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6. 16:29ㆍ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슈워츠 아쇼카 글로벌마케팅 부사장… 아쇼카 펠로 18명의 혁신 사례 소개
베벌리 슈워츠 아쇼카 글로벌마케팅 부사장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는 개별 혁신가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 모두가 변화의 물결에 동참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쇼카 제공
“보통 사람들은 자폐증을 장애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사회 혁신가들은 자폐증을 ‘긍정적 산만함’으로 새롭게 정의합니다. 그리고 자폐증이 있는 사람을 채용해 소프트웨어의 버그(bug·오류)를 잡아내는 일을 맡깁니다. 이들은 집중력과 세심함에서 일반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버그를 잡는 데 탁월한 성과를 냅니다.”
국제 비영리조직 아쇼카재단의 베벌리 슈워츠 글로벌마케팅 부사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DBR(동아비즈니스리뷰)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아쇼카재단은 빈곤이나 불평등, 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혁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기관이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70여 개국 3000여 명의 선도적 사회 혁신가를 지원하고 있다. 슈워츠 부사장은 성공한 사회적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체인지메이커 혁명(원제 ‘Rippling’)’이란 책도 최근 출간했다. DBR 126호에 게재된 슈워츠 부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다.
―저서 ‘체인지메이커 혁명’의 원제인 ‘리플링(Rippling)’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리플링은 잔물결 혹은 파문이란 뜻을 갖고 있다. 빈곤이나 불평등, 부당함과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의 행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바꿔놓음으로써 결국 사회 전체 시스템이 변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창의적인 혁신가의 노력만으로는 사회를 완전히 바꾸기 힘들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변화의 물결에 동참할 때 온전한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이 일면서 호수 전체로 파문이 확산되는 과정과 같다.”
―성공한 사회적 혁신가 18명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또 뜨거운 열정을 갖고 소신껏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특히 사회 혁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남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과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연못에 물결을 확산시켰다. 한마디로 ‘4P’, 즉 목적(purpose), 열정(passion), 패턴(pattern), 참여(participation)라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낡은 사고방식의 틀을 바꾸는 데 아주 탁월하다.”
―낡은 사고방식의 틀을 바꾼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 컴퓨터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가 토르킬 손네의 예를 들어보겠다. 덴마크의 사회적 기업가인 손네는 직원들을 자폐증 환자가 아니라 전문가라고 본다. 그가 창업한 회사의 이름을 ‘스페셜리스트’라고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손네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의 집중력과 세심함이 일반인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봤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에서 버그를 잡아내는 일처럼 사회에 이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봤다. 자폐증을 갖고 있는 스페셜리스트 직원들은 특별 취급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컨설턴트’로 불린다. 이는 자폐증을 장애로 보는 시각에서 그 장애가 만드는 경쟁력에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 DSE(Dialogue Social Enterprise)의 창립자인 안드레아스 하이네케는 장애란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된(disabled)’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닌(differently abled)’ 것이라는 신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DSE에선 ‘어둠 속의 대화’ ‘침묵 속의 대화’ 같은 독특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어둠 속의 대화는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암흑의 공간을 일반인들이 시각장애인 안내자의 인도를 받으면서 지나가 보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자신들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는 시각장애인들을 접할 때 ‘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정상인’들보다 얼마나 유능해질 수 있는지 확실하게 체험한다.”
―장애인들을 동등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제안해 모두가 만족해야 한다. 형편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식의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 스페셜리스트의 사례를 다시 들어보자.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 바로 버그를 찾아내는 일이다. 제품을 출시했을 때 작동되지 않거나 오작동할 위험을 줄이려면 프로그램 설계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 및 사소한 오류들을 모두 찾아내야 한다.
문제는 이 작업이 매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데 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일반인 대부분은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폐증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에 엄청나게 몰입하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손네는 바로 이 점을 간파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냈다.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을 고용했으니 잘 봐달라는 ‘읍소’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 사업자로서 매우 설득력 있는 ‘사업 제안’을 한 것이다. 이건 고객사로서도 매우 매력적이다.”
―관습적 사고를 바꾼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기존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감 능력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아쇼카 펠로 모두 공감에서부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적 기업가 혹은 혁신가로 성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들이 사회의 주변부나 외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면 기존 관습이나 생각을 깨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공감 능력이 사람들을 책상 앞에 앉혀놓고 칠판에 내용을 적어가며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공감 능력은 학습을 통해 키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넘어졌을 때 주변 사람 대부분은 그냥 서 있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이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면 주변의 방관자들도 나중에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남을 도와줄 수 있다. 아쇼카재단은 미래의 주역인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체계적으로 공감 능력을 배양하면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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