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경영학과 08학번 주현우씨가 써서 교내에 붙인 대자보. |
‘고려대 대자보’ 깊은 울림으로 일파만파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27)씨는 지난 9일 밤 철도민영화에 반대해 40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직위해제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침묵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자 한자 대자보를 써 내려갔다.다음날 주씨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 주씨는 대자보를 통해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특히, 주씨는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 해제된 것”이라며 철도 파업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질책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노동법’에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해서도 주씨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 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비꼬았다.
주씨는 이어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는 아이엠에프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해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고, 무관심하길 강요받아 왔다”고 적었다. 그는 “다만 묻고 싶다.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어나 있는 건 아닌지 여쭐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주씨의 물음은 메아리로만 끝나지 않았다. 주씨의 글이 붙은 교내 게시판 옆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진심 안녕할 수 없다’ 등 20개 가까운 대자보가 붙었다. 주씨의 대자보를 찍은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1000회 이상 공유됐다.
‘고려대 대자보’는 다음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면서 온라인상에서 더욱 퍼져나가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 대자보 전문이 게재되자 한 누리꾼은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썩은 지식이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나는 아니 우리는 침묵을 정답으로 알고 살아온 세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라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비록 내가 당하진 않았지만 억울한 사람과 같이 분노하고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국가의 국민이 아닐까요? 고대 젊은이의 외침에 모두 안녕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주씨는 대자보가 붙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 앞에 다시 한 번 섰다. ‘안녕하지 못한 자’들끼리 오는 14일 고려대에서 서울역까지 행진하는 데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10여명의 학생들이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이날 주씨 옆에 놓인 70여개에 달하는 음료와 간식, 핫팩도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함께 하지 못한 학생들의 소리 없는 대답이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