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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언어 달라 수차례 전쟁… 끊긴 英왕조 계승 연합국가로… 1707년 합병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4. 6.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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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언어 달라 수차례 전쟁… 끊긴 英왕조 계승 연합국가로… 1707년 합병

스코틀랜드, 英과 ‘애증의 1000년史’ 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브레이브하트’(위)와 ‘메리다와 마법의 숲’(아래).
스코틀랜드는 영국(Great Britain)을 구성하는 네 개 지역(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중 한 곳으로, 자치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다. 수도는 에든버러이며, 국교는 장로회이다. 잉글랜드 주민이 앵글로색슨 족인데 비해,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다. 공식언어는 영어이지만, 게일어란 토속어를 가지고 있다. 게일어는 18세기 잉글랜드의 켈트족 문화에 대한 탄압으로 킬트, 백파이프 등과 함께 금지된 후 쇠퇴했으나, 아직도 일부 지방에서는 노년층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올드 랭 자인’은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의 시구에 선율을 붙인 노래로, 게일어로 ‘그리운 지난날’이란 의미이다.

스코틀랜드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500년쯤부터로 추정된다. 기원전 8세기쯤 켈트족 문화가 스코틀랜드로 전파됐고, 9세기 중반쯤 알바왕국이 건설된 후 그 혈통을 이어받은 던컨 1세가 즉위하면서 1034년 스코틀랜드왕국이 수립됐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차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1297년 9월 11일 윌리엄 월리스와 앤드루 머레이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이 대승을 거둔 ‘스털링 다리전투’는 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월리스는 오늘날까지 독립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바로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하트’이다. 월리스는 1298년 폴커크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게 패배했고, 결국 런던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쟁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또 하나의 전투는 1314년 6월 23∼24일 배넉번 전투이다. 분리독립 투표가 치러지는 올해가 마침 꼭 7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스코틀랜드의 비공식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에도 등장하는 배넉번 전투는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의 침공을 막아낸 전투로, 14년 뒤인 1328년 5월 1일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603년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메리 1세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나라는 연합국가 형태를 취하게 됐으며, 1707년 5월 1일 스코틀랜드는 결국 영국에 완전 합병됐다.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는 스털링 다리 전투 700주년을 맞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대해 제한적인 지방자치권을 허용했고, 2년 뒤인 1999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가 개원했다. 현재 행정수반은 2007년 총선과 2011년 총선에서 승리한 민족주의 정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의 당수 알렉스 새먼드이다. 스코틀랜드 행정수반에 대한 영국의 공식 호칭은 ‘제1스코틀랜드장관(First Minister of Scotland)’이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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