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종의 한마디 175-지방자치법 6]
모든 법이나 조례는 제일 먼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제1조는 그 법이나 조례를 왜 만들었는지와 그 법이 어떤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지를 밝힌다. 좀 길지만 두 개 사례를 소개해본다. 먼저 [지속가능발전법] 제1조는 “이 법은 지속가능발전을 이룩하고,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여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이 법의 목적을 밝힌다.
수원시 조례 하나만 소개한다. [수원시 마을만들기 조례]는 제1조 목적을 “이 조례는 주민이 스스로 자신의 마을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가는 창조적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원시 마을만들기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하고 밝히고 있다. 그럼 지방자치법 제1조에서 밝히고 있는 지방자치의 가치나 목적은 무엇일까?
지방자치법 제1조는 그동안 딱 두 번만 바뀌었다. 49년 첫 제정 당시의 조항이 40여년 이어지다가, 88년 전부 개정할 때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 해 다시 한 번 32년 만에 바뀌었다. 4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이 87년 6월 항쟁으로 한 번 바뀌었고, 또 다시 지난해에 바뀐 것이다.
49년 제정 당시 지방자치법 제1조는 “본법은 지방의 행정을 국가의 감독 하에 지방주민의 자치로 행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국가의 감독과 지방주민의 자치가 기묘하게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방자치는 하긴 해야겠지만, 남과 북의 대치, 신생 국가의 출발 등 여러 이유로 국가의 감독을 포기하지 못했다. 국가의 통치를 기본으로 지방행정을 이끌어가되, 주민의 자치를 실시하려고 했다. 또한 지방행정을 국가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하도록 종속시키고 있다.
‘국가의 감독’이라는 표현은 88년에 비로소 사라진다. 88년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진화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감독과 피감독 관계가 아닌 특별한 관계로 규정하고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함’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지방자치법의 고유한 역할인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조직 및 운영,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을 맨 앞에 명기하고 있으며, 이 법의 목적이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며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발전을 기함’에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88년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이 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그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기본적 관계를 정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며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해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제1조는 “이 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조직 및 운영,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을 민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주민의 참여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고 이 법을 통해 (대한민국)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려는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지방자치법의 변화과정은 우리 사회 지방자치에 대한 그 시대의 인식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다시금 지방자치법을 개정한다면 제1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다.
[유문종의 한마디 176-지방자치법7] 재난지원금을 누구에게 얼마만큼을 지원해야 하는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동네 통장님이 아닐까요? 지원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동네 사람들이 잘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치단체 사무를 배분할 때도 이렇게 현장을 중심으로 추진하자는 원칙이 있습니다. 보충성의 원칙이라고도 하고, 현장중심주의 원칙이라고도 합니다. 중앙정부와 광역, 기초지자체가 해야 할 사무를 판단할 때 현장중심주의 원칙이 제일 먼저 거론됩니다. 주민 생활에 밀접한 사무는 주민에게 밀착되어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초 지차체에게 맡기고, 두 개 이상 지자체가 협력해야만 하는 사무나, 기초 지자체가 할 수 없는 사무는 광역에게 배분하고, 광역지자체도 할 수 없는 범위와 내용의 사무라면 중장정부가 그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충성의 원리, 혹은 현장중심주의 원칙 등등으로 표현합니다. 이번 전부 개정된 법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부분이 제11조(사무배분의 기본원칙)입니다. 그동안 자치법에는 담겨있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중앙정부 사무이양, 광역지자체 재 이양과정에서 항상 강조되었던 원칙을 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앞으로 사무이양 논의과정에서 법에 따라 많은 사무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지자체로 이양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법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획기적인 사무이양을 약속하였지만, 아직도 현장중심주의 원칙을 적용해 보면 많은 사무들이 현장을 벗어난 곳에서 결정되고 집행되고 있습니다. 법 개정으로 사무이양에 가속도가 붙기를 기대합니다. 당연히 사무이양은 그 사무에 따르는 재정도 함께 이양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신형 전기자동차만 내려주고 밧데리는 알아서 사다 쓰라고 하면, 어느 지자체도 그 전기차를 가져올 수 없겠지요. 사무이양은 재정이양과 동시에 진행될 때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배분 원칙에서 현장중심주의와 함께 논의되었던 것이 사무의 포괄이양입니다. 이번 개정된 법에도 포괄이양의 원칙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무를 배분할 때나 이양할 때 부분 부분으로 나누어 배분하거나 이양을 하면, 현장에서 제대로 된 정책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전기자동차 문짝 따로, 타이어 따로, 밧데리 따로, 배선 따로 시차를 두고 이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지어 타이어 네 개도 따로따로 내려주다가 두 개는 중형차, 하나는 소형차, 또 하나는 스포츠카 타이어가 내려오기도 하겠지요. 자동차 수십 대를 밧데리와 충전소 설치 비용까지 고려하여 이양해야 제대로 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안전한 도시 교통 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사무이양의 포괄원칙을 생각하면서 행정의 칸막이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가 다르고 같은 부처에서도 부서가 달라서 종합행정이 어려운 실정에 포괄이양은 쉽지 않습니다. 하천관리를 위해서 국토부를 비롯하여 환경부와 문화, 교육, 복지 등등의 여러 부처 관련 법률과 그에 따르는 업무를 살펴봐야 합니다. 최근 돌봄업무에서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다함께돌봄센터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같은 부처에서도 부서 간 협업이 미흡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칸막이 행정은 쉽게 극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확한 책임과 권한의 구분을 중시하는 관료체제가 유지되는 한 칸막이 행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을에서 주민들의 삶은 절대로 각 부처 정책이나 부서의 사업에 따라 분리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하고 잠자리에 들 때 까지 어디서 어디까지 무슨 정책, 무슨 사업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종합적인 사무가 절실합니다. 다시금 현장중심주의, 포괄이양 원칙을 실현하는 빠른 사무와 재정의 분권을 촉구합니다. |
[유문종의 한마디 174-지방자치법 5] 불행한 일이지만 서커스단에서 오래 생활했던 코끼리는 정해진 공간에서만 움직인다고 한다. 처음 훈련을 받을 때 자신을 묶었던 줄에 갇혀, 그 줄이 없어진 다음에도 그 공간에만 머문다. 사람도 비슷하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버릇, 습관, 관행, 전통과 문화 등등이 있다. 지방자치가 부활하여 민선 7기가 지나고 있다. 우리도 기존 틀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방자치하면 4년에 한 번 시장(군수나 구청장, 도지사, 교육감)이나 시의원(도의원, 군, 구의원)을 뽑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나마 30년 넘게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선거이니 91년 지방의원 선거와 95년 단체장 선거는 큰 설렘과 희망을 안구 시작되었다. 87년 6월 민주화를 외치는 구호 중에 하나가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 뽑아보자”였다. 직선제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뿐만이 아니라, 자치에 대한 꿈도 담겨있었다. 지자체가 부활하고 30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지방자치제도 하면 시장(집행부)과 지방의회만을 떠올리게 되었다. 강한 시장과 약한 의회를 특징으로 하는 기관대립형 지방자치제도만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치 코끼리가 자신이 한정한 공간만을 맴돌 듯이 시장과 시의원만이 지방자치의 모든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하고 5만이 안 되는 지자체하고 기관구성 방식이 같을 필요는 없다. 5만 이하의 인구를 가진 지자체가 2020년 12월 현재 53개 지자체가 있으며, 3만이하 지자체도 18개가 있다. 대한민국에 있는 226개 기초지자체가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양립하는 방식으로만 지방자치를 실행하는 것은 국가주의 잔재일 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자치라고 하지만, 기관구성이나 재정 등 대부분의 조건이나 범위를 중앙정부에서 규정해 왔던 것이다. 자치법 전부 개정 제4조(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의 특례)로 그 족쇄중의 하나가 해제된 것이다. 법이 시행되는 22년부터는 그 지역 주민이 자치단체 기관구성을 선택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정책도 조직도 자금도 마련해가야 하겠지만, 자기 도시의 기관구성 형태부터 고민해야 한다. 건물 구조도 정하지 않고 그 안에 넣은 가구나 관리 방식을 먼저 고민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개정 자치법 제5장에 지방의회와 관련된 조항을 두고, 제6장에 집행기관과 관련된 조항을 두고 있으나 주민투표에 따라 어떤 기관구성도 가능하도록 법을 바꾼 것이다. 자치의 주인으로 대리인을 뽑는 지역 주민이라면 먼저 자기 도시 운영구조부터 물어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주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방자치 기관구성과 관련 우리의 경험도 참고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첫 시, 읍, 면장은 주민이 선출하지 않았다 지방의회에서 의원들 중에서 선출했다. 의회 중심 기관구성이었다. 앞의 글에서 소개했듯이 동장과 리장은 꽤 오래 직선을 통해 선출했다. 기관구성 선택권이 어디까지 적용되는 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나 지방의원 구성과 선출 방식, 단체장 선거방식 등을 통해 새로운 지방자치, 주민자치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 기관구성을 넓게 고민하려면 오랫동안 다양한 사례를 축적한 외국의 경험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강시장, 약의회 기관대립형부터, 의회중심 기관구성, 위원회 방식 기관운영, 행정전문가를 단체장으로 공모하는 방식 등등 여러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관행과 경험에 갇힌 코끼리가 아닌 자유로운 상상으로 다양한 지방자치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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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종의 한마디 173-지방자치법 4] 작년 12월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 내용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총괄 의견부터 밝혀야겠다. 이번 개정안은 절반의 반은 성공했고, 절반의 반 정도는 큰 아쉬움이 있다.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지역주민과 단체장, 지방의원들의 활동에 따라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어느 지역에서는 큰 성공으로 드러날 수도, 어느 지역에서는 별다른 변화 없이 법전에서 썩어갈 수도 있다. 더 불행한 것은 주어진 권한이 악용, 오용되어 자치와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사례도 보게 될 것이다. 법과 제도는 변화의 시작이고 변화는 결과는 온전히 시민의 몫이다. 자치는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1/4 정도의 성공은 중앙정부와 지방 단체자치에 집중되었던 지방자치법이 지방자치 사무배분의 원칙, 주민의 권리와 참여 확대, 지방의회 기능 강화, 특별지방자치단체 구성 등 변화된 상황에 필요한 지방자치 관련 내용을 법 조항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1조 목적에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후 기관구성 선택권 보장(제4조), 사무배분에서 보충성과 포괄이양의 원칙을 명시(제11조 사무배분의 기본원칙), 제17조 주민의 권리(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의 결정 및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제26조 주민에 대한 정보공개, 그리고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역할 강화를 위한 내용 등이다. 앞의 성공을 무색하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바로 주민자치회 조항의 삭제이다. 한 다리로만 걸어가는 지방자치가 되었다. 단체자치와 주민자치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행정체계 안에 갇힌 자치가 된 것이다. 서둘러 법 개정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몇 가지 아쉬움은 또 있다. 2018년부터 논의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있던 사무배분의 기본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규정한 사무배분시 준수의무 조항이 빠졌다. 다음과 같은 조항이다.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지방자치단체 상호간 사무를 배분·재배분함에 있어 이 법에 따른 원칙과 기준을 준수하여야 한다.’ 또 하나 개정안 논의과정에 있던 자치분권 영향평가 조항도 빠졌다. 지방자치는 의지와 열정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책은 모두 허구다. 재원마련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공약은 지켜질 수 없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반반의 성공과 실패라고 판정하는 마지막 이유이다.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가 움켜쥐고 있는 재정권을 나누지 않는 이상 지방자치는 허상이다. 향후 자치법 개정과정에서 재정분권의 기본 방향과 원칙이라도 법에 담아내도록 하자. 이 지점도 지방자치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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