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살아계실 때 ‘행복’을 주제로 한 말씀이 있다. 법정 스님은 법문을 하면서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프랑스의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어느 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의 비결을 찾아 여행한다는 것이 내용이다.
법정 스님은 이 책에 나오는 행복비결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채소를 키우고 흙을 가까이 하면서 사는 것. 다른 사람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 아주 소박한 얘기이지만, 행복의 본질을 꿰뚫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법정 스님은 마지막으로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임을 강조한다. 행복은 자식들 키워 결혼시킨 후, 시골에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한 다음에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하며,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 베란다나 건물 옥상에서라도 채소를 가꾸는 것은 누구든지 가능한 일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질적 풍요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진 가치관, 살아가는 방식이 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물론 행복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생활수준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물질적인 수준은 이미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은 된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를 비롯한 여러 조사결과는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 정도면 행복해지기에 충분한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차대전 이후에 미국의 소득은 3배 증가했지만,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결국 임금·노동정책이나 조세·복지, 농업·농촌살리기 등을 통해 좀 더 공평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국민 각자는 행복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행복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의 70%가 중산층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얘기 속에는 이미 ‘불행’의 씨앗이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FTA를 확대하고, 핵발전도 늘리고, 농업보다는 수출대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양극화는 심해지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난 세월 동안 충분히 경험했던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불량식품’을 근절한다고 얘기하지만,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진짜 불량식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농산물 개방을 확대하면 할수록 유전자조작식품과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 미국산 쇠고기 같은 ‘진짜 불량식품’의 수입은 늘어날 것이다. 이 식품들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그것은 행복과는 멀어지는 길이다. ‘실용’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4대강 사업을 벌여서 22조원이 넘는 세금을 낭비했던 것이 생생하다. 마찬가지로 ‘국민행복’을 표방한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을 더 불행에 빠뜨리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행복’을 선거 슬로건으로 쓰기는 쉽지만, 실제로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성찰이다.
OECD 국가 중에 청소년 행복도가 가장 낮은 국가.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국가 행복도 56위에 그친 국가.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것은 그동안 경제성장을 국가의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달려왔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는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부탁한다. 부디 법정 스님의 법문을 읽어보고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