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5. 13:36ㆍ이런저런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
우리 가족들이 즐겁게 쉬었다 갈수있는 힐링 하우스
꼭 ‘힐링’이 대세여서가 아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흙집을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재현해보겠다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다운 막연한 꿈이 있었을 뿐.
때마침 원하는 집을 찾았다는 연통을 받았고,
그렇게 첫 삽을 뜨자 한 달 정도의 일정을 달려 공사는 속전속결로 마무리되었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가 여느 도시인처럼 전원생활이라는 막연한 꿈을 현실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작년 가을부터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의 고향집에 대한 향수를 달래드리고 싶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1남6녀의 대가족을 일 년에 몇 번쯤 소집할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했다. 전국을 다니며 발품을 판 결과 지금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이라 흙이 무너져내린 곳도 있었지만 서까래가 그대로 남아 있고, 어릴 적에 살았던 시골집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다고. 요즘 농가는 예전과 달리 황토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까이 있으면 그 소중함을 모르는 법, 대부분의 농촌 사람들이 기존의 가옥을 헐고 생활하기 편리한 조립식 집을 짓기 때문. 황토는 단열재 역할뿐 아니라 축열 효과도 뛰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또 황토로 지은 집은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으며 혈액순환 촉진, 피로 해소, 신경통 완화 등에 효과가 있어 사람에게 가장 편안함을 주는 친환경 주거 공간이다. 일찍이 황토집의 가치를 알아본 오미숙씨는 기존 가옥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낡은 가옥이라 잔손질이 많았고, 다음 일정을 맞추느라 직접 팔을 걷어붙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사하는 동안은 이걸 왜 시작했을까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완성된 것을 보니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 가족들이 자유롭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힐링 하우스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구입한 농가주택은 정면에 안방과 부엌, 사랑방이 한 채에 딸려 있고 양 가장자리에 별채 2채가 나란한 전형적인 ‘ㄷ’ 자 구조. 특히 대문과 닿아 있는 공간은 과거에 막사와 헛간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벽체에 금이 가고 군데군데 허물어져 내부 구조가 다 보일 정도였다.
먼저 벽돌과 황토로 부실한 곳을 채우고 지붕을 보수한 뒤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여기에 기존의 창고 철문을 뜯어내고 철재 프레임에 불투명 유리를 끼워 인더스트리얼 감성의 문을 달았다. 또 눈비에 대비해 플라스틱 슬레이트를 이용해 처마를 만들고, 지붕 안쪽에 빈티지 랜턴을 달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채와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고 방 사이즈도 제법 커서 친인척이나 지인의 가족이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쉬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임시 게스트 룸으로 명명했다. 방 안을 채운 소품은 오미숙씨가 10년 이상 다양한 인테리어 현장을 다니며 하나둘 모은 것으로 오늘을 위해 준비한 듯 공간과 잘 어울린다.
또 다른 별채는 창고와 작은방이 있던 공간으로 창고를 화장실로 개조했다. 원래는 별채 옆에 별도로 자그마한 화장실 건물이 따로 있었는데, 이를 없애고 창고 공간을 화장실로 만든 것. 화장실문과 방문의 높이 차이가 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 역시 기존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전 집주인이 주말주택처럼 가끔씩 집을 사용해서인지 소홀히 관리한 공간이 많았는데, 그래도 작은방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래서 작은방 문살은 그대로 사용했고, 토방과 디딤판도 기존의 것을 살렸다. 반면 욕실은 이전의 창고 철문을 떼어내고 철재 프레임에 불투명 유리를 끼웠다.
욕실 내부는 화이트 컬러를 베이스로 컬러와 패턴을 특화시킨 포인트 타일을 붙여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을 반영해 내부와 외부 곳곳을 화분으로 장식했다. 이곳에 들어간 도기는 모두 현대식이지만 세면대 위의 선반과 거울 등은 전통 가옥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클래식한 소품으로 만들어 그야말로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골조로 사용한 통나무가 그대로 드러난 안방은 황토집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특이하게 정식 출입문과 뒤뜰로 나가는 문, 그리고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까지 삼면에
모두 문이 달려 있어 내부 공기와 외부 공기가 늘 순환하는 곳이다.
원래는 뒷문도 앞문과 같은 창살문이었는데, 살을 뜯어내고 유리를 끼우니 운치 있는 창문으로변했다.
오미숙씨는 한옥의 재미있는 구조를 최대한 살리고 싶어 벽장도 그대로 두었다.
벽장은 말 그대로 벽을 뚫어 문을 낸 다락 같은 곳으로 옛날에는 꿀단지 등 어머니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귀중품을 보관하는 ‘보물 창고’였다고. 한편, 아궁이가 살아 있어 군불을 넣을 수 있는,
예전에 사랑방으로 쓰였던 공간은 어머니를 위한 방으로 꾸몄다.
이곳이 사랑방으로 쓰였을 때도 아궁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틈만 나면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화투판을 벌여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할머니가 군불을 마구 때어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놀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기도 한다.
어머니가 계실 땐 어머니 방으로 사용하고, 부재중일 때는 뜨거운 구들장 마사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등을 지질 수 있는 ‘찜질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의도로 지은 집이기 때문에
부엌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이 많았다.
쉬러 왔으면 제대로 갖춰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인생철학. 더 맛있고 영양가 있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주고 싶어 아궁이를 그대로 살렸고, 좌식이 불편한 사람을 배려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부엌 한편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다.
자세히 보면 부엌 구조가 참 재미있는데, 한옥의 특징이 가장 잘 살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엌에서 밥을 하기 위해 지핀 불기가 구들장을 통해 방까지 전해지려면 방과 부엌의 바닥 높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 점을 이용해 구들장 옆에 안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두어 식사를 할 때면 이 문으로 음식을 건네곤 했다. 또 장독대는 대부분 서늘한 뒷마당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뒷마당으로 통하는 또 다른 문이 달렸다고.
창살문이었던 부엌 뒷문을 뜯어내고 유리로 갈아 끼웠고, 그 옆에 창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물론 겨울철 난방을 고려해 유리문은 이중문으로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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