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학년 아이들은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대신 온몸으로 뛰어놀며 숫자와 도형을 배운다. <아래>공현진초등학교에 ‘공립형 발도르프 교육’을 도입한 김용근 교감 ‘전국 발도르프교육 교사연구회’ 대표도 맡고 있다.
대신 다른 학교에 없는 것도 많다. 학교 뒤편엔 울창한 숲이, 앞으론 푸른 바다가 있다. 얼마 전엔 숲속 놀이터에 그네를 달았고, 머잖아 운동장 놀이 기구도 싹 바뀐다.
그러니 학생들의 일과도 다르다. 아이들은 교문에 들어서면 운동장이나 뒷산에서 실컷 논다. 그러다 마중 나온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가선 시를 외고 노래를 부른 뒤에야 수업을 시작한다. 첫째 시간이 시작되는 오전 9시부터 방과후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까지, 아이들은 과학·영어·미술 같은 교과 외에도 움직임교육·자유놀이·수공예 등을 하며 ‘온몸으로’ 익히고 배운다.
◆강원 산골 학교에 쏠리는 시선, 왜?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강원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초등학교(교장 전현철)가 요즘 화제다. 전교생 35명인 이 학교에서 올해부터 정규 학교 최초로 발도르프 교육 과정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현진초는 올해 강원도형 혁신학교인 ‘행복더하기 학교’로 지정되면서 학교장이 재량껏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같은 변화를 이끄는 이가 김용근 교감이다. ‘전국 발도르프교육 교사연구회’ 대표이기도 한 김교감은 1993년부터 이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 속초양양교육지원청 장학사로 재직할 때는 독일의 발도르프 전문가를 초빙해 교사 연수를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 학교에 부임한 그는 도교육청에서 행복더하기 학교 공모를 실시하자 ‘공립형 발도르프 초등학교’를 만들어 보겠다고 신청했다.
“3년 전만 해도 전교생이 80~90명이었는데, 지난해 37명으로 줄면서 분교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작은 학교 살리기를 위해서도 변화가 필요했지요.”
김교감은 교사와 학부모들을 설득해 공모에 응했고, 평가단의 현장 실사 끝에 혁신학교로 선정됐다. 선정 후 교사들은 주 1회 공부 모임을 만들어 함께 역량을 다져나갔다. 교사의 변화와 혁신 없이 발도르프 수업을 진행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발달 단계에 맞게 ‘잘 놀도록’ 돕는다
공현진초 아이들은 이야기를 만들거나 연극에 참여하며 영어를 배운다. 운동장에서 시소를 타면서 지렛대의 원리를 이해하고, 진흙을 주물럭거리며 도형과 친해진다. 지난 춘분에는 전교생이 감자를 심었고, 며칠 전엔 쑥떡을 나눠 먹으며 생일잔치를 했다. 움직임교육 시간에는 접시 돌리기를 하면서 균형 잡는 법을 배운다.
김교감은 “눈에 보이는 ‘다른 점’보다 거기 담긴 ‘다른 뜻’에 주목해달라”고 말한다. 저학년 교실에서 방석을 쓰는 건 아직 어린 아이들이 딱딱한 책걸상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치운 것도 아이들의 몰입을 방해해서다. 일과 운영 방식에도 이유가 있다. 오전에는 시와 노래로 집중력을 높인 다음 주요 과목 수업을 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에는 수공예나 육체 활동을 한다.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이 ‘잘 놀도록’ 이끕니다. 다양한 놀이가 주는 자극은 손에서 팔로, 가슴으로, 뇌로 이어지며 감수성과 인지능력을 향상시킵니다. 인지학 이론과 발도르프 교육 현장의 성과가 이를 입증합니다.”
◆“학교 가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공현진초 아이들은 요즘 등교 시간이 부쩍 빨라졌다. 1학년 정혜영 어린이는 “집보다 학교가 훨씬 재밌어요” 한다. 1·2학년 돌봄교실 김미라 교사는 “공현진초에 온 지 2년째인데, 여기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김희경 보건교사는 “아이들이 맘껏 뛰놀아 그런지 튼튼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돼 있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가 알려지면서 전학 온 학생도 5명이나 되고, 지금도 문의가 잇따른다. 공현진초는 오는 6월 셋째주 토요일에 관심 있는 학부모와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학교 공개를 할 예정이다. 전학생 유치나 학교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들과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다.
김교감은 “우리 학교 실험의 가장 큰 의의는 공교육 체계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모범 사례로 자리 잡아 다른 학교에도 확대될 수 있게 해야지요. 그래야 더 많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고성=손수정 기자 sio2so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