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나키스트의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라는 오역으로 세상의 오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근대에 등장한 일부 몽상가들의 주장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한 근본 법칙으로 인류사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힘이다. 예일대 석학 제임스 스콧 교수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는 이러한 아나키즘의 힘이 교차로의 신호등에서 교육 현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아나키스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인간사는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는지 말해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정치이론이나 급진적인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리어 철저히 개인적이면서도 관찰자의 시점에서 세상 변화의 추이와 질서의 이합집산을 자연스럽게 파헤친다. 때문에 읽다보면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에세이로 보일 지경이지만, 이 작은 책을 통해 일관된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놀랍다. 또한 기존의 아나키즘과 달리 국가의 존재 이유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 저자의 새로운 평가와 프티부르주아에 대한 참신한 해석은 이 책에 번뜩임을 더한다.
저자소개
저자 : JAMES C. SCOTT
저자 제임스 C. 스콧 JAMES C. SCOTT 1936~ 은 예일대학 정치학과 인류학 교수이자 이 대학에서 해당 분야 최고 학자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지위인 스털링 프로페서(STERLING PROFESSOR)다. 저명한 아나키스트이고 예일대학 토지 연구 프로그램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미국 국립인문학재단, 존 사이먼 구겐하임 기념재단 등 유수한 단체로부터 연구지원을 받은 바 있으며 MIT와 프린스터대학 고등학술원 회원이었다.
학계 좌파를 넘어 자유지상주의, 개발경제학 등에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고 미국 예술과학 학술원의 회원이기도 하지만, 코네티컷에서 양과 벌을 치며 범속한 농부로 살아가는 그를 가리켜 보수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도시나 경제 또는 사회를 기획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의도치 않은 모든 나쁜 결과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면서도 자신은 그 속에 함몰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저서로 『지배받지 않는 법: 동남아시아 고원지대 아나키즘의 역사』, 『국가처럼 보기』, 『지배와 저항』, 『약자의 무기』, 『농민의 도덕 경제: 공남아시아의 반란과 생존』 등이 있다.
역자 : 김훈
역자 김훈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했다.
옮긴 책으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 『에베레스트의 진실』, 『럼두들 등반기』,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패디 클라크 하하하』, 『피아니스트』,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세상 끝 천 개의 얼굴』, 『미국을 닮은 어떤 나라』 등 1백여 권이 있다.
현재는 부여에서 번역을 하면서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농업에 몰두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무질서와 ‘카리스마’의 사용
조각 1 스콧의 아나키스트식 유연체조의 법칙
조각 2 불순종의 중요성에 관하여
조각 3 다시 불순종에 관하여
조각 4 광고 문안 : “지도자는 자신의 지도를 따르려 하는 추종자들을 찾는다”
제2장 토속적 질서, 공식적 질서
조각 5 ‘앎’의 토속적 방식과 공식적 방식
조각 6 공식적인 지식과 통제의 풍경
조각 7 토속적인 것의 유연한 탄력성
조각 8 무질서한 도시의 매력
조각 9 정연함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혼란
조각 10 아나키스트의 불구대천의 원수
제3장 인간적인 생산
조각 11 놀이와 개방성
조각 12 문제는 무지야, 이 바보야! 불확실성과 적응성
조각 13 GHP : 인간총생산
조각 14 어느 복지기관
조각 15 제도화된 삶의 병리학
조각 16 직관에 반反하는 온건한 예 하나: 붉은 신호등 철거
제4장 프티부르주아에게 바치는 두 가지 찬사
조각 17 비난받는 한 계급을 소개하면서
조각 18 경멸의 원인론
조각 19 프티부르주아의 꿈 : 재산의 매력
조각 20 프티petty부르주아의 그리 하찮지 않은not petty 사회적 기능
조각 21 프티부르주아가 제공해주는 ‘공짜 점심’
제5장 정치를 위하여
조각 22 토의와 질: 질을 수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에 대한 거부
조각 23 만일 …라면 어떻게 될까? 감사監査 사회에 대한 몽상
조각 24 쓸모없는, 그리고 불가피하게 찾아올 오염과 부패
조각 25 민주주의, 우수성, 정치의 종말
조각 26 정치를 변호하며
제6장 특수성과 흐름
조각 27 선의와 연민의 개별적 특수성
조각 28 특수성, 흐름, 우연성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조각 29 역사에 대한 거짓 증언의 정치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Notes
Index
출판사 서평
“자유란 그것을 누릴 만큼 성숙해져야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성숙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 임마누엘 칸트 -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라는 오역으로 여전히 통용되는 한국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아나키즘만큼 세상의 오해를 받아온 사상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나키(Anarchy)’라는 말의 원래 의미가 주는 뉘앙스도 있고, 이 사상이 기반하고 지향하는 자유와 협동의 세계관보다 급진적인 정치이념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줄곧 활동해온 탓도 있다.
바쿠닌에 따르면, 자유란 국가를 비롯한 외부인이 부여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제약 또한 본래부터 인간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런 제약들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근본조건을 이룬다. 또한 크로포트킨은 인간 세상을 넘어 자연과 만물을 생동,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경쟁이 아닌 협동을 설파했다. 말하자면, 아나키즘이란 일체의 억압을 거부하며 근대에 등장한 일부 몽상가들의 주장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한 근본 법칙으로 인류사의 저변에 거대한 힘으로 도도히 흐르는 것이다.
예일대 석학 제임스 스콧 교수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는 이러한 아나키즘의 힘이 국가와 자본으로 물샐틈없이 짜인 현재에도 교차로의 신호등에서 교육 현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지, 아나키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인간사는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는지 말해준다.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정치 투쟁으로서의 아나키즘을 내세우는 여타 저술들과 달리, 국가와 자본의 냉혹한 욕망이 어떻게 세상을 획일적으로 구분하고 때로는 파괴하는지를 서술하는 대목에서마저 넉넉하면서 한편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이 책의 힘은 오랜 세월 동남아의 전근대적인 부족의 생활양식과 농업생산을 연구해온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저력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정치이론이나 급진적인 주장을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 도리어 철저히 개인적이면서도 관찰자의 시점에서 세상 변화의 추이와 질서의 이합집산을 자연스럽게 파헤친다. 때문에 읽다보면 이 책이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에세이로 보일 지경이지만, 이 작은 책을 통해 일관된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매우 놀랍다. 또한 기존의 아나키즘과 달리 국가의 존재 이유를 전면 부정하지 않...(하략)
책속으로
내 아나키스트적 사시에는 정치, 투쟁, 토의, 그리고 그런 것들에 따라붙는 영구적인 불확실성과 학습에 대한 옹호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올 무렵 많은 아나키스트 사상을 지배했던 공상적 과학주의utopian scientism의 주요 흐름을 거부한다는 것을 뜻한다. --- p.12
질서, 합리성, 추상성, 이름 일람표의 종합적인 명료성, 풍경landscape, 건축술, 작업 공정 등은 위계권력에 도움이 된다. 나는 그런 것을 ‘통제와 유용流用의 풍경’으로 여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대대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거의 보편화된 시스템은 그것이 신원확인을 하는 데 쓸모 있다는 사실을 국가들이 알아채기 전에는 지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스템은 세금, 법정, 토지재산, 징병제, 경찰활동과 더불어, 즉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확산되어왔다. 이제는 개인식별번호, 사진, 지문, DNA 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지만, 어쨌든 그런 시스템은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창안된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기술들은 체제의 적을 체포하려 할 때 백신을 놓는 것만큼이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을 뜻한다. 그런 기술들은 지식과 권력을 집중시키지만, 그것들과 관련된 목적에는 극도로 무관심하다. --- p.75~76
어느 의미에서 학교는 산업화되고 있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계산 기술과 읽고 쓰는 능력을 훈련시켜주는 공장이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어려운 시절Hard Times』에 등장하는, 계산에 아주 밝고 툭하면 악을 쓰면서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교장을 우스꽝스럽게 상징화한 이름인 그래드그라인드(Gradgrind, ‘현실에 밝은 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우리에게 공장을 떠올려주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틀에 박힌 업무(수업), 엄격한 시간 규율, 권위주의, 군대식 시각 질서, 자그마한 어린 노동자들의 의기소침함과 나름대로의 저항이 존재하는 공장을.
물론 보편적인 공교육은 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을 배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기관임과 동시에 정치적 기관이기도 하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언어의 지역적이거나 지방적인 정체성, 민족의식, 종교를 뛰어넘는 애국적인 시민을 배출하도록 설계되었다. 혁명기 프랑스의 보편적universal 시민권은 전 국민universal 징병제와 짝을 이뤘다. 학교 시스템을 통해서 그런 애국적인 시민들을 제조해내는 일은 명시적인 커리큘럼을 통해서보다는 교육할 때 쓰는 언어, 표준화, 군대식 편제를 닮은 훈련, 권위와 질서를 통해서 더 잘 이루어졌다. --- p.120~21
분석적 지성 테스트에서 좋지 않은 점수를 얻은 이들이 학교 시스템이 높이 평가해주지 않거나 아예 가르쳐주지도 않는 많은 지성 형태들 가운데서 한 가지나 몇 가지의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재능들을 사장시키고 그 학생들 중에서 5분의 4를 사회의 문지기들이 보기에나 본인 자신들이 보기에 영원한 낙인이 찍힌 존재들로 보이게끔 만들어서 사회에 내보내는 시스템은 대체 어떤 종류의 시스템이란 말인가? 너무나 많은 사회적 손실과 낭비를 빚어내는 이런 교육학적 시야 협착증에 의해서 ‘분석적 지성을 갖췄다고 하는 엘리트들’에게 부여해주는 특권과 기회들의 그 수상쩍은 특혜는 대체 뭐란 말인가? --- p.124
내가 제기하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가장 현대적인 생활 세계 조직들(가족, 학교, 공장, 회사, 작업장)의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특성은 온건한 형태의 시설 신경증을 빚어내는가? 우리는 많은 기관들의 연속체 한 끝에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진취성을 수시로 짓밟는 전체주의적 기관을 배치해놓을 수 있다. 이런 연속체의 다른 한 끝에는 아마도 자기 행위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빚이 없고 기관 관리자들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할 이유가 없는, 독자적이고 자족적이고 자긍심 있는 자영농들과 소기업 경영자들로 이루어진 제퍼슨식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버전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제퍼슨은 그런 독자적인 농민들이야말로 시민들이 두려움이나 치우침 없이 자기네 의사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활발하고 자주적인 공론장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했다. --- p.133
좀 더 폭넓게 볼 때 가부장제적 가족과 국가, 그 밖의 위계조직들 내에서의 생활이 빚어낸 누적 효과들이 아나키즘의 이론과 자유민주주의 이론 양자 모두가 찬양해마지 않는 자발적인 상호관계의 능력이 결여된 수동적인 신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공공정책을 통해서 자주성과 자율성, 시민적 자질을 증진시켜주는 조직을 하루빨리 육성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획일적인 생활세계를 적절히 조정해줌으로써 그런 세계가 민주적 시민됨의 자질과 좀 더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p.133~34
역사의 압축과 요약, 선명한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욕구, 엘리트의 필요성, 통제와 목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주입하려는 조직은 일치단결하여 역사적 인과관계의 거짓된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그런 요소들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이 혁명 정당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이고 즉흥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로 ‘모험주의적인’) 행위들이 한데 모아진 결과로 일어난 것이고, 조직화된 사회 운동들은 조직화되지 않은 항의와 시위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인 경우가 많으며, 혁명이나 사회 운동이 인간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신장시켜주면서 안겨준 엄청난 이익은 제도화된 질서정연한 절차의 결과물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회질서를 깨부수고 나오는 무질서하고 예측할 수 없고 자연발생적인 행위들 덕에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 p.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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