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정치 이대로 물러설 것인가
2014. 6. 27. 16:24ㆍ시민, 그리고 마을/로컬 파티
풀뿌리정치 이대로 물러설 것인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양당을 축으로 하는 현재의 정치제도는 콘크리트보다 단단하다. 지난 6ㆍ4 지방선거에서 마을공동체 풀뿌리 후보들은 뿌리내리기에 또 실패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4명의 후보가 모두 고배를 마신 ‘마포파티’는 재도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는 정당정치에 비해 대응이 느리고 폭발력은 적을지 모르지만 생활에서의 필요를 그대로 정치로 전달하려는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1980년 일본의 가나가와현은 당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합성세제의 추방 여부를 두고 지방의회 내부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싸움에서 합성세제 추방 조례 제정이 부결되며 주민들의 요구는 꺾이고 마는 듯했다. 현 내 7개 시의회 모두에서 조례가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에 자극을 받은 주민들과 현 내 생활협동조합들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할 지방의회 의원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결국 주민들은 3년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주민들의 손으로 추대된 독자후보를 처음으로 가와사키시의회에 진출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구의원 한 명을 못 내고 뿔나서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구의회가 새누리랑 새정치 두 당 의원으로만 구성되도록 만드는 선거 제도는 손 좀 봐야 하지 않나요?”
‘마포파티’를 지지한 한 주민의 말이다. 올해 6·4 지방선거에서는 크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나선 색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진영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주민의 독자 정치조직 ‘마포파티’의 이름으로 후보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마포구 안에서만 네 명의 구의원 후보가 ‘주민후보’로 나왔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낙선했다. 풀뿌리가 기성 정치제도 안에 한 가닥 뿌리를 내릴 기회는 또 한 번 다음으로 미뤄진 셈이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나선 색다른 실험
마포파티의 네 후보는 모두 2인의 의원을 뽑는 각 선거구에서 3등을 차지했다. 무소속으로 나선 세 후보는 10%대 후반의 득표율을, 정의당 소속으로 나온 오진아 후보만 20%를 겨우 넘겼다. 당선자는 모두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다. 현행 정당법상 정당으로 인정되지 않고 그래서 공천권도 없는 이름뿐인 지역당이 첫 도전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지방의회까지 뿌리 깊은 양당체제를 확인시켜주는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만큼의 득표율이라도 나온 것은 마포지역의 특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마포파티를 세운 주축 가운데는 대표적인 주민자치 마을공동체인 성미산마을 주민들이 있었다.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길어진 세월호 참사의 여파 때문에 주민들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함께 나선 기간이 짧았던 점을 아쉬워했다. “세월호 추모 촛불을 켜는 동안 마을 주민들의 이목도 모두 그쪽으로 쏠려 마포파티의 선거전략에 대해선 다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성미산마을의 양희경 운영위원장은 “선거를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서야 부랴부랴 주민들이 모이고 앞으로의 과정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 외연 넓히는 데 실패 자성
다소 늦기도 한 데다 주민후보라는 입지 때문에 무소속을 선택해 얼마간의 조직력까지 희생한 후보들이지만 선거운동 과정 자체는 묘한 활력이 있었다. 자원봉사로 주민후보 유세에 참여했던 주민 김지원씨는 그 까닭을 “마음 내켜서 하는 일이니까”라고 설명했다. “전 뭐 주민후보들이 될 거다 하는 기대로 (유세에) 나간 건 아니에요. 흔히들 최악을 추려내고 차악을 고르는 게 투표라고 그러지만 이번에는 내가 정말 맘에 드는 후보가 있으니까 괜히 더 나서고 싶고 그런 거지.” 큰 관심을 받는 단체장이나 교육감 개표현황에 밀리고 출구조사조차 없는 구의회 개표실황은 방송에서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김씨를 선거날 밤 늦게까지 TV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게 만든 건 주민후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성미산마을이 중심이 되어 마포지역에서 주민후보를 내고 지방의회로 입성시키려 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에는 마포구 내 세 선거구에서 무소속 주민후보를 내며 최고 32%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국 구의회 입성에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풀뿌리 후보 추대를 위한 기구인 마포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를 조직해 ‘주민공천’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가미하며 한 명의 주민후보를 등록했지만 또 낙선의 쓴 잔을 맛본 바 있다.
마포지역 주민들과 마포파티의 첫 번째 도전 역시 실패로 돌아갔지만 마포파티로 물꼬를 튼 새로운 주민자치의 실험은 지방선거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가나가와현의 예처럼 재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 위원장은 “조직에 기반해 선거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정치에 비해 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는 대응이 느리고 폭발력은 적을지 모르지만 생활에서의 필요를 그대로 정치로 전달하려는 꾸준한 움직임이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운동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지역의 이러한 주민자치 움직임은 성미산마을을 비롯해 지역주민 당사자운동의 오랜 경험과 연결돼 있다. 2012년 합정동 대형마트 입점 저지활동에 전통시장 상인뿐만 아니라 지역 활동가들이 결합한 것은 2002년 성미산 지키기 투쟁부터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까지 시민사회 및 노동운동 세력들이 마포를 중심으로 주민들과 연대 네트워크를 만들어놓은 데 힘입은 것이다. 성미산 마을공동체도 마을극장을 운영하는 문화협동조합과 성미산학교, 대동계 등 경제·교육·생활 조직을 갖추고 자생력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풀뿌리 주민자치의 외연을 넓히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옥천 지역공동체 전통 꾸준히 이어져
주민자치운동에 비교적 친화적인 진보정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낮은 성적을 거둔 것과 이 문제를 연결시키는 주민 의견도 있었다.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당의 전체 당선자수는 2010년 169명에서 올해 55명으로 크게 줄었다. 지역공동체 민중의집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 권민정씨는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공동체와 자치조직들이 있지만 이번 선거의 세월호 심판론처럼 큰 이슈가 나올 때 생활정치의 시각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라며 “참여하는 주민들 사이의 결속은 강하지만 그 의견을 밖으로 전하는 움직임은 사안에 따라 제한되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수도권이나 대도시 지역과는 달리 농촌을 기반으로 주민 주도의 자발적 지역공동체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정착한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충북 옥천군을 꼽을 수 있다. 옥천군 전체의 인구가 5만2000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양한 지역공동체운동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옥천순환경제공동체의 실험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시골’에 대한 이미지와는 달리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옥천지역의 사회적기업 몇 군데가 모여 결성된 조직이 특히 경제적 자립에 초점을 맞춘 주민의 자생적 공동체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옥천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해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민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분위기가 오래 됐어요.”
순환경제공동체에 참여하는 사회적기업 ‘함께여는세상’의 정순남씨는 위기가 오히려 단합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인구를 비롯해 생활경제권이 10분 거리인 대전으로 흡수되면서 점차 옥천의 지역 경기는 바닥을 치게 됐다. 옥천 안에서도 옥천읍내에만 3만명이 거주할 정도로 인구 편중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각 면마다 들어서던 5일장도 사라지거나 대다수 외지 상인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등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사회적기업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나서자 공설시장 상인회를 비롯해 지역 안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일반 기업들도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공동체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공동체가 예상을 넘어서 쑥쑥 커가던 당시를 웃으며 회상했다. “경제 자립도를 높이면 지역에 공헌하자, 애초엔 그런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사람이 하나둘씩 모이니까 더 아이디어도 많아지고 회의 때마다 활력이 돌았죠.” 정씨의 말을 주변에서 거들었다. “처음엔 농사짓는 어르신들 작물 제값이라도 받게 해드리려고, 그래서 영농조합 찾아 마을마다 돌아다니다 보니, 뭐 다들 또 건너건너 다 아는 어르신들이고, 그래서 자연스레 같이 합류하신 셈이죠.” 친환경영농조합 옥천살림까지 순환경제공동체에 참여하면서 지역 내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 역시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등 풀뿌리의 범위는 점차로 넓어지고 있다.
“경험 공유 풀뿌리운동 살아남을 것”
단순한 이익단체를 넘어서 주민공동체로 자리잡는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자활센터를 사회적기업에 연계시키는 일을 비롯해 농촌지역에서 점차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며느리들과 함께하는 사업들까지 시행되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비롯한 농촌의 취약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읽기 모임까지 꾸려졌다. “동화읽기 모임에서 첫 번째 강좌를 그림책 읽기로 시작했다. 한글을 못 읽는 외국인 학부모들이나 자녀들, 어르신들도 그림책은 같이 볼 수 있으니까.” 피부색도 다른 가족에, 희끗희끗한 머리까지 섞인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다양한 출신과 연령대의 구성원들이 한 데 모이는 모습이야말로 옥천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고스란히 담은 광경이었다.
사실상 옥천 전역을 포괄하는 주민공동체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나름의 지역적 전통이 바탕이 되고 있다. 특히 1989년 군민주 신문으로 출발한 옥천신문이 종합일간지를 비롯한 외지 언론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군내에서 가장 높은 구독률을 보일 정도로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공동체 조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역정당 운동도 ‘마포파티’가 생기기 10년 전인 2005년부터 ‘풀뿌리옥천당’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바 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직된 풀뿌리옥천당은 12명으로 시작한 초소형 정당으로 역시 정당법상의 정당으로 인정받진 못했고 지방의회 진출에도 실패했지만 수도권 중심·양대 정당 체제에 선구적으로 대안을 제시한 사례로 남아 있다.
서울 마포지역 공동체가 지역 주민자치의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가는 것과는 달리 옥천의 주민공동체가 직면한 고민은 따로 있다. 젊은층 인구가 지역을 벗어나는 해묵은 농촌지역의 고민에 더해 고령화가 진행되는 흐름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영농조합의 농민들 가운데는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많고 그래서 그분들을 도와 공동체 전체의 사업으로 판로개척에 도움을 드리면서 우리 공동체가 커지기도 했다.” 순환경제공동체 이채준 공동대표는 공동체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자생력과 안정성도 높아졌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주민공동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옥천당을 세울 정도의 새로운 시도는 물론 앞으로는 지금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역 내 남아 있는 젊은 세대나, 풀뿌리 공동체를 시도하는 다른 지역으로 경험을 전수하는 사업은 오히려 더 늘릴 계획이다.”
어쩌면 풀뿌리는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1980년 일본의 가나가와현은 당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합성세제의 추방 여부를 두고 지방의회 내부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싸움에서 합성세제 추방 조례 제정이 부결되며 주민들의 요구는 꺾이고 마는 듯했다. 현 내 7개 시의회 모두에서 조례가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에 자극을 받은 주민들과 현 내 생활협동조합들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할 지방의회 의원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결국 주민들은 3년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주민들의 손으로 추대된 독자후보를 처음으로 가와사키시의회에 진출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마포파티 제안자들이 지난 3월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지역정치모임을 만들기로 뜻을 모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마포파티 제공
“이번에도 구의원 한 명을 못 내고 뿔나서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구의회가 새누리랑 새정치 두 당 의원으로만 구성되도록 만드는 선거 제도는 손 좀 봐야 하지 않나요?”
‘마포파티’를 지지한 한 주민의 말이다. 올해 6·4 지방선거에서는 크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나선 색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진영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주민의 독자 정치조직 ‘마포파티’의 이름으로 후보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마포구 안에서만 네 명의 구의원 후보가 ‘주민후보’로 나왔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낙선했다. 풀뿌리가 기성 정치제도 안에 한 가닥 뿌리를 내릴 기회는 또 한 번 다음으로 미뤄진 셈이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나선 색다른 실험
마포파티의 네 후보는 모두 2인의 의원을 뽑는 각 선거구에서 3등을 차지했다. 무소속으로 나선 세 후보는 10%대 후반의 득표율을, 정의당 소속으로 나온 오진아 후보만 20%를 겨우 넘겼다. 당선자는 모두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다. 현행 정당법상 정당으로 인정되지 않고 그래서 공천권도 없는 이름뿐인 지역당이 첫 도전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지방의회까지 뿌리 깊은 양당체제를 확인시켜주는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만큼의 득표율이라도 나온 것은 마포지역의 특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마포파티를 세운 주축 가운데는 대표적인 주민자치 마을공동체인 성미산마을 주민들이 있었다.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길어진 세월호 참사의 여파 때문에 주민들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함께 나선 기간이 짧았던 점을 아쉬워했다. “세월호 추모 촛불을 켜는 동안 마을 주민들의 이목도 모두 그쪽으로 쏠려 마포파티의 선거전략에 대해선 다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성미산마을의 양희경 운영위원장은 “선거를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서야 부랴부랴 주민들이 모이고 앞으로의 과정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 외연 넓히는 데 실패 자성
다소 늦기도 한 데다 주민후보라는 입지 때문에 무소속을 선택해 얼마간의 조직력까지 희생한 후보들이지만 선거운동 과정 자체는 묘한 활력이 있었다. 자원봉사로 주민후보 유세에 참여했던 주민 김지원씨는 그 까닭을 “마음 내켜서 하는 일이니까”라고 설명했다. “전 뭐 주민후보들이 될 거다 하는 기대로 (유세에) 나간 건 아니에요. 흔히들 최악을 추려내고 차악을 고르는 게 투표라고 그러지만 이번에는 내가 정말 맘에 드는 후보가 있으니까 괜히 더 나서고 싶고 그런 거지.” 큰 관심을 받는 단체장이나 교육감 개표현황에 밀리고 출구조사조차 없는 구의회 개표실황은 방송에서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김씨를 선거날 밤 늦게까지 TV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게 만든 건 주민후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성미산마을이 중심이 되어 마포지역에서 주민후보를 내고 지방의회로 입성시키려 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에는 마포구 내 세 선거구에서 무소속 주민후보를 내며 최고 32%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국 구의회 입성에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풀뿌리 후보 추대를 위한 기구인 마포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를 조직해 ‘주민공천’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가미하며 한 명의 주민후보를 등록했지만 또 낙선의 쓴 잔을 맛본 바 있다.
마포지역 주민들과 마포파티의 첫 번째 도전 역시 실패로 돌아갔지만 마포파티로 물꼬를 튼 새로운 주민자치의 실험은 지방선거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가나가와현의 예처럼 재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 위원장은 “조직에 기반해 선거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정치에 비해 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는 대응이 느리고 폭발력은 적을지 모르지만 생활에서의 필요를 그대로 정치로 전달하려는 꾸준한 움직임이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운동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지역의 이러한 주민자치 움직임은 성미산마을을 비롯해 지역주민 당사자운동의 오랜 경험과 연결돼 있다. 2012년 합정동 대형마트 입점 저지활동에 전통시장 상인뿐만 아니라 지역 활동가들이 결합한 것은 2002년 성미산 지키기 투쟁부터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까지 시민사회 및 노동운동 세력들이 마포를 중심으로 주민들과 연대 네트워크를 만들어놓은 데 힘입은 것이다. 성미산 마을공동체도 마을극장을 운영하는 문화협동조합과 성미산학교, 대동계 등 경제·교육·생활 조직을 갖추고 자생력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풀뿌리 주민자치의 외연을 넓히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옥천 지역공동체 전통 꾸준히 이어져
주민자치운동에 비교적 친화적인 진보정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낮은 성적을 거둔 것과 이 문제를 연결시키는 주민 의견도 있었다.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당의 전체 당선자수는 2010년 169명에서 올해 55명으로 크게 줄었다. 지역공동체 민중의집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 권민정씨는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공동체와 자치조직들이 있지만 이번 선거의 세월호 심판론처럼 큰 이슈가 나올 때 생활정치의 시각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라며 “참여하는 주민들 사이의 결속은 강하지만 그 의견을 밖으로 전하는 움직임은 사안에 따라 제한되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수도권이나 대도시 지역과는 달리 농촌을 기반으로 주민 주도의 자발적 지역공동체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정착한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충북 옥천군을 꼽을 수 있다. 옥천군 전체의 인구가 5만2000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양한 지역공동체운동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옥천순환경제공동체의 실험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시골’에 대한 이미지와는 달리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옥천지역의 사회적기업 몇 군데가 모여 결성된 조직이 특히 경제적 자립에 초점을 맞춘 주민의 자생적 공동체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옥천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해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민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분위기가 오래 됐어요.”
순환경제공동체에 참여하는 사회적기업 ‘함께여는세상’의 정순남씨는 위기가 오히려 단합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인구를 비롯해 생활경제권이 10분 거리인 대전으로 흡수되면서 점차 옥천의 지역 경기는 바닥을 치게 됐다. 옥천 안에서도 옥천읍내에만 3만명이 거주할 정도로 인구 편중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각 면마다 들어서던 5일장도 사라지거나 대다수 외지 상인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등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사회적기업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나서자 공설시장 상인회를 비롯해 지역 안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일반 기업들도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공동체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공동체가 예상을 넘어서 쑥쑥 커가던 당시를 웃으며 회상했다. “경제 자립도를 높이면 지역에 공헌하자, 애초엔 그런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사람이 하나둘씩 모이니까 더 아이디어도 많아지고 회의 때마다 활력이 돌았죠.” 정씨의 말을 주변에서 거들었다. “처음엔 농사짓는 어르신들 작물 제값이라도 받게 해드리려고, 그래서 영농조합 찾아 마을마다 돌아다니다 보니, 뭐 다들 또 건너건너 다 아는 어르신들이고, 그래서 자연스레 같이 합류하신 셈이죠.” 친환경영농조합 옥천살림까지 순환경제공동체에 참여하면서 지역 내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 역시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등 풀뿌리의 범위는 점차로 넓어지고 있다.
“경험 공유 풀뿌리운동 살아남을 것”
단순한 이익단체를 넘어서 주민공동체로 자리잡는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자활센터를 사회적기업에 연계시키는 일을 비롯해 농촌지역에서 점차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며느리들과 함께하는 사업들까지 시행되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비롯한 농촌의 취약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읽기 모임까지 꾸려졌다. “동화읽기 모임에서 첫 번째 강좌를 그림책 읽기로 시작했다. 한글을 못 읽는 외국인 학부모들이나 자녀들, 어르신들도 그림책은 같이 볼 수 있으니까.” 피부색도 다른 가족에, 희끗희끗한 머리까지 섞인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다양한 출신과 연령대의 구성원들이 한 데 모이는 모습이야말로 옥천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고스란히 담은 광경이었다.
사실상 옥천 전역을 포괄하는 주민공동체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나름의 지역적 전통이 바탕이 되고 있다. 특히 1989년 군민주 신문으로 출발한 옥천신문이 종합일간지를 비롯한 외지 언론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군내에서 가장 높은 구독률을 보일 정도로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공동체 조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역정당 운동도 ‘마포파티’가 생기기 10년 전인 2005년부터 ‘풀뿌리옥천당’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바 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직된 풀뿌리옥천당은 12명으로 시작한 초소형 정당으로 역시 정당법상의 정당으로 인정받진 못했고 지방의회 진출에도 실패했지만 수도권 중심·양대 정당 체제에 선구적으로 대안을 제시한 사례로 남아 있다.
서울 마포지역 공동체가 지역 주민자치의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가는 것과는 달리 옥천의 주민공동체가 직면한 고민은 따로 있다. 젊은층 인구가 지역을 벗어나는 해묵은 농촌지역의 고민에 더해 고령화가 진행되는 흐름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영농조합의 농민들 가운데는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많고 그래서 그분들을 도와 공동체 전체의 사업으로 판로개척에 도움을 드리면서 우리 공동체가 커지기도 했다.” 순환경제공동체 이채준 공동대표는 공동체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자생력과 안정성도 높아졌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주민공동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옥천당을 세울 정도의 새로운 시도는 물론 앞으로는 지금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역 내 남아 있는 젊은 세대나, 풀뿌리 공동체를 시도하는 다른 지역으로 경험을 전수하는 사업은 오히려 더 늘릴 계획이다.”
어쩌면 풀뿌리는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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