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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잃은 사람들](3)풍자할 권리

정치, 정책/복지정책, 문화 기획

by 소나무맨 2013. 12. 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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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잃은 사람들](3)풍자할 권리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ㆍ리트윗했다고 40시간 넘게 ‘보안법 취조’

지난 5월15일 오전 8시, 회사원 신종협씨(31)는 철야근무를 마치고 귀가를 서둘렀다. 누군가 서울 합정동 집에 들어서는 신씨를 불렀다. 경찰 7명이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이적단체 구성)’를 위반했다는 혐의가 담긴 압수수색영장을 들이대고는 10시간에 걸쳐 컴퓨터 하드디스크 내용을 복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에 ‘국가의 원수’라고 쓴 스티커를 붙인 아이팟터치는 “이적단체에서 줬다”며 가져갔다. 말장난이 웃겨서 붙인 스티커였다. 그는 그날부터 지난 6월23일까지 서울 홍제3동 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보안분실에서 5차례, 총 40시간 넘게 취조를 받았다. 수사관들은 “대한민국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 사실을 인정하는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66번이나 되풀이했다.

지난해 1월 박정근씨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의 트윗을 풍자나 조롱의 의미를 담아 리트윗(퍼나르기)했다가 구속됐다. 이를 보고 신씨는 ‘#표현의_자유와_박정근을_생각하며_우리민족끼리_일_5회_리트윗’이란 트윗을 쓰고,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했다. 박씨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트위터라는 소통공간을 위축시키려는 당국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항의 표시라고 여겼다. 그는 지난해 5월까지 모두 325건을 리트윗했다.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던 차에 느닷없이 경찰이 찾아온 것이다.

회사원 신종협씨는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글을 퍼날랐다는 이유로 구속된 박정근씨 사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글을 리트윗했다가 지난 5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김정근 기자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신씨에게 공안사건은 “전설 속 무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실제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닥치자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망명까지 고민할 정도였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1~2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일이 반복됐다. 한 달짜리 출국금지통지서도 날아왔다. 직장생활 틈틈이 여행 책을 쓰던 신씨는 이러다 영영 해외로 못 나가는 게 아닌지 겁도 났다.

신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현실이 훨씬 나은 작가라는 점을 우리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인정해야 한다”는 콜롬비아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글을 쓸 때는 현실에 기반을 두되 현실보다는 더 흥미로운 걸 담겠다고 했지만 어떤 허구도 현재 공안정국과 같은 현실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기 검열도 심해졌다. 그는 “쿠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북한과 비교하는 내용을 다루려다 출판사가 피해를 입을까봐 대부분 뺐다”고 했다.

풍자할 권리를 잃은 사람은 신씨만이 아니다. 권력자를 패러디한 화가 홍성담·이하씨가 처벌되고, 작가 이제하씨는 ‘유신’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연재를 거부당했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정치적 문제가 검열의 잣대가 되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문화적 억압이 커지면서 창작 의지가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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