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마을의 식수원과 사랑방 역할을 하며 주민과 동고동락했다. 산업화
이후 상수도가 보편화되고,
수질
오염으로 우물은 그 기능을 잃으며 잊혔다. 마을의 중심
지로 향토 문화를 간직한 우물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도내 14개 문화원이 모인
전북문화원연합회는 현재 남아있는 도내 우물을
조사해 <전북 지방의 우물 이야기>(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정창환 전북문화원연합회장은
발간사에서 “洞里(동리, 마을)의 뜻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곳의 물을 먹고 산다고 했서 동네라고 했다”며 “어머님들이 정보를 소통하고,
매일
인사를 나누던 정겨운 장소였지만 우리 곁에서 멀어지는 우물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제라도 남아있는 이야기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어 향토자료 조사를 결정했다”고 출간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책은 14개 시·군별로 나눠 우물에 대한
소개를 나열했다. 860쪽이 넘는 ‘우물 총서’를 통해 향토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소재지와
축조 시기, 규격, 형태과 같은 정량적 정보와 함께 중간중간 전해오는 이야기를 곁들여 지루함을 달랜다.
남원시 인월면 자래마을에
있는 아랫샘이 효자샘으로 불린 연원과, 위뜸샘이 생불샘이 된 전설도 내려온다. 자래마을의 당산
나무에서 마을길로 올라가는 왼쪽 길 안쪽에 위한 아랫샘은 ‘곽 효자’로 효자샘이 됐다. 이 마을 주민 곽기치는
병환이 난 어머니가 쑥국을 먹고 싶다고 하자 엄동설한에 깊은 산골에서 쑥을 얻어 끓였다. 이를 먹은 어머니의 병이 완치되고, 추운 겨울날
생대추를 원하는 어머니를 위해 뜰에 심은 대추나무 밑에서 샘물을 놓고 3일간 기도를 했더니 마침 행상꾼이 생대추를 팔러 왔다는 일화다. 곽기치의
효행이 알려지자 지역 유림의 추천으로 순조 16년인 1816년 효자 정문이 하사됐다.
생불샘의 경우 가난으로 어머니는 절 식모를,
아들은 머슴살이를 하던 모자의 이야기다. 어느날 아들은 주인의 심부름으로 하동에서
소금을 사 오다 그만 함양군 마천면 두뭇소에 가마니를 빠뜨린다. 책망이 두려운 아들은 이때부터 산으로 들어가
산짐승처럼 살았다. 그러던 중 승려의 주색잡기를 목격하고 쫓아가 혼내자, 승려들이 이를 도사나 술사로 여겨 모셨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승려들이
억울해하며 뒷담화를 하면 어김없이
두통이나
복통이 생겨 이후 생불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