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페미니스트 역사가이자 활동가인 리사 두건의 『평등의 몰락』

2017. 7. 14. 22:58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역사가이자 활동가인 리사 두건은 『평등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운동과 전통적인 계급운동의 분리가 어떻게 사회운동의 실패로 이어졌는지를 미국의 사례를 들어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경제와 문화의 분리가 신자유주의의 본질적인 책략임을 밝힌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력이 어떻게 계급운동과 정체성운동을 분리해 공공 영역의 축소와 가부장제의 재생산 같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드러낸다.

 

저자소개

저자 : 리사 두건
저자 리사 두건(Lisa Duggan)은 뉴욕대학교 사회 및 문화 분석학 교수, 퀴어 페미니스트 역사가이자 활동가이다.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페미니즘운동과 퀴어운동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자유주의적 정체성정치를 넘어선 반란의 정치를 모색해 왔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문화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날카롭게 분석하고, 분열되어 무력해진 정체성운동과 계급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의 길을 제시한다. 지은 책으로 『레즈비언 슬래시Sapphic Slashers: Sex, Violence, and American Modernity』(2001)가, 함께 지은 책으로 『우리 모니카, 우리 자신Our Monica, Ourselves: The Clinton Affair and the National Interest』(2001), 『성 전쟁Sex Wars: Sexual Dissent and Political Culture』(1995/10주년 개정판 2006)이 있다.

역자 : 한우리
역자 한우리는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언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 커뮤니케이션학 박사를 수료하고, 현재 한국 퀴어운동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업 중이다.

역자 : 홍보람
역자 홍보람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 여성동인문화(후죠시腐女子 문화)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목차

추천사 … 6
감사의 글 … 10

들어가며 … 15
1장 신자유주의의 계보 … 39
2장 문화전쟁을 통한 공적 영역의 축소 … 73
3장 평등한 퀴어라는 신자유주의의 신화 … 109
4장 사랑과 돈의 평등한 순환 … 151

부록
미주 … 190
주요 참고문헌 … 208
옮긴이 후기 … 212
찾아보기 … 232

 

 

출판 서평에서-------------------------------------------------------

왜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 앞에서 그토록 무력했는가?
고립을 넘어 평등의 정치와 정체성정치를 잇는
연대의 길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문화정치를 속속들이 파헤친 역작의 등장!

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성소수자 문제다. 단적으로 지난 대선 토론에서 한 대선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발언하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 색출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 위반 혐의로 성소수자인 현직 군인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논쟁은 더욱 가열되었다.
이렇게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체성정치 진영과 기존의 사회운동 진영은 더욱 강하게 연대할 필요에 봉착했다. 예컨대 올해 초까지 전개되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운동은 정체성정치 세력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이 함께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체성운동과 계급운동은 궁극적으로 서로 분리된 것, 별도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저마다 두 운동 사이의 원칙적 지지를 넘어선 유기적 연대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을 테지만, 아직 눈에 두드러지는 상황은 아니다.
퀴어 페미니스트 역사가이자 활동가인 리사 두건은 『평등의 몰락: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운동과 전통적인 계급운동의 분리가 어떻게 사회운동의 실패로 이어졌는지를 미국의 사례를 들어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경제와 문화의 분리가 신자유주의의 본질적인 책략임을 밝힌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력이 어떻게 계급운동과 정체성운동을 분리해 공공 영역의 축소와 가부장제의 재생산 같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드러낸다.
나아가 두건은 기존의 사회운동 진영이 이러한 분리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재생산해왔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와 문화, 계급과 정체성이라는 상상적 분리를 넘나들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동안, 진보주의자와 좌파는 영역의 구별에 매몰되어 점점 진영 싸움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은 경제와 문화의 분리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정치를 탐구할 때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더욱 진보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촉발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전략,
“분할하여 통치하라!”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계급운동과 정체성운동을 각각 고립시킬 수 있었을까? 두건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위한 정치이론이었으며, 오늘날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대립 역시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인 틀에 불과함을 역사적 분석을 통해 드러낸다. 이때 ‘공적인 것 대 사적인 것’이라는 대립은 자유주의의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대립의 선은 다양한 형태로 그어졌지만, 가장 공적인 것의 장소에 국가가, 가장 사적인 것의 장소에 가족이 배치된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는 그와 같은 대립의 선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새로운 판본이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력은 사사화(민영화)와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가능한 모든 것을 ‘사적인 것’의 영역에 포함시키고자 했다. 물론 그 전략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고 공공 지원을 축소시키려 하면서도 부실기업에 대한 국가 지원은 좋은 것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 내의 돌봄 문제는 가장 사적인 것으로 만들어 여성에게 떠넘기기 일쑤였으며, 가부장제를 넘어서려는 실험을 반대하고 전통적인 결혼을 완고하게 유지하려 했다.
문제는 사회운동 세력마저 ‘공적인 것 대 사적인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구분의 함정에 빠져서 저항과 연대의 가능성을 축소시켰다는 데 있다. 계급운동 진영은 정체성운동에 대해 명목상의 지지를 표하면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운동에 비해 여성운동과 퀴어운동을 사소하고 덜 시급한 주제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시는 정체성운동이 급진적 가능성을 상실하고 점차 신자유주의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공공 영역을 축소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여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한편 두건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여성에 대한 공격을 통해 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전략을 써왔다고 지적했다. 복지 혜택을 위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게으른 ‘복지 여왕’이란 이미지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전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공격은 아동과 환자, 노인의 돌봄에 대한 책임을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전략은 ‘문화전쟁’ 프레임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그와 같은 프레임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일삼았다. 예를 들어 1997년 11월 뉴욕주립대학에서 열린 여성학 콘퍼런스 ‘반란 행동: 여성의 성적 자유라는 도전’은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신자유주의 우파 세력은 콘퍼런스 내용 중 일부를 빌미 삼아, 미디어를 통해 대학이 변태성과 성적 방탕함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성을 둘러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대결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두건은 이러한 일면적인 분석의 내막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사실 그와 같은 공격이 대학의 공공적 가치를 고수하는 총장에 대한 퇴진운동과 공공교육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라는 요구로 이어졌던 것이다. 나아가 이는 공립학교를 자본이 원하는 노동자를 대량생산하는 일종의 공장으로 후퇴시키려는 노력과 연계되었다. 보수주의자의 문화전쟁은 단지 소수자를 침묵시키고 괴롭히는 것뿐만 아니라, 친기업적 환경을 조성하고 공공기구를 축소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전략은 단순히 경제적 목표를 위해 여성 문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두건은 경제와 문화라는 두 가지 문제가 실질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둘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는 동시에, 교묘하게 둘을 연결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반면 진보주의 세력은 ‘분할하여 통치하는’ 전략의 본질을 읽지 못했다. 그들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협소하게 바라봄으로써 근본적인 저항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퀴어마저 신자유주의에 포섭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신자유주의 전략은 성소수자마저 포섭한다.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고 군대 역시 동성애자를 점점 더 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그에 대한 인식이 진보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그에 따라 다른 나라들의 퀴어운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두건은 그 이면에서 퀴어운동이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고 있음을 읽어낸다. 즉 다문화주의로의 이동 속에서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로의 포섭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평등정치’의 등장이다. 두건은 도발적이게도 미국의 퀴어운동이 더 이상 광범위한 진보운동의 대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신자유주의적인 게이운동의 경향을 분석한다. 보수적인 작가 집단인 독립게이포럼은 이런 경향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그들은 기존의 급진적인 퀴어운동을 비판하고, 투쟁의 이슈를 동성결혼과 군복무에서의 평등한 권리에 한정하고자 했다. 이런 시도는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을 기각하고,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제적 가족을 넘어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미국의 새로운 제국주의 전략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고, 퀴어 개인을 국가에 성실하게 봉사하는 주체로 한정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부유한 백인 남성 게이를 퀴어운동의 중심으로 상정하는 문제 또한 발생했다.
즉 기존의 계급운동이 퀴어운동과 연대하기는커녕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 다루는 동안, 신자유주의 세력은 제도적 통합을 미끼로 퀴어운동을 자본주의의 하위 분과에 묶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두건은 사회운동이 퀴어운동을 계속 외면한다면 급진성과 활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진정한 변화를 이뤄는 데 실패할 것이라 경고한다.
단적으로 두건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분할 통치 전략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동안, 진보적인 정치인은 물론 저명한 학자들마저 정체성운동을 사소한 문제 취급하면서 운동 전반을 정체시켰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특히 두건은 낸시 프레이저와 주디스 버틀러 사이의 논쟁을 주요하게 분석하고 있다. 인정의 정치와 재분배의 정치를 구분하는 프레이저 식의 접근법은 계급과 정체성 사이의 분리를 재생산하고 만다. 이에 반해 버틀러는 프레이저의 접근이 퀴어정치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분배와 인정의 측면을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건은 버틀러의 입장을 확대해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계급운동과 정체성운동의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현재 한국에서는 급진적 여성운동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지만 정체성정치는 여전히 그 저변이 넓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라는 주장마저 과도하게 급진적인 요구 취급을 받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침해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정체성정치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두건의 논의는 이토록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 『평등의 몰락』은 이런 의문에 충실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두건이 분석하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사회운동 진영은 정체성운동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넘어서는 연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편 진보정당은 성소수자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할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거기다 현 집권 정당을 비롯한 이른바 민주세력의 정치인들은 세력관계와 득표를 저울질하며 성소수자 의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등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 비추었을 때 진보세력이 진정한 변화를 꿈꾼다면 정체성운동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두건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두건의 논의는 우리가 미국에서 나타난 변화를 어떻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성평등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와 같은 제도화는 성정치에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화에 얽매이지 말고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논쟁을 통해 민주주의 그 자체를 갱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열된 이해에 맞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너무나 쉽게 경제적인 문제로 인식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또 문화적인 변화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종종 놓치고 말았다. 두건은 우리가 이러한 분열을 넘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평등의 몰락』은 한국의 사회운동과 정체성운동이 새롭게 연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신자유주의 질서를 넘어서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책속으로

진보 좌파 정치의 아킬레스건은 경제ㆍ정치ㆍ문화의 관련성과 상호관계를 대부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성공의 기저를 이루는 정치 동맹의 유동적 차원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들의 지지층을 형성하고 개조하는 동안, 그리고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방법들로 그들의 경제적 목표를 정치ㆍ문화와 연결하는 쟁점ㆍ언어를 생산해온 동안, 진보주의자와 좌파는 그들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이 카멜레온[신자유주의자]에 대한 명료한 인식에 실패하면서 점점 더 진영 싸움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였다.
- 30쪽, 들어가며

‘신’자유주의는 특정한 일련의 이해와 정치적 개입의 집합이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존재 방식이자 전 세계에 걸쳐 경제적 팽창과 민주적 정부라는 보편적으로 선호할 만한 형태를 촉진시키는 일종의 비非정치다. 누가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민주주의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1980년대 말 소련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은 미국 모델에 대한 모든 대안들인 파시즘,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물론, 사회민주주의자, 노동운동, 케인스주의자가 옹호한 상대적으로 온건한 복지국가 모델마저 실패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급속하게 확장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 비율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표하지 않았다.
- 55쪽, 1장 신자유주의의 계보

[여성학] 콘퍼런스 ‘반란 행동’에 대한 잘 조율된 공격은 문화전쟁 기간 동안에 발전된 지침으로부터 직접 조직된 것이다. 성적 변태의 축제를 위해 세금을 빨아먹는 지적으로 파산한 여성학 프로그램이라는 이미지는 주립대학 체계의 평판을 떨어뜨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조직하기 위한 목적에 안성맞춤이었다. (…) 이 전략은 [공공]기금을 급속도로 감소시키고 뉴욕의 공공 고등교육에 대한 주정부 중앙에서의 통제를 정당화했다. 아래를 향한 재분배 문화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고 구체화했던 제도들은 1990년대 후반 동안 그것을 기업의 자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축소되고 재구조화되었다.
- 104~105쪽, 2장 문화전쟁을 통한 공적 영역의 축소

독립게이포럼의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성정치는 아마도 새로운 호모규범성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배적인 이성애규범의 전제 및 제도와 경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직적 결집으로부터 해제된 게이 구성원의 가능성과 가정생활 및 소비에 입각한 사사화되고 탈정치화된 게이 문화를 약속함으로써 이성애규범성을 고수하고 지지하는 정치다. (…) 이들의 연설은 게이 평등을 ‘시민권 의제’와 ‘해방주의’가 아닌, 가정의 사생활 권리 보장 제도, ‘자유’시장과 애국주의에 대한 접근권으로 재정의한다.
- 123~124쪽, 3장 평등한 퀴어라는 신자유주의의 신화

진지한 좌파 분석과 조직화에서 정체성정치와 문화정치가 무책임하고 사소하며 분리주의적인 ‘타자’로서 재현되면 될수록, 평등을 추구하는 더 많은 구성원은 좌파로부터 더 많이 소외되고 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한 시정을 주장하도록 내맡겨질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 구성원에 대한 소외는 좌파 구성원의 수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좌파의 생기와 창조성을 유출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정체성 기반 정치 형태에서 발견되는 분석적ㆍ조직적 에너지가 없다면, 진보 좌파는 자신이 저지하여 역전하고자 하는 세력, 즉 다양한 전선에서 반민주적인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세력을 효과적으로 포착할 가망이 없다.
- 158쪽, 4장 사랑과 돈의 평등한 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