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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흙과 문명]지식인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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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흙과 문명]지식인과 노동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오늘은 작정하고 미친 소리를 좀 해야겠다. 변두리 지식인의 좋은 점은 때때로 이런 미친 소릴 해도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나빠지는 이유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르다. 어떤 이는 착취적인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저급한 정치 때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강대국의 패권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오늘 특정 사람들 때문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바로 지식인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식인의 영향력이 특히 커진 것은 매스미디어가 출현한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사회가 학교 시스템에 의해 서열화·전문화되고 이를 매스미디어가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파함으로써 현대의 지식인은 가히 그 옛날의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큰 권력을 쥔 정치가나 기업가라도 지식인의 조언 없이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다. 또한 기성 권력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저항세력의 배후나 지도자도 예외 없이 지식인이다. 이렇듯 지식인은 자신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가 나빠지는 건 비양심적인 지식인이 더 많아서일까? 양심의 문제는 도저히 수치화할 수 없으므로 비양심적 지식인이 더 많은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50 대 50으로 보는 게 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가 계속 나빠지는 데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지식인이 육체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않아도 된다. 직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육체노동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분업과 전문화가 고도화되고 그에 따라 풀타임 지식인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된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지구적 규모로 경쟁하면서 지식인도 분초를 다투어 가며 지식경쟁을 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게으른 지식인은 가차없이 도태된다.

이런 환경에서 육체노동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지식인임을 포기하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말한다. 세상이 좋아지길 바란다면 지식인으로서 조금 덜 인정받더라도 육체노동을 하라고.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하고 며칠을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 기발한 사연을 들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한 여성이 어디에서건 밥을 먹고 나서는 꼭 맛이 있느니 없느니 평을 하는 바람에 식탁의 분위기를 망친다며 이 습관을 고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한 청취자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대접하게 해 보세요,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면 함부로 평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존하는 지식인의 대사회 발언은 밥 먹고 시시콜콜 음식평을 해대는 이 여성과 같다. 자신은 엄격히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로 인해 사회 분위기는 더 나빠진다. 그렇다고 관계되는 모든 사항을 직접 체험해 본 다음 발언하라고 요구할 순 없다. 그것은 입 다물라는 소리와 같다. 대신 모든 체험의 본질인 ‘육체노동’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이 요구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노동 천시’와 ‘탁상공론’ 풍조를 고칠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이다. 사실 이것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해당되는 요구이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지식인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남이 해놓은 일에 대해 ‘잔소리’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천하에 없는 대지식인일지라도 스스로 농사지어본 일도 없으면서 TV나 강연장에 나와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남에게 귀농을 권유하느라 바빠서 농사지을 겨를이 없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실제로는 하지 않아도 입만 가지고 잘살 수 있다는 표본이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자녀들에게도 닮아야 될 모범으로 소개한다. 말은 무성하지만 노동은 실종되고 실제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백마디 말보다 진솔한 행위(노동) 하나가 더 소중하다. 지식인들은 이런 얘기를 늘 입에 달고 다니지만 말하는 자신은 제외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말로써 세상은 더 어지러워진다.

언젠가 우리 농장에 체험학습을 온 어린 학생에게 말했다. 가늘고 흰 손가락을 가진 그 아이는 장차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쳐 이미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을 갖춘 아이였다.

“여기 생활을 한순간의 체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네가 아무리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다 해도 네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지 못하는 피아니스트라면 결코 존경받을 수 없는 시대가 온단다.”

지금까지 어른들로부터 피아노만 잘 치면 그것으로 돈을 벌어 잘 먹고 살 수 있다고 배워온 아이는 눈만 껌뻑, 껌뻑거렸다. 농사지을 줄 모르는 베토벤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 미친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문명에 대한 두 가지 근본적인 비판이 숨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지닌 기능과 육체노동을 분리시켜 버린 잘못이고, 또 하나는 그 분리로 인해 세상이 분열을 거듭한 끝에 생존기반 자체가 위험에 빠져 버린 점이다.


베토벤 시대에는 농사를 지을 줄 몰라도 그럭저럭 잘 견뎌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에 대해 베토벤에게 혹은 아인슈타인에게 일말의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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