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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과일, 바나나--덴 쾨펠

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by 소나무맨 2014. 5. 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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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과일, 바나나
글 : 노정용 (북칼럼니스트)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사과가 아닌 바나나였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따먹은 선악과는 과연 사과일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성경 원본들 대다수에는 선악과가 사과였다고 언급한 대목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사과로 알고 있다. 특히 문화사에서도 남성의 신체적 특징인 목젖(Adam's apple)이 아담의 목에 사과가 걸린 탓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현대 분류학의 아버지인 칼 폰 린네는 그 과일이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린네가 바나나에 붙인 속명 ‘무사(Musa)’는 바나나를 뜻하는 아랍어 ‘마우즈(Mouz)’에서 유래했으며, 코란에도 에덴동산에 바나나가 등장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열매가 사과가 아닌 바나나라는 사실은 아담과 이브가 나체임을 깨닫고 몸을 가린 ‘무화과 잎사귀’로도 증명된다. 무화과 잎으로는 중요 부위만 간신히 가릴 수 있을 뿐 몸을 가릴 수 없으나 바나나 잎은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의복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바나나
댄 쾨펠 | 이마고
바나나 기업의 탄생
19세기 말 몇몇 악덕 사업가들이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생소했던 바나나 사업에 뛰어들었다. 바나나는 얼마가지 않아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과 산지는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와 몇 시간 거리에 있었던 반면에 바나나는 운송 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고, 썩기 쉬운 열대과일이었다. 초기 바나나 농장은 미국 서부에 생겼던 금광촌과 비슷했다. 오늘날 바나나 기업은 치키타(Chiquita)(보스턴 프루트-UFC-유나이티드 브랜드-치키타로 회사명 변경)와 돌(Dole)(이전 스탠더드 프루트)로 양분되지만, 바나나 기업 역사의 전반기에는 UFC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바나나 회사들은 울창한 밀림에서 바나나를 싣고 와 지방 시장에 이르는 기나긴 유통과정 동안 바나나의 숙성을 조절하고 지연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바나나 회사들이 처음으로 숙성 지연을 위해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중을 조절해 과일의 신선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보관법인 CA저장법을 개발했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 기술은 당시만 해도 혁신적이었으며, ‘과일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중남미 독재권력과 결탁한 바나나 기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의 배경은 바나나다. 이야기는 농장 파업이 일어나고 계엄령이 선포되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마르케스가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말하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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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y | 2010-11-03 | no.753
은 1929년에 일어난 콜롬비아 바나나 대학살이었다. 1920년대 말경 바나나 산업의 규모가 커지자, 바나나 재배국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상품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에 비해 자신들은 얼마나 턱없이 낮은 대가를 받고 있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았고 대우는 형편없었다. 여기에 모욕감을 더한 것은 조국의 땅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이었다.
바나나 업계는 값싼 바나나, 다시 말해 값싼 노동력이 없으면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기존 농지 중 상당수가 파나마병의 확산으로 영구적인 휴경지가 되었기 때문에 기업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농지가 필요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처음엔 바나나 대기업에 비우호적이었다.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던 바나나 노동자들은 점차 대담해져 1928년 10월 콜롬비아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3만2000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며, 의료서비스와 너무나도 당연한 화장실 시설을 요구했다. 이 파업으로 바나나 기업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1950년대 과테말라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는 바나나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바나나 회사들과 싸우다가 전복됐다. 이로 인해 1980년대 마야인 집단학살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0년대에 바나나 기업들은 피델 카스트로가 국유화한 농장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CIA에 화물선을 내어주어 피그스 만 침공에 힘을 보탰다. 바나나는 이처럼 끊임없이 승리와 비극에 연루되었다. 온두라스 바나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다룬 소설, 시, 노래를 썼다. 치키타의 사장 엘리 블랙은 정계와 얽힌 기업 비리가 폭로되자 1974년 맨해튼 고층 빌딩의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은 20세기 내내 권력을 휘두르던 바나나 기업들의 과도한 영향력을 꼬집는 말이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파나마병
바나나는 가장 간편한 음식이다. 급속도로 도시화되는 미국에서 바나나야말로 갈색 종이봉투와 도시락에 제격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바나나를 좋아한다. 요즘 세계인이 먹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이다. 그런데 보다 앞선 세대들이 먹었던 바나나는 캐번디시가 아니라 ‘거구의 마이크(Big Mike)’라는 뜻의 ‘그로 미셸(Gros Michel)’ 종이었다. 그로 미셸은 모든 면에서 캐번디시보다 우월했다. 크기도 더 크고 껍질도 더 두꺼운데다 질감도 한층 부드러웠으며 맛도 더 진하고 풍부했다. 미국인이 처음 먹은 바나나가 바로 그로 미셸이었으며, 19세기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미국인이 사고, 먹고, 아는 유일한 바나나는 그로 미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로 미셸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처음 바나나를 경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훗날 곰팡이류로 밝혀진 병에 걸려 열매를 맺기도 전에 시들어 죽기 시작했다. 병이 처음 발견된 곳이 파나마였으므로 ‘파나마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파나마병은 치유가 불가능했고 흙과 물을 매개체로 급속히 확산됐다. 파나마병이 그토록 치명적인 이유는 병균이 강해서만은 아니었다. 복제로 재배되는 특성상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전부 쌍둥이이다. 따라서 전부 똑같기 때문에 전부 병에 걸리기도 쉬운 것이다. 그로 미셸의 운명이 바로 그러했다. 파나마병은 처음 발견된 곳에서 인접 국가로 퍼졌다. 북쪽으로는 코스타리카를 거쳐 과테말라까지, 남쪽으로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까지 퍼져나갔다. 처음 병이 발견되고 50년이 지난 1960년, 그로 미셸은 사실상 멸종됐다.
위기에 처한 바나나 업계는 망하기 직전에 파나마병에 면역이 있는 캐번디시라는 새로운 종을 도입했다. 2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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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으로의 전환은 소비자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고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그로 미셸을 대신한 캐번디시가 파나마병에 튼튼했던 것은 강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 우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남태평양 제도들에서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캐번디시 외의 다른 바나나 품종들을 길러 먹는데, 이들 역시 파나마병에 감염되기 쉬웠다. 파나마병이 한번 퍼지면 예외 없이 전멸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지역 바나나라는 것뿐이다.
상업용 바나나와 집 주위에서 키워 먹는 바나나가 섞일 일은 없었기에, 파나마병은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너지 못했다. 처음에 캐번디시는 그로 미셸과 같은 지역에서만 경작되었으나 1970년대 후반, 바나나에 대한 세계인의 식욕이 변하면서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중남미 등으로 확산됐다. 1980년대에는 열대우림, 야자유 농장이 바나나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땅을 갈아엎고 상업용 바나나를 심은 지 몇 년 뒤, 나무가 죽기 시작했다. 뿌리로 스며든 정체불명의 병균 때문에 잎의 색깔이 변하고 수분 공급이 막혔다. 천하무적이라고 여겼던 캐번디시를 습격한 것은 다름 아닌 파나마병이었다.
파나마병을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은 유전공학
파나마병과 함께 싱가토카는 오늘날 가장 위험하고 임박한 공격자로 등장했다. 파키스탄의 번치탑처럼 불길한 징조로 해석된다. 싱가토카는 나무를 순식간에 죽게 하며 병에 걸리면 2주 안에 증상이 나타나고, 나무는 얼마 안 돼 죽어버린다. 파나마병, 싱가토카, 번치탑 등 바나나에 치명적인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유전공학이다. 바나나 연구자 로니 스웬넨은 “유전자 형질전환은 진화가 아니라 혁명이다”고 강조한다. 유전자 변형식품을 ‘프랑켄 푸드’(프랑켄슈타인과 음식을 결합시킨 신조어)라고 부르며 반대하는 사람은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바나나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우리의 노력
바나나 경주가 다시 시작됐다. 돌, 치키타, 델몬트, 영국의 파이프스, 에콰도르의 보니타, 그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대여섯 개의 바나나 회사들이 유럽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의 아침 밥상을 점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직까지 기적의 바나나는 발표된 바 없다. 빠른 시간 안에 더 나은 바나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로니 스웬넨이 내놓은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신품종 개발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먹는 바나나 한 가지만을 생각해왔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다른 바나나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바나나 재배국가와 의존국가가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들과 짐을 나누어 짊어지기를 거부한다면, 맨 처음 범선에 그로 미셸을 실어오면서 시작된 경시와 착취의 한 세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유기농 바나나는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도, 특히 노동자에게도 좋다. 노동자의 일상생활 개선을 시도한 것을 우리는 공정무역 바나나라고 하는데, 안전한 작업 환경에서 재배되고 재배자와 노동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지만, 바나나 대기업들이 일부 수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렵다. 소비자가 공정무역 바나나 또는 유기농 바나나, 아니면 둘 다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시설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바나나 역사상 과오로 점철된 노동 착취, 부패정권과의 야합 등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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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멘토] 노정용 | 북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20여년 간 언론사에서 출판을 비롯한 음악, 미술, 공연 등을 담당한 '문화 마당발'이다. 오랜 문화현장 경험으로 뛰어난 문화인을 발굴하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는 북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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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책을 사랑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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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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