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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왜 깨어있는 시민인가(토머스 프랭크)

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by 소나무맨 2014. 5. 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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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 분노하는 사람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진실을 편익과 연관시킨다는 사회통념에 따르면 유권자란 경제적 이기심의 귀감입니다. 만일 고소득자의 과세율을 인상한다는 법안이 발의된다면, 우리는 고소득자들은 법안에 반대하는 반면, 저소득자들은 찬성표를 던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은 자주 어긋납니다. 저자는 가난한 소농들이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지고,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이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하며,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들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내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그곳은 미국의 캔자스 주 입니다.

미국의 중심에 있는 캔자스 주는, 대초원 지역의 상징적인 주이자 과거 극렬한 진보성향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 창설을 주도한 유진 뎁스가 활동했고, 미국자동차연맹의 산실이며, 그 외에도 수많은 노동단체가 활동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캔자스 주는 미국 어느 주보다 기독교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조지 W 부시가 캔자스 주에서 8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습니다. 캔자스의 이러한 정치 구도 변화는 미국 정치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업자라고 무조건 경제 침체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보다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낸 부모들이 특별히 정부의 교육지원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며, 일하는 여성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정책에 대해서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가정주부들과 별반 의견이 다르지 않다. -《스틱》p.278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카운티가 있는 곳은 다름아닌 캔자스 주입니다. 그러나 캔자스 사람들은 계급적 적개심은 불타오르지만 그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적 기반은 부인합니다. 계급이란 돈이나 타고난 출신성분, 심지어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문제는 진실성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캔자스 사람들은 국가의 순결성과 같은 더 웅대한 것에 주목하며, 가난한 원인이 경제체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영적 문제라고 말하는 공화당 상원의원 샘 브라운백 같은 사람들의 말에 동조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간에는 공화당의 정치전략이었던 '두 개의 미국'론이 있습니다.

공화당 지역인 빨간 주와 민주당 지역인 파란 주를 비교하는 '두 개의 미국'론에 따르면, 파란 주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멋지고 영리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조롱하고,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속물적인 상류층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빨간 주의 사람들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유쾌하다고 말합니다. 빨간 주의 사람들은 애국자이기 때문에 군대를 갔다오고, 언제나 정직하게 일하는 소박한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이러한 구분법에 따라 미국의 농민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월가에 보복하기 위해 공화당에 투표합니다.

정치적 진보주의자들과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둘 다 도덕성이 자신의 종교와 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종교와 정치의 전체 영역은 거의 배타적으로 보수주의자들에게 넘겨져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반대의 강력한 목소리가 없음을 최대한 이용해왔으며,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을 종교와 정치에 연결하는 일련의 상징적 쟁점들을 만들어왔다. -《자유 전쟁》p.230 

캔자스 주처럼 확고한 민주당 지역이 공화당 지역으로 변화한 계기 중 하나는 민주당의 중도층 전략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자, 농민과 서민층보다 중도층에 집중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 계층에게 공백이 생겼고, 이를 공화당이 캐치하는데 성공합니다. 민주당의 중도층 전략이 중도층을 포섭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민주당은 중도층도 잡지 못하고 전통적 지지 기반마저 잃게 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결국 미국 중부 지역은 공화당의 지지지역이 되었고, 민주당은 해안가 지역에 지지기반이 있는 구조가 됩니다.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우파는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중도에 있던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좌측으로 밀어내며 공화당의 주요 세력이 됩니다. 이들은 선거에서 낙태,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논쟁을 이끌어냈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선거의 핵심이 경제에서 가치로 전환된 것입니다. 선거가 도덕성, 가치를 다투는 투쟁의 장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치에 투표를 하게 되었고,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낙태, 동성애, 진화론 같은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필연적으로 네거티브 선거전이 이뤄졌고, 이는 전체적인 면에서 악영향을 미칩니다.

대통령이 좋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취임 이후 정책을 집행할 추진력이 생긴다. 하지만 오직 네거티브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이런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유권자들은 오직 누구누구가 싫어서 그 사람을 뽑았을 뿐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는 낙선자뿐 아니라 당선자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킹메이커》p.82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캔자스 주의 변화, 미국 내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경제에서 눈길을 돌려 낙태 찬반 문제, 동성애 허용 문제 등을 주요 쟁점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공화당은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프랭크는 왜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힘들어하면서도 경제적 요소와 상관없이 투표를 하는 착란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를 하는가 - 왜 깨어있는 시민인가

 

경향신문 | 이종우 |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입력 2014.05.06 22:31 | 수정 2014.05.06 22:36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를 하는가 | 토머스 프랭크

재작년 12월 대선 결과 때문에 '멘붕'에 빠진 적이 있다. 대학생이던 1987년에 대선을 통해 한국의 보수층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 실감한 이후 처음 맛보는 기분이었다. 그때 읽은 책이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랭크가 쓴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를 하는가 > 였다.

캔자스는 미국에서 최초이자 가장 큰 좌파 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그런 캔자스가 지금은 보수화해 공화당의 아성이 됐다. 캔자스 사람들이 갑자기 잘살게 돼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부자와 기업을 대변하고, 민주당이 노동자와 가난한 서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캔자스의 변화는 돈, 가치 그리고 언론에 의해 만들어졌다. 공화당은 캔자스를 뺏어오기 위해 낙태 논쟁을 벌였다. 부모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태아를 지우는 게 타당한가 하는 주제였다. 이 소동은 '동성애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애정 형태인가'로 발전했고, 결국 '미국적 가치'를 보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이런 논쟁에 보수 언론과 기독교 우파가 한몫 거들었다. 편파 방송을 일삼는 폭스TV는 처음엔 거슬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고, 기독교는 종교적인 힘을 유권자들의 정치적 분노로 변화시켰다. 민주당의 미숙한 대응도 캔자스의 변심에 일조했다. 새로운 중도노선으로 부자들에게 유리한 경제정책을 채택해 노동자·중산층 같은 우군을 투표장에서 밀어냈다.

다수는 자주 잘못된 판단을 한다. 정치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부자들이 자기를 정말 부자로 만들어줄 거라 믿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인데 말이다. 그러고는 얘기한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역사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바꿀 수 있는데도.

< 이종우 |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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