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2016. 7. 10. 16:15지역 뉴스/서울시 뉴스




다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등록 :2016-07-08 18:43수정 :2016-07-08 21:13

 

박원순의 시,     다
          

     다시 --------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지난 한달여의 시간은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정지용 시인의 대사로 위로를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제 시계는 5월28일에 멈춰 있는 듯합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대학 입학을 준비했던 청년의 꿈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자책은 초심의 박원순을 만나게 해주었고, 성찰과 반성은 다시 시작할 힘을 주었습니다. 더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사람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얼마 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처럼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습니다. 시장이 되면서 처음 했던 말들 ‘‘다 그래’라는 관행을 꼭 바꾸겠습니다’,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시장의 꿈이 아닌 시민의 꿈을 이루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이 모두가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처음의 말은 희미해지고, 너무나 상식적인 생각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인지, 사람을 위해 일이 있는 것인지, 돈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인지, 사람을 위해 돈이 있는 것인지,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인지, 검사를 그만둘 때,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의 길을 선택할 때, 시민운동가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을 때, 삶의 전환의 시점마다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가, 고통받는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편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인가, 라는 물음이 제 선택의 기준이었습니다. 효율과 시장의 논리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생의 논리로 문제를 보고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제 인생의 가치관이자 신념이었습니다.

삶이 마음먹은 것처럼 풀리지 않을 때, 그렇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박노해 시인의 ‘다시’를 소리 내어 반복해 읊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는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사람에게 지치지만 사람에게 힘을 얻습니다, 사람 때문에 절망할 때도 있지만 사람이 다시 희망을 줍니다, 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시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제게는 가장 큰 희망입니다. 용산 방문 때 “재개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한참을 하소연하시던 할아버지, “요즘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건강 챙기라며 콩물을 건네던 신창시장 상인분, 어린이집에 방문했을 때 “‘타요 할아버지’ 머리가 없어요” 하며 제 머리를 만졌던 아이….

공감은 사람만이 가지는 유일한 능력이라고 하지요. 공감을 넘어 ‘공명’(共鳴)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공명’은 남과 더불어 우는 일입니다. 소리와 소리가 만나 음악을 만들듯 우리 사회에서도 아름다운 공명이 울려 퍼질 수 있다면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늘 사람들 속에서 슬픔의 편에서 눈물의 편에 서겠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등 돌리지 않는 공명의 세상을 꿈꿉니다. 사람만이 멈춘 시계를 돌립니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 바로잡습니다
지난주 이 지면에 소개된 시 ‘등관작루’의 한자어 표기는 ‘登鸛雀樓’가 맞습니다. 잘못된 표기로 독자들께 혼선을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