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N전주 교통방송 75회차, 전북강이야기,,성당창과 성당포구 이야기 --김택천

2017. 5. 21. 23:02소나무맨의 경력 및 활동/방송출연과 동영상

 

 

 

 

# 교통방송 75회차 질문지 - 5. 20일자

 

질문1

- 우리의 삶에 지니며 흐르는 전북의 강에 대해서

전라북도 강 살리기 추진단 김택천 이사장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답변1

『오늘은 금강 그 열 두번째 이야기로 조세를 담당하던 성당창과 성당포구마을, 나바위성당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 오늘은 강경에 이어 익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조세를 담당하던 성당창은 본래 용안(龍安) 금두포(金頭浦)에 위치하여 (※현재 익산시 성당면 성덕리) 덕성창(德成倉)으로 불렸는데, 1428년(세종 10) 물길이 막혀 함열의 피포(皮浦)로 옮겼습니다. 그 뒤 성당창으로 개칭해 전주·용안·임실·남원·임피·김제·장수·금구·운봉·익산·만경·여산·금산·진산·태인·옥구·진안·고산·무주·함열 등 20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하였습니다.

 

성당창에는 배 한 척의 적재량이 500∼600석인 조선 63척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포 역시 항구적인 포구가 아니어서 1482년(성종 3) 용안으로 다시 옮겨, 덕성창 또는 득성창(得成倉)이라 하였습니다.

 

이후 1512년(중종 7) 나주의 영산창(榮山倉)이 폐쇄되면서 법성창(法聖倉) 수세 구역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자, 다시 옥구 군산포(群山浦)로 옮겨 군산창이라 하고 전라북도지역의 세곡을 조운하였습니다.

 

그 뒤 인조 때 여산에 나암창(羅巖倉)이 따로 설치되어 두 곳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세곡을 분담, 조운하였으며, 17세기 중엽부터는 나암창을 다시 함열의 진포(鎭浦)로 옮겨 성당창이라 하고, 함열·고산·진산·운봉·익산·금산·용담·남원 등 8개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수납, 조운하였다고 합니다.

 

세곡의 수납과 운송은 군산첨사가 주관하였습니다. 운송항로는 금강을 흘러 군산 앞 바다에서 북상, 충청도와 경기도 연해안을 거쳐 서울의 서강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질문2

- 성당포구에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하던데요 이곳에도 이야기가 있나요?

답변2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포구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주민들의 사랑속에서 “보호수” 역할을 해온 나무입니다.

 

○ 조선 현종 3년(1662) 성당창이 설치되면서 조운선의 무사 항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별신제”가 행해졌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400-500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크기는 높이 약 15m, 둘레 약 2m, 가지는 남북으로 18m, 동서로 16m에 달한다고 합니다. 무성한 줄기와 함께 아름다운 모양을 자랑하는 이 은행나무는 오늘날도 마을의 안녕과 무사함을 기원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1895년 성당창의 조창이 폐쇄되고 “별신제”를 행하던 순풍당이 붕괴되고 경제사정이 약화됨에 따라 “별신제” 대신 마을의 공터에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에 치성을 올리는 당산제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질문3

- 성당포구 마을에 대해 더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

답변3

금강을 보듬고 있는 잔잔한 강촌 풍경을 볼 수 있는 성당포구마을로 가볼까요?

 

전북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에는 금강 줄기를 따라 형성된 성당포구마을이 있습니다. 한 번쯤 발걸음을 옮겨봤다면 ‘고즈넉함’이 아주 잘 어울리는 잔잔한 마을이라는 인상을 쉬이 지울 수 없다.

 

전형적인 농촌이면서도 금강을 보듬고 있는 강촌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후기 고종 때까지 세곡을 관장하던 조창과 포구를 통해 드나드는 수많은 세곡 선반, 고기잡이배로 번성함이 가득했지만 조선말기에 와서 군산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조창이 폐지되었지만 금강하구가 막히기 전까지만 해도 강촌보다는 어촌이 어울릴 만큼 고깃배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습니다.

 

익산 성당포구마을은 서쪽으로 금강이 위치하며 고려에서 조선 후기까지 세곡을 관장하던 성당창이 있던 곳으로 성당포(聖堂浦) 혹은 성포(聖浦)라 불리던 곳입니다. 전통적인 포구마을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낸 벽화와 황포돛배, 금강의 생태를 배우며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당포구마을에서는 포구역사, 금강변 기행코스, 황포돛배타기, 포구 사진찍기, 포구 그림그리기 등을 통해 어부들의 삶의 시련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포구에서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포구기행 프로그램과 금강 생태탐방학습, 고란초자생지 관찰, 수리부엉이, 철새 관찰 등을 할 수 잇는 [금강 생태탐방 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익산시 성당포구 마을에는 희귀보호식물인 “고란초”의 서식지가 위치하고 있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성당포구마을은 “바람개비길”로도 유명한데요. 금강 자전거길이 이곳 성당포구마을을 지나가 자전거 라이딩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자전거 대여도 해주는 곳이 있으니 가족 단위로 많이 오신다고 합니다.

 

익산에 또 유명한 “나바위성당”이 있는데 성당포구에서 차로 15분정도 걸리는 곳에 있어서 함께 가볼 만한 곳으로 나바위 성당에 대해 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바위성당(羅岩聖堂)은 전라도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이 성당은 1845년(헌종 11) 중국 상해(上海)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金大建)신부가 강경포(江景浦) 부근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렐(Vermorel, J.)신부에 의하여 1906년에 건축되었습니다.

 

한양절충식(韓洋折衷式)의 이 성당은 당초에는 순수한 목조건축이었는데, 정면 5칸, 측면 13칸의 크기에, 정면과 양측면의 툇간이 마루로 되었고, 정면 중앙에 목조종탑(木造鐘塔)과 십자가가 있었으나 1916년에 증축하면서 목조종탑을 없애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鐘閣)을 툇간에 덧붙여 증축하였으며, 이 때 목조로 된 벽을 헐고 벽돌로 쌓았고, 양 측면 툇간의 마루를 없애고 회랑(回廊)으로 만들었습니다.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멋진 곳입니다.

 

이 성당에는 1954년에 건립된 베르모렐 신부의 공훈기념비와 1955년에 건립된 김대건신부의 순교기념비가 있어 전라도 지방의 천주교사적지로 많은 신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 방송 인터뷰 : 전라북도 강살리기 추진단 이사장 김택천

- 자료제공 및 질문지 작성 : 전라북도 강살리기 추진단 상임이사 오문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