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표 공동대표가 생각하는 시민운동의 방향과 재벌개혁
세대교체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민운동의 르네상스
열어야”
대화는
경실련과의 인연에서부터 시작됐다. “창립멤버는 아니었지만, YWCA에서 열린 경실련 창립식 때 참석하면서부터 경실련과의 오랜 인연이
이어졌다”라고 운을 뗀 그는 “노태우정권 당시 전국적으로 땅 투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 등의 재벌 개혁방안을
추진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최 공동대표는 강철규 전 공동대표, 장지상 경북대 교수와 공동으로 「재벌」이라는 재벌
비판서를 집필하며, 재벌개혁운동의 선구자로 나섰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경실련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지금은 머리가 희끗한 노교수지만 패기
넘치던 30대 중반부터 경실련 시민공정거래위원회 위원, 중소기업분과 활동, 정책위원장, 상임집행위원장까지 경실련의 주요 직책을 도맡아 수행하며
90년대 경실련의 힘을 키워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최 대표는 주저 없이 “교수가 제1의 직업이고 경실련 활동가가 제2의 직업”이라 말할
정도로, 경실련을 통해 많은 인연을 만나고 사회에 대한 철학을 확립했다고 한다.
그런 최
대표에게 MB정부의 4년 국정운영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그는 단호하게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MB자체가
국정철학이 없었다. 원전 수주와 같은 사안은 기업차원에서는 대단한 성과라 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국민의 행복과 안전이 우선시됐어야
한다. MB는 비즈니스맨의 범주를 못 벗어났던 것이 한계”라고 평가했다. 특히 경제측면에서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벌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지주회사규제 및 금산분리 완화, 감세 정책 등 온갖 방법을 써서 재벌과 유착했지만,
「가난한 집 맏아들」(유진수 지음,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보듯이 재벌은 자신의 이익만 챙길 뿐, 국가 경제를 돕지 않아 결국 양극화만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MB정부의 간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너무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후 발생한
심각한 훼손을 수습하는데 더 많은 예산을 쓰게 될 것이라며, 그 예산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활용했다면 훨씬 더 큰 고용효과를 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선거를
앞두고 차기 정부의 재벌개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벌개혁 전문가에게 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정치권이 쏟아내는 재벌개혁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최 대표는 “재벌개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재벌개혁을 추진할 주체세력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 “노무현 정권 때 권력이 정치에서 경제로
넘어갔다. 재벌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소불위다. 재벌개혁을 해야하지만 5년제 대통령제에서는 2~3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 강해 개혁정책 추진이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는 어느 곳이나 재벌과 연결돼있어 소비자는 재벌로부터 상품을 구매하고 중소업체는 재벌에게 부품을 공급하며,
근로자는 재벌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언론사는 재벌광고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경제는 ‘재벌의 빨대경제’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재벌개혁은 이 빨대를 하루속히 쌍방향 빨대로 만드는 일이며,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경제는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정표
공동대표는 20년 전인1991년 경실련-전경련과의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재벌제도하에서는 경제력집중현상이 나타나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요체인 경쟁적 시장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 재벌기업들의 내부거래에 따른 시장경제영역의 축소로 효율성이 떨어지며,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규모의 경제와 관련이 없다.” 지금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없음에 조금은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표심을 잡기위해 재벌개혁을 내세우곤 하지만, 당선이 되면 재벌과의 관계유지를 위해 모든 정책들이 유야무야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 때문에 5년 임기 내 재벌개혁을 실천하려면 재임 초창기부터 강력하게 지원해줄 구원세력이 필요하며, NGO와 언론, 학자집단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철저한 혈연 및 세습으로 유지되는 재벌기업 문화는 재벌정책이 처음 시행되던 25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시민단체가 주축으로 새로운 공정거래법을 만드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지금의 공정거래법 재벌조항이 새로운 정책으로 전면 대체되지 않고서는
재벌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확고한
신념과 통찰을 지닌 최정표 대표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경제학 교수가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그때만 해도 문과에서는 법대 아니면 상대 둘 중에
선택했다”며 “적성이 너무 안 맞았다면 못했겠지만, 공부 하다 보니 재미있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웃으며 답했다. 최 대표는 “어렸을 때 꿈은
따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에 출발해 10리 길을 걸어 학교를 오갔던 시절이라 피로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출퇴근이 자유로운
‘교수’란 직업을 마냥 동경하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경실련에
처음 발을 들이고 사회개혁운동에 열을 올리던 30대 교수가 20여년을 흘러 지금은 단체를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캠퍼스도 그만큼 변했다. 여러
개의 기업 추천장을 들고 골라서 취직하던 시대에 살던 그의 눈에는 해외연수니 자격증이니 하며 오직 ‘스펙’을 쌓는 데만 바쁜 젊은이들이 안타까울
법도 하다. “젊은 세대들이 고민하는 이슈는 오직 취직뿐이고 도전의식이 사라진 지는 오래”라고 말했다. 기회가 열려있던 옛 시절에는 노력에 따라
성과도 따라왔지만, 기회마저 없는 요즘은 현실에 좌절해버리는 젊은이들이 많다. 최 대표는 “‘고시’라는 출세의 사다리가 있어 돈이 없어도 똑똑한
이들이 사회적 신분상승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해외유학, 로스쿨 등 돈이 없으면 도전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운 세태를 개탄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통감하는 그 역시도 대안에 있어서는 “어렵다”며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대학도
대학이지만 시민사회운동 환경도 많이 변했다. 90년대 경실련의 힘은 아주 막강했다고 추억하는 최 대표는 그때에 비해 사회적 호응도가 현격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IMF이후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인사로 편입되기도 했고, 실제로 시민단체에서 제안한 정책들이
일정정도 제도화되면서 여러 사회적주장을 이끌어야할 시민단체에서 더 이상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상근 활동가들에게서
예전만큼의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활동가들의 전면적인 세대교체와 내부 혁신, SNS를 통한 여론 형성 등이 현실화됐을 때 시민운동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최 대표는 말했다. 또한, 조기 은퇴가 늘어남에 따라 은퇴한 50대 전문가그룹이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아이디어와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표 공동대표는 “사람이 재산인 경실련에서 인명사전을 제작하고 평생회원제도를 도입해
인적자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제안했다.
‘시민운동의 르네상스’는 곧 침체기를 걷고 있는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반증하기도 한다. 정부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는 경실련조차도 기업후원에 발목이 죄여 제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를 대변하여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재벌개혁이고, 경실련 추진하는 운동의
심장이 돼야하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인을 ‘탐구하고 재생하며 자립한 인간’으로 정의한다. 시민운동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탐구와
침체된 운동의 재생산, 정부 및 재벌로부터의 자립이 현재 위기인 시민운동을 르네상스로 이끄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시민운동, 현재 위기인가.
르네상스 직전의 인본주의는 분명위기였으리라. 시민운동의 부흥이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