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담론
2014년1월2일 소셜이노베이션그룹
‘사회혁신’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학술적인 논문에서, 민간 영역의 다양한 조직들에서, 그리고 사회문제를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다양한 모습들에서 ‘사회혁신’은 이제 상식적인 수준의 관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바로 사회혁신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사회혁신의 주도적인 리더로서의 삶이 토대가 되어 시장이 되었다고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혁신은 단순한 개념을 넘어 시대정신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혁신은 사전적으로 보면, “사회혁신 = 사회+혁신”입니다.
그러나 총체는 부분의 합인 전체보다 크다고, ‘사회혁신’은 부분으로서 ‘사회’와 ‘혁신’의 합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함께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사회혁신’은 명제적 개념이 아니라 성운적 개념이기 때문에, 아무리 숙고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설명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명석, 판명하게 한정해서 정의(definition)내리기는 힘들며, 다만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narrative)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멀리서 보면, 우주에 분명 개별적인 별이 아니라 별의 무리로서 성운이 존재하지만, 성운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어디까지가 성운의 안이고, 어디서부터가 성운의 밖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사회혁신을 말하지만, 도대체 사회혁신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이며, 무엇이 진정한 사회혁신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사회혁신’의 보다 정확한 의미를 정의내리거나 한정해서 설명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혁신’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구나 하는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하며, 다르게 생각하는 그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라는 대화편에서 ‘참된 앎’이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리고 각 개인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생각이 아니라, ‘앎을 얻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에 관심을 가진 관계된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정당화된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의 본질에 대해서 참된 앎을 얻고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관계된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당화된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목표와 기대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어떤 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미분적인 접근과 적분적인 접근은 대단히 유용한 방법론이라 생각합니다. 미분과 적분은 수학의 한 분과가 아니라 바로 참된 앎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인 것입니다.
미분적으로 생각해보면, 사회혁신은 사회+혁신의 결합어이기 때문에, 우선 ‘사회’와 ‘혁신’ 각각의 의미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중, 고등학교 ‘사회’수업도 아니고, 아니 웬 ‘사회’에 대한 개념이해냐고 반문하실 수 있지만,
사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정치’, ‘경제’, ‘사회’로 분류되는 ‘사회’의 의미는 ‘사회’의 온전하고 풍성한 의미가 대단히 축소되고 협의적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의 본래적인 의미가 왜곡되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회’는 전체로서의 사회의 한 부분이나 분과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총체로서의 ‘사회’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개념이 바로 ‘폴리스’입니다.
[사회혁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담론] 보고서 다운받기 –> 사회혁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담론_201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