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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방법 ⑧'농업인 대의기구'에 우리 농정 숙제 해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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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방법 ⑧'농업인 대의기구'에 우리 농정 숙제 해법 있다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6.11.16  / 최종수정 : 2016.11.16  23:52:54


  
▲ 오스트리아 티롤주 슈바츠군 농업회의소.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3농 정책’을 설계하고 지탱하는 핵심적 정책과 구체적 전략은 직불금, 가족농, 협동조합, 그리고 농업회의소이다. 그중 ‘농업회의소’야말로 우리 농정의 숙제를 풀 수 있는 유력한 해법이자 도구로서 배울 필요가 있다.

‘농업회의소’란 농업인의 대의기구로서 헌법 제123조 5항에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해야 하며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근거를 두고 있다

한국농어촌복지포럼 공동대표인 정명채 박사는 “자본이 정치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업이 살아남는 방법은 헌법에 보장된 농민대의기구인 농업회의소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정 박사는 흔히 농업회의소를 기업인들의 상공회의소에 빗대 설명한다. “기업인들이 기업의 이익을 대의하기 위해 상공회의소를 만들었듯, 농민들도 농업을 지키고 농촌에서 살기위해서 농업회의소를 농민들의 뜻을 대변하고 대의하기 위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국적 농기업으로부터 농민을 지켜주는 EU 농업회의소

  
▲ 슈바츠군 농업회의소가 있는 로트홀츠마을

독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EU 각국의 농업회의소(landwirtschaftkammer)들은 농지와 농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주(州) 정부의 설치법에 근거해 설립된 농민자치기구로서 직업교육과 농업경영 지도상담이 고유업무이다. 아울러 주정부에게 위임, 수탁받은 농림사업을 집행한다.

특히 농지의 감소를 막고 난개발을 규제하면서 농지관리를 책임진다. 품목별 생산상한제(쿼터제)를 통해 적정 생산자(농민) 규모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결국 모든 농민의 생계와 자존심을 지키는 믿음직한 비빌 언덕 노릇을 한다.

카길을 비롯한 5대 곡물메이저, 델몬트, 몬산토 등 다국적 농기업들은 전세계의 농산물 유통부터 가공, 생산기반까지 독점하고 있다. 이에 맞서 EU는 그 대응전략이자 무기로 ‘직불금’이라는 혁신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공재로서 농업을 지키기 위해,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토양, 기후 등 환경을 보전하고 농촌의 전통, 문화, 경관을 보전하는 농업의 공익적 역할과 다원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부터 탄탄히 구축했다.

이때 직불금 정책을 실행하는 핵심전략은 바로 시행주체가 누구인가에 달려있다. EU는 정부가 아니라 농업회의소를 직불금 제도의 시행주체로 결정했다. 겉으로는 정부와 협치(거버넌스)를 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속으로는 ‘자국농업 보호정책 및 지원에 대한 규제’라는 WTO의 감시와 시비를 피해가려는 고도의 전략적인 포석을 둔 것이다. UR과 WTO출범 이후에는 대외농정에 대응하는 자치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유럽의 농업회의소는 산업혁명 이후 농업 위축에 반발한 농민운동, 민주화운동의 성과물로서 법적, 제도적 농정참여기구이다.

정명채 박사는 “농업회의소 설립에 부정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정부와 기업, 농협중앙회 등의 방해도 이겨내 농업예산과 농업기관과 농지를 지키기 위해서 농업회의소를 반드시 설립하자”고 늘 호소한다.

△주인인 농민들이 농정을 책임지는 슈바츠 농업회의소

  
▲ 슈바츠군 농업회의소 내부.

바로 이런 EU 농업회의소의 모델이나 교과서 같은 사례를 알프스 자락의 산골마을에서 목격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티롤주의 주도인 인스부르크에서 동쪽으로 백리쯤 떨어진 로트홀츠(rotholzt)마을이다. 농업과 농촌의 주인인 농민들끼리 자치하는 슈바츠(schwaz) 군단위 농업회의소이다. 티롤주 농업회의소 산하 3개 지역, 9개 시군단위 농업회의소의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다른 농업회의소와 마찬가지로, 농민 기술 지도, 농업정책 지원, 교육, 인증 등 우리의 농업기술센터가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엔 농정과나 농업국 공무원을 따로 두지 않는다. 농업국이 하는 역할을 온전히 농업회의소가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회의소장은 지자체장의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 6년 임기의 농업회의소 소장 또는 회장은 정규 공무원이 아니라 농민들 손으로 직접 선출한 선출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오직 농민만 출마할 수 있다. 관의 통제를 받고 지배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자체장보다 상위의 기관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지역에서 대접받는다.

농민은 모두 농업회의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물론 연 40~100유로의 회비도 납부해야 한다. 로트홀츠마을의 프리히너호프(prichnerhof) 제빵농가도 슈바츠 농업회의소의 회원으로 오스트리아 최고의 빵맛을 내기까지 농업회의소의 지도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사소한 포장지마다 슈바츠 농업회의소 회원농가라는 ‘자랑스러운 표식’이 선명하다.

헬무트 트락슬러 슈바츠군 농업회의소장은 당연히 농민출신으로 농민들이 투표로 선출한 직선 회장이다. 회의소의 직원은 명실공히 농업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다. 정년이 보장되는 준 공무원 신분이다. 농업회의소의 인건비 등 예산은 전액 정부에서 지원한다. 행정은 필요한 예산만 지원하는 이른바 ‘팔길이의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엄수한다.

■ 국내 농어업회의소 추진, 시범사업형 아닌 유럽형 설립해야

2016년 8월, 김현권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농어업회의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농어업인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을 대변하는 농어업계의 대표기구로서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전의 법안과는 전국농어업회의소 설립을 위한 동의기준을 30개 시·군에서 20개 시·군으로 낮춘 것, 그리고 ‘직업능력개발과 교육·훈련’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것이 큰 차별점이다.

2016년 현재 진안, 나주, 거창 등 농식품부가 선정한 17개소의 농어업회의소가 설립되었거나 준비 중이다. 충남은 자체적으로 논산에 농어업회의소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농식품부는 회원가입률이 저조하고 개선사안도 많아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며 법제화 시기를 늦추고 있다.

EU 등 농업선진국의 농업회의소는 공법에 의한 유일한 농업인 대의기구로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하고 있다. 따라서 농정자문 등 농업회의소의 기능과 역할을 제도화하고 농업인 대의기구로서 대표성을 부여하자면 법제화가 필수적이다.

‘돈’도 문제다. 농업회의소의 고유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재정기반이 안정되어야 한다. 지자체장의 개인적 의지와 취향에 따라 사업이 왜곡되는 파행적 사고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우선, EU처럼 농업회의소장의 신분과 지위는 지자체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관의 물질적 지원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회원들의 회비로 재정의 기초와 뼈대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농정기구와의 업무 중복과 상충요인을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사실상 ‘농민 자치’에 가까운 자생적, 자율적 사업모델 정립이 관건이다.

농업회의소가 농업인 자조조직이자 대의기구로서 공익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행조건이다.

  
▲ 정기석 마을연구소(Commune Lab) 대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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