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권·제정권·인사조직권 ‘3無’ 주민자치회, 자문기관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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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규 동양대 교수(사회자)= 오늘 토론은 주민자치, 마을자치, 풀뿌리 자치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다. 먼저 이기우 의장이 발제를 하겠다.
△이기우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의장 = “뿌리가 흔들리면 그 위에 아무리 좋은 것을 올려놔도 흔들리듯이, 주민자치는 지방분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다. 우리의 읍(邑)·면(面) 자치, 풀뿌리 자치가 어떻게 수난을 겪어 왔는가. 그 역사를 한번 훑어볼 필요가 있고, 과연 주민자치회를 주민자치라고 불러도 되는지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기초자치는 구한말부터 읍·면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고, 동(洞)을 중심으로 자치를 했다는 흔적도 남아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읍·면 자치를 중단하고 군(郡) 자치를 기초자치로 하는 형태로 바꿨다. 그때 내무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건 풀뿌리 자치 죽이는 것으로,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1988~89년 지방자치를 부활하는 논의를 하면서 기초자치를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는데, 그때 당시 3가지 안이 있었다. 갑론을박하다가 결국엔 군사정부 하에서 형성됐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추후 순차적으로 보완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완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기우
읍면동 고유 업무, 법에 규정돼야
읍면자치 부활 못해 인구도 줄어
◆박상일
50여년간 중앙권력이 마을 해체
대도시도 지역소멸 심각성 인식
◆정원식
그동안 주민자치 잘 안됐던 이유
기초단체장·공무원 의지 부족 탓
◆전상직
現제도, 분권 안해주고 자치 강요
주민이 중심이 되고 주인이 돼야
◆김택천
전북선 주민이 정관만들기 체험
자치능력 쌓고 마을 콘셉트 잡아
▲황종규=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주민자치회와 앞으로 주민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은.
△이기우 의장= “우선 주민자치회는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주민자치회에는 주민이 없고 자치가 없다. 자치기관이 아니라 자문기관에 불과한 것 같다. 개념의 착란을 일으키고 자치에 관한 논리의 전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읍·면 자치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읍·면의 고유한 업무와 재원에 대해 지방자치법에 범위를 정하고, 주민총회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읍·면·동의 고유한 사무가 지방자치법에 규정돼야 한다. 이제는 제대로 된 풀뿌리 자치를 논의할 때다. 토크빌은 이렇게 말했다. ‘좁은 공간에서는 자치없이도 자유국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유정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농어촌 인구가 자꾸 감소하는 것도 기초단위에서 지방발전의 구심점이 없는 탓이 크다. 그 구심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읍·면의 부활은 긴급한 과제다.”
▲황종규= 주민자치에 대한 패널들의 생각을 들어보겠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회장= “과거 정부에서 주민자치라는 이름을 정말 잘못 사용하면서, 동장 휘하의 기관을 만들어 놓고는 주민자치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모순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주민도 빠지고 자치도 빠진 주민자치회를 등장시켰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주민자치회가 자체 규약 제정권도 없고, 인사조직권도 없다. 재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자치는 관료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지방자치를 배제한 채 주민이 지방자치의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민자치의 두가지 핵심은 ‘주민이 지방자치의 중심이 되는 것’ ‘주민이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주민주권이 있으므로 주민주권에 기반해 주민자치회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또 주민자치에 있어서 주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정말 중요하다. 자발성과 자율성을 위해선 분권이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주민자치제도는 분권은 해주지 않고 자치를 하라고 시키는 답답한 구조다.”
△박상일 지방분권전남연대 수석상임대표= “고등학교 때 꿈이 마을지도자였고, 그때부터 협동이나 공동체 문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50년 동안은 마을 해체의 역사, 자치 해체의 역사였다. 우리나라 자치의 역사는 수백, 수천년 동안 마을을 통해 축적돼 왔다. 마을에 정치와 복지, 문화, 경제 행위 등이 다 있었다. 마을이 우리의 자치 교과서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50여년 역사는 그런 것들을 다 죽여가는 과정이었다. 중앙권력에 의해 마을은 지배수단으로 변모했고, 지배구조에 재편돼 가는 역사였다. 이제 자치를 이야기할 땐 지역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자치의 뿌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역소멸의 문제는 지역에서 심각하게 느끼고 있고, 대도시도 이제 그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치의 필요성이 더 강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결정권이 결여된 자치나 주민권이라는 것은 매우 공허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자치 복원하고 살려내기 위해서는 내생적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김택천 지방분권개헌전북회의 상임의장= “결국 지역, 현장, 사람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내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다. 전북도에서 처음으로 진안과 완주를 중심으로 마을만들기 조례가 만들어졌다. 마을 정관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주민들이 해 보고, 시민활동가들이 옆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주민들의 자치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처음에는 공무원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정말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어르신들이 직접 낸 아이디어로 마을 콘셉트를 잡는 등 성과가 있었다. 그 마을의 먹을거리, 사회복지, 마을계획 등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지역소멸의 시기에는 ‘나부터 먼저’ ‘주민부터 먼저’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지표를 설정해 중앙의 제도와 지방의 사례를 어떻게 접목시켜 나갈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정원식 경남대 교수= “지방자치의 여러 형태 중 우리가 정치권이나 법률적 근거, 행정의 영향을 좀 덜 받고 할 수 있는 게 주민자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주민자치가 잘 안 됐던 것은 일선 지역, 기초단체장, 공무원들의 의지 부족 탓이 크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앙만 보고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지역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주민자치를 위해 얻은 큰 소득은 주민투표법, 주민소환제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실현 가능성과 접근이 어려워서 그렇지 주민 직접 참정권도 제도적으로 많이 보장은 돼 있다. 주민자치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나온 주민자치회 한계점도 있지만, 그나마 좀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주민자치회가 너무 형편없다보니 이것을 개조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것 같다. 주민자치회는 정말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하고, 그런 운동이 밑에서부터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기우 의장= “마을만들기와 마을자치를 통해 그동안 축적된 희망은 부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것은 공식화되지 않은, 공적 자치가 아니라 사적 자치의 영역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법률, 제도로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적 자치다. 저는 마을자치나 읍·면 자치가 공적자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게 제도화의 의미다. 물론 지금까지 마을만들기 등의 경험들은 사적 자치를 공적 자치로 전환하는데 큰 동력이 될 것이다.”
▲황종규= 지난 4~5년을 되돌아보면 지역 정부에 관심이 많았지, 풀뿌리 정부에는 관심이 줄었던 게 사실이다. 발제자가 읍·면 자치를 제도화시키는 문제를 의제로 올렸다. 거기에 대한 생각은.
△전상직 회장= “적극 찬성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가까이 있을수록 선량해지고, 그런 면에서 시·군·구·면 자치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본다.”
정리=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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