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高조차도 전공 선택때 성적순 굴레 못 벗어
학교를 이미 떠났거나, 학교 밖으로 떠나려는 경계에 있는 아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고뭉치' 정도로 생각하는 건 편견일 수 있다. 학교에서 원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상당수는 또 다른 성격의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오늘도 배우고 있다.
경희(17·이하 가명)는 인문계 여고 1학년이던 지난해 부산자유학교로 왔다. 부산자유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위탁학교다. 일반 학교보다는 다소 느슨한 교칙이 적용되고 수업도 학생들 수준에 맞춰 진행된다.
경희는 중학교 1학년까지 상위 30% 내에 들 정도로 공부를 곧잘 했다. 중2때부터 가족과 사이가 틀어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가출을 한두 번 하면서 소위 '문제아'가 됐다. 학교를 옮긴 이유도 "공부하기 싫어서"였다고 했다. 공부를 이유로 댔지만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감시하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하지만 자유학교에선 상황이 달랐다. 등교 시간이 8시50분으로 여유가 있었고 야간 자율학습도 없었다. 자신을 옥죄던 틀이 사라지자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경희는 지금 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다툰다.
중학 때 가출을 경험했고 고교 땐 두 달 이상 학교를 가지 않기도 했던 은지(19)는 인문계 여고를 다닐 때 영어·수학 하위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하위반에 들어온 교사들은 "너희들 그렇게 해서 대학은 가겠냐?"고 빈정거렸다고 한다. 은지는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대놓고 무시했다"며 "수업 자체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선생님들의 태도도 학교를 떠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되레 교사들이 저하시켰다는 주장이다.
부산자유학교로 옮긴 후 은지는 일본어 1급 자격증을 땄다. 은지는 "일본어에 관심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수업이 비교적 쉬운 편이어서 시간을 내 공부했다"며 "일본어학과에 진학해 호텔리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만난 여학생 서경(18)이는 특성화고를 다니다 그만뒀다. 미용사가 되고 싶었던 서경이는 과정을 제대로 밟고 싶어 특성화고로 진학했는데 전공 선택 때 패션디자인과로 배치됐다. 뷰티과를 지망했지만 성적순으로 '짤렸다'. 국·영·수 경쟁을 벗어나 원하는 분야를 배우기 위해 선택한 특성화고에서도 성적순의 굴레가 있었던 셈이다.
뷰티과 진학을 애원했지만 학교는 들어주지 않았다. 규정상 정원 늘리는 게 어렵다면 청강생처럼 수업만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는데도 거부됐다. 서경이는 "직업전문학교로 전학 가고자 했으나 그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며 "학교에서 허비하는 시간 동안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자는 생각에 나왔다"고 말했다. 서경이는 별도 비용을 들여 미용학원을 다닌다. 서경이는 "대전시에서 개최한 미용대회에 나가 금상을 받기도 했다"며 "미용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다면 다니지 말라고 해도 다닐 것"이라고 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무한정 기회를 주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영·수 등 대학입시용 평가 기준에 뒤떨어지거나 벗어난 아이들을 돌아보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학교가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찾고, 관심 분야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학교가 감당할 수 없다며 위탁시킨 학생들 140여명과 생활하는 부산자유학교의 이동수 교무부장은 "60∼70%는 잘 버틴다"고 했다. 수준에 맞는 수업과 상담, 다소 느슨한 교칙 등만 보장해줘도 아이들 상당수는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이 교무부장은 "상위 3%에 대해서는 무한정 투자하면서 하위 10%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한 게 교육계뿐만 아니라 전 사회의 분위기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