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수현씨는 약사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8번 출구를 나서면 그의 약국이 있다. 김수현 약국. 이름을 딴 약국은 드물다. 이름이 상표가 될 정도의 유명인이 그다.
김씨의 명성은 다른 데서 비롯됐다. 그에게는 김수현식생활상담소 소장과 생명치유아카데미 원장이라는 또다른 직함이 있다.
세 가지 직함을 한 데 섞어 한마디로 말하라면 바른 식생활 전도사라고 부를 수 있다.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환경 단체 등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즈음 먹을거리와 건강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많은데 김씨는 이미 10년 전부터 전국을 다니며 "
밥상을 다시 차리자"고 외치고 다녔다.
<교육방송> <
서울방송> 등에도 출연했고 책도 많이 썼다. <밥상을 다시 차리자> 1·2, <
바른식생활이 나를 바꾼다>, <잘못된 간식 우리 아이 해친다> 등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책도 꾸준히 내고 있다. 의사를 가리키는 용어를 쓴다면 그는 먹을거리를 통해 병을 고치는 '식의(食醫)'인 셈이다.
어떤 이유로 그는 음식이 병을 고친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김씨는 어려서부터 눈물이 많았다고 한다. 가난하거나 아픈 사람을 보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약학대학에 들어간 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인 1991년 고향인 수원에 약국을 냈다. 약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렇게 번 돈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겠다는 꿈은 곧 현실이 될 줄 알았다. 약국은 장사가 잘 됐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약을 먹어도 사람들이 잘 낫지 않는 거예요. 약 만으로는 병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년 간 약국을 한 뒤 결혼을 하면서 문을 닫았다. 아픈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한약사 자격증을 따고 메가비타민요법도 배워서 썼다. 1995년 경기도 군포시에 다시 약국을 열어 그동안 배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왜 약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 것일까. 해답은 외국의 자연의학 가운데 하나인 임상영양학을 공부하면서 찾았다. 이를 통해 그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98년 군포에 약을 팔지 않는 약국을 열었다. 이름도 특이했다. 영양과 건강. 4층에 약국을 열고 조제 대신 '주부 영양학 교실'이라는 10주 과정의 강의를 만들었다.
"200만원 들여 전단지를 돌리면 10명 정도가 들으러 와요. 돈벌이는 고사하고 가진 돈도 까먹는 약국이었습니다."
그러다 큰 일이 생겼다. 아파트를 담보로 1억원을 빌려 얻은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전세금 한 푼 못받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고 아예 아파트를 처분해 남은 8천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와 방배동에 다시 약국을 열었다. 2001년이었다.
그의 강의를 듣고 몸이 좋아진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강생도 주부 중심에서 생활협동조합이나 환경단체 활동가들로 바뀌었다. 1기에 30~50명씩 22기 교육과정을 마쳤고 한살림이나 생협 지부 초청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강연을 했다.
2001년에는 <교육방송>에 출연해 '밥상을 다시 차리자'는 강의를 했다. 비판도 많이 받았다. 밀가루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자 40년 넘게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내 인생 너가 책임질거냐'고 소리쳤다. 튀김 기름의 해로움에 대해 발언한 뒤에는 닭집을 운영하는 사람으로부터 매출이 떨어지면 칼로 쑤셔버리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주부영양학교실은 식생활지도사과정과 생태영양의학자과정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꾸준히 맥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건강한데 다른 사람은 병이 나는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럴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시 '화두'를 들었다. 깨달음이 왔다. 약국을 할 때 늘 머릿속을 맴돌던 '왜 착한 사람이 병에 걸리는 걸까'라는 의문도 풀렸다. 마음이었다. 마음이 어째서? '화두'는 떠나지 않았다. 몸, 밥, 마음, 인간, 자연, 우주…. 어느 순간 마음에 품었던 의문이 하나의 실로 꿰어졌다. 회통이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다니면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마음, 마음이었다. <
밥상머리 마음공부>와 <김수현의 생활밥상>은 몸과 마음의 관계, 나와 주위 나아가 우주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김씨는 요즈음 토요일이면 여성들과 함께 모여 마음공부를 한다. 바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다.
"약에 비해 식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은 느리고 마음까지 바꾸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마음을 바꾸고 식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서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쳤다는 심의(心醫)의 흔적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