죄악세, 환경세는 높은 편이라는 점, 그러나 한국에도 이런 상황이 적용될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함.

* 보편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합의된 정의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Antonnen, Siplia, 2010, Andersen, 2007 참조).

ex) 실제로 부자들에게도 똑같은 현금 수당을 주는 것이 ‘정의’의 철학에 비추어 올바른 것일까? 의료에 보편주의를 적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Sen,***) 보편주의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parternalism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등

* 보편주의의 가장 큰 난점은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에 있음(Antonnen et al., 2010). 그러나 평등이 다양성을 낳고 다양성이 효율성을 낳았다는 점(정태인, 2011 ㅠㅠ), 그리고 이에 따라 재원 조달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유럽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소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1) 적어도 5대 불안과 관련해서 보편주의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이에 따라 복지를 전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함

2) “내라”, “내자”와 관련해서는 Lindert의 연구가 흥미로움. 기본적으로 노르딕 모델은 Self-help의 경제학(노르딕 국가복지의 역사적 기초가 협동조합 등이었기 때문이고 자율과 자조가 사회규범이기 때문일 것). 한국에서는?

- 보편주의에는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반대하는 시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 여론조사... 대략 보편주의에 70%가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40% 이하만 찬성

* 영국 좌파들 일부가 보편주의에 반대한 것은 보편복지가 중산층에 가장 혜택이 크고 결국 재분배 효과가 적다는 것이었음. 그러나 이런 논리가 사실이라면(구체적으로 통계 확보 필요. 보편의료 등에서는 결국 전문가들이 필요를 결정하는 문제 발생) 오히려 한국에서는 찬성 쪽에 유리할 지도 모름

* 과거 종부세에 대한 “세금폭탄” 공격이 유효했다는 점에서 민주당(그리고 그들의 브레인들) 일부는 되도록 증세논쟁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 물론 4대강 사업과 부자감세의 철회만으로도 매년 약 20조원 이상의 재원이 확보되는 것이 사실. 그러나 현재의 조세감면제도를 바꾸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임. 결국 2년 동안 확실한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관건.

3. 행동/실험경제학을 응용한다면?

- 보편복지는 공유자원의 성격을 지니며 따라서 사회적 딜레마의 모든 면을 갖추고 있음(Brandt & Svendsen, 2010, 사회적 딜레마의 변형과 관련해서는 Ostrom, 2000, Santos et.al., 200? 참조).

* 보수 쪽의 공격은 1990년대 “스웨덴 병” 비판과 정확히 일치하며 그 핵심은 “공짜 점심”(free riding)

* 그러나 노르딕 나라들의 현재 상황은 이런 비판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

- 왜 사람들은 복지, 나아가서 증세에 찬성하지 않는가? 공공재 게임의 결과

1) 게임 룰 자체를 벗어난 문제 - 국가에 대한 불신. 게임에서는 자기가 낸 돈의 3배가 공유자원 풀에 부가되지만 복지의 경우 세금을 더 낸다고 해도 어딘가로 샌다는 생각이 팽배. 한국에서 특히 심각할 것.

2) free riding(defect)에 대한 우려. 사람들은 자신이 바보(sucker)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데 특히 착한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

3) 복지 관련 free riding은 복지의 수혜자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특z히 잔여복지의 경우에는 자신이 낸 돈이 무능한 free rider에게 쓰인다는 점이 더 부각됨.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만큼 돈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두가지로 분류될 것.

“사람들은 기꺼이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속이거나 자립하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경우 지원을 철회한다”(Fong et.al., 2003)

- 문제의 해결 - 인간은 언제 협력하는가? (최정규, 2010, Novak, 2007 참조)

1) 이타적 인간. 인간이 모두 이타적이면 죄수의 딜레마 해결=종교적 해결. 인류 역사상 실현된 바 없음. 또한 모두 이타적 인간이라면 국가복지의 존재 불필요. 오로지 정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필요.

2) 공공재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협력의 촉진제는 상호적 응징자(reciprocal punisher, 또는 이타적 응징자)의 존재.

* 복지 문제에서는 주위에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에 대한 따가운 시선 등이 상호적 응징자 역할을 할 것(왕따ㅠㅠ) - 사회규범

* 국가의 공식적 제도는 가장 강력한 응징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음 - 그러나 도덕감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하이파 사례, Bowles, 2011)

*만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산조사를 도입하면 해가 존재하지 않는 통제게임이 될 것. 둘째, 비용부담 원칙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탈세 등 범법에 대한 강력한 응징.

3) 직접 상호성(direct reciprocity)과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 직접 상호성이란 반복 게임(게임이 다시 일어날 확률)에서 오는 것이며 간접 상호성이란 평판을 의식해서 협력행위(복지 관련 증세에 찬성)를 하는 것.

* (보편)복지는 법률에 의거하는 것이며 무한 반복게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 단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복지가 현격하게 축소될 수 있다면(영국의 경우) 사람들은 복지에 찬성하지 않을 수 있음. 한나라당과 박근혜가 확대된 잔여복지(70%)를 내세우고 있는 점은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 가장 좋은 것은 여야의 합의이며 적어도 야5당이 합의하는 복지 스케줄을 만드는 것.

* 평판의 문제는 복지에 쓰인 세금을 낸 부자들의 명단을 발표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함. 또는 자산세를 거둘 때 부자들이 용도를 지정하도록 하고 복지 부문에 기여한 사람의 명단을 발표할 수도 있음.

4) 네트워크 외부성과 집단선택. 협력자들로 이뤄진 집단 성과가 좋으므로 다른 집단도 이에 따르게 될 것.

* 보편복지의 경우 나라 전체에 해당하므로 무관. 그러나 나라별 비교에서는 의미가 있고 또한 보편복지 전달체계를 지자체(공동체)나 다양한 사회경제(예컨대 협동조합)가 결정하는 경우 집단 간 경쟁이 일어날 수 있음.

5) 인간협력의 다섯가지 조건이 사회의 규범이 되면(사회적 신뢰의 네트워크, 즉 사회자본의 축적, Dasgupta, 2010, Stiglitz의 비판도 참조) 보편 복지국가의 딜레마 해결. 노르딕 모델 국가들은 사회적 신뢰를 측정하는 World Value Survey, Social Capital Project에서 항상 상위권에 포진(한국의 순위?). 신뢰와 사회규범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것이므로 신뢰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정책을 선정하고 실천하는 장기 계획 필요

- 시사점

* 사회딜레머 해결은 협력(즉 복지)의 보수(b)를 늘리는 것이 기본적인 해법. 그러나 복지의 경우 그 비용(c)이 동시에 늘어난다는 문제를 안고 있음.

1) 건강과 교육, 보육 복지가 장기적으로 가장 수익성이 높다는 점

2) 비용 대비 보수라는 점에서 시장해법(사교육, 민간 의료보험, 민간육시설)보다 복지가 우월하다는 점 강조.

3) 특히 사람들은 자신이 확실히 처하게 될 위험(노령, 아동), 그리고 언제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 비용이 대단히 큰 위험(예컨대 암 등 불치병)이 크다고 인식할 때 보편 복지에 찬성. 예컨대 암의 최고 권위자가 암에 걸릴 수 있을 때 의료의 보편복지에 찬성. 그 기간이 길어야 자신과 가족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 노령은 거의 100%(젊을 때 죽지 않는다면), 의무교육 역시 거의 100%(자녀를 낳지 않는 경우를 빼면), 의료도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 반면 실업보험이나 주택수당의 경우 자신은 해당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그러나 현재와 같이 괜찮은 일자리가 제약되어 있고(또는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와 괜찮지 않은 일자리의 격차가 클 경우) 실업과 주거를 보편복지에 넣는 데 찬성할 것. 문제는 투기심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거시경제정책

* 수혜 쪽 free riding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는 보완 정책이 필요. 예컨대 실업보험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건강보험과 과잉 진료의 예방책 등... 수혜 대상의 확정을 위한 자산조사가 아니라 수혜자의 자립 의지를 증명하는 프로그램이 중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 의지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도 중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선호(other regarding prefernce)도 동시에 갖추고 있음. 전체적으로 복지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키우는 쪽으로 설계되어야 함.

* 복지국가가 무한 반복 게임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함. 이를 위해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복지가 후퇴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함. 왜냐하면 세금을 내고 그 기간동안 자신이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아동이나 노령은 그 기간이 확실히 중요) 세금을 내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 있엄. 현재로는 한나라당이 복지 경쟁 속에서 더 많은 약속을 하도록 유도하고 야5당이 일관된 플랜을 제시하는 것이 해법

* 물질적 이익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데 유리한 방향 모색. 특히 복지 비용의 공정한 부담의 원칙(능력에 따른 부담과 필요에 따른 수혜)을 세우고 이를 국가가 확실하게 지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주지.

* 이런 측면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의무 급식에 이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국공립 의료기관 확대(병원 양극화의 해소), 노인연금 확대,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에 주력할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