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파업자 직위해제·송전탑 강행 등
사회현안 조용히 넘어갈 수 없어"'안녕들하지 못한 세상'의 '안녕들하지 못한 마음'이 넘실대고 있다. 고려대생 주현우(27·경영학과·사진)씨는 그저 콕하고, 바늘을 찔렀을 뿐이다. 그 틈새로 갈데 없이 고여있던 말들이 쏟아질 줄은 몰랐다. "너무 답답하고 울화가 치미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다가 어느 한 곳에서 뻥 터지듯이 나온 것이라 생각해요." 주씨가 손으로 꾹꾹 눌러쓴 두 장의 대자보는 침묵의 벽에 금을 냈고, 그 자리에 광장이 섰다.
주씨는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지난 10일 이름 석 자 내걸고 쓴 대자보를 붙일 때는 그랬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할 여유도 없는 우리 세대는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감추는 데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모두 안녕한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했다. "상투적으로 매일 '안녕하세요', '안녕해요'라고 인사를 주고받는데, (요즘 세태를 보면) 정말로 그런지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안녕하지 못한 상황을 감추려고 가면을 쓰고 '안녕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철도노조 파업과 잇따른 파업 참가자들의 직위해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현실을 비롯해 밀양 송전탑 이야기도 손 글씨로 눌러썼다. 주씨는 "무슨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분명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데 이런 일을 주변에서 겪으면서도 다들 안녕한지 물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러 오는 시간에 맞춰 대자보 앞에 섰다. '이 글을 읽어 달라'는 일종의 호소였다. 학생들이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이날 받은 캔 음료만 70개가 넘었다. 눈이 펑펑 내렸고 곧이어 답이 쏟아졌다. 고려대에서만 50개가 넘는 대자보가 걸렸다. 다른 대학에서도 학생들은 이름을 내걸고 대자보를 썼다. 이례적이다. 14일에는 대학생과 시민 등이 함께 모여 서울역 집회 현장을 찾는 '서울역 나들이'도 했다. 안녕하지 못한 직장인들과 중·고등학생들은 온라인에서 그의 글을 돌려 읽었다.
일단은 여기까지다. 단체를 만들거나 다른 행동을 할 지는 아직 결정한 게 없다. 주씨는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줬는데, 사회적인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며 "모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울리는 이야기를 스스로 경청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말하고, 또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씨는 진보신당이 이름을 바꾼 노동당 당원이다.
박승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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