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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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노동의 맞잡은 손, 새로운 내일을 만든다!
4월 19일 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창립총회 현장
스스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우리는 대부분 노동을 한다. 그리고 타인의 노동에 의해, 타인의 노동을 통해 살아간다. 타인의 노동이 기르고 만든 음식을 먹고, 타인의 노동이 만든 옷을 입으며, 타인의 노동이 깃든 집에 산다.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는 것은 너와 나, 우리의 노동이다. 즉, 타인의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고 자신의 노동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이 삶이다.
노동과 노동이 손을 맞잡는 것은 노동 윤리가 순환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윤리를 얻는다.”
국내 첫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창립
지난 4월 19일, 서울 장충동 만해NGO육센터에서 ‘고용연대’를 기치로 내 건 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가 창립총회를 열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범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다.
이 날은 연합회의 첫 날인 동시에, 20년 이어진 역사의 변곡점이기도 했다. 노협연합회는 1990년대 공론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3년, 협동조합 정신 계승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 중심으로 ‘한국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됐다. 관련 법제도가 없어서 한국대안기업연합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추진단이 구성된지 1년 3개월 만인 이 날 연합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이날 나가타 유조 일본노동자협동조합(워커즈코프)연합회 이사장과 방문단을 비롯해 김기준 의원(국회 협동조합활성화포럼 공동대표), 임종한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 상임대표, 오상운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장,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열렸다.
대안노협연합회는 한국대안기업연합회를 이어받아 국제노동자협동조합연맹(CICOPA),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준회원 자격을 발족과 동시에 얻었다.
송인창 해피브릿지 이사장, 초대 협회장에
권운혁 한국대안기업연합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앞서 20여 년의 세월이 있었고 앞서 활동한 분들과 준비위원회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한국에도 진정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가 출범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진 안건 심의를 통해 송인창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이사장이 초대 협회장으로 추대됐고, 연합회 정관과 규약, 초대 임원진, 올해 사업계획과 예산계획 등을 확정했다.
연합회에 초대회원으로 참여한 협동조합은 총 22개다.
정회원(6곳) |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엑투스협동조합,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쿱비즈협동조합, 이피쿱협동조합,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
예비회원(9곳) |
위즈온협동조합, 춤추는 문화놀이터 뜻, 삶의출판협동조합, 한국국악협동조합, 소셜메이트솜직원협동조합, 협동조합 온리, 의연협동경영센터,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두레종합건설협동조합 |
준회원(7곳) |
컴윈, 함께일하는세상, 우진교통,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한국에너지복지센터,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
대안노협연합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노동자협동조합은 자신의 일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운동이자 삶의 방식이며, 노동자협동조합의 비전은 협동하는 인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어 내는 것”이라며 “같이 가는 것,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교환하는 것으로 우리의 협동의 시대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구조 기다리는 사회 곳곳에 희망을!"
서종식 의연협동경영센터 대표가 진행한 2부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고 실종자들의 생존을 기리는 묵념부터 시작했다. 국가적인 슬픔 앞에 이날 행사는 대체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송인창 회장의 인사말이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노동자협동조합 운동이 또 다른 역사를 쓴 기념비적인 날이나 마음 놓고 즐길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도 배 안에는 많은 분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구조를 기다리는 것은 세월호에 갇힌 분들뿐이 아니다. 사회에도 많은 분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확대되는 양극화 속에서 사회의 외곽으로 몰리는 분들도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지 않을까. 점점 커지는 자본의 힘 때문에 하청화 되고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상태와 반실업상태에 놓인 자영업자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스펙 경쟁과 한 가지 방식만 강요받는 젊은이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대안노협연합회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회 곳곳에 희망을 주는 조직과 운동에 동참할 것을 약속드린다. 출발은 소박하지만 한국의 노협운동이 20년의 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존재해 왔다면 그 토대를 갖고 10년 후에는 희망의 불씨가 되는 대안노협연합회가 되겠다.”
“안타까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는 말로 축사를 건넨 김기준 의원은 “고용 없는 성장이 일반화된 지금, 대안이 노동자협동조합 운동이며 노협연합회가 창립한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루노 놀런츠 국제노동자협동조합연맹(CICOPA) 사무총장, 기이바볼라 론-알프스지역 노협연합회장과 미쉘 로하 사무총장, 유승민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별위원장 등의 축하영상이 이어졌다.
7000명 고용한 일본 연합회 사업 소개
나가타 일본노협연합회 회장은 연대사를 통해 자신들의 오랜 경험과 철학을 전했다.
“일본노협연합회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30여년 활동해왔다. 부정과 무시 속에서 10년을 활동하고 나니 이후 10년 동안은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시선을 받았다. 이후의 또 10년은 협동노동이 사회에서 많이 인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에는 중장년 실업자의 일자리 만들기에서 출발했고, 지금 협동노동,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협은 일하는 사람, 시민, 노동자가 어떤 존재인지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이나 일본 모두 빈곤과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지가 중요한 테마라고 강조했다. 실업과 빈곤 문제가 정부 개입이나 행정으로 해결되지 않기에 시민이나 노동자들이 지역에서 주인공으로서 얼마나 활동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나가타 회장은 자신들의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센터사업단’이라는 일본노협연합회의 모델사업인데 케어(돌봄), 녹화사업 등을 지역사회 발전전략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고. 이에 현재 센터사업단은 7000명의 노동자와 170억 엔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노협과 고령자생협, 센터사업단 3개로 구성된 일본노협연합회의 사업구조에서 센터사업단은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우리는 조합원이 얼마나 주인공으로서 활동하고 일할 것인지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한국의 노협연합회와 일본의 노협연합회가 힘을 합쳐 아시아에서 진정한 노협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면 좋겠다.”
자활, 신협, 노동조합 등과의 연대
이어서 임종한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 상임대표는 “노협연합회는 협동운동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조직”이라며 “대안노협연합회가 대안적인 삶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협과 자활의 깊은 인연을 언급한 오상운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장은 “자활도 지금 격변기로서 자활의 역할과 가치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노동자협동조합이) 질적 성장의 좋은 기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백승재 신협서울시협의회장은 “노협은 조합원의 절심함이 들어있고 자신의 삶을 협동조합의 중심에 둬야 하는 유일한 협동조합”이라며 “대안노협연합회가 건강하게 성장·발전하기를 기원하며 73만 조합원을 대표해서 신협이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건강한 협동조합운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연대사를 건넸다. 노조의 형제 조직이 노협이라고 운을 뗀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지금 한국 사회는 위기다. 불안정, 불평등, 불공정함이 만연해 있는데, 대안노협연합회가 등불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표했다.
중간지원조직 대표들도 축하와 연대의 뜻을 밝혔다. 이대영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협동조합본부장이 “협동조합들이 더 열심히 넓은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데 도움을 드리고 함께 하도록 하겠다”고 말한데 이어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2003년 노협연합회의 출발점을 언급하면서 “지금 많은 분야를 아울러서 비전을 보여줄 수 있게 된 점 감사드리고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열심히 돕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주식회사와는 다른 장점 살려야”
장종익 교수(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는 ‘한국에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창립의 의의와 역할’에 대해 짧게 발표했다.
장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협은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것이 아닌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실천적 스펙트럼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회사와 다른 노협만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것. 따라서 일하는 사람이 자율을 가지고 자주경영을 하되, 파산 등의 위험을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노협연합회가 노동의 존엄성을 어떻게 확보하며, 자주경영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기를 기대했다.
“노협은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실업문제 대응, 질 좋은 고용의 창출, 기업 내 민주주의 형성 등에 많은 성과를 보여줬지만, 이중의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산 시 돈을 날리는 위험과 주식회사 창업을 하면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가져갈 수 있으나 노협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소유주가 많으면 싸울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있다. 때문에 노협의 교육이나 공감대가 중요하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스스로 노동의 주체로서의 자각, 책임의식 등을 고민하고 연합회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집단 지성을 모았으면 좋겠다.”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자라는 도시를 꿈꾸며
노협연합회가 고용연대를 넘어서 도시와 사회 혁신의 단초가 된 경우가 있다. 스페인 몬드라곤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사례다. 몬드라곤이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시작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클리블랜드 시민들은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모델을 도시에 접목하는 ‘클리블랜드 모델’을 떠올렸고 일자리와 협동을 중심에 놓았다. 세탁업협동조합인 에버그린 협동조합을 우선 만들었다. 8명의 조합원은 버는 돈 일부를 떼어 재투자 여력을 만들었다. 뒤이어 지역의 건물 지붕에 ‘솔라 패널’(태양광 충전기)을 설치하는 오하이오 태양광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처럼 다양한 노동자협동조합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협동조합에 맞는 금융시스템도 구축했다. 소득이 낮고 무기력했던 지역민들은 주인으로서 협동조합을 이끌기 시작했고, 도시 전체가 활력을 띠게 됐다. 노동자들이 도시를 바꾼 것이다
협동조합에서 ‘커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필자도 이번 연합회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며 꿈을 꾸고 있다. 삶을 지탱하는 노동이 도시를 다시 서게 하고, 도시가 노동으로 자라나는 꿈.
곧 5월 1일, 노동절이다. 노동하는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 한 편을 전한다.
별들의 온 힘으로 굴러서 해는 떠오르고
화분에 작은 싹 하나도
매순간 심호흡으로 자기 생을 밀어 올린다
_조향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중에서
글. 김이준수(노동자협동조합 적정기업 ep coop)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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