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6. 09:31ㆍ시민, 그리고 마을/지역자치분권운동
재정 안 주면 지방분권 허울뿐" "재정 넘기면 광역단체 빈껍데기"
이상호 선임기자 입력 2019.03.26. 06:01
[경향신문] ㆍ자치분권위 발굴 내용, 4개 특례 후보도시 요구와 큰 차이
ㆍ도세 징수권 가져가면 열악한 기초단체 지원에 차질 불가피
ㆍ인사권 형평성 논란에 전주·청주도 특례 요구해 정부 ‘고민’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가 지방 대도시에 이양할 국가사무로 선정한 총 189개 사무는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3개 정부에 걸쳐 발굴된 것들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지방분권추진위원회에서, 박근혜 정부 때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자치분권위원회에서 심의했다. 위원회의 명칭만 다를 뿐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는 성격은 그대로 유지돼 왔다. 현 정부 위원회인 자치분권위원회가 마지막으로 이양 대상 사무를 해당 부처에 전달한 시기는 2017년 6월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개월 만이어서 189개 이양 사무 선정에는 현 정부의 의지가 덜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위원회의 이양 심의는 주로 사무를 이양하는 ‘사무 특례’에 대해 이뤄졌고 재정이나 인사권 이양은 검토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특례시 이양에 재정과 관련해 유일하게 포함된 과징금 관련 사무는 식품위생법 제82조에 근거한 식품위생법 위반자 과징금 부과·징수금의 귀속 권한이다. 이 사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광역·기초자치단체의 공동사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징수한 과징금은 국고에, 광역자치단체가 징수하면 광역자치단체에 귀속되지만 기초자치단체가 징수하면 40%는 소속 광역자치단체에 올려주고 60%만 기초자치단체에서 사용한다. 특례시가 되면 과징금 100%를 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례 후보 도시인 경기 고양시의 경우 지난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징수한 총 과징금은 약 3억원이어서 재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규모다.
‘허울뿐인 지방정부’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2월 ‘지방분권종합계획’을 확정하면서 지방 이양 사무에 대한 세부시행 계획을 발표했지만 포괄적인 내용만 담겨 있다. 올해 안에 경기 수원·용인·고양과 경남 창원 등 인구 100만명 이상 4개 도시에 ‘특례시’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연구조사와 현장 간담회, 입법추진을 한다는 정도다.
정작 가장 중요한, 특례시에 대해 정부가 얼마만큼의 권한을 넘겨 줄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아무것도 정해 놓은 것이 없다. 광역과 특례시 간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특례시를 비롯한 대도시에 광역자치단체에 버금가는 권한을 주고 나면 장기적으로는 빈껍데기로 남는 ‘광역자치단체 무용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 행정 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도세(광역)인 취득세와 지방소비세 등 재정에 주요한 세원을 소속 대도시에 넘겨주면 재정 운용에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게 문제다. 도세를 거둬 재정이 열악한 기초자치단체에 교부하는 역할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인사권 역시 다른 자치단체와의 형평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어서 행정부의 복잡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특례시 지정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구 100만명이 안되는 전북 전주시와 충북 청주시 등도 특례시 명칭 부여를 요구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
지방세제와 지방조직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에서는 기초 단체로의 재정, 인사 권한 이양에는 부정적이다. 자치분권위의 189개 사무 가운데 행정안전부 사무가 2개뿐이라는 점에서도 그 입장이 드러난다. 2개 사무는 자치구가 아닌 구와 읍·면·동을 폐치·분합할 때 도 경유절차 생략한다는 것과 과세대상 시가표준액 결정 사무다. 지방소비세, 취득세 등 도세에 대한 특례시와의 배분과 인사권 등은 이번 이양 사무 대상에서 언급조차 없다.
최근 4개 특례 후보 도시들이 고양 킨텍스에 모여 정부에 요구한 사무 이양 요구 내용을 보면 자치분권위원회가 발굴한 사무 이양과는 권한 범위에 차이가 크다. 향후 갈등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들 도시는 재정·세정과 관련한 이양 사무로 지방소비세 인상분 중 일부를 특례시에 직접 교부하고, 부동산 교부세 배부기준에 인구 규모 추가반영, 양도소득세의 지방세 전환, 지방소득세 기초단체 배분세율 상향 등을 요구했다. 사무 특례로는 정부사업 참여자격 확대, 일반구 분구 권한, 징계 심의의결권 이양 등이다. 인사권 등 조직 특례로는 구청장 직급 상향, 복수직급 확대, 인재개발원 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재정이나 인사권한이 없는 189개의 사무 이양 권고안은 지방분권 강화라는 대원칙과도 어긋난다”며 “재정사무는 광역과 분배비율를 장기적으로 늘려가면 우려되는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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