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의 핵심은 'LNT(Leave No Trace・흔적 남기지 않기)'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두가, 그곳에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곳 보호와 보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크게는 산을 개발하는 대규모 공사에서부터, 작게는 산에 가는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까지 흔적남기지 않기의 방법은 다양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실천하고 있는 모닥불을 피우지 않거나, 쓰레기를 되가져오기 등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산행을 할 때 본의 아니게 흔적을 남겨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온다. 바로 배설의 문제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을 기웃거리다가 들어간 곳에서 이미 그곳을 방문한 자의 흔적과 맞닥뜨려 난감하고 불쾌했던 경험은 산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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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 프로젝트 백은 대변의 분해를 돕는 발효제와 내용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친환경 경화제, 변을 포장하는 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에서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땅을 파고 해결하는 방법, 문질러 처리하는 방법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가지고 내려오는 방법이다. 그러나 내 몸 속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지도 않고, 더군다나 만질 수도 없는 이것을 어떻게 가져 온단 말인가?
미국에서는 '블루백 시스템(Blue-Bag System)'과 '풉 튜브(Poop Tube)'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블루백 시스템은 미국 일부 국립공원의 빙하 지대에서 사용하는 방법에서 유래했다. 2개의 플라스틱 주머니로 되어 있으며, 안쪽 주머니가 푸른색이다. 대변을 이 푸른 주머니에 보고 난 뒤에 밀봉하고, 바깥 주머니에 이중으로 밀봉하는 방법이다. 풉 튜브는 요세미티의 거벽 등반에서 처음 시도된 방법이다. 도시락 크기의 작은 종이봉투에 대변을 본 후 염소 처리한 석회를 뿌려 냄새와 수분을 없애고 플라스틱 통에 넣는 것이다. '풉(Poop)'은 '대변'의 뜻도 있지만 '뱃고물'의 뜻도 있다. 풉 튜브라 부르는 이 플라스틱통을 홀 백이나 배낭 끝에 매달아 운반하는 것을 중의적 표현한 것이다.
미국의 국립공원의 빙하 지대나 요세미티에서만 이러한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산의 인수봉과 같은 유명 암벽등반지를 중심으로 '에코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산악인 유학재씨는 200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풉 튜브 사용을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전파시키려고 하였으나 3~5차례 시행 후, 불편하다는 이유로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당시 풉튜브로 사용한 장비는 직경 10cm, 길이 30cm의 PVC 파이프로 만들었으며, 무게는 1.5kg에 달해 부피도 크고 무겁기도 하였다.
유씨는 풉튜브의 사용을 조금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에코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이 방법은 무거운 PVC 파이프 통 대신에 가벼우면서 밀폐력이 좋은 비닐 봉투와 지퍼백 그리고 '에코 그린', '에코 젤'이라는 친환경물질을 사용한다. 에코 프로젝트의 핵심은 에코 그린과 에코 젤이다. 에코 그린은 유기물 발효부숙촉진제라는 것으로, 퇴비의 발효 촉진, 축사 악취 제거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인분에 뿌려주면 발효가 빨리 되고, 악취 또한 잡아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에코 젤은 수분을 흡수해 젤로 만들어주는 친환경 소재다. 에코 젤의 원료는 어린이 일회용 기저귀, 여성 생리대, 사막화 방지, 등산용 쿨 스카프, 차량 겔 방향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에코 프로젝트는 에코 젤과 에코 그린을 뿌린 대변을 봉투에 밀폐시켜서 되가져오는 것이다. 에코 젤이 수분을 흡수하고, 에코 그린이 악취를 잡아주기 때문에 확실하게 밀폐된 봉투를 사용한다면 배낭에 넣고 다녀도 난감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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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중 불가피한 대변을 가지고 내려오는 캠페인인 '에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유학재씨
에코 그린의 재료인 유기물 발효부숙촉진제는 1kg에 5000~6000원 정도이며, 인터넷 구매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판되는 발효부숙촉진제는 딱딱한 원료를 가루를 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유씨의 경우, 에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콩을 가는 기계를 중고로 구입하여 에코 그린을 직접 만들어 오고 있다. 이렇게 직접 본인이 재료를 만들고, 포장한 에코 프로젝트 백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yoohackjae)를 통해서 필요한 산악인들에게 무상 공급하고 있다. 제작 단가는 한 개에 1천원 정도이지만, 유씨의 생각은 보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이를 사용하기를 바래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1년여 간 해외 등반을 떠나는 팀 등에 1천여 개를 배포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또는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같은 단체에서 에코 프로젝트를 활성화 시켜야 되지 않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유학재씨는 "법규로 지정되어 규제를 받는 것보다 클라이머 스스로가 헬멧을 챙기듯이 에코 프로젝트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대답했다. 클라이머가 스스로 환경을 생각하고, 보존하는 노력을 한다면 과거 인수봉 등반허가제와 같이 산악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산악 활동에 대한 규제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유학재씨는 "처음엔 단순히 인수봉 정상에서 대변을 본 흔적들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에코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되었다"며 "전국의 모든 등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수봉, 설악산, 한라산 등 특정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몰리거나 겨울철 배설 흔적으로 인해 환경오염의 우려가 있는 곳 등에서 사용한다면 산이 더욱 깨끗해질뿐더러, 산악인의 입지도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