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그 나라, 시리아 그리고 꿈의 여행지 ②] 무슬림 소수파 '알라위파'가 집권하는 시리아

2019. 2. 26. 09:49시민, 그리고 마을/도시, 마을, 농촌, 삶의 질 농업






'활성단층' 시리아를 건드린 '아랍의 봄'

머니투데이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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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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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시리아 그리고 꿈의 여행지 ②] 무슬림 소수파 '알라위파'가 집권하는 시리아… '아랍의 봄' 혁명이 종파간 갈등으로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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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수도 다마스쿠스 남부 외곽에 위치한 야묵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 한 마네킹이 버려져있다. 시리아 정부는 지난 5월 야묵 캠프를 이슬람국가(IS)로부터 전면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19일 정부군의 대 IS 공세가 시작된 이래 한달여 만이었다. 이로써 시리아 정부는 수도권 전역을 통치권역으로 탈환했다. /AFPBBNews=뉴스1
'활성단층' 시리아를 건드린 '아랍의 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말했다. "중동은 다양한 민족, 종교, 종파로 구성돼있다"고. 그리고 그는 "그 가운데서도 시리아에는 그러한 다양성이 특히 높다"며 "시리아는 중동 세계의 활성단층"이라고 설명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이어 "당신이 이것을 갖고 놀고자 한다면,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시리아에서는 모든 게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그를 전복하고자하거나 그를 타깃으로 삼고자 한다면, 아사드 대통령이 아니라 시리아와 그 주변 지역 사회의 구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였다.

2011년 12월, 아사드 대통령이 미국 ABC TV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 같은 발언은 이후 시리아에서 복잡하게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2011년 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아랍의 봄'이라는 바람이 불어왔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알제리·이집트·요르단·바레인·예멘·쿠웨이트·이라크·수단 등에서 연달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SNS(사회연결망서비스) 덕택에 인식이 높아진 시민들이 조직을 만들며 저항 운동을 벌였다.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위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튀니지·이집트·예멘 등에서는 성공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아랍의 봄 시위'는 이후 '아랍의 봄 혁명'으로 불리게됐다.

하지만 유독 한 국가에서는 양상이 복잡하고 지단하게 진행됐다. 시리아다. 2011년 3월 반정부시위로 시작된 시리아의 '아랍의 봄'은 내전으로 발전했고, 현재까지 8년째 진행되며 시리아를 폐허로 만들었다. (☞'꿈의 여행지' 시리아는 어쩌다 지옥이 됐을까 [이재은의 그 나라, 시리아 그리고 꿈의 여행지 ①] 참고)  
일간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2016년12월15일(현지시간) 2010년의 알레포와 2016년의 알레포를 비교했다. 매체는 "화려하고 깨끗한 2010년 알레포의 모습이 현재와 비교돼 더욱 슬퍼보인다"고 보도했다./사진=뉴스1
일간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2016년12월15일(현지시간) 2010년의 알레포와 2016년의 알레포를 비교했다. 매체는 "화려하고 깨끗한 2010년 알레포의 모습이 현재와 비교돼 더욱 슬퍼보인다"고 보도했다./사진=뉴스1
시작은 소소했다. 2011년 3월, 수도 다마스쿠스로부터 약 100㎞ 떨어진 농업도시 '다라아'에서 아이들의 낙서가 발견됐다. 범 아랍권 위성TV와 인터넷 등을 통해 '아랍의 봄' 현장을 접한 아이들의 낙서였다. 아이들은 '아사드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는 반정부 구호를 벽에 적었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 커진 건 정부가 반정부 낙서를 한 15명의 어린이를 감금·고문하는 등 과하게 처단하면서다. 시리아에서는 이전에도 '아사드' 부자를 언급할 경우 사복경찰 등에게 잡혀가는 일이 있었다.  

2011년 3월15일, 여기에 분노한 다라아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면서 첫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을 기점으로 시리아에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리아에서는 40년 간 아사드 가문의 통치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국가 사정이 나아지지 않은 데 대한 일부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던 시점이었다. 1971년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집권해 30년을 통치한 뒤 사망했고, 2000년부터는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어 받아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AFPBBNews=뉴스1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AFPBBNews=뉴스1
이처럼 초기엔 '시리아의 봄'도 민주적 정권을 부르짖는 민중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복잡하게 전개됐다. 바샤르 대통령의 말대로 시리아는 종파적·지리적·종족적 다양성이 내재된 나라로서, 내부 갈등이 오랜 기간 축적돼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봄'은 첫 민주화 시위 이후 7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사드 일가의 정권 퇴진을 불러오지 못했다. 무슬림의 종파나 이를 기반으로 한 아랍 세계의 알력 싸움, 시리아 내부 지역 간의 갈등, 다양한 종족 간의 관계 등… 이런 요소들을 덮어둔 채 '시리아의 봄'과 '시리아 내전'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시리아 정부는 서구 사회를 비롯 국제 언론이 이를 몰라서든 의도적으로든 민중 시위를 단순히 민주화 운동으로만 보도하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시리아 정부의 불만에도 일리는 있다. 국제 사회는 그동안 범 아랍권 TV로 국제적 명성이 있는 방송국인 알 자지라(카타르 국왕이 세운 아랍권 최대 위성방송국)·알 아라비야(사우디아라비아 국영 방송) 등의 보도를 받거나 참고해왔지만, 이들이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고만 보기는 어려워서다. 카타르나 사우디는 대부분의 국민과 기득권층, 지배층이 모두 무슬림 종파 중 '수니파'인 국가로, '범 시아파' 정권인 시리아 아사드 정부를 세모눈으로 바라봐왔다. 
 /AFPBBNews=뉴스1
/AFPBBNews=뉴스1
시리아는 아랍족 90%, 쿠르드족 10%, 극소수의 아르메니아족, 투르크족 등의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다. 종교적으로는 무슬림이 87%인데, 수니파 무슬림이 대다수로 74%, 시아파 무슬림이 13%, 드루즈파 무슬림이 3%, 기독교 10%, 그리고 극소수의 유대교인 등으로 구성돼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슬람교를 양분하는 두 종파다. 수니파(순니파·'무함마드의 모범(순나)을 따르는 사람들'을 뜻함)는 전 세계 무슬림의 약 90%가 소속된 이슬람 종파이고, 시아파(쉬아파·'예언자 무함마드의 정당한 후계자(칼리프)는 그의 사촌이며 사위인 알리 뿐이라고 주창하는 사람들'을 뜻함) 전 세계 무슬림의 약 10%를 차지한다. 두 종파는 서로를 이단으로 볼 정도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어 사실상 다른 종교로 볼 수 있을 정도다. (알카에다, 다에시 등 수니파 테러 단체는 시아파를 멸절하고자 한다.)  

수니파가 전 세계 무슬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아랍 국가 중 대부분이 수니파 국가다. 수니파 국가로는 사우디아라비아·터키·이집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알제리 등이 꼽힌다. 반면 이란·바레인·이라크·레바논 등은 시아파 국가다. 특히 이란은 90%에 이르는 국민이 시아파로 전세계 시아파의 구심점이 되는 국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리아는 국민의 대다수가 수니파이지만, 범시아파 국가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는 시리아를 40년간 통치하고 있는 아사드 부자가 시아파의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무슬림이어서다. 시리아의 군부와 정치권력도 모두 알라위파가 장악하고 있다. 알라위파(창시자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의 이름을 따 '누사이리' '누사이르파'로 불리기도 함)는 이슬람 시아파의 알리 숭배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신격화한 종파로, 이들의 영적이고 비의적인 해석 때문에 '인간 알리를 신으로 과장해서 섬기는 자들'로 여겨지며 오랜 기간 주류 수니파 무슬림들은 물론이고 시아파 무슬림으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주류 수니파와 달리 알라위파는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기에 더욱 멸시를 당했다. 오랜 기간 모진 박해와 차별을 받은 알라위파는 라타키아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하며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왔다. 
시리아 알레포 올드시티에 위치한 한 시장의 전후 모습이다. 2010년 주민들과 상인들로 활기찼던 시장이 2016년 폐허로 변했다./사진=뉴스1
시리아 알레포 올드시티에 위치한 한 시장의 전후 모습이다. 2010년 주민들과 상인들로 활기찼던 시장이 2016년 폐허로 변했다./사진=뉴스1
이들의 처지가 바뀐 건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다. 아랍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를 두려워한 프랑스는 소수 종파를 보호하고 나섰다.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알라위파에게 군인 자리를 주자, 박해받던 알라위파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많은 수의 알라위 남성들이 고향을 떠나 프랑스 점령군에 입대했다. 그 사이 알라위 여성들은 수니파 지주의 하녀나 첩으로 살았다. 그리고 1971년 2월, 알라위파의 처지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알라위파인 하피즈 알 아사드(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획득한 것이다. 이는 군부의 대다수가 알라위파로 구성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라위파가 정권을 잡은 건 알라위파 만의 행운이 아니었다. 소수파로서 주류 수니파로부터 함께 박해를 받던 드루즈파, 기독교인, 유대교인 등도 더 이상 차별받지 않게 됐다. (이 같은 이유로 이들 대부분은 현재까지 시리아 정부 측을 응원한다. 세속주의 알라위파가 권력을 잃고 만일 보다 근본주의적인 수니파가 권력을 잡게되면 이전처럼 소수파로서 차별받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어렵게 얻은 권력인 만큼, 하피즈는 알라위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권위주의 정권의 바탕 위에 여러 전략을 구사했다. 알라위파가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요 정권 안보 부서에는 알라위나 아사드 가문 친인척 만을 기용했다. 대신 정통성을 확보하고 다수인 수니파의 적대감을 줄이기 위해 내각·인민회의 의원·바아스당('부흥'이라는 뜻으로 사회주의 성향의 시리아 집권당) 대표들의 약 60%는 수니파에서 등용했다. 수니파를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한 고위직에 임명하기도 했다. 더불어 몰락한 수니파에게는 재계 권력을 줘 그들이 상업으로 부를 증대시킬 수 있게 해 정치에 관여하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더 큰 수니파 유력자들의 불만은 잠재울 수 없었다. 이들은 바아스당에 소수파인 알라위파와 같은 수니파지만 가난한 가정 출신자들이 대두하는 데 대해 강한 위화감을 갖게 된다. 여기에 알라위파는 세속주의 성향을 보이는 데, 이것이 보다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수니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들은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슬림형제단'(가장 오래된 세계 최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문제가 된 지역은 시리아 북부 최대 상업도시 알레포였다. 수도 다마스쿠스에 이어 시리아 제 2의 도시로 꼽히는 알레포지만, 1941년에야 독립 국가로 묶였기 때문에 사실상 알레포의 기득층과 다마스쿠스의 기득층은 완전히 다른 세력이었다. 그런데 아사드 정권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어나가고, 심지어 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지주들의 땅을 몰수하자 대대로 알레포에서 부유했던 지주 계층이 한번에 몰락했다. 이렇게 알레포의 유력자들도 몰래 '무슬림형제단'에 지원해왔다. 
/AFPBBNews=뉴스1
/AFPBBNews=뉴스1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아사드 정권은 민주주의 운동으로 가장된 테러 세력이 있으며, 그 배후에는 '무슬림형제단'이 있다고 생각했다. 2011년 3월 이래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시리아 정부는 무장투쟁 활동을 한 이들 중 일부를 체포해 이들의 자백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자백은 이 같은 형태였다.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체제하고 있었을 때, 이슬람교와 관계가 없는 세속정권 시리아 정부를 타도하는 운동을 시작하려는 반정부 활동에 대한 참가를 제안받고, 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시리아 정부 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시리아 정부가 유독 강력하게 시위에 대응해왔는지, 왜 시리아의 '아랍의 봄'이 다른 나라보다 복잡하게 전개됐는지 일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범시아파'(그 중에서도 '알라위파')인 탓에 시리아 내전은 더욱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치달았다. 주변 아랍 국가들이 시아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시아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수니파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즉 시아파 맹주 이란 주도로 레바논·이라크 등은 시리아 정부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사우디아라비아·터키·카타르 등은 반군을 지원했다. (심지어 이란은 레바논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까지 지원하며 시아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양상이 펼쳐지며 시리아 내전은 일종의 대리전으로 변화했다.

어떤 이들은 시리아 내전을 일종의 종파 전쟁(시아파와 드루즈파 vs 수니파)으로 보기도 하고, 이데올로기 전쟁(세속주의 vs 이슬람 원리주의)으로 보기도 한다. 시리아 내부의 복잡한 상황과 주변 중동 국가들의 개입만 고려해도 이처럼 상황이 복잡한데, 여기에 IS가 등장하고 러시아·미국·프랑스·중국 등 강대국이 개입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다음 편에서는 시리아 내전이 진행된 과정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본다.

참고문헌 
시리아, 한울, 구니에다 마사키 
시리아 : 지구촌 문화충격 탈출기, 휘슬러, 콜먼 사우스 
시리아 내전 분석과 전망, 국방대학교 PKO센터, 임윤갑 
시리아 바샤르 정권의 공고화 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외대, 김한지
시리아 소수집단 알라위파의 집권과 국민통합 정책에 대한 연구, 한국외대, 김한지
시리아 알라위 종파의 정치세력화 연구, 중동문제연구, 이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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