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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대통령

리더쉽

by 소나무맨 2015. 7. 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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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대통령  

2015.04.16.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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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통령


정부의 정부에 의한 정부를 위한 관료의 정치를 하는 대한민국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대통령.

미국은 노년이 행복한 나라로 노인복지 우선의 정책이 시행된다.


대한민국은 노년이 가장 불행하며 국가와 사회를 폐허에서 일으켜 세운 황제노인들이시지만 

그 분들이 공헌한 국가와 사회는 노인들에 대한 예우가 가장 빈곤한 나라이다.


***링컨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를 미국이 헤쳐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칼린 제닝스-로겐삭 (애리조나 주) -


링컨 150주기...분열의 시대 속 링컨의 통합리더십


 출처->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2015/04/13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서거 150주기 (15일)을 맞아 수도 워싱턴DC를 비롯해 전국에서 링컨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이란핵협상, 쿠바와 국교정상화 등을 둘러싼 미 정계의 분열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고  백인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의 죽음으로 인한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링컨 서거 150주년을 계기로 생전의 그가 부르짖었던 통합과 공존, 평화의 가르침이 새삼 부각되는 분위기이다. 

AP통신은 12일자 기사에서 " 링컨이 별세한 지 150년이 지났지만 그의 유산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지적했고, 지난 10일 뉴욕타임스(NYT)는 링컨 리더십의 특징으로 "보통사람들과의 유대감"을 꼽으며 그를 ‘리더의 모델’로 평가했다. 특히 NYT는 링컨이 1862년 도입한 ‘홈스테드법(공유지를 분배해  5년간 농사를 지으면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법)’을 오바마 정부의 ‘드림액트법(불법이민자 자녀들에게 합법적 거주권을 부여하는 법)’과 비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링컨은 14일 오후 10시 15분쯤 워싱턴DC 포드극장에서 부인 메리 여사와 함께 ‘우리 미국인 사촌’이란 연극을 관람하던 중 남부 분리주의자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알을 머리에 맞아, 이튿날 오전 7시 22분 숨졌다. 역사적 현장인 포드극장은 14일 하루종일  추모 전시와 촛불 추모식, 역사 세미나를 마련한다. 포드 극장은 링컨의 목숨을 앗아간 총을 비롯해 그의 유물들을 모은 ‘조용한 목격자:링턴 암살 유물들’ 특별전도 열고 있다. 링컨이 숨진 시각인 15일 오전 7시 22분에는 내셔널 성당 등 워싱턴 DC 내 모든 성당과 교회당의 조종이 울려퍼지게 된다. AP통신 등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매년 4월 15일을 링컨추모일로 선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50년 전 링컨의 시신을 싣고 워싱턴DC를 출발한 장례열차가 12개 도시를 돌아 그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도착했던 과정을 그대로 재연하는 행사도 21일부터 5월 1일까지 이어진다. 열차가 통과하는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욕, 클리블랜드, 시카고 등에서는 다양한 링컨 관련 행사들이 열릴 예정이다. 5월 2~3일에는 스프링필드 시내에서 링컨 장례행렬을 그대로 재연하는 행사가 열린다. 링컨의 실제 장례일은 5월 4일이었지만, 평일 교통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주말에  행사가 열린다고 조직위원회 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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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  <--사진출처

링컨 암살 150주년 책으로 만든 추모 타워


 미국 워싱턴DC의 포드 교육·리더십센터에 14일(현지시간) ‘링컨 북타워’가 세워져 있다. 포드센터는 이날 미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낸 에이브러햄 링컨 서거 150주년을 맞아 링컨과 관련된 책 250종을 알루미늄 책자 형태로 만들어 이 탑을 세웠다. 링컨과 관련된 전 세계의 책은 모두 1만50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링컨은 포드센터 건너편의 포드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다 그에게 적대감이 많았던 남부 출신 배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UPI연합뉴스 

 


링컨 서거 150주년…'포용의 리더십' 재조명

sbs 이성철기자 sbschul@sbs.co.kr   2015.04.16


뉴스보기  <앵커>


 


오늘(15일)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서거한 지 150주년 되는 날입니다. 미국 전역에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는데요, 노예 해방을 이뤄낸 평등 정신과 반대파까지 포용한 리더의 모습이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이성철 특파원입니다.


<기자>


1865년 4월 14일 밤 링컨 대통령은 연극을 관람하다 저격범의 총탄에 쓰러졌고 다음 날 영면했습니다.


노예 해방과 남북전쟁 승리의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벌어진 비극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서거일을 맞아 비운의 현장인 포드 극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남녀노소와 피부색,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국민 통합과 노예 해방을 이뤄낸 그의 뜻을 기렸습니다.


[칼린 제닝스-로겐삭 (애리조나 주) : 링컨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를 미국이 헤쳐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링컨의 소신은 투철했습니다.


반대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정적을 요직에 기용하며 보여준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은 미국민들의 표상입니다.


[마이클 헤플러 (미시간 주) : 링컨은 아주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했습니다. 가장 큰 덕목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거일을 추모의 날로 지정해 링컨의 통합과 포용 정신을 기렸습니다.


분열과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의 정치 현실은 미국민들의 발길을 150년 전 링컨으로 향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처] 대한민국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대통령|작성자 되돌림

 

링컨대통령과 국방장관| 자유게시판

은세계 | 조회 1059 |추천 0 | 2009.01.20. 22:30

 

    링컨대통령과 국방장관 미국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 젊은 시절, 일리노이 주에서 애송이 변호사로 일할 때였습니다. 스탠턴 이라는 유명한 변호사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링컨에게는 변호사에 대한 공부를 할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유명한 스탠턴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구나' 그러나 그것은 링컨 혼자의 생각이었습니다. 스탠턴은 은근히 부아가 났습니다. “저따위 시골뜨기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하라는 것입니까?” 라며 법정 밖으로 나가버렸다. 링컨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런 모독은 세상 나고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링컨을 얕잡아보고 무례한 행동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링컨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국방 장관을 누굴 택할까 고민하다 "스탠턴씨를 신임 국방 장관에 임명하겠소." 참모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스탠턴은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참모들이 일제히 임명 반대를 하고 나서자 링컨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수백 번 무시당해도 좋아요. 다만 그 사람이 국방 장관이 되어 우리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임무 수행을 잘 하기만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소? 더욱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국정을 잘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 내 편을 만드는 것이요. 안 그렇소?" 참모진들은 링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며 스탠턴도 있는 힘을 다하여 링컨을 도와 나라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링컨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때 스탠턴은 링컨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결국 링컨은 자기를 미워했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한 진정한 승리자였던 것이다.

 

 묘한 인연| ┏이역만리(해외동포)┓
웨스턴 | 조회 146 |추천 0 | 2014.11.21. 10:29

 



<美大統領 링컨과 케네디>






 

 

 

 

링컨대통령은...포기하지 않았다... 一般知識

2012.02.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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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포기하지 않았다...


링컨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의무가 있다.

우리 모두는 노력할 의무가 있으며,

나는 그 의무가 부르는 소리를 늘 듣곤 했다.

- 에이브라함 링컨


포기하지 않는 삶의 가장 위대한 사람에는 아마도 에이브라함 링컨일 것이다.

만일 당신이 중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원한다면

굳이 다른 인물을 찾을 필요가 없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링컨은 전생애에 걸쳐서 패배와 직면해 야만 했다.

그는 여덟 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고, 신경쇠약으로 고통받았다.

그는 여러번이나 중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링컨은 승리자였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에 링컬 관에 도착할 때까지 걸어야 했던 길을 간단히 소개한다.


1816 그의 가족이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났다.
그는 혼자 힘으로 가족을 먹여살려야만 했다.
1818 그의 어머니 사망.
1831 사업에 실패.
1832 주 의회에 진출하려 했으나 실패,
1832 직장을 잃고서 법률학교에 입학하고자 원했으나 좌절당했다.
1833 친구에게 빌린돈으로 사업을 시적하였으나 연말에 완전히 파산 이때 진 빚을 갚기 위해

17년 동안이나 일을 해야 했다.
1834 다시 주 의회에 진출을 시도해 성공하다. 결혼을 하기로 했으나

약혼자가 갑자기 사망했다. 마음에큰 상처를 받음.
1836 극도의 신경쇠약증에 걸려 빙원에 6개월 입원.

1838 주 의회 대변인 선거에 출마 했으나 실패.
1840 정부통령 선거위원에 출마했으나 실패.
1843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
1846   또다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이번에는 성공했다.

워싱턴으로 간 그는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

1848 하원의원 재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
1849 고향으로 돌아가 국유지 관리인이 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54 미국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 패배.
1856 소속 정당의 대의원 총회에서 부통령 후보 지병전에 출마 했으나 100표 차로 패배.
1858 다시 상원의원에 출마, 또 패배.
1860 미국 대통령에 선출되다.



내가 걷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 밖으로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길이 약간 미끄러울 뿐이지 낭떠러지는 아니야."

에이브라함 링컨 (상원의원에서 패배한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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