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요리연구가로 살아온 안양요리학원 김윤자 원장은 어느 때부터인가 '자투리 식재료 요리전문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저탄소 녹색 생활법 제안가로 활동했다. 환경부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자투리 재료를 활용하는 '먹어치우기' 캠페인도 벌인 바 있다. 요리연구가라면 잘 다듬어진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일만 했을 텐데, 어떻게 자투리 식재료 요리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을까?
"대학에서 강의할 때였어요. 실습 시간이었는데 한 학생이 파를 썰고 있었죠. 그런데 파뿌리에서 무려 2cm가 넘는 부분을 댕강 썰어내 버리고 쓰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왜 이렇게 썰었냐고 물으니…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어리둥절해하더라고요. 단순한 절약 차원을 넘어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탓이라고 봤어요."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한 김 원장의 철학은 조금 독특했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요리를 배우라"고 답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거나 자투리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것도 '절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김 원장은 단언했다.
"무심히 쓰는 흔한 파 한 뿌리요. 씨를 심고 키워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대략 8, 9개월이에요. 그 학생이 무심코 썰어낸 2cm의 파를 시간으로 계산해보세요. 그런 걸 생각하면 함부로 버리지 못하죠."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법, 요리?꼭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아니더라도 약간의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요리의 기본을 안다면 식재료와 음식물 중 버려야 할 '쓰레기'가 없음을 쉽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법이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 이야기가 나오면 요리부터 배우라는 말을 하게 된다고.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요리를 공부해보세요. 어려운 일품요리 말고 가정 요리 기초요. 한국 요리의 기본적인 양념 비율이 열서너 가지 돼요. 원재료의 관념, 궁합 메뉴와 양념, 식재료 손질 방법만 알아도 가정 요리하는 데 전혀 문제없고, 아마 지금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3분의 2 이상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요리를 알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쓰레기를 줄이는 법으로 양 조절이나 보관 방법 등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방법은 분명 요리의 범위 안에 있었다. 양배추 겉잎은 보통 떼어서 버리게 마련인데, 이 겉잎을 깨끗이 씻어 다시마, 멸치와 함께 넣고 국물을 내면 국수 장국으로 그만이란다. 실제 사찰음식에서는 양배추로 모든 국물을 낸다고 한다. 양배추 겉잎이나 양파껍질, 대파뿌리 등도 깨끗이 씻어 전처리만 잘해두면 냉동실에 얼렸다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동치미 국물을 낼 때도 좋고, 다른 요리 국물을 낼 때도 사용한다. 설탕 대신 천연 단맛을 내는 효과까지 있어 음식의 깊은 맛이 배가된다고. 여름이면 처치 곤란인 큰 부피의 수박껍질도 믹서에 갈면 훌륭한 식재료로 변신한다. 그 즙으로 식혜를 만들 수도 있고, 된장찌개의 국물도 된다. 수박즙으로 된장찌개를 끓이면 양파를 조금만 넣어도 시원한 맛이 난다.
"보통 손질하면서 버리게 되는 채소 자투리는 아주 훌륭한 음식 재료가 돼요. 채소로 국물을 내 사용하면 인위적인 단맛이 아닌 자연스러운 깊은 맛을 얻을 수 있어 조미료 사용도 줄일 수 있죠. 물론 필요한 양만큼 장을 보고, 먹을 만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건 기본이겠죠!"
쓰레기를 쓰레기로 보지 말자김 원장의 자투리 음식 활용법은 실로 다양했다. 단순히 채소 손질 뒤 남는 자투리 부분을 냉동실에 얼려 보관하며 국물 재료로 사용하는 정도는 그야말로 기본 중 기본에 속했다.
"시중에서 파는 고추장이나 간장을 보세요. 아무리 실온에 두어도 곰팡이가 안 나요.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곰팡이나 미생물조차 살 수 없는 음식이 과연 인간의 몸에 좋을까요? 쓰레기를 쓰레기로만 보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버리는 것들 중에는 사실 쓰레기가 아닌 것이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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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음식들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아닌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할 수 있다. 양배추 등 남은 채소는 국물 재료로 사용할 수 있고, 달걀껍데기는 행주를 삶을 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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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에 곰팡이가 나면 그 부분만 걷어내고 다시 팔팔 끓여 먹으면 된다. 식빵에 곰팡이가 나면 그 부분만 버리고 잘 말린 뒤 갈아 빵가루로 이용하면 좋다. 단호박은 껍질을 먹지 않는다면 벗겨서 사용하고, 그 껍질은 믹서에 갈아 밀가루 반죽에 넣으면 녹색빛의 훌륭한 건강 음식이 탄생한다. 영양가 또한 배가된다. 호박죽을 끓일 때 주로 사용하는 조선호박도 숟가락 말고 손으로 살살 속을 파라고 한다. 숟가락으로 긁어내면 안에 있는 단맛 나는 살이 다 빠지게 된다. 물론 버려지는 양도 줄어든다. 갈색 반점이 생긴 바나나는 식초를 부어주면 20일 뒤 훌륭한 바나나 향 식초로 재탄생된다.
"깨끗이 전처리를 잘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고요. 그 다음은 냉동실 한 부분과 김치냉장고 김치통 하나 정도의 공간만 남겨두세요. 그 공간에 그동안 버리던 많은 식재료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면 때때로 훌륭한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얼리고, 말리고, 삶아도 결국에는 쓰레기가 되는 것들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배출되는 양도 비교 불가일뿐더러 생으로 버리는 것보다 한 번 끓이고, 익히는 과정을 거친 재료들이 훨씬 더 분해가 빨리 된다"라고 답한다. 땅도 부담이 덜해지는 셈이다. 몰라서 버리고 있다는 김 원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Tip 김윤자 원장이 제안하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법
1모든 식재료는 손질 전 깨끗이 씻어 완벽하게 전처리를 한다.
2잼에 곰팡이가 생기면 그 부분만 걷어내고 팔팔 끓인다.
3쉰 식혜는 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조리면 조청이 된다.
4손질 뒤 남은 자투리 채소는 냉동실에 얼린 다음 필요할 때마다 달걀찜, 볶음밥 등에 사용한다.
5양파껍질은 설탕을 넣어 절이면 발효 차가 된다.
6동태나 북어 등 생선껍질과 지느러미, 꼬리 등은 잘 말려 해물 국물을 낸다.
7양배추 겉잎은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국물을 낸다.
8유통기한이 지난 식빵은 잘 말려 육류 튀김 등에 빵가루로 이용한다.
9과일껍질은 동치미 국물 낼 때 사용한다.
10더덕껍질에 술을 부어주면 더덕 살보다 더 좋은 술이 된다. 고기 요리에 주로 사용한다.
11표고버섯 기둥은 따로 냉동실에 얼려 모았다가 간장에 조려 반찬으로 만든다.
12멍이 들거나 깨진 과일 등은 그 부분만 도려내고 잼을 만들거나 과일 식초를 담근다.
13귤껍질, 도라지 잔뿌리, 더덕껍질 등은 잘 말려 한방 차나 요리용 담금 술을 만든다.
14국물 내고 남은 멸치는 우엉 조릴 때 갈아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15행주를 삶을 때 달걀껍데기를 잘게 부숴 넣으면 더욱 하얘진다.
16어쩔 수 없이 남은 재료들은 진공 포장을 해 공기를 차단하면 유통기한이 늘어난다.
< 글 강은진(객원기자) | 사진 김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