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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더 이상 성장은 답이 아냐"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4. 4. 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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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더 이상 성장은 답이 아냐"

국민일보 | 입력 2014.04.18 02:43
지난 11일 전 세계 125개국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S5가 동시 출시됐다. 갤럭시S 시리즈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최단 기간 1000만대 판매 기록을 갈아 치우며 승승장구 중이다. "고장난 것도 아닌데, 멀쩡한 휴대전화를 왜 바꾸느냐"는 말은 구닥다리나 하는 소리다. 휴대전화는 물론 노트북과 프린터, 세탁기까지 이제 웬만한 가전제품의 적정 수명을 2∼3년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낭비사회를 넘어서/세르주 라투슈/정기헌 옮김/민음사 진보적인 성향의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세르주 라투슈는 이런 소비 사회를 '성장 사회의 종착점'으로 정의한다. '성장을 위한 성장'이 경제와 삶의 우선적인 목표, 심지어 유일한 목표가 되어 버린 사회가 극단적인 소비 열풍으로 내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기업이 새로운 대체 수요를 염두에 두고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인위적으로 수명을 정해놓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계획적 진부화가 부품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기술적 진부화', 광고나 유행 때문에 구식으로 전락하는 '상징적 진부화'와 결합해 사람들에게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대안은 탈성장 사회다. 이는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 가령 계획적 진부화를 제품의 지속 가능성, 수리 가능성, 계획적 재활용으로 대체하는 것뿐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모두 획기적으로 바꿀 때 가능하다. "상품만이 넘쳐 나는 가짜 풍요는 우리에게서 자연의 멋진 선물들에 감탄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 버렸다. 이런 감탄의 능력은 우리 마음속에 어머니, 대지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것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자세, 더 나아가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고양시켜 준다. 이 능력이야말로 계획적 진부화라는 암울한 운명을 극복하고 탈성장 사회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분량은 140쪽으로 짧지만,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데이비드 C 코튼/김경숙 옮김/사이 두 번째 책,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는 앞의 책과 다른 방식으로 '더 이상 성장은 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저자가 실제 경험 끝에 내놓은 결론이라 더 눈길을 끈다. 미국의 보수적인 중산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C 코튼 교수는 아프리카 등 빈국의 사람들에게 미국식 번영을 누리게 하겠다는 꿈을 안고, 미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에티오피아에서 경영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전문 비즈니스맨을 양성하는 시작 단계부터 무너져내렸다. 이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20여년 간 미국의 원조 현장을 지켜본 그는 개발과 성장 위주의 정책이 부유층에게 부를 몰아주고, 성장의 수혜자가 되길 바랐던 이들을 오히려 빈곤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얼까. "성장에 대한 강박 관념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새로운 경제 관계를 재구성해야만 한다"는 것, 곧 탈성장 사회로의 지향이다. 그는 미국의 원조 현장을 떠나 생활 민주주의 운동을 통해 답을 찾고 있는데, 결국 '돈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을 우선할 수 있는 의식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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