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주진 기자] 1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전통과 착실한 경제성장, 탄탄한 사회안전망으로 ‘중남미의 우등생’으로 꼽히는 코스타리카. 지난해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143개국 중 1위를 차지하는 등 중앙아메리카 국가들 중 비교적 평화롭고 경제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입니다. 군대가 없는 영세중립국으로 ‘미주대륙의 스위스’라 불리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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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 친치야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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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아메리카 ‘여풍’ 몰이..친치야 대통령 탄생
지난 해 코스타리카에서는 최초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라우라 친치야(51) 대통령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에바 페론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 니카라과의 비올레타 차모로, 파나마의 미레야 모스코소, 칠레의 미셸 바셀레에 이어 다섯 번째입니다.
1959년생인 친치야 대통령은 코스타리카 최초 여성 장관이라는 이력도 갖고 있습니다.
비정부기구 등에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한 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공공안전부 차관, 장관을 지냈고, 2002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르 아리아스 대통령 시절인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법무장관, 부통령으로 재임했습니다. 이후 2009년 6월 중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집권당인 국민해방당(PLN=Partido Liberaci?n Nacional)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는 공약으로 일자리 창출과 아동 및 노인의 복지수준 향상, 그리고 마약밀매와 범죄 소탕을 내세워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최초 여성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시민민주주의의 역사와 전통이 깔려 있습니다.
코스타리카는 1889년 중남미지역에서 최초로 자유선거를 실시해 일찌감치 평화와 민주주의 역사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그 후 1917~19년 독재와 1948년 시민혁명 등 짧은 기간의 단절을 제외하고 국민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계속되었고, 코스타리카 시민민주주의는 발전을 지속했습니다. 이로 인해 중남미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가장 안정적으로 여성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1949년 중남미에선 처음으로 여성 투표권을 인정했고, 1958년 첫 여성 장관, 1970년 첫 여성 대사를 비롯해 1978년엔 첫 여성 주지사, 1986년엔 첫 여성 국회의장을 배출하기도 했지요. 지난해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38.6%로 르완다,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습니다.
◇ 성평등법 제정, 40% 여성할당제 시행
하지만 코스타리카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여성할당제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그리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1953년 3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한 이래 1986년까지 33년 동안 단 26명만이 당선돼 여성 의원 비율은 10%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성평등법이 통과되고 1997년 정치에서 여성 대표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40% 여성할당제가 시행되면서 1998년 선거에서 11명의 여성 의원이 탄생, 19.3%로 늘어났습니다. 2002년 선거에선 20명인 35.08%로 크게 늘어났고, 아리아스 대통령 재임 시절엔 정부 내 여성 행정 관리직 비율이 53.4%로 절반을 넘어서기도 했지요. 아울러 국방, 행정, 외무, 보건복지 등 주요 부처 장관에 여성들을 두루 임명해 여성파워를 입증했습니다.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코스타리카의 여성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할당제를 시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의 실효성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코스타리카 정부와 정당들은 최소한 40%에 해당하는 여성들을 당선 가능한 지역에 공천하도록 하고, 정당이 이를 지키지 않을 시 그 지역의 후보 등록 자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조항을 두었습니다. 현재 집권당인 국민해방당을 비롯해 기독사회통합당, 시민행동당 모두 이 같은 여성할당제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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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는 40% 여성할당제 규정으로 여성 의원 비율이 38.6%를 기록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새롭게 국회에 입성한 코스타리카 국회의원들의 선서 장면. |
◇ 코스타리카 여성, 인권수호-국제평화에도 앞장
여성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바탕은 높은 교육 수준입니다.
국가예산의 40%를 사회보장제도에, 30%를 교육에 배정하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일찍부터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질 높은 복지를 이룩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여전히 여성과 아동 보호를 위한 정책과 제도는 미비한 편입니다. 자유로운 성문화와 낙태를 금기시하는 가톨릭의 영향으로 10대 소녀들의 출산과 미혼모 문제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고, 일정한 소득 없이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미혼모 문제는 2세, 3세로 빈곤이 상속되는 악순환 고리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지요. 가톨릭신자로 보수성향인 친치야 대통령이 풀어야 할 머리 아픈 숙제이기도 합니다.
코스타리카 여성들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데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한 예로 약 20년 동안 1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중미 분쟁 지역의 5개국이 코스타리카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리아스 대통령의 역할도 컸지만, 그 이면엔 여성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코스타리카의 유엔대사로 중미전권대사를 맡았던 카렌 올센 여사는 분쟁 당사국 대표들의 부인들을 초청해 왜 이 협상이 중요한지를 설득했고, 이들은 남편들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카렌 올센 여사는 “평화에 반대되는 말은 전쟁만이 아니라 기아, 빈곤, 무지, 폭력, 잔학 등 많다. 평화란 어떻게 살 것인가다”라면서 줄기차게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코스타리카 여성들은 양성평등 실현이 곧 인권 수호와 국제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