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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똘똘뭉친 전원형 기업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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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똘똘뭉친 전원형 기업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 낙서장

2014/05/03 13:14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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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티디자이너 경기도시공사 -Build a Basic- | GICO
원문 http://blog.naver.com/gico12/20139746286

 

지혜로 똘똘 뭉친 전원형 기업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

 

 

소피아 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는 니스와 칸느, 모로코 등 '프렌치 리비에라(French Riviera)'라고 불리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유럽 최고의 기업도시로 세계 대부분 산업과학단지가 기존 도시 안에 건설된 것과는 달리, 이 도시는 산업과학단지 중심 기업도시 구현을 위해 특별히 조성된 전원형 기업도시입니다. 2,300ha(약 690만 평)에 걸쳐 포도밭과 올리브나무만 있던 농촌지역이 어느새 첨단 산업 클러스터 단지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 선견지명이 있는 개인과 정부의 합작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그리스어로 '지혜'라는 뜻의 '소피아'와 대도시의 반대도시 즉 '전원도시'라는 뜻의 '앙티폴리스'의 합성어입니다. 실제로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지혜를 지닌 개인, 그리고 개인의 선견지명을 믿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부의 공동 걸작품입니다.

 

 

1960년 프랑스 최고 그랑제꼴 중 하나인 파리광산대학(ENSMP)의 피에르 라피트(Pierre Laffitte)교수는 지중해 연안에 '과학, 문화, 지혜가 어우러진 미래 도시'를 건설하자는 제안을 내놓습니다. 자신의 고향인 알프마리팀 지역이 새로운 경제발전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낙후된 지역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라피트 교수가 정부, 대학, 국회 등을 쫓아다니며 수 없이 설득을 한 결과, 드디어 '과학과 지혜의 도시'건설 계획이 확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69년 소피아 앙티폴리스협회가 구성되었고, 공식적으로 소피아 앙티폴리스라는 미래지향적 기업도시가 탄생하게 됩니다.

 

 

설립되자마자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프랑스 정부에 요청하여 프랑스 최소 행정구역인 코뮌 5개에 걸쳐 펼쳐져 있는 이상적인 부지를 '개발유보지역'으로 지정받습니다. 1972년 알프마리팀 지자체정부는 중앙정부와 합의하여 소피아 앙티폴리스 건설 계획을 '국가적 개발사업'으로 지정하고 기업, 연구소, 대학의 적극적인 유치에 나서게 되는데, 그 결과 1974년 최초로 프랑스석유연구소(FRANLAB)와 지오피직스(Geophysics)가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입주하게 됩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 건설 계획이 날개를 달고 크게 비상하게 된 것은 1982년 새롭게 취임한 프랑스와 미테랑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권력의 지방 분산화 정책'을 실천에 옮기며 지역개발 결정권을 전적으로 지자체에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책에 힘입어 지자체가 소피아 앙티폴리스 도시 건설에 관한 권한을 모두 위임받게 되자 1982년에 무려 125개 공기업 및 정부연구소들이 대거 입주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1985년에는 115개, 1986년 150개, 1987년 88개, 1989년에는 94개 기업이 입주하게 됩니다.

 

 

♣ 위기가 더 큰 도약의 계기로 작용

 

이처럼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 믿은 순간 소피아 앙티폴리스에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들이 닥쳤습니다. 이는 소피아 앙티폴리스 도시 건설 계획이 지자체 주도 하에 이루어지다 보니 기업, 연구소, 학교 등 입주 기업 및 단체들 사이에 소통과 교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변 지역사회에도 고용 효과가 별로 없었던 내부적 문제가 잠복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위기가 오히려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분위기 쇄신을 불러일으키며 대도약의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첫째, 소피아 앙티폴리스 입주 대기업들은 구조개편을 단행하고 직원들을 해고하는데,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좋은 주거 및 교육환경 때문에 떠나기 싫었던 해고 직원들이 이 도시에서 창업을 하게 됩니다. 창업 회사들은 자신들이 나온 대기업으로부터 아웃소싱 일거리를 받아 내생적 혁신 클러스터로 부상하게 됩니다.

 

둘째, 위기에 직면한 대기업들은 과거와는 달리 소규모로 입주하고, 부족한 노동력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되는데, 그 결과 지역사회에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시회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셋째,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위기가 닥쳐올 무렵, 그 이전에 입주한 대형 연구소들의 연구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 연구 결과를 사용화 하기 위한 파생기업들이 설립되기 시작합니다.

 

넷째, 1984년에 설립된 소피아 앙티폴리스재단은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인 내부 소통 부재 현상의 타개책을 모색하였습니다. 재단이 전문가클럽, 취미동호회, 동종 기업 간 협회 결성 등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인적 교류 및 정보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이로서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분위기는 완전히 쇄신될 수 있었습니다.

 

 

♣ 30년 만에 유럽 최고의 첨단산업과학클러스터 도시로 발전


 

일단 위기를 뛰어넘자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본격적인 발전궤도로 진입을 하게 되고, 1994년에는 드디어 1,000번째 기업이 입주를 하게 됩니다. 1995년부터는 세계 신기술 관련 기업들이 속속 이 도시에 진출을 하게 되는데, 1997년 한 해 동안에만 지멘스 같은 대기업들과 창업 기업들에 의하여 주로 고급 전문직 분야에서 1,500명의 고용이 창출되었습니다.


처음에 분양하기로 계획되었던 단지 부지는 1990년대 말 모두 분양이 완료되어 2005년에 기존의 도시 북쪽 지역으로 새롭게 도시를 확장해야 할 만큼 소피아 앙티폴리스 건설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08년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상황을 살펴보면, 60여 개 이상 국적의 총 1,276개 기업이 진출하여 총 2만 6,635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미래지향적 첨단산업과학클러스터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5대 첨단산업분야가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5대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그 5개 분야란 정보공학, 생명공학, 화학 및 의약학, 환경공학, 물질공학 및 에너지 분야입니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정보공학 분야로 입주 기업의 45%, 전체 고용의 58%, 총 수입의 42%를 차지합니다. 또한 외국자본 회사는 전체 입주기업의 12%, 전체 고용의 25%를 차지합니다.

 

 

♣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성공 요인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미래를 이끌어갈 첨단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산·학·연 즉 기업, 학교, 연구소가 골고루 입주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유발했다는 것입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니스, 칸느 등 주변 도시와 연계하여 대규모 고용창출 효과를 유발했다는 점입니다. 주변 지역에 창출한 고용이 무려 10만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첨단산업과학 클러스터로 발전한 덕분에 소피아 앙티폴리스로 가는 관문인 니스 공항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이 곳으로 출장을 오거나 견학을 오는 세계 각국 정부 대표단, 산업과학단지 대표단, 그리고 기업대표단으로 늘 붐벼 컨벤션 산업 관련 고용창출 효과 또한 뛰어납니다.

 

 

이렇듯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세계적인 기업도시로 성공할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을 찾는다면 바로 정부 정책의 전문성과 일관성입니다. 이 도시의 개발 관할 사항을 모두 관련 지자체 소관으로 넘기자 결정 과정이 간소화되었고, 기업 유치 및 설립, 입주 그리고 사후 과정은 모두 전문기관과 전문가들에 의하여 철저하게 도시가 관리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이 뒷받침됐다는 것이 성공요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정권 변화와 상관없이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장기적인 비전을 지닌 정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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