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4조 1천억원.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의 건설사업
2019. 3. 4. 10:48ㆍ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발전, 의제21, 거버넌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4조 1천억원.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의 건설사업
2019.02.25 15:26 (*.162.159.44)
법과 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재정법 제38조의 2항에는 대통령령에 따라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조건이 10가지 명시되어 있다. 관련 시행령의 예타 조사 대상 제외 항목은 2009년 3월 5가지에서 10가지로 추가되었으며, 재해예방 , 복구지원이 추가되었다. 이 조항은 4대강 사업의 예타조사 면제의 근거가 되었다.
예타는 500억 원 이상의 사업, 국고 300억 원 이상의 국책사업을 진행하기 전 진행하는 사업의 타당성 검증제도 이다. 경제성평가를 비롯한 사업의 일관성, 추진의지, 고용파급효과와 같은 정책성, 지역낙후도,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의 지역균형발전이 각각 35~50%, 25~40%, 25~35%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결과를 내놓는다. 1999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국가재정법의 목적과 부합한다. 국가 재정법의 제1조 목적에는 ‘예산ㆍ기금ㆍ결산ㆍ성과관리 및 국가채무 등 재정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성과 지향적이며 투명한 재정운용과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는 것’ 즉, 예산 낭비 방지 및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한국만 이러한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공공사업 평가제도는 경제학적 비용편익 분석에 기반해 UN이나 세계은행 등에서 개발되어 1980년대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당연히 불필요한 재정의 낭비를 막고, 마구잡이식 국책사업으로 경제, 정책, 지역의 부정적 파급력을 최소화 하려는 것이다. 1999년 제도의 도입이래 2017년까지 모두 767건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중 36.7%가 ‘사업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국고 141조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지난 1월 29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총 23개 사업, 24조 1천억 원 규모의 ‘균형발전’계획은 모두 예타가 면제되었다. 기획재정부의 보도자료는 “상대적으로 인구 수가 적고 인프라가 취약한 비수도권은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가 어려워?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이 오히려 늦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 언급하고 있다. 이 문장은 우리가 왜 제도와 법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하는지, 제도와 규제는 왜 존재하는지, 굳이 이러한 제도를 왜 만들고자 했는지를 간과하고 있다. 필요한 사업인데 예타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니 면제해준다는 문장은 법의 취지,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한번에 무력화 시켰다. ‘필요한 사업’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결정하는가. 이번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지자체 의견 수렴’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쳤다. 물론 정부의 이러한 절차는 ‘위법’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국가재정법이 인정하는 예외조항에 부합할 수 있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하여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한다면 예타는 면제될 수 있다. 앞으로 지자체는 이러한 예타면제 과정의 선례를 확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예타 심사에서 탈락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과정이 위법하지 않다면 굳이 예타제도, 즉 국가재정법 제38조 2항은 없어도 무방하다.
내로남불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은 위법했는가. 법을 개정했으므로 ‘위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예타 면제 대상에 ‘재해예방사업’을 추가했다. 4대강 사업의 준설사업, 보 건설 사업은 이에 따라 예타면제 대상이 되었다. 22조 원이 넘는 4대강 사업 중 예타 대상 사업은 전체 예산의 11.2%였다. 현 정부의 주요 ‘적폐청산’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 ‘복구’를 말했던 정부는 ‘내로남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문재인 정부의 예타면제 대상 사업 규모는 24조 가량이다. 4대상 사업 예산은 22조 였다.
예타를 면제해달라고 지자체가 신청한 사업은 (중복사업 포함) 총 33개 81.5조원이었다. 이 중 23개 사업이 면제를 받았다. 대부분의 사업은 SOC 건설사업이다. 69%인 16조 6천억 원이 철도와 도로 건설사업이다. 이 중에는 과거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이 7개 포함되어 있다. 남부 내륙철도, 울산 외곽순환도로, 부산신항~김해고속도로, 서남해안 관광도로, 동해선 단선전철화, 울산 산재 전문 공공병원, 국도 단절구간 연결(8개 구간) 사업 등이다. 이들의 총사업비 규모는 9조 1천억 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38% 가량이다.
균형발전 정책의 최선인가
정부 발표에 의하면 이번 예타면제 결정은 ‘지역경제’와 ‘균형발전’의 시급성으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수도권 사업은 원칙적으로 제외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 교통 물류망 구축 사업 5개 중 제2경춘국도, 도봉산포천선 등의 도로건설 사업이 수도권 확장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수도권은 이제 세종-청주 고속도로, 평택-오송 복복선화가 수도권으로의 집중을 막고 국토의 균형있는 발전에 기여할 것인가. ‘수도권과 영남내력을 2시간대로 연결’하는 것이 과연 수도권의 확장과 집중화를 제어하는 묘안이라 할 수 있는가. 지역주민의 삶과 질을 재고하겠다는 환경, 의료 등의 사업에는 제주 공공하수처리시설현대화(0.4조 원)와 울산 산재전문 공공병원(0.2조 원) 사업 외에는 모두 SOC 사업이다. 전체 사업 중 환경과 의료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사업은 고작 0.6조 원이다.
단적으로 울산의 예를 들어보자. 지역 경제의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류비 감축 등을 목표로 1.0조원의 울산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한다고 한다. 예상되는 사업효과는 기존 50분이던 거리를 20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현재 울산의 경제는 30분 단축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울산 경제의 핵심은 조선산업의 불황이다. 이는 울산의 문제 뿐만 아니라 지역의 경제를 조선산업에 의지하고 있는 거제, 통영도 함께 앓고 있는 문제이다. 지역의 경제와 균형발전을 고민한다면 도로 건설로 30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 새로운 산업영역으로의 전환 등을 고민해야 한다.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효과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설 사업의 일자리 창출효과는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크지 않다. 2015년 건설업근로자 고용 통계에 의하면 건설업 노동자의 53.9%가 임시직이다. 또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라 할 수 없다. 일시적 고용창출로 통계숫자를 올릴 수 있을지언정 우리 사회의 새롭고 미래지향적 일자리 창출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의 모델은 왜 SOC 사업인가. 우리는 더 많은 도로와 공항이 있어야 균형적으로 성장하는가. 아니 과연 이것이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성장모델’인가. 우리는 새만금에 공항이 있어야만 국내외 교류를 활성화 할 수 있고, 민간투자를 촉진할 수 있단 말인가. 지역경제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대답은 과연 대규모 건설 사업 뿐인가.
모든 정책은 정치적이다.
이번 정부의 결정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결정이라는 혐의를 벗기는 어렵다. 물론 모든 정책은 정치적이다. 정책이 정치와 분리되어 ‘중립적’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회에서 국가재정법 개정 논란을 시작하는게 민주주의적이지 않은가. 차라리 보다 명확히 정치적 결정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의 외피를 쓰는 것 보다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입법부의 역할은 이럴 때 발휘되어야 한다.
예타면제와 건설경기부양은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카드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후보들을 위한 정치적 안배에도 나쁘지 않다. 이제 많은 후보들은 자신의 선거 공약집에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며, 지역에 얼마나 많은 예타 면제 사업이 진행될 것인지 광고할 것이다. 혹여 그렇지 않은 지역의 후보들 역시 자신을 뽑아준다면 어떤 사업을 예타면제사업으로 따낼 것인지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다. 여기엔 부동산 투기라는 한국사회의 고질병도 함께할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 이런 쉬운 해결책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이런저런 예외조항을 늘리고, 시행령을 고치고, 국무회의로 우회하여 누더기처럼 제도를 무력화시켜왔다. 새로운 계획은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 어려우니 선거용으로 적절치 않다. 정책소통은 번거롭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사회적 대화는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번거롭다 여겨지는 소통의 비용과 시간보다 더 큰 부작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은 당선과 함께 잊혀질 것이다. 4대강 사업이 그러했듯 우리는 이미 지역의 수많은 건설 개발 사업이 예타면제 후 적자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거 승리에 급급한 여당, 이념논쟁에 빠져있는 거대 야당은 물론 진보정당조차 자신의 지역의 예타면제 사업을 환영하거나 촉구할 뿐이다. 이 선거용 정치적 결정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아니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왜 한국사회의 산업구조나 지역경제의 지속가능한 방안에 대해 논쟁하고 토론하지 않는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비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새만금 공항이고 철도를 고속화하고, 관광도로를 늘리는 것 뿐인가. 새로운 정부의 새로운 국정 비전은 이것 뿐인가. 아니면 고심 끝에 이것으로 귀결된 것인가.
정책학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미국의 정치학자 Lasswell은 ‘정책학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과연 2019년 우리의 정책은, 정치는 우리의 존엄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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