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프란치스코교황, 스칼파리

2014. 8. 17. 00:18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이 모든 것은 교황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9월 11일, 이탈리아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가 실렸다.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도발적인 질문ㅡ‘무신론자가 죄를 지으면 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등ㅡ에 대한 답이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보도되었고, 논쟁은 크게 확산되었다. 이후 교황은 스칼파리에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그렇게 10월 1일, 둘은 교황의 소박한 거처 산타 마르타 관의 작은 방에서 만났다.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는 오랫동안 교회 권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한 언론인에게 보낸 교황의 편지로 인해 벌어진 모든 논쟁을 담은 책이다. 1부에는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질문과 교황의 답장, 두 사람의 대화가 실려 있고, 2부에는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파문당한 매튜 폭스 등 세계 지성들이 《라 레푸블리카》의 지면 위에서 펼쳐낸 토론이 담겨 있다.

스칼파리와 열린 마음으로 진솔하게 나눈 대화에서 교황은 “신하들을 거느리는 궁전 같은 분위기는 교황제도의 나병”이라고 말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신자와 무신론자라는 차이를 넘어 모두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그걸 위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밝히는 등 복음과 관용을 호소하는 교회 본연의 임무를 되새기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저자 : 프란치스코 교황
저자 프란치스코 교황 Papa Francis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1969년에 사제서품을 받았고, 1992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로, 1998년에 아르헨티나의 주교로 임명받았다. 2001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05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013년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역사상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며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다. 최초로 ‘프란치스코‘란 교황명을 선택하면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었다.

저자 : 스칼파리 외
저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Eugenio Scalfari는 1924년 치비타베키아에서 태어났다. 1950년부터 언론인으로서 《일 몬도》 지와 《레우로페오》 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55년 주간지 《레스프레소》를 창간했고 1963년부터 1969년까지 편집장으로 일했다. 《라 레푸블리카》를 1976년에 창간해 1996년까지 총 지휘를 맡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로 키워 냈다.
그 외
비토 만쿠조 (신학자), 호아킨 나바로 발스 (의학 및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움베르토 베로네지 (의사), 아드리아노 프로스페리 (역사학자), 엔조 비앙키 (종교인, 출판인),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신학 교수, 소설가), 훌리안 카론 (신학자), 귀도 체로네티 (시인, 인문학자), 한스 큉 (신학자), 마시모 카차리 (철학 교수), 구스타보 자그레벨스키 (법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해방신학자), 매튜 폭스 (종교인)

역자 : 최수철
역자 최수철은 소설가.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공중누각》 《화두, 기록, 화석》 《내 정신의 그믐》 《분신들》 《모든 신포도 밑에는 여우가 있
다》 《몽타주》 《갓길에서의 짧은 잠》을 지었다. 장편소설로는 《고래 뱃속에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4부작) 《벽화 그리는 남자》 《불멸과 소멸》 《매미》 《페스트》 《침대》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가 있다. 윤동주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서로는 《저주받은 시인들》(공역), 《매혹》 《황금 물고기》 《우연》 《불타는 가슴》 《사랑의 대지》《이방인》이 있다.

역자 : 윤병언
역자 윤병언은 서울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이탈리아 피렌체 국립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에리 데 루카의 《나비의 무게》, 필리페 다베리오의 《상상 박물관》, 니콜로 암마니티의 《나는 두렵지 않아》 등을 번역했고 이탈리아의 인문학 및 문학 작품을 국내에 활발히 소개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자로 선정되어 가브리엘 단눈치오의 《인노첸테》를 한국어로,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이탈리아어로 옮겼고 한국문학 작품을 해외에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

목차

프란치스코 교황과 무신론자의 대화

이 책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서문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 1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스칼파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7월 7일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 2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칼파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8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1일

교황에게 던진 질문
길 잃은 양의 질문
스칼파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1일

교황과 무신론자의 대화
타인에 대한 사랑이 공동선의 씨앗입니다
정리?스칼파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10월 1일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교황의 편지를 계기로 촉발된 지성인들의 열린 토론

신자와 무신론자의 본질적인 차이 : 인간의 잠재된 신성에 대한 믿음
비토 만쿠조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7월 13일

모더니티와 그리스도교의 조화 : 믿음이 열린 자세를 만든다
호아킨 나바로 발스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4일

왜 교황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가 : 세속적 윤리관을 향해 열린 길
움베르토 베로네지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4일

새로운 교황의 제안 : ‘시장’의 윤리관 대신 연대감을 키워야 한다
아드리아노 프로스페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5일

사랑에 대한 진실을 들려주시길 : 형제애를 자기애의 단계로 향상시킨다는 것
스칼파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5일

함께 걷는다는 것의 의미 : 혼자서 이루지 못할 일의 실현 가능성
엔조 비앙키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6일

하느님 앞에 홀로 서서 : 선량한 마음이 모두를 지키리라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7일

빛을 향한 소망 : 예수의 독보적인 면은 소외가 아닌 소통이다
훌리안 카론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8일

나는 보편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 : 살인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귀도 체로네티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8일

교황의 실질적인 도전 : ‘빈곤한 자’에 대한 새로운 정의
한스 큉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20일

대화와 용서 사이의 믿음 : 신앙이란 대가 없이 주어지는 하나의 은총이다
마시모 카차리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18일

진정한 선을 찾아가는 길 : 무신론자들과도 함께 걷는 법
구스타보 자그레벨스키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23일

제3차 바티칸 공의회의 필요성 : ‘독보적’ 성격의 교회와 교리에 대한 고집을 버려야 한다
레오나르도 보프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27일

진정한 믿음을 위하여 : 신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매튜 폭스 / <라 레푸블리카> 2013년 9월 29일

========================================================================================================================================

출판사 서평에서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 교황이 언론인에게 편지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교황이 신앙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의 양심의 가치에 대해서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또한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과 더불어 그의 강생과 부활을 되새김으로써, 계율의 교회에서 복음의 교회로 돌아가려는 의지와, 단죄보다는 관용을 호소하는 교회의 본연의 임무를 되새기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도 무척 중요하다.”
-에우로 마치오(《라 레푸블리카》 발행인), 13~14쪽.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교황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9월 11일, 이탈리아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가 실렸다.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교회 권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온 한 언론인의 칼럼에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놀랐다. 교황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솔직한 견해가 담겨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릅니다.”
“진리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품고 있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교황의 파격적인 이 편지로 인해 논쟁이 시작되었다. 교황이 드디어 권위의 주교관을 벗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며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교황이 정말 그 편지를 쓴 게 맞느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보도되었고, 논쟁은 더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칼파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기 너머에서 교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데 교황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의 생각을 더 알고 싶으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그렇게 10월 1일, 교황의 소박하디소박한 거처, 산타 마르타 관의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신하들을 거느리는 궁전 같은 분위기는 교황제도의 나병입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재난은 젊은이들이 겪는 실업과 노인들이 처해 있는 고독입니다.”
“저는 변화를 꾀하기 위해 제힘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교황은 자기 배만 불리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신자와 무신론자라는 차이를 넘어 모두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그걸 위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밝혔다. 교황은 스칼파리와 열린 마음으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눴다.
《라 레푸블리카》에서는 두 사람의 논의를 더 이어 나가기 위해 지성인들의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이 토론에는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파문당한 매튜 폭스, 종교사상 사학자 아드리아노 프로스페리 등이 참여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조를 지키기 위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교회가 당면한 쟁점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들을 풀어 가야 하는지,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어야 하는지, 종교인과 비종교인,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의 논리를 펼쳤다.
이 책은 교황의 편지로 인해 벌어진 이 모든 논쟁을 담은 책이다. 1부에는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질문과 교황의 답장, 두 사람의 대화가 담겨 있고, 2부에는 《라 레푸블리카》 지면 위에서 펼쳐진 세계 지성인들의 토론이 실려 있다.

신은 신앙심이 없어도 양심을 따르는 사람을 용서할 것이다
-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던진 질문들과 교황의 답변

무신론자인 스칼파리는 칼럼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의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무신론자는 각자의 상대적인 합리성을 존중하는 반면, 신자는 신의 절대성을 믿는다. 하나의 진리가 있는가, 아니면 사람 수만큼의 진리가 있는가? 이러한 무신론자의 태도는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죄가 되는가? 무신론자가 죄를 지으면 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어느 정도까지 그 목표에 도달했는가? 삼위일체라는 그리스도교만의 독특한 특성은 다른 종교들과 비교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질문들에 보편적인 관심이 담겨 있다고 판단하고, 질문이 담고 있는 핵심에 직접 다가서서 답변을 내놓았다. “누군가 진지하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호소하면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신론자가 죄를 짓더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각자의 양심을 따른다면 신이 용서해 주실 거라는 의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렇게 답할 수 있었던 근거는 예수의 언행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는 “자기를 거절한 사람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기적을 보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요체라고 말한다. 교회가 믿지 않는 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은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는 진리를 일깨우기 위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무신론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교황은 말한다. “예수를 통해 표현한 사랑이 바로 진리이고, 따라서 진리는 곧 관계다!”

세계의 위기 속에서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공존을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법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한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자기애는 훨씬 강해졌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비할 수 없이 줄어들었다. 신의 사랑을 알리고 예수의 언행을 삶에서 실천해야 할 종교지도자들과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사회지도층이 오랫동안 부재했다. 헐벗은 예수 옆에 선 잘 차려 입은 교황, 척박한 삶의 광장 옆에 있는 화려한 교회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이 시대가 당면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제 우리 앞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 있다. 그는 빈민가에서 미사를 드리고,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와 에이즈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세례를 베푼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병폐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을 괴롭히는 가장 심각한 재난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실업과 노인들이 처해 있는 고독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곁에서 돌봐 줄 손길이 필요하지요. 젊은이들에게는 일과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것들을 얻지 못했고, 불행하게도 이제 더는 그런 것들을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현재라는 시간에 짓눌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현재에 짓눌린 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욕구도 없이, 계획을 세우고 앞날을 꿈꾸고 가족을 꾸리려고 노력할 의지도 없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견뎌 나가는 것이 가능합니까? 제 생각에는 그 점들이 바로 교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과 무신론자의 대화》, 67쪽

이러한 교황의 문제 인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교회가 사회에서 해야 할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가난한 자’는 누구이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야 할 ‘한 조각의 길’은 어디인가?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에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안이 담겨 있다.

책속으로 추가

교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스칼파리 아까 당신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을 제게 상기시키셨지요. 당신은 이 가르침이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프란치스코 교황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에고이즘이 늘어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었지요.
스칼파리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군요. 자신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이 적어도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 말입니다. 당신의 교회는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심기일전하여 구체적인 준비를 하였나요?
프란치스코 교황 당신이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스칼파리 저는 바티칸의 벽들 사이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의 제도적인 조직 속에서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무척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이 소망하는 청빈과 선교의 교회보다는 현실적인 제도가 더 우세한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실제 사정이 그러한 게 사실이고, 그 점에서 기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프란체스코 자신도 그 시절에 교단의 규율을 인정받기 위해 로마의 교계제도와 그리고 교황과 오랫동안 협상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상당한 타협의 대가로 요구를 관철할 수 있었지요.
스칼파리 당신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합니까?
프란치스코 교황 저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아니고, 그분이 가졌던 힘이나 높은 덕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로마의 대주교이고, 가톨릭 세계의 교황입니다. 가장 먼저 저는 여덟 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제 자문단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분들은 궁정의 신하들이 아니라 저와 같은 의지로 충만한 지혜로운 사제들이지요. 이 자문단은 수직적인 체제에서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체제에서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마르티니 추기경이 공의회나 교구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했을 때, 그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강인함과 끈기도 발휘해야 하는 일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과 스칼파리, 67쪽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황의 편지를 계기로 촉발된 지성인들의 열린 토론》

신자와 무신론자의 본질적인 차이
신자와 무신론자들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교회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교황은 교회를 ‘신앙 공동체’라는 말로 아주 적확하게 정의한 바 있다. 교회가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 교회에 속한 사람 중에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무관한 이들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교회에 속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하느님과 밀접하게 맺어진 이들을 얼마나 많이 꼽을 수 있단 말인가. 요점은 그리스도도 교회도 아니다. 그 사람의 인성(人性)일 뿐이다.
-비토 만쿠조(신학자), 110~111쪽
----------------------------------------------------------
모더니티와 그리스도교의 조화
프란치스코 교황이 편지를 쓰기로 작정하며 용기를 냈던 이유는 그가 증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가 증언하고자 했던 것은 믿음이 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굳건함과 열린 자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특히 보통 사람들과 대화하겠다는 그의 선택은 사실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절대주의와 정반대되는 선택이다. 아마 교황 프란치스코의 행동을 현대인이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강렬한 문제 제기는 더 이상 지켜야 할 우상이 없고 증언해야 할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종류의 스캔들을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던 한 매력적인 인물이 일으켰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다름 아닌 나사렛 예수였다. -호아킨 나바로 발스(의학 및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122~123쪽
----------------------------------------------------------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베네데토 크로체는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없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제목의 반대 문장, 즉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입증할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원칙들을 바탕으로 세속적 윤리관을 정립할 수 있다. 반드시 신이 개입해야 할 필요가 없는, 그러나 틀림없이 인간이 중심에 있는 윤리관이 가능할 것이다. 초월성에 대한 믿음을 제외하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안에 들어 있는 요소 가운데 인간의 의식 속에, 미움보다는 사랑을 지향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 속에 이미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은 없다. -움베르토 베로네지(의사, 전 이탈리아 보건부장관), 128쪽
----------------------------------------------------------
예수의 삶을 우리 일상에서 재현한다는 것
나사렛 예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 세계에서 신의 삶을 서술하는 존재다. 누군가에게 그는 현자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스칼파리가 말한 대로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할 줄 알았던’ 아주 독특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죽음을 이기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인물이다. 이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본질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죽음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극단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과연 유익한 것일까?” 내게는 각자가 일상이라는 단순한 현실 속에서 이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문가들에게만 국한된 대화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삶이기 때문이다. -엔조 비앙키(종교인, 출판인), 152~153쪽
----------------------------------------------------------
나는 보편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
보편적인 사랑을 외치는 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70억이 올라탄 이 광인들의 배 위에서 모두를 한꺼번에 싸잡아서 사랑한다는 건 곧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모든 사람이 루터의 동냥아치라 하더라도 모두가 보편적 사랑의 품 안에 안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얼굴에 염산 세례를 받아서 절망 가운데 빠져 있다면 한 여인을 그런 식으로 취급한 그 인간에게 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교황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그가 품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을 학살하는 적지 않은 수의 살인마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자는 지상 명령에 인간으로서, 진정한 인간으로서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 귀도 체로네티(시인, 인문학자), 173~175쪽
----------------------------------------------------------
신앙이란 대가 없이 주어지는 하나의 은총이다
스칼파리는 이 신앙이 가지고 있는 모순의 정수가 ‘용서’라는 문제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용서란 완전한 선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선사라는 기준은 ‘은총’을 통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런 종류의 믿음에 무신론자가 관심을 가지는 건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그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를 괴롭히는가? 그가 절대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고려하는 것은 어떤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이 신앙이 안고 있는 모순이다. 다시 말해 이 믿음이 안고 있는 극단적인 모순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앎에의 길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선택받은 자들의 교회를 전혀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 ‘민중’으로부터, ‘세인’들로부터 차별화된 지고한 교회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 모순은 다름 아닌 세상의 소금이다. 모두의 길을 지탱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바로 이 모순이다. 하지만 길은 하나, 그리스도다. 진정한 삶이란 영원한 존재의 섭리 안에 거하는 삶, 그를 본받아 진실의 섭리 안에 거하는 삶이다. 그 진실이란 곧 십자가와 부활을 의미한다. 즉 무신론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신앙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다.
- 마시모 카차리(철학 교수), 186~188쪽

[교보문고 제공]

책속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무신론자의 대화》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다른 유일신 종교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단 하나의 신만을 내세우고 있고, 삼위일체의 교리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낯설기만 하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무척 독특한 유일신 종교이다. 성서 속의 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독생자도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을 재현할 수도 없는, 알라 같은 신을 믿는 다른 유일신과 비교할 때 그리스도교는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스칼파리, 63쪽

- 귀하는 또한 7월 7일의 칼럼에서, 신의 절대적인 초월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하느님 아들의 강생에 확고하게 중심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독특한 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제게 묻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특성은 신앙심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아바’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 그리고 실재하는 성령의 빛에, 더 나아가 예수가 사랑의 증표로서 적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과 맺은 관계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계시한다고 말입니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우리에게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예수와 우리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려는 게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우리가 유일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우리 모두가 서로 형제라는 사실을 말해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독특함은 배척이 아니라 소통의 원천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51~52쪽
무신론자도 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고 믿음을 얻으려 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교회가 죄로 규정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칼파리, 39쪽

- 제가 보기에 귀하가 특히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귀하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이 귀하처럼 믿음도 없고 믿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용서할 것인지 아닌지 제게 물었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있는데, 만약 누군가가 진지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호소를 하면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죄라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역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심에 귀 기울이고 양심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선이나 악으로 느끼는 어떤 대상 앞에서 나름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나 불행이 좌우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54~55쪽
----------------------------------------------------------
진리는 절대적인가
신자는 신에 의해 계시된 진실을 믿는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절대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절대적인 진실도 없으며, 다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일련의 진실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교회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유의 방식은 오류나 죄를 범하는 것인가? -스칼파리, 39~40쪽

-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는 신자들에게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를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55~56쪽
----------------------------------------------------------
나는 예수를 이렇게 만났다
제 경우에 믿음은 예수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가슴을 뒤흔들고 제 삶에 새로운 진로와 방향성을 부여한 개인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가 몸담고 있던 신앙 공동체 덕분에 가능했던 만남이었고, 그곳에서 저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의례를 통해 샘솟는 물처럼 예수로부터 내게로 전해지는 새로운 삶에 눈뜨게 되었고, 모든 사람과의 우애, 그리스도의 가장 진정한 모습을 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정신에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없었다면 저는 결코 예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비록 믿음이라는 무한한 축복은 인간이라는 허약한 점토 꽃병 속에 애초에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