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5. 11:04ㆍ전북 소식/새만금에 대하여
2013.11.30.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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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장승의 꿈은 언제?
쓰러진 바다대장군. 새만금 지킴이 장승들이 있는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터에는 해수의 단절을 보여주 듯 갯벌에서 육지로 변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장승들은 바다를 다시 꿈꿀 수 있을까? ⓒ 이철재
1987년 만경강과 동진강이 유입되는 전라북도 군산시와 부안군 사이의 바다에 방조제를 건설하고 갯벌을 매립해 광활한 간척지를 만들 계획이 확정되면서, 이곳을 새만금이라 불렀다. 만경강, 동진강 사이의 충적지대는 ‘지평선 축제’가 열릴 정도로 발달된 평야지대로서, 김만평야(김제~만경), 또는 금(金)만평야라 했는데, 갯벌을 메워 새롭게 금만평야와 같이 넓은 땅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새만금이라 했다는 것이다.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401평방킬로미터를 얻기 위해 33.9킬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건설했다. 방조제를 포함해 투입된 비용이 4조 4천억에 달하는데, 새만금 사업 홍보물에서는 새만금 방조제가 기네스북에 등재됐고, 중국의 만리장성에 빗대 ‘해상 만리장성’이라 홍보하고 있다. 이어 새만금 사업은 2010년 방조제 공사 준공 이후 2020년까지 1단계 내부개발에 이어 2021년부터는 2단계 내부 개발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새만금 왜 시작했나?
새만금 사업을 두고 ‘새만금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녹색기술과 첨단산업이 만나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 ‘창조경제 실현의 중심’ 라는 홍보 문구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처럼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이래 20여 년이 넘도록 새만금의 실체적 그림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도 내부 개발에 투자를 유치한다고 하지만, 인근의 군장산업단지도 있고, 너무도 광활하기에 새만금은 경쟁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만금 사업 전경. 33.9킬로미터의 방조제를 막아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지역을 개발하려는 새만금 사업은 시작부터 현재까지 끈임없는 논란에 휩싸여 왔다. (부안군 새만금 홍보관에서 촬영 ⓒ 이철재
한마디로 새만금 개발은 20년이 넘도록 신기루와 같은 허상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신기루 때문에 지난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극심한 갈등을 겪어 왔고, 그 과정에서 주민의 피해와 생태계 파괴 등이 자행됐다. 그리고 새만금 개발이라는 신기루에서 비롯된 갈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큰 갈등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새만금사업, 경인운하, 한탄강댐은 모두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인 감사원으로부터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중단되지 않고 결국은 완공됐다는 점에서 유사한데, 이는 해석 여하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비합리성을 읽어 낼 수 있는 대목이다. 새만금은 1998년, 경인운하는 2003년, 한탄강댐은 2005년 각각 감사원으로부터 해당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추진 기관에 의해 의도적으로 예측 효과가 과장됐다 식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새만금 방조제 현황. (사진출처 : 환경부)
이러한 헌법기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들이 추진된 것은 우리 사회에 헌법을 뛰어 넘는 파워 또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사업의 추진과 중단 그리고 재추진이라는 롤로코스트를 반복했던 새만금사업의 지난 과정을 보면 그 존재가 여실히 드러난다.
새만금은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된 국가주도의 폭력적 개발 프레임에 지역 발전론이란 허상이 가해지면서 시작됐다. 새만금 사업의 각 추진 주체들의 새만금을 바라보는 시각은 편차가 있지만, 대규모 방조제 건설과 갯벌 매립을 통해 기득권 또는 사적 이익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일맥상통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라 표현의 차이가 있으나, 이들을 성장연합 또는 토건동맹이라 부른다.
새만금은 그 사회적 파장만큼이나 이 사업의 추진 배경에 대해 많은 분석들이 있어왔다. 궁극적으로 새만금 사업은 한국 현대 사회의 복합적 모순으로부터 태동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새만금 사업의 처음 제시된 목적은 식량안보 해결을 위한 농지조성이었다. 부안군 변산면 부항리에 위치한 새만금 홍보관에서는 새만금 사업의 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농지 조성 목적? 절대 순수하지 않은 새만금 사업
“(전략) 정부는 1970년대부터 식량자급자족이라는 정책적 목표달성을 위해 전국적인 간척 사업지역 조사를 실시하였다. 1986년도에 드디어 서남해안 간척농지개발계획의 윤곽이 나오면서 새만금사업도 추진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국민들의 배고픔과 먹을거리를 해결해보자는 순수한 구민(救民)목적의 농지조성사업으로 1991년 11월 28일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서두터에서 새만금사업의 신호를 알리는 기공식을 가지게 되었다. (후략)”
새만금 타임캡슐 오픈 행사. 새만금의 아픈 진실을 간직한 타임캡슐이 2011년 5월 오픈됐고, 또 다른 자료를 넣어서 10년 뒤 오픈 예정으로 다시 뭍었다. 새만금의 진실은 절대 잊을 수 없다. ⓒ 한숙영
새만금사업은 ‘국민들의 배고픔과 먹을거리 해결을 위한 순수 구민목적의 농지조성 사업’라는 것과 달리 순수한 목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완의 기록 새만금사업과 어민들』 에서는 새만금 사업이 식량 목적의 사업이 아니라는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새만금사업에 앞서 1963년부터 전북 부안군 계화도(새만금 방조제 내부 지역)에는 간척사업이 진행됐는데, 방조제 공사, 내부 간척공사와 이주민(섬진강댐 수몰민) 정착까지 20 여 년이 소요됐다. 식량난이 심각했던 시절에 진행된 사업은 정작 식량난이 해결된 1980년 대 중반에 들어서야 쌀을 생산하는 상황이 됐다.
새만금 사업은 식량난이 해결된 1980년 대 후반에 구체적으로 기획됐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이 사업은 절대 순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농지보다 생산성이 높은 바다와 갯벌이 사라졌고, 지역 주민의 극심한 갈등으로 계속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식량생산이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토목사업에 든든한 지원세력이었던 정부 내 경제부처가(당시 경제기획원)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농지확보를 위한 새만금사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새만금 신시도 갑문 전경.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서 수질 상태를 급속도로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 이철재
새만금사업의 실제 추진 배경은 자치단체, 정치인, 관료집단, 건설사 등의 관점에서 풀이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자치단체는 인구 유출에 따른 자치단체의 영향력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지역의 성장연합을 동원해 외부 자원(국가 예산)을 끌어들인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정치인들은 지역개발이라는 일회용 선심성 공약으로 표를 얻고자 했고, 이를 부축인 것은 관료집단이었는데, 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냄으로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건설사들은 중동 건설경기 특수의 퇴조에 따라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위해 국내에 대형 건설 사업을 벌여야 했었다. 결국 이익을 위해 결탁한 이들의 의해 새만금사업은 추진된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1987년 대선에서 전북권의 표를 의식한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이를 공약화 되면서 공식화 됐지만, 사업의 타당성 문제로 경제 부처의 비판적 입장 때문에 실제 방조제 착공은 4년이 지난 1991년 11월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새만금 방조제가 착공하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 거래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내일신문 환경전문기자인 남준기 기자는 이전 정부 농림부의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태우 정권의 중간 평가를 연기하는 조건으로 새만금 착공을 하게 된 것”이라 말하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할 당시, 전북지역에서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로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지역의 여론은 새만금 홀대론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왜곡하는 등 새만금사업의 추진 과정은 지역정서에 기댄 정치적 행위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 등에서 여야 정치인들은 누가 더 허황된 새만금 그림을 잘 그리는 가를 경쟁하듯이 관련된 공약을 쏟아 냈다. 그야말로 새만금 정치판은 신기루 전쟁인 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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