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여행] 누르면 별 세상이 열린다
2014. 2. 9. 21:07ㆍ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엘리베이터 여행] 누르면 별 세상이 열린다
시사INLive 최정선 입력 2014.02.08 14:27삶의 공간이 바뀌면 상상의 공간도 바뀐다. 소꿉놀이하기 좋은 볕 잘 드는 마당, 뿌연 먼지와 곰팡내와 온갖 잡동사니가 왈칵 쏟아지는 어둑한 다락이 한 세대 전 아이들의 무대였다면, 요즘 아이들에게 익숙한 무대는 아무래도 아파트일 것이다.
하늘을 향해 차곡차곡 탑처럼 쌓아올린 직육면체의 집, 그 집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다 못해 수직이다.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대신 우리는 허공에 매달린 작은 상자에 몸을 싣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위로 아래로 오르내린다. 그림책 < 엘리베이터 여행 > 은 지상의 우리를 공중의 집으로 길어 올리는 바로 그 금속 두레박, 엘리베이터를 무대로 익살스러운 판타지를 펼쳐 보인다.
빨간 머리 로자는 아파트 맨 꼭대기 8층에 산다. 학교에 갈 때도 집으로 돌아올 때도 로자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거울이 있고 전등이 있고 층을 표시하는 버튼이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엘리베이터다. 엄마 아빠가 야간 강의를 들으러 간 목요일 밤, 집에 혼자 남아 잠을 청하던 로자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현관문을 연다.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린 채 멈춰 있다. 뭔가 이상하다. 엘리베이터 안이 샹들리에가 달린 아늑한 거실이다. 폭신해 보이는 빨간 소파에는 부루퉁한 얼굴의 작은 남자가 앉아 있다. "드디어 왔구나."
남자는 로자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하며 주문을 외운다. "버튼을 꾹 누르면 슈웅, 떠나는 거야! 하지만 잘 골라야 해. U는 절대로 누르면 안 돼!" 'U'는 지하층을 가리키는 버튼이다. 로자는 '7'을 누른다. 이렇게 시작된 엘리베이터 여행은 흥미진진하다. '7'을 누르면 7층 대신 일곱 마리 아기 염소가 일곱 개의 도장이 찍힌 책 위를 팔짝팔짝 뛰어넘고 일곱 마리 까마귀가 일곱 개의 산 너머로 날아가는, 모든 것이 7로 이루어진 세상이 나온다. '3'을 누르면 세쌍둥이가 트라이앵글을 들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동방박사 셋이 혹 세 개 달린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모든 것이 3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유럽 그림책의 매력 가득
흔히 그림 동화라고 부르는 유럽의 민담을 재기발랄하게 채용했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유럽 그림책 특유의 매력이 돋보인다. 정교하고 세련된 짜임새, 형식의 재미를 한껏 살린 정갈한 그림, 천연덕스러운 유머 모두 매력적이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이 주체적이고 당찬 아이라는 점이다.
빨간 모자가 아닌 빨간 머리 로자는 낯선 세계의 초대에 선뜻 응하지만 그 세계의 규칙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그 세계를 즐길 줄 아는 배짱을 갖췄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때맞춰 현실 세계로 돌아올 줄도 안다. 한마디로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다. 로자는 민담 속 주인공을 많이 닮았다. 때가 되면 망설임 없이 세상 구경을 하러 집을 떠나고, 거인과 대결할 때도 주눅 들지 않는 작고 꾀바른 이들 말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버튼을 꾹 누르면 슈웅 떠나는 거다. 어디 잘 골라보자.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기획자) / webmaster
하늘을 향해 차곡차곡 탑처럼 쌓아올린 직육면체의 집, 그 집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다 못해 수직이다.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대신 우리는 허공에 매달린 작은 상자에 몸을 싣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위로 아래로 오르내린다. 그림책 < 엘리베이터 여행 > 은 지상의 우리를 공중의 집으로 길어 올리는 바로 그 금속 두레박, 엘리베이터를 무대로 익살스러운 판타지를 펼쳐 보인다.
빨간 머리 로자는 아파트 맨 꼭대기 8층에 산다. 학교에 갈 때도 집으로 돌아올 때도 로자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거울이 있고 전등이 있고 층을 표시하는 버튼이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엘리베이터다. 엄마 아빠가 야간 강의를 들으러 간 목요일 밤, 집에 혼자 남아 잠을 청하던 로자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현관문을 연다.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린 채 멈춰 있다. 뭔가 이상하다. 엘리베이터 안이 샹들리에가 달린 아늑한 거실이다. 폭신해 보이는 빨간 소파에는 부루퉁한 얼굴의 작은 남자가 앉아 있다. "드디어 왔구나."
남자는 로자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하며 주문을 외운다. "버튼을 꾹 누르면 슈웅, 떠나는 거야! 하지만 잘 골라야 해. U는 절대로 누르면 안 돼!" 'U'는 지하층을 가리키는 버튼이다. 로자는 '7'을 누른다. 이렇게 시작된 엘리베이터 여행은 흥미진진하다. '7'을 누르면 7층 대신 일곱 마리 아기 염소가 일곱 개의 도장이 찍힌 책 위를 팔짝팔짝 뛰어넘고 일곱 마리 까마귀가 일곱 개의 산 너머로 날아가는, 모든 것이 7로 이루어진 세상이 나온다. '3'을 누르면 세쌍둥이가 트라이앵글을 들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동방박사 셋이 혹 세 개 달린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모든 것이 3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 엘리베이터 여행 > 파울 마르 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펴냄 |
흔히 그림 동화라고 부르는 유럽의 민담을 재기발랄하게 채용했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유럽 그림책 특유의 매력이 돋보인다. 정교하고 세련된 짜임새, 형식의 재미를 한껏 살린 정갈한 그림, 천연덕스러운 유머 모두 매력적이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이 주체적이고 당찬 아이라는 점이다.
빨간 모자가 아닌 빨간 머리 로자는 낯선 세계의 초대에 선뜻 응하지만 그 세계의 규칙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그 세계를 즐길 줄 아는 배짱을 갖췄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때맞춰 현실 세계로 돌아올 줄도 안다. 한마디로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다. 로자는 민담 속 주인공을 많이 닮았다. 때가 되면 망설임 없이 세상 구경을 하러 집을 떠나고, 거인과 대결할 때도 주눅 들지 않는 작고 꾀바른 이들 말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버튼을 꾹 누르면 슈웅 떠나는 거다. 어디 잘 골라보자.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기획자) /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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