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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간의 좌충우돌 계란판 공법 흙집 짓기

이런저런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

by 소나무맨 2017. 2. 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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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간의 좌충우돌 계란판 공법 흙집 짓기

 

 

 

 

EP 공법, 일명 '계란판 공법'은 계란판의 굴곡이 상•하의 흙을 교착시켜 흙집의 벽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일반인도 쉽게 도전해볼 법한 방법이다. 집을 다 짓고나서야 원래 그런 공법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김수봉, 이경자 부부. 오직 경제적이고 튼튼한 집을 짓겠다는 일념 아래 발로 뛰고 맨몸으로 부딪혔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6개월 간의 좌충우돌 흙집 짓기 여정

↑ 01 터 닦기

↑ 02 기초공사

↑ 03 흙 비비기

↑ 04 계란판 깔기 시작

↑ 05 흙 채워 깔기

↑ 06 소요 높이까지 계란판-흙 깔기 반복

↑ 07 벽체 다듬기

↑ 08 함실 만들고 구들장 놓은 후, 황토 깔기

↑ 09 미장으로 마무리

"땅에 뒹구는 낙엽 위에 비 섞인 눈이 내리는 소리는 그야말로 음악이었습니다."

그 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입시 영어 교육을 하던 그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수업해야 하는 생활 패턴에 지쳐가던 중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딸과 곧 사회인이 될 아들을 보며, 아내와 단둘이 즐기는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이나 가평 정도면 모를까, 아내가 처남의 제안을 처음 전해왔을 때는 이름조차 떠올려본 적 없던 지역에 대한 막연함이 먼저 들었다. 그랬던 그가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당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진이 산업도시로 최근 30대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초등•중학생을 대상으로 틈틈이 학원을 운영할 수 있겠다 싶었다. 바다와 가까운 곳이라는 점도 전남 여수 출신인 그의 마음을 돌리는데 한몫했다. 차로 1시간 30분 거리로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일주일에 두 번 서울을 오가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 고운 색감을 위해 강원도에서 공수해 온 황토에 황토팩 가루를 섞어 미장했다.


땅을 사고 나서 두 가족이 얼마 안 되는 예산으로 집 두 채를 짓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마침 강원도 영월에 살며 흙집을 두어 채 지어본 적 있는 경자 씨의 형부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형부가 집을 지으면서 아쉬웠던 점들에 대해 늘 이야기하곤 했어요. 언니네 집에 놀러 갔던 어느 겨울, 흙벽이 갈라진 틈으로 날리는 눈을 보고 '눈 온다!'라며 외치기도 했죠(웃음)."

형부의 생생한 경험담과 조언은 이들 부부가 직접 흙집을 짓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져 내리는 흙을 보완하기 위해 계란판을 쌓아 중심을 잡아보라고 조언했다. 경자 씨는 서울 계란 도매상을 돌아다니며 계란판 4천 개를 샀다. 터를 닦아 기초공사를 하고, 흙을 비비고 계란판을 깐 후 흙을 채워 깔아 벽체를 쌓아가는 작업이 무한 반복됐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렀지만, 천천히 오랫동안 정성 들여 짓자 마음먹었다. 크기가 일정한 계란판 덕분에 정교하게 작업하지 않아도 벽체의 두께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뒤틀린 부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 키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부부의 힘만으로 벽을 쌓는 일이 어려워, 인부들을 불러 그들이 올려주는 흙을 받아 쌓는 방식으로 함께 일했다.

↑ 굴뚝의 연기가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 친척들이 자주 모이는 점을 고려해 경자 씨는 거실을 더 넓게 수정했다.


"올케와 제가 작업복을 입고 있으니까 인부 아저씨들이 '아줌마들은 어느 인력에서 왔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왜 하필 가장 힘든 흙 쌓는 일을 배워 하느냐면서(호호)."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건축업자로 착각할 정도로 경자 씨도, 수봉 씨도 집 짓는 일에 열심이었다. 근처에 있는 폐가를 고쳐 경자 씨 오빠네 부부, 형부가 소개해준 목수와 1년 가까이 합숙하면서 새벽부터 일어나 작업했다. 습기에 민감한 흙을 다루는 일이라, 장마철에는 더더욱 고생이었다. 올봄에 시작해 가을이 되어서야 완공된 흙집의 건축비는 땅값을 제외하고 건축면적 약 40평에 8천만원 정도.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하고 웬만한 일은 직접 시공한 덕도 크지만, 두 채를 함께 지어 자재를 대량으로 거래할 수 있어 건축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이제 부부는 뜨끈하게 덥힌 구들방에서 매일 밤 단잠을 자고, 한층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전원 속 흙집에서의 일상을 만끽한다.

"이렇게 정성 들여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지은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라며 자신 있게 말하는 수봉 씨. 그동안 흘린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현관에는 자투리 나무에 손으로 직접 '수경헌(水鏡軒)'이라고 쓴 문패도 달았다. 부부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집 안에 늘 맑고 깨끗한 기운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자로 의미를 더했다고. 두 사람의 손때가 묻어 정겨운 문패에서도, 계란판과 흙을 손수 차곡차곡 쌓아 지은 집에서도 이제 막 시작한 전원생활의 설렘이 듬뿍 묻어난다.

"집 짓다 보니 손가락이 성한 데가 없더군요.

그래도 상쾌한 공기와 신선한 밥상을 생각하면 고생도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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