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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3) 고1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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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4. 1. 2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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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3) 고1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국민일보 | 입력 2014.01.20 02:32 | 수정 2014.01.20 20:07
화장실 가득 담배 연기… 교사는 포기한 듯 지나쳐

"정글이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서울 강동구 한 고교의 1학년 담임교사는 자신의 교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2차 성징이 절정에 달한 시기, 교실 내 권력 싸움이나 성적 경쟁 같은 겉으로 보이는 갈등과는 별도로 고1 아이들은 저마다의 내전을 겪는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고교 3학년 중 가장 많은 청소년이 학업을 중단하는 시기는 고교 1학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만 열여섯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의무교육이 끝나는 시기

지난달 19일 오전 찾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이곳은 지난해 4월 교육부 조사에서 학생들의 학교 이탈 비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곳이다. 전교생의 19.32%, 다섯 명 중 한 명이 자퇴했다. 지난 한 해에만 무려 119명이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1학년 108명, 2학년 9명, 3학년 2명 등으로 이곳 역시 1학년의 이탈률이 가장 높다.

교문 앞에 택시 한 대가 섰다. 유행하는 패딩 점퍼를 입은 여학생이 내려 쪼르르 학교로 뛰어 들어갔다. 가방 대신 지갑과 휴대전화, 담요를 들고 있었다. 시계는 정오를 가리켰다. 기자가 "이제 등교하느냐"고 물으니 "병원에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교사 A씨가 심드렁한 얼굴로 "거짓말이잖아"라고 꼬집었다. 여학생은 교사의 말을 무시했다. A씨는 "애들이 하루 종일 등교하고, 하루 종일 하교한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곳 아이들 대부분이 정해진 등·하교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최소 출석일수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건물로 들어가 3층까지 한참 계단을 올라가니 그제야 교실이 나왔다. 저층에서 수업을 하니 아이들이 자꾸 창밖으로 뛰어내려 도망을 가 아예 1∼2층의 교실을 모두 없앴다.

복도에는 으레 고교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공익광고나 대학 포스터 대신 피임법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복도 끝 화장실에서 남학생 두 명이 걸어 나왔다. 화장실 안은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교사들은 훈육을 포기한 듯 그냥 지나쳤다. 건너편의 여자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총체적 난국이다. 특정 학교에 소위 '문제아'들이 몰리다 보니 그만큼 자퇴율도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감 B씨는 "성적이나 출석일수 문제 등으로 일반 인문계 고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온다"며 "중학교 3학년까지 보장되는 의무교육이 끝나는 시점이다 보니 더 이상 공교육에 억지로 붙들려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은 '의무교육'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사라지는 고교 1학년 때 가장 많이 자퇴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교 1학년은 사춘기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이해할 수 없는 부적응 행동들도 속출한다. 지난해 말 이 학교 1학년 C군은 수업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가 교사가 이를 지적하자 교실 바닥에 덜렁 드러누웠다. 반 친구들은 이 같은 광경을 보며 박수를 쳤다.

옆 반 D군과 친구들은 수업시간이 되면 책상 방향을 교실 뒤쪽으로 돌린 뒤 교탁을 등지고 앉는다.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이유다. 교사는 혼을 내다 지쳐 이제 이들을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중학교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할 때 학교 부적응 학생들은 선택권 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학교로 떠밀려 들어온다. B씨는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끼리 모이게 되면 서로 나쁜 영향을 더 주고받는다"면서 "친구들끼리 한꺼번에 자퇴하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대입 압박 분위기에 적응 못하기도

중학교 때는 상대적으로 성적 부담이 덜하지만, 고교에서는 입학 직후인 1학년 3월부터 대입 수능 모의고사가 시작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이 성적을 토대로 자율학습 교실을 나누기도 한다. 우등생에게는 좋은 책상과 1인용 전등이 마련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자연스레 교사들의 관심에서 밀려난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에게는 시험은 물론이고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부산에 사는 김모(17)양은 '학교가 싫어서'라기보단 '공부가 어려워서' 자퇴한 경우다.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커피숍에서 김양을 만났다. 분홍색 후드티에 빨간 운동화, 질끈 묶은 머리.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학교 얘기가 나오자 김양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김양에게 학교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고 했다.

중학교 때 기초가 부실했던 김양은 고교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김양은 "공부를 못하니 선생님들의 대우도 달랐다"고 털어놨다. "중학교 때 없던 야간자율학습까지 억지로 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수업 시간엔 엎드려 잤다. 자는 것도 지겨워지면 책상에 낙서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서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했다. 결석도 점점 잦아졌다. 대학 진학률에 신경을 써야 하는 교사들은 방양을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김양은 결국 인근의 대안학교로 학적을 옮겼다.

서울 강북구의 주모(17)양도 마찬가지다. 주양의 꿈은 작곡가다. 수업 시간에는 책상 아래 오선지 공책을 두고 몰래 곡을 썼다. 교사에게 수없이 혼났다. 주양은 "갓 들어온 고등학교에서는 내 꿈을 전혀 존중받지 못했다"면서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3년간 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과감히 뛰쳐나왔다"고 밝혔다. 주양은 현재 서울의 한 예술대안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여성 듀오 인디 밴드 '제이래빗'이 롤 모델이다. 대안학교에서는 검정고시 준비도 도와주고, 주양이 원하는 작곡 공부도 지원해준다. 주양은 "원 없이 노래를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억압적인 학교문화가 아이들을 내쫓아

서울 영등포구의 한모(17)양은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교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뛰쳐나온 경우다. 만화가가 꿈인 한양은 지방의 한 예술고에 입학했다. 기숙사 학교다 보니 전교생이 학기 내내 온종일 같이 지냈다.

학교분위기는 살벌했다. 선배 학년을 만나면 허리를 숙여 90도로 인사해야 했고,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돌기' 같은 벌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마자세'라는 것도 해 봤다. 폭력도 오고갔다. 교사들의 제지는 없었다. 기껏해야 기숙사 층을 학년별로 나눈 게 전부였다.

한양은 "하루 종일 만화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는 생활은 행복했지만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3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면서 "1년만 참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자퇴하지 않고 2학년이 되면 고통스럽고 후회스러워도 입시 준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다녀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양은 과감하게 대안학교 전학을 결정했다.

꿈이 확고해 대안학교나 유학 등 계획을 세운 뒤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은 그나마 나은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퇴는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다. 의무교육이 끝난 상황에서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은 학교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을 쉽게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만 열여섯 살, 탈학교 아이들의 인생은 너무 이른 시점부터 험난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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