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오키나와 ②] 일본 내 빈곤율 1위 오키나와, 미국 영향 받아 패스트푸드·통조림 위주로 식단 변화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일본 오키나와의 특징 이야기를 하자면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주일미군을 떼려야 뗄 수 없다. 일본 국토 전체 면적의 0.6%를 차지하는 섬 오키나와에만 일본 주둔 미군기지의 75%가 있으니 말이다. 주민 대다수가 생활하며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는 오키나와 본섬 전체의 20%가 미군기지로 쓰이고 있고 2만 여명에 달하는 미군이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이어진 미군 점령과 지금도 계속되는 미군기지의 주둔은 오키나와인의 식생활을 비롯 오키나와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갖고왔다. ◇버거, 타코, 스테이크… 미군이 남긴 흔적 오키나와 최대의 번화가는 나하시에 위치한 국제거리다. 약 1㎞에 걸쳐 수백 개의 가게와 시장 등 볼거리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스테이크 식당이다. 세 걸음도 못가 스테이크 식당 한 곳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위치한다. 스테이크 식당은 개점 초기엔 미국인들의 스테이크 사랑을 염두에 둔 메뉴였으나 오키나와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뻗어나갔다. 수많은 스테이크 하우스들은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특히 철판구이집들의 인기가 좋다.
고유 음식으로 여겨지는 '오키나와 소바' 역시 이처럼 대중화되기까지는 미군의 영향을 받았다. 소바라고 불리긴 하지만, 일본 본토의 소바와 달리 메밀가루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밀가루를 사용해 만들어져 맛과 식감은 라멘이나 고기 우동과 유사한 음식이다. 오키나와 소바는 메이지 말기 시작돼 다이쇼 시대 퍼진 오키나와 고유 음식이지만, 오키나와 전투 등을 거치며 명맥이 끊겼다. 이후 오키나와 소바가 다시 만들어진 건 미군 점령 때 미군이 오키나와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밀가루를 보급, 밀가루가 풍부해지면서다. 오키나와 소바는 오키나와 현 내에서만 이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이 2000개 이상으로, 1일 15만~20만 그릇이 소비될 정도로 오키나와 대표 음식이다.
◇최고 빈곤 오키나와… 미국식 식생활과 맞물려 '단명' 과거 오키나와는 장수 현으로 유명했다. 1985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평균수명 통계에서 오키나와는 남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좋은 자연 환경에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걸 증명했던 '장수 현' 오키나와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겨 199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기념해, 나하시에 위치한 종합운동공원 한쪽에 '세계 장수지역 선언비'를 세웠다. 오키나와 섬 북쪽에 위치한 오기미 마을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세계 최고의 장수촌'으로 인정을 받아 1993년 '일본 제일 장수선언촌' 기념비를 세웠다. 이 선언비에는 "80살은 사라와라비(오키나와어로 어린아이라는 뜻)이며, 90살에 저승사자가 데리려오면 100살까지 기다리라고 돌려보내라"는 오키나와 엣 속담이 써있다. 오키나와는 이처럼 장수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언제나 일본 통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는, 큰 문제를 갖고 있었다. △어린이 빈곤율 30% (일본 전국 1위, 전국 평균의 약 2배) △급식비 미납 비율 전국 1위 △1인당 현민 소득 전국 최하위 △비정규직 비율 1위 △실업률 1위 △젊은이 결혼 비율 1 위 △속도 위반 결혼 비율 1위 △이혼율 1위 △이직률 1위 △미혼모 가구 비율 전국 1위(전국 평균의 약 2배) △한부모 가정의 아동 빈곤율 60%(전국 1위) △고등학교·대학 진학률 전국 최하위 등… 일본은 최저임금이 지역마다 다른데, 오키나와는 만년 꼴찌로 한 시간에 760엔이다. 도쿄 보다는 최저임금이 225엔 낮다.
때 마침 미군이 주둔하며 물밀듯 들어온 서구식 식습관, 특히 패스트푸드와 통조림 햄(스팸·런천미트 등, 오키나와인들은 이를 '포크'라고 부르며 매우 즐겨 먹는다. 한 해 오키나와인이 통조림 햄을 12캔씩 소비할 정도다. 오키나와에선 식당에서 야채 볶음을 시키거나, 오키나와 소바를 주문하거나, 노점이나 편의점에서 주먹밥을 살 때 많은 경우 이 '포크'가 들어있다.)등이 오키나와인들의 식탁을 점령한 것이다. 야채는 비싸니 당연한 결과였다. 오키나와인의 하루 야채 섭취량은 일본 도도부현 47개 중 남자 45위, 여자 44위로(2013년 기준) 일본 내 최하위권이다. 당시 남녀 1위는 나가노현이었는데, 오키나와 남성의 1일 야채 섭취량은 266g으로 나가노현 남자 1일 야채 섭취량 379g의 약 70%에 그쳤다. 야채 섭취량은 적지만 패스트푸드점은 많다. KFC의 인구당 점포 수는 오키나와가 일본 전체에서 가장 많고 2012년 세대당 햄버거 외식비용도 전국 1위로 일본 평균의 1.5배에 달했다. 이처럼 채소는 먹지 않고 통조림 햄과 패스트푸드를 매일 먹는 데다가 상대적 빈곤까지 겹치니 비만율이 높아지면서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수명이 짧아지게 됐다. 결국 오키나와는 불과 몇 십년 만에 '장수 현'에서 '단명 현'으로 바뀌었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났다. 1985년 남녀 평균수명 모두 전국 47개 도도부현 중 1위였던 오키나와는, 2000년 통계에서 남성 평균수명이 26위로 급전직하했다. 2010년 같은 통계에서 남성 평균수명은 30위, 늘 1위이던 여성 평균수명도 전국 3위로 내려앉았다. 더 심한 건 장수의 질 부문이다. 장수의 질이란 평균수명 가운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는 기간인데, 여기서 오키나와의 남성은 47개 도도부현 중 꼴찌인 47위, 여성은 46위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 65세 미만의 사망률은 남녀 모두에서 일본 전국 1위다.
상황이 이러하니 오키나와인들이 피해의식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미군 주둔에 따라 오키나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각종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 부담과 영향은 온전히 오키나와만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상 이익은 일본 전체가 누리면서 말이다. 미군 주둔 때문에 오키나와 땅이 꽁꽁 묶여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산업 육성을 위해 특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강하다. (☞"나는 오키나와인"… 눈물 서린 日휴양지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오키나와 ①] 참고) 지난해 8월 췌장암으로 숨진 오나가 다케시 전 지사는 오키나와 내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 기지를 같은 현인 나고시 헤노코로 이전하는 데 대해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아베 신조 정권과 각을 세워 오키나와 주둔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상징이 된 인물이었다. 그가 말했던 게 이 같은 오키나와인들의 생각을 반영했다. 오나가 전 지사는 "미군기지는 오키나와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이다. 정부가 강행하려는 헤노코 새 기지 건설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해왔다. 나아가 미군 기지 이전 문제는 오키나와인들에게 아픈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중요한 문제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가족 중 최소 한 명을 잃은 오키나와인들은, 미군 등 냉전과 전쟁의 상징을 더는 오키나와 땅에서 보고 싶지 않아한다. 미군 기지 이전은 또 오키나와인들에겐 생활과 밀접한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오키나와는 특별한 산업이 없고 리조트 등이 밀집해 관광 산업이 주를 이루는데, 이라크 전쟁이나 북한 핵실험 등으로 미군이 긴장할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인들의 여론이 이러하니 일본 정부의 시름도 깊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상황이나 중국을 안보적 군사적 측면에서 견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자는 주장은 21세기에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오키나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 그리고 차별 ①]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