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인천시 인구는 300만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을
거라 호언했던 송도신도시는 현재 아파트 천국이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새로 생기면 공천을 노릴 인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인천시 곳곳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아파트마다 입주민의 수를 늘리면서 인구 규모는 부산을 위협한다. 늘어나는 인천시민과 국회의원들은 인천 정서를 어느 정도
공유할까?
드넓었던 갯벌을 거듭 메우고, 이웃 지방을 흡수하며 경계를 넓혀온 인천이지만, 인천에서
태어나 여태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은 중장년 토박이는 300만 인천시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숨 가쁘게 바뀌는 주위 풍광에 떠밀려
살아온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장소를 얼마나 기억할까? 직장이나 낮은 아파트 가격 때문에 인천을 찾은 또래보다 더 많은 지역 정서를 공유하리라
확신하기 어렵다.
인천에서 태어난 이 대부분은 자신의 첫 기억이 남은 장소를 마음에 간직하겠지만 그 장소는
대부분 온전하지 않을 것이다. 확장된 거리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어도 기억은 남았겠지만, 당시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지막한 집들이 어깨를
마주한 골목과 동네 어귀의 논밭은 물론이고 인사를 나누던 이웃은 그 장소에 없다. 낯모르는 이들이 드나드는 상가 건물이 차지한 간선도로를 지나면
천편일률적인 다가구주택과 아파트가 공간을 차지하는 지금의 인천에서 지역 정서를 나누기 곤란해졌다. 나눌 지역 정서마저 희박해졌다.
편의와 경제적 평판을 이유로 자신이 살 곳을 정하면서 지역에 따라, 주거 형태에 따라,
계층이 새롭게 발생한다. 나이 든 아파트 경비원에게 막말이 횡행하는 장소에서 편의를 방해하는 이웃과 낯붉히기 일쑤고, 돈의 크기가 만든 계층은
새로운 평판을 향해 부나비처럼 장소를 이동한다. 그러니 자신이 사는 장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시민들은 지역 정서 따위에 관심이 없다. 자신이
사는 장소에서 살가운 이웃을 만나기 어렵다. 요즘의 도시는 그렇게 지역의 정서를 담은 장소를 잃었다. 태어난 아이는 장차 무엇을 기억할까? 설마
‘장소’는 아니겠지.
아직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는 인천시 동구의 한 골목에서 모처럼 이웃의 살가움을 보았다.
전깃줄이 복잡한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를 사서 건네는 게 아닌가.
아파트단지일 게 분명한 재개발이 마을을 휩쓸지 않는다면 그 모습이 지속될 텐데, 이웃이 마음을 모아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공동체’와 비슷한
장소를 만들면 어떨까. 이른바 ‘마을 만들기’를 기대해 보았는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열강의 요구로 개항한 인천은 지역에 많은 노동자를 불러들였고, 그들은 항구와 떨어진 곳에
옹기종기 모였다. ‘배다리’라는 마을이다. 이후 헌책방 골목이 들어서고, 마을과 학교와 양조장들이 이웃으로 분주하던 배다리는 한동안 인천의
정서를 간직하는 대표적 골목이었다. 하지만 도시가 외곽으로 급하게 확장되면서 시민들 발길이 그만 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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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29일 열린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축제에서 초대 가수가 노래하고 있다.(사진 출처 = 인천시 중구청
홈페이지) |
토박이도 배다리를 잊어갈 즈음, 대형 트럭이 질주하는 산업도로로 배다리가 뭉개질 위기에
처했던 적 있다. 그때 인천의 정서를 간직하는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난폭한 개발을 막았고, 산업도로 계획이 지하로 수정된 현재 배다리로 시민들이
모이며 마음을 나눈다. 하지만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배다리로 모이는 이웃들의 의견을 백안시하는 지방정부가 더 근사한(?) 계획을 밀어붙이려
들기 때문이다.
인천시 중구는 개항의 역사를 간직하는 건축물과 골목, 그리고 주거형태를 엿볼 수 있는
거리를 간직한다. 시민들이 번쩍번쩍 확장되는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근래 쇠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장소의 가치를 인식한 시민이 다시 모여들면서
최근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전문가와 힘을 모아 역사를 간직하는 건물의 외관을 살리며 이야기를 만들어가자 이웃과 방문객이 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정서를 잃었던 인천시민들도 최근 발길을 되돌리는데, 관광객이 모인다 생각한 걸까? 지방자치단체장의 엉뚱한 발상이 지역의 정서를
뒤흔든다.
오로지 관광객의 돈을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아무 관계없는 ‘각국
거리’가 천박하게 계획되고, 그 계획에 놀란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빗발쳐도 졸속 추진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잊은 것인지, 자신을 지역의
왕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거리를 살려 가던 시민들을 한사코 외면하는 단체장은 장소를 망친다. 그런 장소는 인천시 중구에 더 있다. 관광객이
운집한다고 관에서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동화마을’이다.
지역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양동화책을 옮겨 놓은 그림과 조악한 조형물로 골목과 마당을
채웠지만 정작 동화마을에 사는 주민의 의견을 거의 담지 않았다. 주민의 참여가 없는 장소에서 주민은 전시물이거나 앵벌이다. 골목을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은 양해 없이 동화마을의 집안을 기웃거리며 사진기를 들이대니, 의지 없이 전시된 주민들은 마뜩치 않다.
경남 통영시에서 9년 동안 ‘푸른통영21’ 사무국장을 맡아온 윤미숙 사무국장이 지난해
말, 느닷없이 해고되었다.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동피랑 마을을 벽화로 살려 내 통영시의 랜드마크로 살려낸 윤미숙은 주민들과 함께 정서가
긷든 장소를 만들어 냈다. 그러자 여러 지역에서 사례를 배우러 찾아왔고 명성을 찾아 방문객이 늘어나 골목을 비롯해 통영시의 경제를 살려 내는 큰
힘이 되었다. 처음부터 주민의 마음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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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피랑마을.(사진 출처 = 통영시티투어
홈페이지) | 동피랑 벽화마을의 사례는 인근 섬 연대도로 이어져 ‘연대도 에코아일랜드’를 조성하고
‘서피랑 99계단’으로 주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왔지만 윤미숙은 지자체장이 보낸 해고통지를 아무런 설명 없이 받아야 했다. 마음을 모았기에
주민들은 방문객들에게 친절했고, 그 공과를 살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브랜드 대상’을 수여했지만, 이제 동피랑은 내일을 걱정하게
생겼다. 주민 의견 수렴조차 없는 인사조처가 장소의 정서를 흔들지 모른다.
마을은 회색 아파트단지와 달리 돈과 똑똑한 전문가로 뚝딱 만들어지는 장소가 아니다.
깃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면서 하나 둘 문화와 정성이 이어질 때 장소는 공동체 공간으로 따뜻해진다. 멀지 않은 과거, 마을에서 음식과 정을
이웃과 나누던 조상의 삶이 그랬다.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처마를 공유하던 골목을 난폭하게 밀어낸 아스팔트와 대단위 아파트가 마을을 몰아낸
요즘, 도시는 낯설고 불안하다. 속도와 경쟁이 지배할수록 도시에 범죄, 특히 사이코패스가 스며든다.
도시의 차가움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로 장소를 바꿔 보려고 마음을 모은다.
그런 이웃이 있기에 아직 숨 쉴 만한 데, 섣부른 정책은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눈에 띄는 성과를 요구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선이
장소를 해친다. 이웃 없는 장소는 공허하다. 겉보기 아무리 근사해도, 사는 인구가 많아도, 공허한 장소는 마을을 흉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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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tholicnews.co.kr/news/photo/201501/13926_32196_2757.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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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피랑의 항공사진.(사진 출처 =
동피랑갤러리) |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